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교촌마을은 신라 신문왕 2년(682)에 설립한 신라 최초의 국립대학인 국학이 있던 곳으로 교육기관인 국학의 변화는 고려시대에는 향학, 조선시대에는 향교로 이어졌다.
마을의 이름이 교동, 교촌, 교리 등으로 불린 것은 모두 향교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교촌마을 주변에는 삼국유사 속 이야기 보따리가 곳곳에 숨겨져 있다. 김알지가 태어난 계림, 원효스님과 요석공주의 사랑을 이어준 문천교(蚊川橋)터, 김유신이 살던 재매정, 월정교와 충담스님, 도화녀를 사랑한 진지왕, 선덕여왕이 만든 첨성대 등 수 많은 이야기 현장이 교촌과 남천을 따라 흩어져 있다.
경주교촌마을에는 최부자 고택을 중심으로 향교와 전통 한옥이 많이 남아있으며, 가까운 곳에 반월성, 월정교, 첨성대, 계림, 고분군 등 소중한 신라유적이 있어 신라 문화 속의 조선문화가 공존하는 특별한 곳이다.
중요민속자료인 경주 최씨고택과 중요무형문화재인 경주 교동법주가 자리잡고 있는 교촌마을은 12대 동안 만석지기 재산을 지켰고 학문에도 힘써 9대에 걸쳐 진사(進士) 를 배출한 경주 최부자의 얼이 서린 곳이다.
특히 최부자집에서 가훈처럼 내려온 원칙인 "벼슬은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 재산은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 과객(過客)을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말라, 최씨 가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는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 곳에는 원효대사와의 사이에 설총을 낳은 신라 요석공주가 살던 요석궁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전해지며, 부근에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의 탄생설화가 서려 있는 계림과 내물왕릉, 경주향교, 김유신 장군이 살았던 재매정 등이 있다.
지금은 국내 최대 규모의 목조 교량인 월정교가 새롭게 복원되어 목조 건축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으며, 야간에는 화려한 조명으로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해 관광객들이 찾는 야경코스로 각광을 받는 곳이다.
스테파노는 월정교 아래 남천 해바라기길을 답사하고 능소화(선비화)가 피어난 교촌 마을 골목길을 둘러보면서 즐겁고 행복한 나만의 소확행(小確幸)을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