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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더존스 : 우리는 왜 차이를 차별하는가
염운옥,조영태,장대익,민 영,이수정 저 외 1명 |
‘다양성’은 개인과 공동체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가장 확실한 열쇠다
인디아더존스: 우리는 왜 차이를 차별하는가』는 APoV 콘퍼런스 ‘인디아더존스’를 책으로 펴낸 값진 결과물로, 전작 『헤이트(Hate): 왜 혐오의 역사는 반복될까』와 『행복은 뇌 안에』의 뒤를 잇는 세 번째 시리즈 도서이자 ‘혐오’와 ‘공감’ 그리고 ‘다양성’ 삼부작의 결정판인 셈이다. 이 책은 개인과 공동체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로 떠오른 ‘다양성’ 담론에 관한 진화학, 사회학, 인구학, 미디어학, 종교학, 범죄심리학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이자 존경받는 여섯 석학, 염운옥(사회학), 조영태(인구학), 장대익(진화학), 민영(미디어학), 김학철(종교학), 이수정(범죄심리학) 교수의 깊이 있는 연구와 치열한 사고, 생산적인 논쟁을 집대성했다. 이 책을 읽는 당신은 인간 사회 안에 오랫동안 시나브로 형성되고 굳게 자리 잡아 고질적인 문제를 야기하게 된 차별의 실체와 그 교묘한 작동 원리를 날카롭게 통찰하게 될 것이며, 다양성이 그 해결의 실마리와 열쇠를 제공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Lecture 01
인종, 그리고 인종차별 / 염운옥
‘인종’, 쉽고도 어려운 이야기|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미그란스’이면서 ‘호모 하브리두스’|인종 신화는 어떻게 생겨났을까?|인종의 허구성|그러나 여전한 인종주의|인종주의를 없애려면?
Lecture 02
다양성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을까 / 조영태
인류의 이동과 다양성|인구 절벽의 위기|인구 문제를 보는 미래지향적 관점|잘파세대의 국경을 초월한 이동은 운명이다|글로벌 인재의 경쟁력 ‘다양성’
Lecture 03
다양성과 공감, 그리고 행복 / 장대익
인류는 다양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진화했는가?|집단의 규모를 키운 힘은?|우리 사회의 다양성 지수는 왜 낮을까?|다양성 지수를 높이는 방법은?
Lecture 04
미디어는 어떻게 다양성을 저해하는가 / 민영
다양성 사회의 미디어와 이용자|레거시 미디어의 작동 방식|새로운 디지털 미디어의 작동 방식|미디어 이용자는 무엇을 해야 할까-다양성의 유용성과 가치 이해하기|다양성 사회를 위한 미디어의 역할
Lecture 05
신은 왜 인간에게 혐오를 가르쳤나 / 김학철
초월을 향하는 인류의 본능|정결과 부정-윤리, 그리고 혐오|예수의 근본 체험과 삶-두려움과 혐오를 넘어서는 사랑의 실천
Talk 01
우리 사회의 인종주의와 낙인 / 이수정·염운옥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강화된 인종 혐오|이주 외국인을 향한 악의적·차별적 시선|다양성과 포용성을 갖춘 성숙한 공동체를 향하여
Talk 02
생존의 필수 조건: 다양성 / 장대익·조영태
우리는 다양성을 추구해야만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젊은 세대의 다양성 지수와 공감 지수는 기성세대보다 훨씬 높다|우리나라 산업의 경쟁력과 다양성|우리나라 교육의 방향과 다양성|다양성은 의지를 갖고 학습해서 얻는 가치다
다양성 지수, 미래 사회의 가장 중요한 스펙이 된다
▣ 우리는 왜 차이를 차별하는가
“차이(difference)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그 차이에 인간이 의도적으로 위계(hierachy)를 부여하는 것이 문제다. 인간이 자연과 사회에 태생적으로 존재하는 차이에 의도적으로 위계를 부여하는 순간 차이가 차별을 낳고, 불공정과 불합리함이 발생하고, 폭력과 학대로 이어질 위험성이 생겨난다. 위계는 우와 열을 정하고 그에 따라 줄 세우기를 하는 것이다.”
― 본문 「인종 신화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중에서
성차별, 인종차별 등의 혐오에 기반한 ‘차별’과 그로 인한 심각한 사회 문제는 왜 생겨날까? 이는 우리 사회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차이를 다양성의 긍정적인 발현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신과 다른 특성을 가진(차이가 있는) 상대를 타자화하고, 배척하고, 억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류사의 관점에서 차별은 어떻게 발생하였으며, 고질적인 문제로 부각되었을까? 제1장 「인종, 그리고 인종차별」의 저자 염운옥 교수에 따르면, 인종이라는 개념은 인류가 인간의 다양성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개념이 본격화한 것은 근대 유럽 국가가 먼바다와 다른 대륙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15세기 말 이후 펼쳐진 신항로 개척 시대 때였다. 유럽인은 먼 항해 끝에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에서 만난, 자신과 너무도 다르게 생긴 사람들을 타자화하고 그들을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 다른 인종으로 규정하고 전형적인 이미지를 부여했다. 이렇듯 인종과 인종주의는 유럽인이 신항로 개척을 명목으로 다른 대륙에 진출하고, 침략하고 약탈하는 과정에 만들어진 근대의 발명품인 셈이다. 이것이 바로 인류 역사 속에서 ‘차이’가 ‘차별’을 낳고, 그 차별이 불공정과 불합리함을 낳았을 뿐 아니라 폭압적으로 변질해간 연원이다.
