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축구 소년소녀, 축구를 즐기다 - 오사카 조선고급학교 축구부(2)
(1)에 이어서...
T : 2006년 대회 8강 진출은 한국에서도 크게 회자되었습니다. 그로인해 한국의 축구팬들이 오사카 조선고급학교 축구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작년 8강의 얘기를 듣고 싶은데요. 8강까지의 얘기를 자세히 해주시면 감사하게습니다.
감 : 2006년 초반에 제가 감독에 선임이 되고 첫 해째였습니다. 일본에서는 여름에는 인터하이가 있고 겨울에는 선수권대회가 있습니다. 제가 감독이 되고 첫 해째의 인터하이는 아쉽게도 오사카 대표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때 4강에 올랐었지요. 그래서 선수권 대회가 열릴때 선수들에게 그때의 울분을 오사카 대회에서 모두 다 풀자고 했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감독이 된 첫 해에 5년만에 2번째로 전국대회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T : 그러고보니 조선학교들이 얼마전까지는 출전권을 따고도 전국대회에 나가지 못했었죠. 정식학교로 인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그게 풀리면서 조선학교들 각 스포츠팀들의 활약이 눈이 부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5년만에 2번째라고 하셨는데요. 5년전에는(2006년 기준, 즉 2001년) 성적이 어떠했나요?
감 : 아쉽게도 5년전에는(2006년 기준, 2001년) 1회전 탈락이였습니다. 오사카 조고가 이번에 2번째로 오사카 대표로 출전하기 2년전에(2004년) 교토의 조고가 대표로 나갔었는데 그때도 1회전 패배였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국대회에 진출하면서 우리의 목표는 1승이였습니다. 1승을 해보자! 그렇게 선수들과 전국대회전에 얘기를 하였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T : 1승이 목표였는데 어느새 8강까지 진출하시게 되었네요.(웃음)
감 : 네. 그렇게 되었죠. 1회전은 아키타 대표와 붙었었는데 1:0으로 이겼습니다. 2회전은 3:0으로 이겼었죠.
T : 완승이셨네요. 3:0이면...
감 : 네. 그랬죠. 그리고 3회전 상대가 나가사키현의 대표 쿠니미고교라고 일본에서 가장 전통있고 강한팀이였습니다. 제가 고급부시기에 쿠니미학교가 전국대회에 처음으로 나가서 준우승을 했고 그 다음해에 우승을 한 강팀입니다. 쿠니미고교의 감독은 정열적이면서 교육자로서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도자가 되면서 그 선생님이 목표였고 제가 목표로한 팀을 전국대회에서 만나게 되면서 그 팀과 시합하기 전날 학생들과 리딩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제가 축구들 지도함에 있어서 목표로 했던 팀과 전국대회에서 붙을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 선수들에게 참 많이 감사했습니다. 그래도 숭부는 승부니깐 내일 반드시 이기자는 얘기를 했었고 그 경기에서 1:0 승리를 했습니다.
T : 정말 기쁘셨겠어요. 자신이 목표로 했던 팀을 이긴셈이잖아요.
감 : 기뻤죠. 그런데 그때의 기쁨은 경기에서 이기고 시간이 좀 흐르고 나서 느꼈었고 이겼을 당시에는 믿지 못하겠다는 그런.. 비현실적이라는 기분이였달까요? 진짜 우리가 이긴건가? 저 쿠니미고교를?이라는 놀라움이 들었었습니다. 그때 이겨서 8강에 진출하면서 동포들도 많이 기뻐해주셨습니다. TV에서 우리 경기를 방송해주고 해서 많은 동포들이 기뻐하고 눈물도 흘리고 하셨다고 합니다.
T : 정말 많이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셨을 것 같습니다. 수많은 일본 학교들을 이기고 일본 전국대회에서 8강안에 들었으니깐요.
감 : 그렇게 이겨서 8강에 올랐고 8강 상대는 2006년 대회 우승팀인 시가현의 야스고교였습니다. 결과는 1:1이였고 승부차기에서 아쉽게 져서 8강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T : 그 당시에 정말 아쉬우셨겠어요. 그 승부차기에서 이겼었더라면 오사카 조고가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몰랐을텐데요.
