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자랑하는 큐 왕립식물원. 식물원의 역사와 살아 있는 식물과 식물표본으로 세계적인 큐식물원에는 세상을 돌아다녀서야 볼 수 있는 진기한 식물과 표본들이 가득하고 연구물이 쌓여있다. 쓰기에 충분하고 보기에 좋을만큼 수목을 배치하고 꽃을 피워내는 큐 식물원. 특이한 생육환경을 모사한 온실이 즐비하다. 세상의 풀과 수목을 연구하고 생태를 연구하는 사람으로 기대야 하는 곳이 큐 식물원이다.
큐 식물원은 지난날의 영광에 머물지 않는다. 새천년에 영국이 새천년돔을 만들어 세계에 내세운 일과 발맞추어 굴지의 기업이 수백억 원을 기증하여 수 년 전에 새천년종자은행을 설립하고 이미 세계의 식물종자 24000종을 수집보관하고 연구하는 곳이 큐 식물원이다. 인류유산을 모두 챙겨 후손에게 안전하게 전하고 학문을 발전시켜 인류문명에 빛이 되려 함이다.
큐 식물원은 대영박물관과 명성을 같이 한다. 식물원으로서의 소장품과 식재물이 그러하나 뛰어난 조경성은 대영박물관이 비할 바가 아니다. 유서 깊고 아름다운 큐 식물원이 올 7월 식물원으로서는 처음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템즈강가에 있어 좋고 런던에 있어 좋은 큐 식물원. 큐 식물원이 세계문화유산인 것은 역사와 조경이 소장품과 식재품을 세상에 으뜸가는 무대로 올려놓아서이다.
삼십 만평을 조금 넘는 큐 식물원. 뒤로는 탁한 템즈강이 빠르게 흘러가고 앞으로는 길 건너 우아한 주택가가 늘어선다. 큐가 없었으면 템즈강은 시골의 여느 하천에 불과하고 길 앞의 주택가는 런던에서 소외된 주택가에 지나지 않는 것을 식물원이 들어서 템즈강이 명성을 더하고 고급스런 주택가가 자리한다. 큰 호수를 파고 호수를 빙 둘러 외교가와 고급주택가가 들어선 함부르크의 모습에서 강가에 선 큐 식물원을 떠올리고 물을 들여 연못을 세워낸 큐 식물원이 겹쳐진다.
삼백년 역사에 달하는 큐 식물원. 새천년에 들어서고도 아직 큐 식물원과 같은 국립식물원을 세우지 못한 우리가 부끄럽다. 80년대까지도 경제가 피폐했던 중국은 그보다도 수십 년 전에 이미 전국 수십 개의 대도시에 대형식물원을 조성하고 확충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식물원이 없어서 문화품격이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우리가 문화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열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태산과 황산은 중국을 대표하는 산이다. 태산은 중국 오악의 으뜸이요 황산은 절경이 오악을 넘어선다. 세계자연문화유산인 태산과 황산. 자연의 절경과 문화재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낸 곳이나 이 두 명산이 이름을 날리는 가운데 소나무도 자리한다. 수백 년을 살아온 소나무로 태산의 소나무는 장엄하고 황산의 소나무는 기이하다.
큐 식물원은 원래 있던 나무가 아니나 옮겨 심어 이백년 이상을 장엄한 모습으로 키워온 소나무와 참나무 등 나무를 여덟 그루나 세계문화유산에 세워냈다. 우리나라 시골 동네마다 늘어선 팽나무와 느티나무를 돌아보며 세계인이 지겨야 할 인류유산이 사람의 손으로 마음으로 일어서는 것임을 절감한다.
몇 해 전 태풍으로 프랑스 베르사이유 정원에서 만 그루가 넘는 거목이 쓰러지던 큰 손실을 당하여 프랑스는 이를 프랑스와 세계에 알려 나무를 심어내는 손길을 세계에서 끌어들인 일이 있다. 베르사이유 궁전을 찾아 세계인이 들어서나 거목이 가득하고 정원조경이 뛰어난 베르사이유 정원에서 사람들이 찬탄한다.
서울은 아름답다. 한강이 아름답고 북한산이 아름답고 당정섬이 아름답고 여의도가 아름답다. 런던만큼 널리 알려져 있지 않고 런던만한 세계의 중심이 아니나 한강은 크게 뛰어넘고 런던에 없는 북한산과 산들이 서울에 자리한다. 상암 월드컵 경기장 주변으로 세계 최고층의 빌딩이 들어서는 서울. 강변로를 달리면 끝없이 늘어선 아파트가 한강 물에 어리고 밤이면 불빛으로 한강이 물결치나 한강에는 물결치는 숲이 없고 물이 쉬고 새가 쉬는 긴 모래사장과 넓은 풀밭이 없다.
