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빌리의 노래 HillBilly Elegy
J.D. 밴스/김보람/흐름출판
오랜만에 책 한권에 푹 빠져들었다.
언제부터인지 책 읽는 속도가 확연히 줄어
들어 이런 책을 만나면 행복해진다. 눈은
이젠 나도 힘든다고 아우성인데, 욕심은
하나도 안 줄어들어 도서관에 갈 때
마다 한꺼번에 일여덟권을 빌려온다.
대출 기간동안 다 읽을 수 없다는 것을 알
면서도 이러는 것은 분명 허세다. 그럼에도
욕심을 부리는 것은 이젠 아무 책이나 막
읽는 게 아니라 여러 권 빌려와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읽어야 하니 어쩔
수 없다는 투다. 핑계 치고는 그럴 듯 하다.
힐빌리의 비가悲歌
힐빌리란 미국의 쇠락한 공업지역에 사는
가난하고 소외받는 백인 하층민을 가리
키는 표현으로, 백인 쓰레기white trash,
햇볕에 그을려 목이 빨갛다는 의미의
레드 넥red neck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가난하고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시골
백인을 의미한다. 힐빌리 지역은 미국
펜실베니아주, 오하이오주와 메인주에
이르는 애팔래치아 산맥 부근의 가난한
백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이 책은 바로 힐빌리 부모에게서 태어난
삼십대 초반의 보수주의 변호사의 꾸밈
없고 잔잔한 회고록이다.
저자의 고향인 오하이오주 미들타운은 전형
적인 러스트 밸트로 한 때는 철강업으로 잘
나가던 지역이었다. 이혼으로 아버지는
떠나갔고, 결손 가정, 그것도 마약에 찌들고,
피폐한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 밑에서
불우한 시절을 보낸 저자의 삶에 대한
휴먼 스토리다. 저자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
으나 빈곤과 무지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해병대에 입대한다. 시골뜨기의 군대
생활은 처음에는 어리버리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단련되었으며 이라크에 파병
되었고 성실과 능력을 인정받아 장교가
맡던 직책인 부대 홍보 담당관 역할도
수행했다. 4년간의 엄격한 군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힐빌리
지역 출신으로는 아주 드물게
오하이오 주립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 바로 로스쿨의 명문인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한동안 재판연구원
으로 현재는 실리콘 밸리에서 굴지의
투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궁핍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한 부모인
어머니의 보호 양육을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마약에 찌들은 어머니를 보호
하며 자라난 소년이 망가지지 않고
지켜낸 삶의 여정을 읽어 내려가면서
나는 감당할 수 없이 밀려오는
십일월의 쓸쓸함과 허무함을 무던
하게 견뎌낼 수 있었다. 그는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삶을 이뤄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거칠고 투박하지만
속 깊은 사랑과 친지의 지지, 해병대에서의
육체적 정신적 훈련과 교육,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그를 좋은 삶으로
이끌었다고 하면서 감사했다.
백인 우월주의에 경도되어 미국에서
주류 세력은 백인이라고 믿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들이 소수자, 소외된 자로
전락된 상황이라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납득이 되지 않았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등장의 원동력이 되었던 중하층의
백인들은 2020년의 대선에서 코로나와
상식을 뛰어넘는 사전 우편투표로
야기된 부정투표의 의혹이 제기되지만
현재까지는 트럼프 당선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전 읽었던 호머
히캠의 옥토버 스카이October Sky의 글과
조 존스톤이 감독한 영화의 장면이 자주
오버랩되어 나타났다.
아마도 쇠락한 탄광촌의 열악한 환경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광부가 되는 거 외에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소년들이 소련의
첫 인공위성 발사 성공 뉴스를 보고 로켓
발사 실험에 매달려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끝내는 전미국 과학경진대회 우승을 차지하고
팀 소년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주인공인
히켐은 나사에 입사, 과학자의 삶을 살아가는
역경 극복의 감동이라는 점에서 그러했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미국의 저명한 사회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의 책, 바른 마음
The Righteous Mind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에서
읽었던 진보와 보수의 도덕과 삶의 가치관의
내용이 극명하게 대립하면서 떠올랐다.
그에 의하면 도덕적 기반에서 삶의 가치관을
크게 정의, 평등, 충성, 권위, 존엄을 들면서
진보는 정의와 평등에 집착하여 이를
위해서는 나머지 것들은 희생되어도 좋다는
시각이 강하고, 보수는 정의와 평등만큼
이나 충성, 권위, 존엄도 삶의 소중한
가치로 여긴다는 것이다.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미국의 어느 연구조사에서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진보주의자의
28%가, 보수주의자의 47%가 자신이 현재
행복하다고 답했다는 내용이 떠오르면서
나는 진보일까 보수일까하는 생각에
잠겨들었다. 아마도 대부분이 그렇듯이
양면성을 다 가지고 있겠지만 좀 더
보수적일 것이다.
한국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조너선 하이트는 단기간에 급격한 발전을
이룬 한국이 물질만능의 괴물에 사로잡히지
않고, 도덕적으로 타락하지 않고
온전하게 발전해나갈 수 있을지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이 책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저자의 외조부모와 같은 도덕적으로
타락하지 않은 힐빌리들이 열악하게
살아가지만 공짜는 없다는 신념이
특히 강하다는 점이었다.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정부의 복지혜택에
기대어 살아가면서 과소비를
일삼고 마약 복용에 지원금을 탕진,
크리스마스 같은 때 정작 아이들 선물도
못 사주고 교육에 등한히 해 결과적으로
아이들 장래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시급으로 받는 아르바이트
소득에서 일정액의 세금을 부담하는
점과 정부 지원금에 의지하며 ‘복지 여왕’의
삶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되어 비치고,
우리 나라의 경우 40% 정도가 근로 소득세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건전한 공동체
유지를 위해 바람직 한 것인지,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 하는 강한 의문이 들었다.