그는 “피부색 차이는 스펙트럼으로서만 존재할 뿐 검은색, 흰색, 노란색의 구분 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갈파한다.
▣ ‘다양성’은 개인과 공동체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가장 확실한 열쇠다
다양성은 ‘차별’이라는 치명적인 무기이자 해로운 독소에 맞서고 치료하는 가장 효능이 뛰어난 해독제이자 방패다. 다양성은 이제 개인의 취향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가장 확실한 열쇠가 되고 있다.
■저자별&장별 핵심 내용
“인종은 과학적으로 의미 있는 개념이 아니다. 생물학적 인종 개념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것은 마치 ‘지구가 평평하다’라고 믿는 것만큼이나 불합리하고 시대착오적이다. 그런 까닭에 1950~1951년 유네스코도 “호모 사피엔스는 단일종이며 모든 인종은 평등하다”라고 선언했다.
……(중략)
‘인간은 모두 서로 다르고 다양합니다. 차이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로 다르고 제각각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다르게 대할 수밖에 없고,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라는 억지 논리이자 궤변으로 귀결될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중략)
우리가 ‘차이’를 보는 동시에 차이 뒤에 숨어 있는 위계, 즉 ‘줄 세우기’를 날카롭게 간파하고 냉철히 비판해야 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 본문 제1장_ 「인종, 그리고 인종차별」 중에서(염운옥 교수)
”이런 흐름 속에서 앞으로 우리나라는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 간단하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잘파세대가 다른 나라로 거침없이 이동하고 이주하며 살아가듯 다른 나라 잘파세대도 우리 사회로 자유롭게 밀고 들어올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잘파세대가 주역이 된 대한민국은 비록 인구는 현재에 비해 많이 줄어들겠지만 오히려 작지도 위축되지도 않는 짱짱한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중략)
‘향후 잘파세대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다양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더욱 강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흐름 속에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그리고 우리의 자식 세대이자 후속 세대인 잘파세대를 어떻게 키우고 교육해야 할까?
……(중략)
향후 펼쳐질 세상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과 사회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넉넉히 받아들이며 살아갈 수 있을까? 자기 안의 다양성을 경쟁력으로 끊임없이 긍정적으로 변화해갈 수 있는가에 개인과 우리 공동체, 그리고 국가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 본문 제2장_ 「다양성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을까」 중에서(조영태 교수)
”그것은 바로 ‘인간은 결국 어떤 방식으로 진화했는가?’, ‘결과적으로 문명 발전에 어떤 거대한 흐름이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인류는 공감의 반경을 점점 확장하는 방향으로 꾸준히 진화해왔다는 점이다. 즉 처음에는 자기 자신만, 그러다가 차츰 우리 가족, 우리 부족, 우리 민족과 국가 그리고 모든 인간으로 공감의 영역이 확장한다.
……(중략)
인지적 공감, 보편적 윤리, 교육을 통한 공감은 공감의 원심력을 키우는 중요한 요인들이다. 공감의 원심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사회의 가치는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 본문 제3장_ 「다양성과 공감, 그리고 행복」 중에서(장대익 교수)
”다양성은 현대 사회의 변화와 진보를 보여주는 주요 키워드 중 하나다. 또한 국경을 초월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활발히 논의되는 중심 주제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로 관찰 범위를 좁혀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장면과 맥락에서 다양성 이슈가 부상하고 다양성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일부 학자는 다양성이 미래 사회의 혁신을 이끌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이는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질 만한 주장이다. 다양성이 글로벌 기업의 혁신과 성장을 견인하는 새로운 전략이 되고 있고 과학기술 혁신의 추진력으로 작용하는가 하면 성숙한 민주주의의 지표로 인정받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 본문 제4장_ 「미디어는 어떻게 다양성을 저해하는가」 중에서(민영 교수)
”예수는 왜 난민과 다름없는 삶을 살아야 했을까? 그의 난민 체험이란 다름 아닌 ‘사회적 약자’로서의 경험이자 동질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당대의 억압받고 고통받는 많은 난민과 그는 하나가 되고자 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당시 예수의 가족은 일종의 ‘정치적 난민’이었다.
……(중략)
예수는 사람의 겉면인 인종, 신분, 성별 등의 위계질서와 그로 인해 생겨나는 편견과 선입견을 품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가르친다.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이 품은 내면 풍경이다.
