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30]어느 겨울날, 고교친구들과의 행복한 오후
토요일이다. 우리 마을의 이웃동네가 고향인 친구가 몇몇 친구와 우리의 고향 ‘오수獒樹’에서 점심을 하잔다. 불감청고소원. 불러주는 것이 어디인가. 게다가 언제 봐도 반가운 고교 친구들이 아닌가. 이 친구는 몇 년 전부터 고향 생가를 ‘세컨 하우스’ 삼아 주말마다 전주에서 내려와 농촌생활에 적응하고 있다. 집 앞에 아담한 공원도 만들고, 마당에 여러 종의 소나무 분재가 즐비하다. 집 뒤 300여평의 텃밭도 오목조목 가꾸니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형수도 내조의 여왕답게 군소리가 없는 ‘모범부부’. 내려올 때마다 안부전화를 하더니, 오늘은 남원의 친구와 인근 오수면 구장리 동창친구 부부를 초대했다. 구장리 사는 친구를 지난 19일 고교 졸업 후 47년만에 처음으로 만났는데, 그날 못푼 회포를 풀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은 중학교 동창이기도 하다.
점심을 양푼이동태탕으로 맛있게 해치운 후, 친구의 제안이 재밌다. 반 나절 동안 네 집 순례를 하자는 거다. 맨먼저 우리집을 10여분 들러본 후, 2km쯤 떨어진 친구의 집을 구경하고, 3번째로 47년동안 소식을 몰랐던 친구의 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談笑를 즐겼다. 이 친구는 언덕 위의 하얀 집은 아니지만, 퇴직후 처가동네에 아담한 보금자리를 지었다고 한다. 친구는 82학번으로 국어선생님이 되었고(제대후 농사를 짓다 장학생 만학도가 되었다고 한다), 고향 이웃마을의 아가씨와 연애에 성공했다는데, 형수(친구 부인의 호칭)는 정식으로 등단한 시인이었다. 즉석에서 남편과 아내가 시 한 편씩을 낭송했다. 보기에 심히 좋았다. 친구는 고향 정착 후 하모니카를 열심히 배우며 바쁘게 산다고 했다. 우리 4인은 고교시절 가람 이병기 선생의 수제자 구름재 박병순 시조시인과 관련한 일화를 나누기에 바쁜 가운데, 선생님의 대표시 <음삼월>과 <사르비아>를 검색하여 낭송하며, 졸지에 ‘시가 있는 어느 겨울날 오후’가 되었다. 닭장이 보이니 한두 마디를 안할 수 있으랴. 춘삼월에 백숙파티를 하자는데 의견일치를 본 후, 마지막 남원 주천면 문화마을로 향했다.
‘취송헌趣松軒’ 당호부터 아취雅趣가 그득했다. 예서隸書를 자신의 인품처럼 단정하고 예스럽게 잘 쓰는 서예가로, 전국서예대전 등에서 특선도 여러 번 한 중견 서예가이다. 자랑스럽다. 부디 고희古稀인 칠십에 개인전을 개최하기를. 서울내기 형수를 어떻게 다독여 귀향을 했는지 모르나, 완전히 잉꼬부부로 살기에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있다. 서로에 대한 칭찬과 덕담을 나누는 것도 우리의 미덕이다. 4인이 고상하게 와인 한 잔씩을 마시며, 고담준론은 아니지만, 고교시절 추억 등을 되새김질하기에 바빴다. 오랫동안 소식이 뜸하여 몰랐던 사생활 정보를 공유하기에 시간이 짧았다. 얘기가 진행될수록 (결코 나만의 생각이 아니고) 솔직히 재밌었다. 석별하기가 아쉬워 내처 저녁까지 하자는 주장도 있었으나, 오늘만 날이냐? 여운을 남겨놓아야 곧 또 만날 것 아니냐? 유사有司를 둬 분기별로 부부동반 만나자, 우리가 앞으로 할 일은 이뿐 아니냐?로 간신히 의견을 수렴했다. 남편을 대신한 ‘운전 흑기사 형수’들 덕분에 귀가하는 일도 문제 없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는 어느 포근한 겨울 주말 오후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