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그리고 문학에 대하여
-최명희 혼불문학관을 다녀와서
내 생각에는 이렇습니다.
수필교실에서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투로 글을 쓰지 마라!”는 가르침을 전하는 데, 그 본래 뜻은 가르치지 마라는 뜻이 아니고, 잘난 체 하면 사람들이 싫어하니까 “느껴서 감동하여 스스로 변하도록 쓰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말은 절대 진리가 아닙니다. 내가 임갈굴정(臨渴掘井)의 마음으로 맨땅에다 곡괭이질하며 우물을 파느라 간절히 목이 타는데, 원-포인트 레슨처럼 족집게로 가르쳐 주는 분(진짜로 물 한 모금 주는 분)을 만나면 그 기쁨이 얼마나 크겠는지요?
이 기쁨의 사례는 무애 양주동 선생이 쓴 수필 <면학의 서>에 1인칭 , 2인칭, 3인칭을 알게 된 기쁨을 표현한 장면에서 그대로 나옵니다. 가르치는 투로 글을 쓰는 게 나쁜 게 아닙니다. 오늘의 내가 나로 존재함은, 무지하고 어리석은 나를 가르쳐서 일깨워준, 수많은 선인(先人)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배움에 목말라 있을 때 한 문장 한 지식을 깨치고 나면, 하늘의 별들이 전부 내 입으로 들어오는 기쁨을 느낄 수가 있는데, 어찌 나를 가르치는 분이 거룩하고 존경스럽지 않겠는지요?
영적인 세계에서, 새로운 신천신지(新天新地)를 알아가는 기쁨을 모르는 사람들만이, 남이 자기를 깨우치려 드는 것을 기분나빠하고 싫어합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것을 소망하는 사람은, 거짓보다 참을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고, 타인의 그릇된 말과 행동까지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서, 그 속에서 바른 것을 얻어 갑니다. 배우는 자체를 기뻐하여서 저절로 불치하문(不恥下問)합니다. 일찍이 혜능은 일자무식의 절간 심부름이나 하는 잡부였지만, 달마조사의 법통을 잇는 선종의 6대 조사가 되었습니다. 배움을 목말라하던 그 갈구(渴求)가, 어느 날 깨우침의 문을 활짝 열어준 때문입니다. 5조 홍인이, 믿음의 징표인 가사(袈裟)와 발우(鉢盂)를 혜능에게 전하고, 신수에게 맞아 죽을 것을 염려하여 남방으로 피신시키게 됩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연한 미래 앞에서 방황할 때, 철지난 현대문학잡지에서 읽게 됩니다.
새로운 세계로 나아감에 있어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 방황할 때, 바른 길을 인도해 주시면 목숨이라도 바치겠다고, 혼자 골방에서 간절이 기도하던 그런 갈구(渴求)가, 우리의 진정한 스승이자, 친구이자, 도반(道伴)입니다. 나는 집안이 가난하여 대학을 못했습니다. 대학을 못한 그 가난의 은혜로 배움에 대한 갈증을 누구보다 크게 느껴서 수많은 독서를 했고, 종교인들의 강론을 들었고, 내 것으로 만들려고(그 전하는 것을 소화시키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나보다 일곱 살이 많은 고종사촌 형님이 고대법대를 졸업하시고 사법고시 공부를 하셨는데, 그때 형님 방에 가면 월간 “현대문학” 잡지가 한방 가득했고 “사상계” 같은 월간지가 가득 했습니다. 그 많은 철지난 묵은 잡지를 지식과 지혜에 주리고 목말라 있던 내가 다 읽었으니 가난이 나의 스승이었고 그 타는 목마름 덕분으로 나의 정신세계가 깊어진 것입니다. 나는 그때 이미 장준하를 알고 있었습니다만 나에게 크게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습니다.