……(중략)
여기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함으로써 기꺼이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아는 위대한 사랑을 목격한다. 바로 그러한 사랑이 인종과 신분, 성별 등이 가로막는 높은 담을 무너뜨린다. 사랑의 힘은 혐오의 장벽을 넘어선다.“
― 본문 제5장_ 「신은 왜 인간에게 혐오를 가르쳤나」 중에서(김학철 교수)
”개인적으로 저는 다양한 주제를 두고 대한민국 구성원이 허심탄회하게 소통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렇게 폭넓은 대화를 바탕으로 형성된 긍정적 여론이 뒷받침되어야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 방법이 현실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략)
다양성을 수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회 구성원 사이에서 보편성을 획득하고 일반화하는 과정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자연스럽게 이주민을 포용하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 본문 제6장_ 「우리 사회의 인종주의와 낙인」 중에서(이수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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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차별적 무의식의 역사 - 염운옥 <낙인 찍힌 몸>을 읽고
인종주의를 연구한 염운옥 교수의 <낙인찍힌 몸>은 말 그대로 인종화된 몸의 역사를 (되)짚는 책이다. 인종이라는, 다른 모든 범주와 마찬가지로 미끄러지는 범주가 언제부터, 어떤 맥락 속에서 분류와 위계와 차별의 기제로 지정되고 활용되었는가, 혹은 ‘발명’되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인 셈이다. 전반적으로 친절한 책이며 여러 분야를 넘나들면서 역사를 보여주기에 혹여 너무 어렵지 않을까 싶어 읽기를 망설이셨던 분이 있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다. 게다가 표지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다채로운 색들이 뒤섞이면서 형언할 수 없는 색이 되어가는 모양이라니.
인종주의의 역사는 과학(심지어는 체질이나 기후론마저), 종교, 철학, 미학(무엇이 아름다운가!), 그 모든 것과 연동된다. 특히 세계가 확장되며 백인 중심의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진행된 ‘탐사’와 ‘분류’(푸코 <말과 사물>!), 얼핏 객관적 혹은 중립적으로 여겨지는 행위로부터 인종주의가 자연히 파생되었다는 내용은 또 한 번 놀라웠다. 각기 대등한 스펙트럼 내의 변주가 아닌, 급을 나누고 번호를 매기며 언제나 차등함을 확인하려는 인간의 욕망. 그 위계적 사고로부터 과연 누가 얼마나 자유로운가? 이 뿌리 깊은 차별적 무의식으로부터?
독자로서는 내 안의 어떤 면면이 인종주의적 기제와 연동되어 있고, 어떤 면은 (이제) 덜 가까운가를 가늠해보는 척도가 되어주는 책이기도 했다. 가령 책에선 흰색을 예찬하며 고귀한 것으로 숭배한 18세기 독일의 미학자 빙켈만 이래로 색채를 폄하해온 역사적 계보가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나 역시 ‘밝은 피부색이 더 아름답다’는 판단을 굳건히 내재화한 어린 시절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학창 시절 나의 거의 모든 별명은 피부색 때문에 붙여졌으며 대부분 유색인종 비하의 뜻을 담은 조롱의 목적이었다) 이제 알록달록한 색채가 사방을 뒤덮는 작품들을 훨씬 더 좋아하게 되었으며 흰색과 고결함, 숭고함, 순수함을 연결하는 시도를 오히려 평면적으로 치부하게 되었다. 달리 말하면 <낙인찍힌 몸>은 개인적으로 치부되기 쉬운 취향의 문제를 사회-역사적 틀 안에서 되돌아보게 하는 셈이다.
책에서 본 작품 중 인상적이었던 것. 1925년 미국 흑인 화가 아치볼드 모틀리가 그린 '악터룬 소녀(The Octoroon Girl).' 1/8만 흑인 혈통을 지닌 이들을 일컫는 '악터룬'은 백인으로 '패싱'되는 대표적인 흑인이었다고. 백인처럼 보이는 여성의 초상화에 붙은 제목의 풍자.
한편,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의 제목은 ‘영국의 우생학 운동과 모성주의’라고 하는데(연구를 결심하고 시작하던 당시엔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역시 자신에게 재밌는 걸 공부해야......), 인종과 젠더의 교차 지점 안에서 모성을 둘러싼 이데올로기를 언급하기도 한다.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이었는데(특히 흑인 여성의 모성에 관한 부분), 이와 관련해 새로 알게 된 사실도 있었다. 피부색을 변종(varieties)의 기준으로 삼았던 18세기의 스웨덴 자연학자(naturalist) 린네가 <자연의 세계(Systema Naturae, 1735)>라는 책을 썼는데,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이 책이 10쇄를 찍던 1758년 그는 기존의 ‘네발동물’을 대체할 용어로 ‘마말리아(Mammalia)’를 떠올려냈다.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인간은 동물보다 천사에 가까운 존재로 인식됐다. 따라서 <자연의 체계> 제1판에서 인간이 네발동물(강)로 분류된 것은 논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었다. (...) ‘마말리아’를 쓰면서 린네는 인간이 처음에 네발로 걸었다는 것은 믿지 못하더라도 여자에게서 태어나 어머니 젖을 먹었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 있으리라고 말했다. 그러자 마말리아는 수월하게 받아들여졌다.” (43)
라틴어로 ‘마말리아’는 ‘젖가슴을 가진 동물.’ 이 단어의 한자어인 ‘포유류’는 ‘젖을 먹이는 동물’이라는 뜻이지만 사실 젖가슴을 가진 동물과 젖을 먹이는 동물은 다르다. 염운옥 교수에 따르면 당시 린네가 살았던 스웨덴 사회에선 모유 수유를 찬양하는 담론의 유행이라는 사회적 맥락이 있었다고 한다(모유 수유 찬양, 서저너 트루스의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라는 외침 등에서 역사는 유구하게 반복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고...... 그만큼 이 책이 담은 메시지가 얼마나 시의적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결국 인종주의의 토대가 된 분류학 저서를 남긴 ‘자연학자’의 주장 안에는 젠더정치의 맥락 역시 깔려 있다는 것. 정말이지 모든 것이 연결되고, 교차한다.
