영화 '후크'에선 피터 팬 역을 맡았던 허리우드 배우 로빈 윌리엄스는 20대 초, 뉴욕의 줄리아드 연극학교에 다닐때 룸메이트로 크리스토퍼 리브를 만났다. 그러곤 오랜 우정을 나눴다. '영혼의 친구'라고 불릴 정도로 진한 우정이었다.
생각해 보자. 어느 정도였기에 '영혼의 우정'이라 불렸을까.
'슈퍼맨' 역으로 이름을 날린 리브는 43세이던 1995년 말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해 목 아래 전신이 마비됐다.
엄청난 비극 앞에 웃음을 잃은 그 앞에 한 남자가 찾아왔다.
수술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우스꽝스러운 노란 가운을 입곤 병실에 들어와 이상한 러시아 억양으로 횡설수설했다.
그 모습과 말이 하도 우스워 리브는 사고 이후 처음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그 남자는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내보였다. 윌리엄스였다.
웃음을 잃은 친구에게 웃음을 선사하려고 밤새 연습한 뒤, 단 한 사람만을 위해 공연을 했다. 리브는 이때를 떠올리며 "나를 웃기려고 애쓴 친구를 보니 앞으로 내 인생이 잘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리브는 2004년 10월 세상을 떠났다. 부인인 다나도 폐암에 걸려 남편 곁으로 떠났다.
13세짜리 아들 윌은 졸지에 고아가 됐다. 이 윌을 윌리엄스가 맡았다.
두 번 결혼한 윌리엄스에게는 전처에게서 난 20세 아들과, 지금 부인이 낳은 17세 딸과 14세 아들이 있다.
재력은 풍부하겠지만 다른 아이를 데려와 키우기로 한 결정이 누구에겐들 쉬웠겠는가. 하지만 우정의 힘은 강했다.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 아메리칸인디언의 격언이다.
세상에서 가장 크고 위대한 사랑을 받은 그리스도인인 당신
당신의 사랑은 세상이들이 베푸는 사랑보다 어떠한가?
요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 '주님의시선' 카페와 카페지기가 섬기는 '마산시민교회'가 더 풍성해 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제 목: 서로 사랑하라
주 제: 사랑
성 경: 요한1서4:7-11,20-21
논 지: 우리 죄인된 인간들은 가족끼리도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갈등과 원수까지 맺고 살고 있다.예수님을 영접하여 서로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서론]-“서로 사랑하자!” 너무나 평범하고 누구나 다 아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사랑의 요소를 제거해 버리면 그곳이 바로 지옥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집에서 중형 승용차를 타고 기름진 음식과 값비싼 의복을 입고 살아도 사랑이 없으면 결코 행복할 수 가 없는 것이다.
모두가 다 아는 사실처럼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다.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는 바로 사랑의 심볼이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주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인 나를 사랑하신 것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마음에 뜨거운 감격과 감사를 느끼야 한다.
☞ 본문을 보면
[요1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요1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
얼마나 옳은 말씀인가? 사랑을 받았으면 사랑을 주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사랑하라 |
구약시대 모세를 통하여 주신 십계명이 있다. 만일 이것 중 하나라도 범하면 중한 죄인취급을 받는다. 그런데 이시대에 주님께서 새로운 계명으로 주신 사랑하라는 말씀대로 살지 않아도 그것을 죄로 여기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상한 일이다.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것은 마치 살인하지 말라고 했지만 살인한 사람처럼 중한 죄를 지은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사기치고 살인한 사람은 굉장한 죄인취급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은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명심하라.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계명이다. 계명은 해도되고 않해도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행해야만 하는 것이다.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 사랑의 표준-사랑의 표준은 자신이다.
[마 22: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살펴보자.
더우면 시원한 곳을 찾고 추우면 따뜻한 곳을 찾고 배고프면 먹이고 목마르면 마시우고 피곤하면 누이고 병나면 약먹이고 남에게 오해를 받으면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발이 닳도록 찾아다니고 변명한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바로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자신을 위함같이 사랑하란 말인줄 믿는다.
주님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나를 미워하고 중상하고 모략하는 사람, 나와 적수가 되는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그렇다고 원수를 사랑하기 위해 멀리까지 갈 것 없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사랑하자. 5월 가정의 달에 어떻게 믿음의 가정들이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가정이 될 수 있을까?를 성경에서 찾아보자.
우리가 따지는 촌수는 멀고 가까운 것을 말해준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은 누구인가? 부모와 자식간의 촌수를 궂이 따지자면 1촌이다. 형제자매의 촌수는 2촌이다. 그런데 부자지간이나 형제지간보다 더가까운 것이 있다. 무엇일까? 夫婦
부부는 촌수가 없다. 무촌이다. 서로 다른 남녀가 사랑으로 합해서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한 몸이 된 것이다. 그런데 夫婦도 서로 사랑하면 한몸이고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지만 사랑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가? 남남이 아닌 원수중에 왕원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부는 서로가 정말 사랑해야 한다. 어떻게 사랑하는가?
먼저 아내들 들으시오.