군대생활을 통해서 천당을 다녀왔다는 기이한 설교를 하는 목사님을 만났고 그 이후 나는 신(神)이 정말 있는지 궁금했고 신을 찾으러 반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신을 궁구(窮究)하기도 했습니다. 나의 성서적 지식이나 불교적 지식은 그 때 그 갈증에서 얻어진 것이지만 그 또한 훌륭한 영적 양식(糧食)이 되어 오늘 날의 나의 의식세계를 형성 시키고 있으니 모든 것이 합하여 선(善)을 이룬다는 성경의 말씀 또한 옳은 가르침이라 생각 합니다. 아무튼 그런 내 삶의 과정을 통해서 나는 “예면 예하고 아니면 아니오 하겠다.”는 가치관이 정립되었고, 정신이 올바른 사람과 사기꾼을 꿰뚫어 보는 안목이 생겼는데 그건 내가 허망된 것에다 영혼을 팔지 않겠다고 철갑으로 정신무장이 된 때문일 것입니다.
영적인 목마름에 방황하다가 마침표를 찍은 게 “존재는 본질에 선행 한다”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나서 입니다. (이 말은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도광의 선생님께 들은 말이지만 그냥 유식한 척 폼재려고 암송하여 떠들고 다닌 말입니다. ) 나는 그후 비로소 “개똥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는 말을 제대로 알게 됩니다. 물질의 가치와 돈의 기능을 이해했고 고교시절에 배운 정치경제를 제대로 이해하게 됩니다. 돈은 실물을 거래시키는 교환수단인 허상(虛像)인지라 그게 악마일수도 있고 천사일 수도 있는 데 허상인 돈에 정신이 팔려 가버리면 정신이 무너지니, 돈은 악이기도 하지만 돈을 지배할 정신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돈은 그 누구보다도 절대 순종하는 천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돈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성경 말씀도 이해하게 됩니다.
수많은 세상 사람들이 돈 몇 푼에다 영혼을 파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적게 줘서 그렇지 억 단위로 주면 부모와 조상은 물론 나라까지도 다 팔아먹는 타락한 영성들도 보았고 그 돈으로 권력을 매수하여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도 보았습니다. 돈에 초연한 체 하는 사람일수록 서푼도 못되는 돈에다 영혼을 팔고서 자기 영혼을 사간 자들의 나팔수(개)가 되는 모습도 보았고, 거대 조직과 집단이 “몰래 카메라처럼” 시나리오를 짜고 세상을 경천동지(驚天動地)시킬 부정과 비리를 만들어 내는 것도 보았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길 “너희는 내 앞에서 나팔을 불지 마라!”고 한 말뜻도 "사람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리라!"한 말도, 괴태가 쓴 소설 <파우스트>도 이해하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이 모든 부조리와 불합리가 허상을 쫒는 인간의 정신작용 때문에 빚어지는 것인데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계는 열심히 추구 하고, 열심히 이해하려 들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인 영적 세계는 존재하는지조차도 관심이 없습니다. 이 정도로 인간세상을 체험하고 이해하면 타인이 쓴 글이나 말에서 그 사람의 숨겨 놓은 마음을 볼 수가 있게 됩니다. 그 재주가 고교시절의 내 은사님(도광의 시인)에게 나이 쉰에 노출되어서 반 강제로 문학에 발을 들였는데 “문학을 하면 부활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다시 내 영혼이 사로잡히게 됩니다.
부활!
내가 청년 때에 알지도 못하면서 믿는다고 말한 그 부활에 다시 사로잡힙니다. 내가 신의 존재를 확인하겠다고 달려들었을 때, 예수가 내게 준 말씀(=복음)은 “너무나도 내 속을 빤히 들여다보는 듯"하여서 거역할 수가 없었는데, 도무지 부활만은 믿기지 않았는데, 이해 할 수가 없었던 그때의 그 부활에 다시 포로가 됩니다. 예수는 청년의 때에 나에게,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부활이라”했는데, 그 말의 뜻을 문학을 이해하고 비로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은유와 상징을 제대로 이해하고서 알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내”는 육안으로 보는 내가 아닙니다. 영안으로 보는 “내”도 아닙니다. “내 가르침”입니다. 육신이 떠나간 뒤에 우리에게 남는 것은 우리가 남긴 말과 가르침, 그리고 행적이 남는데, 아득한 옛날에는 구전(口傳)으로 전하다가, 문자가 발명된 이후부터 는 전부 문장으로 남았습니다. 문장을 통해서, 그 문장을 대하면, 그 속에서 문장을 지은이의 말이 내 속으로 부활되고, 그의 모습이 내 정신으로 부활되고, 그의 가르침과 인자하심이 내 꿈으로 부활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래로 인간은 죽기 살기로 책에 이름 올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만, 죽은 문장, 거짓문장들이 대부분 입니다. 날조(捏造)된 부활입니다. 가짜. 사이비는 거기서 양산 됩니다.