2018년, 흑인 여성 노예에 대한 수술로 명성을 쌓은 제임스 마리온 심스의 동상 철거를 외치는 여성이 들고 있던 푯말. "마리온은 우리의 영웅이 아니다." (<낙인 찍힌 몸> 149쪽 참고)
지난 학기 들은 수업 중 하나는 미국의 19세기 자연주의 소설 작품을 읽고 탐구하는 수업이었는데, 수업의 많은 내용과 이 책을 연관지어 볼 수 있었다. 가령 18세기의 해부학자들은 ‘머리’와 ‘두개골’에 관심을 쏟았다고 하는데, 이들 역시 최초의 질문은 ‘인간은 (동물과) 어떻게 다른가’였겠으나 인간종 안에서도 분류를 시작하게 되면서 인종주의의 틀을 공고히 하게 된다. 프랭크 노리스의 장편소설 <맥티그(1899)>에는 여러 국적의 인물들이 등장하며 인종 역시 하나가 아닌데, 중심인물인 ‘맥티그’를 중심으로 외양 묘사에 해부학적인 진술이 왕왕 엿보인다.
또 허먼 멜빌의 단편소설 <베니토 세레노(1855)>에는 직접적으로 백인의 ‘두개골’이 중요한 장치로 등장하며, 혼혈 인종을 향한 차별적 시선이 인물에게서 지속적으로 드러난다(one-drop-rule! 넬라 라슨 <패싱>도 언급된다!). 당연히 노예제가 존속하던 시점이 배경이고(미국에서 노예제가 실질적으로 폐지된 건 1865년), 공간적 배경은 '노예선'이다. 염운옥 교수에 따르면 "인종이 형성되는 장소"(109)였던 노예선. "아프리카인이 '노예'로, '흑인'으로 '창조'된 최초의 장소가 어디였는지 묻는다면 이제 플랜테이션이 아니라 노예선이라고 답해야 할 것이다." 소설의 전개를 비틀고 끝끝내 서사를 뒤집는 것은 '말하는 노예', '말대꾸하는 노예'다. (말하는 여성 노예, 메리 프린스에 관한 챕터도 무척 흥미롭다. 스피박의 질문이 재구성된다. 과연 흑인 여성 노예는 말할 수 있는가? 그의 목소리를 어떻게 가려낼 수 있는가?)
"노예는 말을 잃어버린 존재다. 읽고 쓰기를 배우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는 것은 물론 주인에게 말대꾸를 해서도 안 되는 존재가 노예다. 반항하는 노예를 징벌할 때 쓰는 아이언 머즐(iron muzzle)이라는 철로 만든 입마개는 목소리를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먹고 마시는 것도 금지된 극한 상황에 놓인 노예를 상징한다. 목소리는 몸을 통해 생성된다. 몸에서 울려 나오는 것이 목소리다. 노예가 말을 한다는 것,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노예의 육체에 덧씌워진 열등성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다." (118-119)
"1831년 런던과 에든버러에서 동시 출판된 프린스의 <메리 프린스의 생애(The History of Mary Prince, A West Indian Slave, Related by Herself)>는 최초의 흑인 여성 노예 자서전이었고, 카리브 여성 노예 최초의 노예서사였다. (...) 에퀴아노의 자서전은 글을 아는 '남성 해방노예'가 서술한 텍스트였다. 반면 <생애>는 프린스가 직접 쓴 것이 아니었다. 프린스는 문맹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을 구술했을 뿐이고, 백인 여성이 글로 받아 적었으며, 백인 남성이 편집과 서문을 맡았다." (171)
인종주의의 이른바 과학적 기틀이 마련된 지 100년이 지난 뒤, 혹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출간된 1859년을 기점으로 그다지 멀지 않은 시점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몇몇(혹은 대다수의) 소설은 인종주의적, 진화론적 편견을 그대로 표출하며, 그것이 아마도 당대 사회의 지배적인 인식이었음을 살필 수 있게 한다. 소설이나 문학에 있어 역사적 접근이 유효하고 또 흥미로운 이유이자, 수백 년 전의 문학을 현재의 눈으로 다시 바라봐야 할 필요다.