[엡 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엡 5: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
남편의 성공은 아내의 손에 달렸다. 좀 어렵다고 불평하지 말고 가능하면 남편의 의견을 존중하라. 인도의 시인 타골은 “사랑의 별명은 이해”라고 말했다.
[잠 21:9]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
조그만 일로 남편에게 시비걸지 말고 바가지 긁지 말고 남편을 이해하라.
다음 남편들 들으시오.
[엡 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
아내가 시집올 때 누구를 믿고 오나? 시부모? 시동생 바라보고 사나? 오로지 남편하나 믿고 남편바라보고 와서 사는 줄 믿는다.
그런데 남편이 위해주고 사랑해 주고 보살펴 주지 않으면 누굴 믿고 살겠나?
시부모 잘 모시지 못한다고 구박하지 말고 남편이 먼저 아내를 이해하고 듬뿍 사랑을 주라. 그러면 시부모 잘 모시게 되어있다.
그리고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게 되어있다. 하나님이 먼저 인간을 사랑하고, 부모가 먼저 자식을 사랑하듯이 시부모가 며느리를 먼저 사랑해 주어야 한다.
“시부모는 며느리를 딸 대하듯이 하면 된다” 당신의 딸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를 먼저 생각하면 섭섭할 것도 없다. 모르는 것 사랑으로 가르치면 따라온다.
“며느리는 시부모를 친부모 대하듯이 하라” 나의 친정부모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 먼저 생각하면 섭섭할 것 없다. 얼마나 좋은가? 사랑하는 나의 남편을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나에게 주셨으니.... 할렐루야? 믿음의 사람들에겐 姑夫間의 문제가 있을래야 있을 수 없게 될 줄 믿는다. 부부간의 사랑은 이처럼 부모님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특별히 자녀들을 위해서라도 서로 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
학교에서 문제아이들을 조사해 보았더니 대부분 부모의 사이가 좋지않아 늘 싸우고 다투는 모습을 보고자란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부모의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믿음의 가족으로 사랑하자.
믿음의 사람끼리 사랑해야 한다. 예수안에서 맺어진 사랑의 공동체요 믿음안에 한 가족인줄 믿는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그렇다. 그래서 형제지간이 그렇게 귀한 것이다.
그런데 죄로 오염된 피를 나눈 육신의 형제보다 거룩한 예수의 피를 나눈 믿음의 가족은 더욱 귀한줄 믿는다.
초대교회가 성령이 충만했을 때 제일먼저 나타난 현상은 무엇이었나?
물론 방언의 은사와 구제의 은사가 나타났지만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의 은사였다. 그들은 서로가 섬기며 사랑했다. 결과 사랑에 굶주린 많은 심령들이 그와같은 사랑을 받고싶어서 회개하고 교회로 찾아나온 것이다.
[행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 하게 하시니라 |
비록 재벌들과 권력자들이 모이지 않고 배운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였지만 그러나 저들은 피차 뜨겁게 사랑하므로 놀라운 부흥을 이루었다.
우리 한길교회도 특별히 잘난 사람은 없어도 서로가 사랑이 회복될 때 자연스럽게 부흥하게 될 줄 믿는다. “진심으로 예수 안에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은 이렇게 귀하고 능력이 있다.
천사의 말보다, 방언과 구제보다 귀한 것이 사랑인줄 믿는다. 사랑없는 은사, 사랑없는 구제, 사랑없는 믿음과 봉사는 울리는 꽹과리와 같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믿음의 성도간에 사랑하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다른일을 잘했어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서로 사랑합시다”
[결론]사랑의 결과-사랑하면 나의 허물이 가리워 진다.
[벧전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벧전 4: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
사람은 다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허물과 죄가 있다. 만일 허물이 없다면 그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문제는 상대방을 내가 어떤눈으로 보느냐에 있다.
사랑의 눈으로 보면 모든 허물이 가리워지고 사랑스럽게 보인다. 반대로 미움의 눈으로 보면 좋은것도 밈게 보이고 나쁘게 보인다.
미움의 눈은 마치 현미경과 같아서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것도 백배 천배 확대하고 과장해서 이야기 한다.
이상한 것은 대부분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칭찬하면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남의 허물과 흉을 보게되면 정신이 빠짝들어서 “그래? 어쩜”하고 맞장구 친다.
사랑이 눈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의 눈은 망원경과 같다.
아무리 산이 아름다워도 가까히 가서 보면 쓰레기가 난무하고 보잘 것 없어도 멀리 망원경을 통해서 보면 아름다운 산을 볼 수 있는것과 같다.
아무쪼록 우리 한길교회 성도들은 다른 사람을 볼 때 현미경과 같은 눈으로 허물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망원경과 같은 사랑의 눈으로 좋은것만 보시고 모든 허물을 덮어주어 사랑이 넘치고 은혜가 넘치는 믿음의 가정교회를 가꾸어 가자.
조원동 지역에 사랑에 굶주린 주민들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제 발로 찾아들어와 초대교회처럼 날마다 구원받는 자의 수가 더하는 부흥하는 교회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되길 축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