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육의 장막을 벗은 후, 발가벗은 영의 솔직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게 되는 날이 누구에게나 반드시 찾아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았나 100% 심판받게 됩니다.
이때 육을 벗었으므로 더이상 '척'하는 거짓의 위장은 없습니다.
거짓은... 육을 입었을 때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주님 앞에서 자신을 좋은 방향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나는 이래서 이랬고요, 저래서 저랬고요, 아니 그게 아니고요
나는 간절히 주님을 구하며 거듭나고 싶었는데
나를 가르친 그 목사 때문에 잘못 배워서 그랬고요"...
이런 변명은 주님 앞에서 절대 통하지 않을 것이겠지만,
전혀... 이런 식으로 변명할 수도 없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진정 거듭날 마음이 있었다면 반드시 나를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목사에게 잘못 가르침을 받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의 달콤함을 포기할 수 없었고,
나에게서 나오는 육의 속성을 자제하기 싫었으므로
내가 나를 부인하기 싫었던 것이 진짜 이유입니다.
좁은 길이 싫었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록된 성경의 진리보다, 육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거짓 목사의 달콤한 초콜릿 교리를 따라간 것입니다.
하여, 거짓 선생의 가르침을 내세우는 것은 핑계일 뿐입니다.
이처럼...
자기를 부인하지도, 회개하지도, 거듭나지 못한 진짜 동기가
영의 양심에 다 기록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육을 입고 있을 때처럼 절대 핑계하지 못합니다.
이처럼... 영은 결단코 거짓을 꾸밀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내 계산된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내 영의 입이 저절로 열려 심판대 앞에 앉으신 주님께
있는 그대로 자신의 혀가 다 솔직히 토설하게 됩니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로마서 14장 10-12절)
위 말씀에서 직고라는 단어의 뜻은
있었던 사실대로 100% 숨김없이 자백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의 단호한 속성입니다.
내 영의 양심이... 내 삶의 철저한 기록자가 되어...
내 마음의 생각에서 흘러나와 삶의 현실로 옮겨지고 있는 것을
계속하여 메모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행동뿐만 아니라, 마음속에서 꾸며지는 생각의 동기조차
모두 낱낱이 다 메모리 합니다.
형제를 보고 라가라(심한 욕이나 저주) 하는 자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이미 살인자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자동차를 몰다 보면...
사고의 위험성이 있고 또 사고가 날 경우도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교통경찰이 와서 시시비비를 가릴 때,
운전자들은 서로 자신이 유리하도록 말합니다.
하여, 경찰이 그들의 말을 어찌 판단하느냐에 따라
시시비비가 가려졌습니다.
그러나, 요즘처럼
블랙박스에 차의 모든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기록되기에
그 누구도 자기가 유리한 대로 변명할 수 없습니다.
블랙박스에 기록된 그대로 시시비비를 가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진짜 거듭난 믿음인지 아닌지
내 영의 블랙박스(영의 양심)에 기록된 대로 직고하므로
절대 자신이 유리하도록 꾸며 변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날이 되어 이런 낭패를 당할까봐
주님은 친절하시게도 이미 말씀을 통하여
스스로 증거하여, 자신을 바라보라고 분명히 장치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믿음이 있으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한복음 14장 15절)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한1서 4장 20절)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요한1서 3장 10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요한1서 4장 21절)
이처럼 주님께서는 그날이 되어 굳이, 자신의 영으로 직고하여
부끄러움을 당하며 지옥으로 버려지기 전에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미리 알아 대처하라고
위 말씀을 기록하셨습니다.
하여, 내 이웃 형제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믿음이 있노라
나는 주님을 너무나 사랑하노라 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열매(주님의 거룩한 성품)가 나를 통해
평소 삶으로 배어나지 않으면서 나는 믿음이 있다고 한다면
그 믿음은 분명히 가짜입니다.
자신에게 진짜 믿음이 있다면, 반드시 삶으로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영은 너무나 솔직하고 거짓이 없기에 삶의 모습 그대로
출력되어 나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위 말씀에 기록된 믿음의 삶은...
내가 내 의지로 이렇게 저렇게 강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먼저 나를 전적으로 부인하고 회개한 후
성령으로 거듭나야 가능한 삶의 실상들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는 것이 아닌, 내 안의 성령께서 그리하도록
내 삶을 주관하며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십자가에 죽어야 하고, 주님께서 나의 주인이 되어
나를 주장해야만, 위에 기록한...
믿음의 증거에 대한 말씀들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정말 회개하고 거듭난 믿음을 소유한 성도들은...
기록된 주님의 말씀이 평소 삶 속에 분명히 묻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과 삶을 따로 분리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뿐만 아니라,
주님조차 속이려 드는 것입니다.
주전자 안에 향기로운 차가 들었으면 있는 그대로 나오고,
그 안에 독이 들었으면 그대로 독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듯
그 안에 주님(성령)께서 계시니 그분의 거룩함이 나오는 것이며
그 안에 육만 들었으니 육의 모습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 이시간에도 블랙박스인 나의 영이 우리의 모든 것을
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의 민망했던 육의 삶이 주님 앞에서 있는 그대로 직고하여
수치를 당해 멸망으로 떨어지지 마시고,
지금 이렇게 살아있을 때, 성경에 기록된 진리를 빨리 깨닫고
육의 마음과 삶이 생생히 기록된 내 안의 블랙박스가
포맷되길 갈급하십시오.
포맷하는 유일한 방법은 나를 부인하고 애통하게 마음을 찢으며
회개하여 성령으로 거듭나는 방법 외에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회개해야 나의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부터는 거듭난 거룩한 삶의 모습을
내 안에 있는 블랙박스가 새로이 기록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랑별파파 (daum cafe: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