염운옥 교수도 종종 인용하는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을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에드윈 포터가 감독한 9분짜리 무성영화 ‘웃음 가스(Laughing Gas, 1907)’를 남겨본다. 이 짧은 영화의 주인공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맨디’(베르타 레구스투스)인데, 당시로서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책을 읽으며 여러 군데에서 떠오른 영화였다. 치통을 앓는 여성이 치과에 가는데, 의사는 그녀에게 ‘웃음 가스’를 넣는다. 지하철에서, 거리를 걸으면서, 가정부로 일하면서(흑인 여성 가정부에 관한 내용도 이 책에 들어있다), 교회에서 싸움이 붙은 두 남자를 만났을 때도 그녀는 계속 웃고 있다. 전염성이 강한 웃음은 주변으로 퍼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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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운옥 교수가 전하는 진화론에서 파생된 우생학의 실체(벌거벗은 세계사)
염운옥 교수와 함께 진화론이 낳은 돌연변이인 우생학의 실체를 알아본다.
2일 방송되는 tvN ‘벌거벗은 세계사’ 97회에서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서부터 진화론이 낳은 돌연변이인 우생학을 소개한다. 염 교수는 ‘생물은 자연선택에 따라 서서히 변화한다’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서 다윈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사이비 과학인 우생학이 파생되었다고 설명한다. ‘인류라는 종 전체를 진화 시키려면 열등한 인간은 도태시켜야 한다’는 위험한 생각이 전 세계로 확산되며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특히 미국에서는 우생학이 대중적 지지를 받으며 혼인 금지법과 이민 제한법이 제정되는가 하면,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건강하고 아름다운 가족을 뽑는 ‘건강한 가족 경진대회’가 개최되는 등 우생학 장려 프로젝트가 펼쳐지기도 했다고 염 교수는 설명한다.
그중에서도 미국 우생학의 하이라이트라고 불린 ‘이것’에 대한 염 교수의 설명에 은지원을 비롯한 MC들은 “미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니 너무 안 믿겨요”라며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밖에도 염 교수는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세계관을 뒤바꾼 찰스 다윈의 위대한 발견, ‘진화론’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여정과 진화론에서 파생된 금단의 과학 ‘우생학’이 미국과 독일에서 최악의 결론을 맺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차근차근 짚어낸다.
한편, 오늘의 여행 메이트로는 미국에서 온 크리스와 영국에서 온 피터가 함께 한다. 특히 생물학을 전공했다고 밝힌 피터는 “찰스 다윈은 우생학에 대해 허황한 계획이라고 비판했으나 찰스 다윈 사후에 우생학이 학문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도 우생학을 얘기할 때면 항상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함께 언급되고 있다.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던 찰스 다윈으로서는 무덤에서도 굉장히 억울할 것 같다”고 전하는 등 진화론과 우생학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한층 풍성한 강연이 되도록 지원한다.
https://naver.me/xowZUoOj
우생학
우생학(優生學)은 종의 개량을 목적으로 인간의 선발육종을 찬성하는 유사과학이다. 인류를 유전학적으로 개량할 것을 목적으로 하여 여러 가지 조건과 인자 등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1883년 영국의 프랜시스 골턴이 처음으로 창시했는데,[1] 가를 꾀하고 열악한 유전자를 가진 인구의 증가를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1930년대 우생학 협회의 전시회. 그 표지판들 중 두 개는 "건강하고 건강하지 못한 가족들"과 "효율의 기초로서의 유전"이라고 쓰여 있었다.
우생학에 대한 골턴의 생각은 19세기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심지어 서양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귀족과 같은 사람들은 업설 등을 통하여 우생학과 비슷한 사상을 가지고 있어서 천한 존재들에 대한 학살과 기타 악한 행위를 귀족 세력 내부에서 정당화하였다.
고대 그리스시대, 플라톤은 자신이 책 《국가》(기원전 374년)에서 우생학적인 주장을 한 바 있다. 그는 "가장 훌륭한 남자는 될 수 있는 대로 가장 훌륭한 여자와 동침시켜야" 하며, 이렇게 태어난 아이는 양육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는 "내다 버려야 하며, 고칠 수 없는 정신병에 걸린 자와 천성적으로 부패한 자는 죽여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달라진 가문들도 있으나 로마 시대에서도 스스로 우월성을 주장하며 평민들과 섞이길 거부한 파트리키 가문들이 있었으며 귀족주의자들은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게 천한 그리스인들이나 로마인들을 학살하는 것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인 캄파넬라 또한 《태양의 도시》에서 "우월한 젊은이만이 자손을 남길 수 있도록 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오랜 전통을 가진 우생학적 담론들은 19세기 다 되어서 영국인 골턴의 정교한 유전적, 통계적 방법에 의해 체계화되어갔다. 그는 광범위한 가계조사 자료를 통계적으로 정리하여 인간의 지적, 도덕적 능력이 환경의 영향과 관계없이 유전적으로 결정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를 그의 사촌인 다윈의 진화 이론과 결합시켜 유전자에 의해 형질이 결정된 개개인들 사이의 경쟁과 선택을 통해 인간의 진화가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선택은 자연선택도 있었지만 그것은 매우 느린 과정으로 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인위적인 선택을 수행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인위적 선택은 지적, 도덕적으로 우월한 사람이 더 많은 자손을 남기도록 장려되는 것과 열등한 사람은 되도록 자손을 남기지 못하도록 억제되는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방법과 그 과학적 기초를 '우생학'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골턴의 주장은 기독교적이었던 당시 영국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유럽 지배층들의 혈통이자 지리적 이점으로 인하여 순혈인 북유럽 인종을 찬양한 위대한 인종의 소멸 같은 주장들은 히틀러와 같은 지지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나의 투쟁에서도 비슷한 내용들을 찾을 수 있다.