감 : 실은 오사카 대표가 그동안 전국대회를 나가도 잘해야 2회전까지밖에 못올라갔었습니다. 1회전 패배내지는 2회전 패배였죠. 그런데 오사카 대표가 21년만에 그것도 우리학교가 8강에 오르게 된 오사카에서는 역사적 사건이였죠.
T : 그렇다면 오사카에서도 굉장한 응원을 보냈었겠네요.
감 : 네 그렇습니다. 일본학교 선생님들도 많이 응원도 해주시고 격려도 해주셨습니다.
T : 정말 기쁘셨겠어요. 그 수 많은 오사카의 일본학교들이 해내지 못했던 일을 오사카 조고가 해냈으니깐요.
감 : 네. 많이 기뻤습니다. 그리고 8강에 들면서 한국의 KBS에서 전화도 오고..
T : 오사카 일레븐이라는 다큐도 나왔었죠. 진짜 한편의 드라마네요. 그동안의 오사카 대표가 하지 못했던 것을 그동안 전국대회 티켓을 따내도 나가지 못했던 오사카 조선고급학교가 해냈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민단, 조총련을 떠나서 재일동포사회에 굉장한 기쁨을 주었을 것 같습니다.
감 : 사실 오사카내의 220개의 학교를 모두 제치고 오사카 대표가 된 것은 결국 우리 동포들의 대표뿐만이 아니라 오사카 전체를 대표하는 대표가 된 것이죠. 그래서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오사카 대표로서 당당하게 싸워서 멋진 결과를 내자라고 했었습니다.
T : 8강에 진출했을때 선수들의 진로는 어떻게 되었나요?
감 : 아쉽게도 프로는 진출 못하고 대부분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T : 오사카 조고의 라이벌 학교가 있다면요?
감 : 음. 라이벌 학교가 너무 많아서요.
T : 그래도 오사카 조고가 준결이나 결승전에 올라가면 자주 붙는 학교가 있을 것 같은데요.
감 : 아 오사카에 세이후학교가 있습니다. 2001년에 오사카 대표가 되었을때도 결승전에 붙었었고 2006년에 오사카 대표가 되었을때에도 결승전에서 붙었었습니다. 항상 4강 이상의 성적을 내는 오사카에서는 강팀이죠.
T : 현재 오사카조고 축구부의 지원 상태는 어떠한가요?
감 : 시에서 지원은 전혀 없고 학교에서 비품을 사는데에만 약간의 비용을 보태주고 있습니다. 대부분 학생들의 자비로 충당되고 있습니다. 원정을 갈때에도 유니폼같은 비품을 살때에도 말이죠. 그 외에는 후원회가 있는데 축구부 OB는 아니지만 오사카 조고 축구부를 응원하는 분들이 몇 모이셔서 회원을 해주고 계십니다.
T : 만약 한국에서 후원회 가입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감 : 학교에 연락을 주시면 안내를 해드리고 있습니다. 한국 축구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T : 오사카 조고 축구부 선수들의 프로리그 진출은 얼마나 되나요?
감 : 금년에는 J2리그에 진출했고... 첫 진출 선수는 12,13년전에 도쿄 베르디에 현신철선수가 처음 진출한 선수이고 그뒤에 양용기 선수가 진출했으며 교토퍼플상가에 강현수 선수 J2 FC 기후에 이성호 선수. 조고에서 주장을 했었죠. 현재 프로에서 뛰는 선수는 세선수정도입니다.
T : 그렇다면 대다수는 진학을 택하나요?
감 : 네. 대다수는 일본 대학교에 진학합니다. 아무리 조고에서 실력이 있어도 그대로 J리그에 진출하게 되면 외국인선수로 분류가 됩니다. 그래서 4년간 일본대학교에서 교육을 받게 되면 특별 케이스로 한 팀에 한명정도씩 외국인 선수가 아니게 될 수 있습니다.
T : 혹시 K리그에서는 외국인 선수로 분류 되지 않는 건 아셨나요?
감 : 아니요. 처음 들어봅니다.
T : K리그에서는 북한 선수나 재일 동포 모두 한국선수로 분류가 됩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K리그에 대한 꿈을 키워주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안영학 선수를 봐도 한국의 선수들과 비교했을때 떨어지는 실력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안영학 선수는 처음에는 부산에 입단하여 좋은 실력을 펼쳤고 그 뒤에 더 좋은 조건으로 수원에 이적하게 되었죠. 한국에서도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을 거치지 않고 바로 프로리그로 입단하는 케이스가 많아졌습니다. 선수들에게 K리그에 대해서 많이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감 : 네. 저도 선수들에게 K리그에 대한 꿈을 키우게 하겠습니다. J리그 뿐만이 아니라요.
