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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자유롭게 글쓰기 조선왕조실록의 계모(繼母)들
해내리 추천 0 조회 204 10.09.15 23:31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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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9.16 00:30

    첫댓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사적으로 아버지의 첩과 아들이 간통하는 사건이 가끔 있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계모와의 간통 사건이 발생했던 것도 예측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아들 입장에서는 친모가 아니라는 점에서는 아버지의 첩과 계모는 별 차이가 없었을 터이니.../

  • 10.09.16 00:50

    사실 계모와 전처의 자식간의 갈등은 어느 사회에서나 당연히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혈연으로 연결되지 않은 사람들이 가족 내에 있을 때에는 반드시 권력이나 경제력에 의한 갈등이 아니더라도 단순히 인간관계에 의한 갈등도 생길 수 있겠지요. 계모와 전처 자식 간의 갈등이 신라시대부터 존재했다는 한 사례는 <고려사> 악지에 신라의 음악으로 나오는(사실 고려의 음악일 지도 모르는) '목지가' 의 배경 설화입니다. 계모의 모함으로 처녀가 집에서 쫓겨나 산 속에 들어갔다가 결혼하여 부자가 된 뒤 가난한 친정 부모를 데려와 모셨지만 계모의 모함으로 아버지가 딸의 정성을 받아주지 않자 한탄하며 노래를 불렀다는 이야기입니다.

  • 10.09.16 01:10

    다만, 계모 악인 이미지에서 한 가지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는데 왜 계모만이냐는 겁니다. '재혼' 이라는 것이 오로지 부인이 죽은 뒤 남편이 새장가가는 한 가지 유형만 있는 것이 아닌데 계모만이 문제되는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고려시대나 조선 초기의 경우라면 이혼의 예도 심심치 않게 있었고, 이혼 후 아이 딸린 여자가 재혼을 하는 사례도 많았으며 조선 초기까지 우리나라의 결혼 풍습이 '남자가 여자 집에 가서 사는 행태' 이기 때문에 이혼 후에 재혼하는 경우에는 (아비를 중심으로) 계모와 전처 자식이 동거하기보다는 (어미를 중심으로) 계부와 전남편 자식이 동거했을 가능성이 꽤 높았을 겁니다. 조선 초기에 과부의

  • 10.09.16 01:12

    재가(2번째 결혼)를 금지하네, 삼가(3번째 결혼)를 금지하네 하는 이야기들이 꽤 나왔던 것처럼 자식 딸린 과부의 재혼 사례도 상당히 많았는데 말이지요. 이런 점에서 계모 악인 이미지는 여성의 지위가 추락하는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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