그 후, 20세기의 전반기(1900년~1950년)사이의 기간에는 우생학이 탄생하고 크게 성장하여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힘을 발휘하였지만 결국은 쇠퇴하게 되었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일본 등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각종 우생학 단체가 만들어졌으며, 전문 학술지까지 발간되었다. 특히 미국, 독일, 덴마크, 스웨덴 등에서는 우생학이 법률로 제정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강제 불임 수술과 거세를 당했으며 심지어 학살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우생학은 나치의 대학살로 인해 세계 2차 대전 이후 대부분의 나라에서 쇠퇴하였다. '우생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나치의 대학살을 연상하게 하는 나쁜 함의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강제적인 불임 시술과 거세, 학살은 1945년에서 1950년을 기점으로 대부분 중단되었으며, 각 국의 우생학회는 이름을 바꾸고 우생학 학술지도 폐간하거나 유전학 학술지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우생학의 탄생
우생학의 탄생 배경
서구 역사에서 우생학적 담론의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 시대에서 시작된다. 플라톤은 만성적 허약과 방종에 의해 질병에 걸린 인간들은 의학적 치료의 대상이 아니며, 도덕적 타락은 추방이나 처형의 이유가 되고, 우수한 자손의 번식을 통한 도시 국가의 이상 실현을 위해 우수한 계급의 현명한 결혼을 주장했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시민계급을 중심으로 이상적 공동체를 설계해야 하며, 하층 계급의 다산으로 인한 과잉 인구는 빈곤이나 범죄, 혁명의 중심지로 자라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하층계급의 출산율은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근대적 의미의 유전적 구성에 근거를 둔 인간 개선이라는 목표를 사회적으로 구현한 추동력은 영국의 골턴에게서 나왔다.
골턴 우생학의 등장
골턴의 가족 관계
골턴은 다윈의 진화론을 근거로 인간의 재능과 특질이 유전된다고 믿었고, 이를 통계학적 방법을 이용해 정당화함으로써 인간개선을 도모하려했다. 골턴은 우생학을 창안하기 오래전부터 유전적 특질, 특히 지적 능력의 차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는 골턴 자신의 가계에 대한 관심, 외조부인 이래즈머스 다윈과 사촌인 다윈의 영향에 기인한다. 이들의 영향을 어려서부터 직간접적으로 받았던 골턴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 양육보다 인간의 형질을 규정하는 우선적 요인이라 생각했고, 이는 유전성의 강조를 내세우며 인간 개선을 도모하는 잘난 태생에 대한 과학, 즉 우생학으로 발전했다.
19세기 중엽 영국의 시대적 상황
우생학은 당시 영국사회에서 새롭게 부상하고 있던 중산계층의 이해를 대변한 측면이 많았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생존경쟁을 통한 자연선택이 생물 종의 진화를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다윈의 진화론은 자유방임주의적 시대 분위기와 잘 맞아 떨어졌고, 이는 다윈의 진화론이 생물학의 영역을 넘어 사회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19세기 중반 영국의 자유주의자들은 토지귀족 등 유한계층의 나태함을 비난하고, 노동자나 극빈층은 사회에 짐만 부과하는 쓸모없는 존재라며, 전문직 종사자, 즉 중산계층이 사회를 주도해야함을 역설했다. 당시 스펜서는 게으르고 나약한 존재들의 소멸은 자연의 법칙이며, 사회적 약자를 도와주는 복지 정책은 적자생존의 법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었다. 중산계급의 논리와 스펜서의 주장은 상호 보완적인 측면이 있었고, 이는 이른바 사회 다윈주의의 형성으로 이어졌다.[2]
인간 개선의 과학, 우생학
1865년, 《유전적 재능과 특질》이란 논문에서 처음으로 우생학적 전망을 개진했던 골턴은 인간은 스스로의 진화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우생학이 형성되던 당시에는 인위선택을 통해 육종가들이 동식물에서 원하는 형질을 선택적으로 강화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골턴은 이를 사회로 확장하여, 인간도 인위적으로 개선될 수 있으며, 이는 문명화에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라 믿었다. 골턴은 인간 종에 해가 되는 계층은 축소하고, 이로운 계층은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다윈의 주장처럼 단순한 생식이론이나 유전 원리 같은 지식만으로는 어렵다며 적극적인 정책적 수단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인간이라는 정원에 있는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진화에 대한 과학적 조사보다 진화의 방향을 인위적으로 통제한 것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이다. 골턴은 생존에 유리한 개인들과 불리한 개인들의 비율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실천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인간의 열등한 유전 형질이 확산되는 것은 인종을 퇴화시키는 사회적 공포이므로 제거해야 하며,고차원적 수준의 능력을 소유한 전문직 계층의 출산율 저하 경향을 적극적으로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은 뒤, 인간 개선을 목적으로 우량종 육성이란 용어를 사용했던 골턴은, 1883년 선택적인 출산을 의미하는 우생학이라는 용어를 창안해냈고, 이를 "인종을 개선하는 과학"이라 정의했다. 