이제 조금씩 나무를 심어 내어 수십 년이 흐르고는 한강변도 나무 그늘 아래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안온하고 평화로운 강으로 부활한다. 한강에 나무가 자라고 빈터가 있어 새들이 찾아오나 그냥 나무가 늘어선 길이요 강변이다. 문 안으로 들어가 보는 경이의 세계가 한강에는 없고 그러한 꿈이 없다. 연인들도 노인도 식물원에 들어서 나무같이 오래 앉기도 하고 돌아보는 큐 식물원. 서울 사람과 서울을 찾은 외지인이 한강에 들어 쉬고 한강을 둘러보고 한강식물원에 들어 심신을 쉬고 새로움을 찾을 때 한강은 시민과 나그네와 여행의 낙원이다.
북경식물원이 생긴지는 백년이 되지 않으나 북경식물원은 중국의 문화가 되어 큐 식물원과 품격을 같이 한다. 거목이 큐 식물원만큼 가득하여서가 아니요 온실이 큐만큼 많아서가 아니요 아름다운 꽃이 큐만큼 늘어서거나 현대적인 연구가 넘쳐나서가 아니다. 큐 식물원의 서부구역이니 입구구역이니 하는 도식적인 이름이 아니라 구역을 나누고 복숭아와 버들이 주종이 되는 구역은 도류쟁절(桃柳爭絶)이라는 간판을 세워 나타낸 것과 같은 문화와 품격이 식물원에 담겨있어 북경식물원은 큐 식물원과 동렬에 들어선다.
일본이 자랑하는 아리따 자기. 아리따에서 대대로 가업을 전승하는 아리따 자기 가문에서는 화초와 풀을 어려서부터 그려내고 자기에 그려내는 업을 세워 일생을 키워간다. 자기의 그림과 미술의 원형이 아름다운 풀과 꽃에 있으니 세상의 풀과 꽃과 나무를 담고 숲과 정원을 담는 한강식물원은 이조백자를 새천년에 세워내는 기틀이기도 하다. 네델란드 델프트의 우수어린 푸른 자기에 담는 그림은 풍차와 네델란드의 농촌과 튜울립과 전원이다. 한강 식물원이 우리나라에 더하여져 우리나라 문화와 상품이 새천년의 결정체로 반짝인다. 박물관과 미술관이 빈약하고 식물원이 없어서 문화가 빈약하고 산업이 약한 것은 취할 일이 아니다.
런던과 북경보다 화려하지 않으나 한강이 있어 런던과 북경보다 아름다운 서울. 런던은 산이 없고 북경은 강이 없다. 아름다운 산이 서울을 둘러서서 시내까지 들어오고 아름다운 강이 멀리서 흘러들고 산을 따라 내린 하천이 있는 서울. 역사가 런던과 북경과 비하여 지지 않을 서울이 식물원이 없어 그만큼 천박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세계인을 불러오지 못한다.
청계천을 푸르게 세워내나 청계천만으로는 서울이 서울로 되지 않는다. 궁궐이 있고 종묘가 있으나 서울은 산이 살아야 하고 강이 살아야 한다. 산이 살고 강이 사는 것은 서울을 잠시 들르는 여행객에게도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에게도 멀지 않고 친근하여서이다. 사람을 가까이 하는 산과 강이 있어 서울은 모든 사람의 서울이 되고 세계인의 서울로 다가선다.
상암 월드컵 경기장을 지나 행주산성으로 한강이 흘러 도는 강가로 백만 평의 녹지를 세워내고 고품격의 식물원을 세워내어 런던과 북경과 어깨를 같이하고 살아나올 서울이 그립다. 수도권 매립지 앞에 허름하게 세워지는 자연사박물관이 아니라 런던과 북경의 심장부에 세워진 자연사박물관과 여러 박물관과 같이 서울의 한강을 품에 들인 한강식물원이 펼쳐질 때 서울은 베를린의 하펠강 너머로 물결치는 푸른 숲과 수로와 호수로 이어진 베를린의 동물원과 식물원이 부럽지 않고 향산이 뒤에 서는 북경식물원이 부럽지 않다. 템즈강가의 큐 왕립식물원이 부럽지 않고 마인강이 흐르는 프랑크푸르트의 식물원이 부럽지 않다.
한강 식물원을 세우고도 서울은 강이 되고 호수가 되는 크고 넓은 한강이 있어 호수 가운데 생명의 섬과 문화의 섬을 조성하여 세계 어디에도 찾기 어려운 생명과 문화의 서울로 아름다울 일이다. 여의도를 개발하고 당정섬이 사라지고 밤섬이 줄어들고 널찍한 강변은 남은 곳이 없으나 아직 한강에 섬을 키울 수 있고 생명과 문화를 들일 수 있으니 한강 식물원이 함께 하여 서울이 세계 속의 서울로 설 날이 멀지 않다. 우리가 한강에서 식물원을 꿈꾸고 생명과 문화를 꿈꾸는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