결국에는 정치인들의 인기 영합 포퓰리즘이
함께 살아가야할 공동체를 나락으로 빠뜨릴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못했다.
들리는 바로는 미국 교민 한인들이 노년의
어쩔 수 없는 외로움과 회귀 본능, 엄청난
의료비용 감당 부담으로 한국으로 돌아오려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부유하다 미국, 경찰의 엄격한 법
집행,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동과 방화와
약탈 행위, 세계를 지배하는 거대 금융자본과
빅테크 기업들의 모습이 선망이 아니라
기괴한 모습으로 비쳐지는 것은 내게 꿈과
용기와 쟁취를 위한 시절이 떠나고 순응과
소멸을 받아들여야 하는 늙음이 찾아온
탓일까 하는 생각에 잠시 우울해졌다.
공공 도서관에서 빌려온 이 책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다.
어느 날 지하철 역에서 약속시간을
기다리면서 읽고 있다가 악수하고,
마스크 쓰고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책은 의자 위에 놔둔 채 가방만 메고
급히 지하철을 타고 말았다. 한참 후에야
책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여기 저기
연락을 했지만 허사였다.
얆은 금속 책갈피에 전화번호를 네임펜으로
또렷하게 적어 놓아 연락이 오거나
도서관에 반납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로
열흘을 기다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다 읽고 반납하기 위해 책을 샀다.
벌써 네 권째다. 한권은 책 중간쯤에 커피를
엎어버려서, 세권은 분실했기 때문이다.
딸아이가 사다 준 아끼던 책깔피 마저
잃어버려 더욱 화가 났다.
어떤 이에게는 하찮은 것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아주 소중한 물건일
수 있다. 책을 잃어버린 나와
책을 습득한 그(그녀)도 인연일
것이다. 그러나 내게 따스하고
아름다운 인연은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부족하고 이기적인
나를 지지하고 도와주고 사랑을
베풀어주는 사람들이 있어 삶은
아름답다.
첫댓글 은은한 음악이 가슴을 적십니다
책을 네번이나 잃을 정도로 심취되었군요
종횡무진님
반갑습니다.
마구잡이로 글을 올리고 나서
약속시간에 쫒겨 허겁지겁
지하철을 타고서 읽어보니
너무 난잡한 글이 되었네요.
그나마 종횡무진님께
인사를 전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어수선한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즐거운 휴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고르비님!
책읽기를 참 좋아하시네요.
본받아야할 성품입니다.
가람이는 한때 무협지나 인간이 정복할수
없는 산과 남극.북극을 정복했던 인간의
극한 모습들.시나 단편소설등 많이 읽었는데 요즘은 게으름에 시집정도 밖에..
하하하~^
체력이 못따라서인지? 버릇이 생긴건지
취미가 없는건지
책을 읽으면 눈도 침침하고 졸리고 그러네요.시집 정도는 읽는데...하하하~^
고르비님께 본받고 배워야 할것 같아요.
눈건강 잘 지키시고 쉬엄쉬엄 탐독하시길
바라며 좋은글 많이 올려주세요.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식이 있고
좋아하는 계절이 있듯이
좋고 나쁜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것이겠지요.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면 건강에 좋은 것이고
해서 즐거우면 그게 행복한
것이겠지요.
회장님처럼 부드럽고
다른 이들의 즐거움 위해
애쓰는 마음 가짐,,,나이 들어
그것 보다 아름다운 게
얼마나 있을까요?
늘 건강하시고 좋은
계절에 즐거움 듬뿍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러고 보니 이가을에 책한권 읽지를 못햇내요 고르비님 따라 가려면 한참 멀엇내요 ㅎㅎ 이제 정말 눈이 흐릿해서 책을 폇다가 다시덥고 합니다
어쩌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난 사람, 결코 만나지
못할 사람과의 또
다른 의미의 인연을
맺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간 여유 나시면
이 가을에 좋은 책
찾아 읽으시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고르비님 감사합니다
릴리님
안녕하세요?
십일월도 중순으로
접어드네요.
마구잡이 글인데 너그러운
맘으로 뵈주시니 고맙습니다.
한결 같이 용방을 위해
애쓰시는 모습 보기 좋습니다.
늘 건강하시길요.
힐빌리의 비가 조용한 음악과 좋은글 감상하며
오래 동안 머물다 갑니다 고맙습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십일월이 시작되나 했더니
어느새 십일월도 중순으로
접어듭니다.
늘 건강하시고
웃음 많은 날 되시기를
바랍니다.
힐빌리의비가 잘보고 갑니다 책잃기는 이젠
눈이 안좋아 포기하는
것같아요 고르비친
좋은글 감사해요
조은희님
안녕하세요?
우리 모두 익숙한 것과의
결별해야 하는 게 많아지는
나이가 되었지요.
아직 할 수 있는 것 중에
좋하는 거 하면서 즐거움
얻고 행복하면 되지요.
Neflix에서 이달 하순에
힐빌리의 노래 영화를
업로드한다네요.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