골턴의 주된 관심은 현명한 결혼을 통해 인류의 유전적 개선을 도모함으로써 사회적 진보와 문명화를 달성하는 데 있었다. 이후 골턴은 "미래 세대 인종의 질을 개선 또는 저해하는 사회적으로 통제 가능한 수단에 관한 연구"인 우생학을 다양한 가설과 이론, 그리고 방법론을 활용해 과학적 근거가 있는 학문으로 정착시키려 했다. 이처럼 골턴의 우생학은 단순한 과학적 차원의 논의가 아니라 항상 사회적 실천을 수반했던 연구분야였다. 우생학의 성립과 발전 과정에서 골턴이 제기하고 구체화시킨 가정들, 즉 첫째, 정신적능력도 유전의 대상이라는 판단, 둘째, 유전 능력에 대한 자의적인 범주 설정과 주관적인 가치판단, 셋째, 계급 및 인종 사이의 우열의 차이는 유전적으로 고정된 것이고, 생물학적 약자들과 부적자들은 진화와 유전 과학에 기초하여 제거해야할 필요성이 있다는 가정들은 정치적 입장에 관계없이 우생학 운동의 전 과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우생학의 대중화
우생학은 광범위한 대중적 여론과 연결고리를 갖는 사회적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우생학이란 용어는 1904년 5월 16일에 있었던 제1회 영국 사회학회에서 <우생학: 정의, 전망, 목적>이란 강연을 통해 널리 대중화되었다. 같은 해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 우생학 기록 사무국(ERO)이 창설되었고, 1907년에는 이것이 발전하여 국가 우생학을 위한 골턴 연구소로 확대 개편되었다. 1907년 런던에서 우생학 교육 협회(EES)가 설립되어 우생학이 활발한 대중운동 차원으로 발전해 나갔다. 명확한 유전 이론이 설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인종 개량의 방법을 고민하며 사회적 실천을 추구했던 생물학의 응용과학이자 이념이었던 골턴의 우생학은 이후 30여 나라에서 대중화됨으로써 20세기 전반 서구 역사에 지우기 힘든 흔적을 남겼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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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생학
1. 개요
우생학(優生學, eugenics)은 육종 등의 방법으로 인간의 유전형질 가운데 우수한 것을 선별, 개량하여 인류 전반의 유전적 품질(genetic quality)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는 과학적 신념이자 유사과학으로, 현대 생물학계에서는 폐기된 과학이론이다. 정치적으로는 파시즘적 사회 이데올로기로서 유전자 차별, 인종차별로도 분류된다.
2. 역사
사실 이 '우생학'이라는 단어는 비록 20세기에 와서 나왔지만 그 개념 자체는 이미 고대부터 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한 장애인과 기형아에 대한 차별 대우가 바로 그 증거다. 대표적인 예가 스파르타의 장애 영아 살해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장애인 배척사상이며 그것이 마치 학문인 양 둔갑한 것은 사실상 제국주의와 파시즘의 대두, 그리고 그 제국주의와 파시즘 시대 강국이었던 나라들이 자기들의 우월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학문인 양 호도한 것이다.
유전의 방식이 근대에 와서 밝혀졌을 뿐이지 유전이라는 개념, 그러니까 자식이 부모를 닮는다는 것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이미 다 알고 있던 것이었다. 그러니 자연히 더러운 핏줄이 더 이상 대를 잇지 못하도록 한다[1]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옛날부터 존재했던 것이었다.[2]
우생학은 진화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우생학적인 사고 방식을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 시초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읽은 다윈의 고종사촌인 인류학자 프랜시스 골턴이 런던에 상경한 스코틀랜드 출신의 노동자들을 조사하면서 이들이 사는 지역에서 발생한 엄청난 범죄를 보고 이들을 격리하고 그들의 피가 사회에 안 퍼지도록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시작했다.[3] 이같은 주장을 담은 책이 1869년에 나온《Hereditary Genius》이고 초기에는 찰스 다윈도 진화론의 응용에 대해 편지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그러나 점차 골턴의 주장이 극단적으로 변하고 논란이 됨에 따라 다윈은 우생학과 인간의 선택적 번식에 대한 주장에 대해 의구심을 표명했으며 사회 및 정치적 의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진화와 자연 선택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사용하는 골턴의 주장에 반대와 경고의 입장으로 돌아섰다.
다윈은 골턴 이후 진화론이 사회적으로 응용되는 것에 매우 신중한 반응을 보이게 되었으며 과학 연구에서 윤리적 고려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다윈의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에는 문명화된 인간들은 약자를 제거하는 과정을 최대한 저지하려고 한다고 언급되어 있는데 다윈의 입장은 결국 그것 때문에 인간이 서로가 서로를 계속 죽이는 경쟁상태에 도달하지 않는 점을 얘기하며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말한다.