T : 이번에 북한 국가대표로 뽑힌 안영학 선수와 정대세 선수가 오사카 조고 축구부 선수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있을 것 같은데요.
감 : 영향이 상당히 많습니다. 우리 학교 선수들의 꿈이 바로 안영학, 정대세 선수와 같은 선수가 되는 것입니다. 꿈이자 목표죠. 예전에는 우리학교 선수들이 J리그등 프로리그에서 뛰는게 목표였는데 이제는 거기서 활약을 해서 국가대표에 뽑히는 것이 목표가 되었습니다. 북한, 한국등의 국가대표가 되어서 월드컵 무대에서 활약하는 꿈을 꾸게 되었죠.
T : 정대세 선수 같은 경우에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랐고 조선학교의 교육을 받았는데 이 선수는 일본선수의 장점과 한국선수로서의 장점을 모두다 가진 선수로 보여집니다. 이번에 월드컵 예선전에서 남한과 북한이 붙게 되어서 눈에 띄게 되었는데요.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북한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었고 또한 재일동포 선수들의 실력 또한 알 수 있었던 경기였습니다.
T : 지도시에 중점을 두는 교육방침이 있으신가요? 인성적인 면과 기술적인 면 모두 말입니다.
감 : 우리학교에서는 학교생활을 잘해야 됩니다. 공부도 잘해야되고 학교생활도 잘해야 되고.. 학교에서 지각을 하거나 수업시간에 졸거나 시험성적이 나쁘면 소집을 아예 안합니다. 학교생활에 충실해야되죠.
T : 요즘에 한국도 많이 바뀌고 있긴 합니다만 아직도 축구팀 자체를 하나의 학교생활로 보아서 시험을 잘 못더라도 어느정도의 성적을 주고 수업은 오전수업만 받는 경우도 있죠.
감 : 우리학교에서는 학교생활이 우선입니다. 학교생활을 잘해야 클럽활동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T : 저도 그 말에 동의를 합니다. 선수들 자체도 축구에만 너무 몰두하게 되면 사회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게 되죠. 거기다가 학창생활 자체가 없어지니깐요.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학교생활에는 어느정도는 충실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T : 혹시 역할모델이 되는 감독님이 계신가요?
감 : 저도 감독을 하고 있지만 축구를 지도하는 것만이 감독 역할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성도 키워줘야 되고 인사성이랄까 남을 존중하는 마음을 키워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축구 실력 뿐만이 아니라 그런것까지 신경쓰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표로 하고 있는 감독은 히딩크 감독입니다. 매우 존경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좋은 결과를 내지 않았습니까?
T : 이번에는 러시아를 맡으셔서 역시 좋은 결과를 내시고 계시죠. 앞으로 북한의 대표팀 감독이라든지 J리그등의 감독을 목표로 하고 계시나요?
감 : 기회가 된다면 하고 싶습니다. 실력은 아직까지 일천하지만 기회가 있다면 꼭 해보고 싶습니다.
마지막 3회는 토요일내지는 일요일에...
다른 곳으로 무단전제는 금합니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일본 프로축구 J리그의 인기는 일본에서 그렇게 강하지 않아도, 일본 축구의 원동력은 풀뿌리 축구인
방과후 부활동이라 생각합니다. 3편도 아주 궁굼하네요~^^
아 질문이 하나 있는데 인터뷰는 어떤 언어로 하셨나요?
일본어와 조선어, 어떤걸로 하셨는지 궁굼하네요 ^^
조선어로 했습니다. 조선어를 유창하게 잘 하시더라구요^-6
잘 안들리셨던 부분...
지역예선에서 붙은 상대 학교는 '세이후고교(清風高校)'입니다.
12,13년전에 베르디에 입단한 선수는 '현신철(玄新哲)' 선수입니다.
감사합니다. ㅎㅁㅎ. 역시 -ㅁ- 일본에 계신 KTKIM님.. 후훗-ㅁ- 수정해놓을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