내 뒤를 걸어오는 문학을 사랑하시는 후학들은 부디 가짜 자기를 책 속에다 담지 마시길 바랍니다. 가짜 자기가 부활되어서 세상을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끔찍하지 않겠는지요? 오늘 고난을 당하더라도 참을 말하고 바른 것을 전해야 합니다. “솔직(率直)담백(淡白)과 순수(純粹)”, “월백설백천지백한 인간 본연의 마음” 그걸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왜 세상이 이 모양 이지경이 되었는지 말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전하는 책이 모든 인간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게 복음(福音)입니다.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벼슬. 돈. 지식. 학벌. 관록 그런 것은 진짜 당신이 아닙니다. 그게 진짜 자기 자신인 줄 믿고, 거기에 빠지는 순간, 당신은 사이비가 되는 것입니다. 문학은 메시아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말을 이렇게 전합니다.
내면에서 활활 타오르는 열정! 그 열정이 식으면 삶의 불도 꺼지는 것이니, 지금 내가 잘 모르지만 무엇이 참인지, 길인지를 궁구하고 밝히려는, "열정의 불"만큼은 죽는 날 까지 꺼트리지 마시고,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영혼(靈魂)을 태워서 밝히는 "혼불"입니다. 그 혼불이 이어져서 강물이 되고 역사가 되고 대하 소설이 되는 것입니다.
===================================
<추신>
내가 사법고시 공부하는 형의 책 보따리를 팔공산 암자까지 몇 번 가져다 준적이 있고 형으로 부터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던 내가 형이 아니었으면 어찌 가인 김병로를 알았겠습니까.
이 형님이 당시로서는 참으로 늦은 나이에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서슬 시퍼렇던 5공 시절에 판사가 되었는데, 당시 대모하던 학생에 대해 구속영장청구가 있자 영장발부 하기 전에 직접 피의자를 대면해서 구속영장 발부가 합당한지를 심문하겠다고 피의자를 데려오라고 하였으나, 검찰 측에서 반대하자 영장을 기각 시켜 버렸습니다. 이유인 즉슨 '영장의 발부도 재판의 한 과정이다. 그게 형법 총칙의 정신이다. 판사는 재판을 주관하는 위치에 있음으로 당연히 실질 심사해야 한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는데, 당시 시대 환경이 검찰에서 영장 청구하면 판사는 기계적으로 발부하던 시절이었으니 엄청난 파문이 있었습니다.
나는 당시 형이 뒷조사 당하여 고난의 길로 가는 게 아닌가하여 몹시 걱정이 되어 전화 했더니 웃으면서 "걱정 말라고" 하던 기억이 납니다. 혹시나 하여 인터넷에 "영장 실질 심사"를 치고 검색 했더니 다음의 기록이 있어 첨부 합니다. 나는 우리 국민의 인권향상에 실질적인 기여를 한 분이 이병노라고 그때부터 내 스스로 인정했고 형을 존경했습니다. 대쪽 같은 성격에 어떻게 사시는 지도 궁금합니다.
나는 '우리 사회의 행복으로의 진화'는 각계각층에 존재하면서, 인간의 존재, 생명의 존재에 대해서 보다 숭고한 가치를 찾아가는 ,이런 용기 있는 작은 정신(혼불)들이 켜는 등불들이 모여서 큰 빛을 이루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선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기에, 거기에 나도 한 등불을 보탤 것이라는 생각을 나이가 들면서 더 깊이 합니다.
내가 문학을 몰랐으면 내 영혼의 갈증을 무엇으로 채웠겠습니까. 오로지 감사할 따름입니다.
===============================
<위키백과>
"서울지법 동부지원 이병노 판사가 1989년 10월 30일 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에 대해 "서류심사만으로는 영장발부여부를 결정할 수 없어 직접 심문 하겠다"며 검찰에 피의자 소환을 요청한 것에 대해 검찰이 "법적 근거가 없다"며 이를 거부하자, 이병노 판사가 소명자료 부족 등을 이유로 영장을 기각하자 파문이 크게 확산되었다. - 이하 생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