생전에 다윈은 인종차별에 반대한 사람이었다. 다윈 본인은 사회 다윈주의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자기 이론의 사회학적 적용의 가능성을 고려했으나 궁극적으로는 교육이나 주거 환경 등 당장 상관관계가 입증되는 후천적 요인에 더 비중을 두었으며 무엇보다 이러한 관점은 '우리 본능 중에서도 가장 고귀한 본능인' 이타심을 해칠 수 있다며 반대하였다.
과학적 방법론과 이에 연관한 사회과학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던 이 시대 기준으로는 사실 사회 다윈주의는 상당히 설득력이 큰 이론이었다. 사실 사상 자체부터도 자연선택은 우연에 따라 일어난다고 생각한 다윈과 자연선택을 기다리지 말고 사람이 골라야 한다고 주장한 골턴의 우생학은 생각하는 바가 너무 달랐다. 그리고 골턴은 확실하게 인종차별주의자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다윈의 8번째 자식인 레오나드 다윈은 우생학자의 길로 갔는데 골턴이 죽고 나서 우생학 연구학회 회장을 이어받아서 1928년까지 17년이나 있었다.
이렇듯 우생학은 진화론의 아버지인 다윈이 주장한 이론과 명백히 다른 이론이었다. 우생학이 하나의 이론적 학문으로서 끝났었다면 괜찮았겠지만 때마침 그 시대는 열강들이 제국주의에 물들어 식민지를 마구 확장하던 시기였다. 식민지 확장에서 원주민과의 마찰을 피할 수 없었던 열강들은 그나마 인도적인 명분 때문에 이들을 몰살하거나 비인간적인 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망설였지만 아프리카의 흑인이나 인도인의 생물학적 연구를 하면서 자신들이 우월한 종족이라는 착각에 빠져 버려 망설임 없이 원주민들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필리핀 원주민 한 사람을 데려와 전시회에서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라는 말을 하며 전시하는 일도 있었으며 원주민의 귀를 잘라오면 하나당 돈을 주는 방법으로 남아메리카에서도 우생학적 인종 대학살이 벌어졌다. 또 다른 예시로 <불의 기억> 2권을 보면 우루과이에서 원주민을 둘만 남기고 모조리 죽인 다음 그 둘을 파리의 인류학 박물관에 넘긴 '실화'가 나온다.[4]
2.1. 사례
과학자들은 피차별 인종에 대한 차별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들이 '열등'하다는 '과학적이라고 주장하는 증거'를 모으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해부학자 세레스(E. Serres)는 배꼽과 성기 사이의 거리를 재서 흑인이 백인보다 짧기 때문에 열등하다고 주장했고 미국의 의사 베넷 빈(R. B. Bean)은 뇌의 앞부분에 해당하는 만곡부와 뒷부분인 팽대부의 길이를 비교해서 백인은 비교적 큰 만곡부를 가지므로 지능이 더 높고 흑인은 반대여서 지능이 더 낮다고 결론을 내렸으며 스웨덴의 과학자 레치우스(A. Retzius)는 두개골의 폭과 길이 비율로 계산되는 두개지수(Cranial index)로 인종 간의 서열을 정했다. 그야말로 제멋대로 기준을 정해서 자기 마음대로 측정을 한 셈이다.(굴드 2003. 97-183)
그러나 누가 뭐래도 백인에 의해 진행된 '과학적인' 인종 서열화의 백미는 뇌의 크기에 따라 인종 간의 서열을 나눌 수 있다고 믿은 사람들이 두개골의 용량을 측정한 것이었다. 모턴(S. G. Morton)이나 브로카(P. Broca)[5]는 각 인종의 두개골 용량을 측정해서 인종 간의 서열을 입증하고자 하였다. 특히 모턴은 해골 내부를 납탄으로 채워 그 부피를 측정했는데 그 결과는 '당연히' 백인의 용량이 가장 컸고, 따라서 백인이 다른 어떤 인종보다 더 똑똑하고 우월한 존재라는 결론을 내렸다.[6] 이런 논리는 남성이 여성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하기도 했다. 여자는 남자보다 평균적으로 덜 똑똑하며 여자의 뇌가 상대적으로 작은 것은 그 신체적 열세에 따른 것인 동시에 정신적 열세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실험과정은 엉터리 그 자체였다. 모턴의 실험을 예로 들면 그는 코카서스 인종의 평균을 높이려고 뇌가 작은 인도인은 고의로 표본에서 제외했고 아메리카 원주민의 평균을 낮추려고 역시 뇌가 작은 페루인 표본을 훨씬 많이 포함시켰다. 뿐만 아니라 그는 흑인의 우둔함과 백인의 우수함을 증명하기 위해 흑인의 표본에는 모두 여성만을, 백인 쪽엔 모두 남성만 포함시켰다.양심에 털 났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유사과학도 동북아시아인의 두개골이 백인보다 커서 브로카는 뇌 크기에 따른 핵심 기준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굴드 2003. 113-166)[7] 뇌 크기가 지능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음이 밝혀진 것은 20세기 후반이다. 과학적 방법론을 어겨가면서까지 실험설계를 아주 창의적이고 기발하게 주작하는 과정을 몸소 보여줌으로써 백인우월주의자가 무대뽀식 잔머리 하나만은 좋은 것이 입증(...)되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