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4일(화)
* 시작 기도
주님...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히 9:1-5)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이것들 곧 장막의 기구와 기물들에 관하여 낱낱이 말할 수 없다고 한 것은 제사장을 비롯한 사람들이 그 기물들의 화려함만 보고 그것에 취하여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그 뒤에 숨어 있는 참된 의미 즉 예수 그리스도를 보라는 의미입니다.
나 역시 이 시대의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참 모습은 보지 못하고 그가 행하는 기적과 같은 외양에 마음을 빼앗겼던 자임을 고백합니다.
그 기적을 내 것으로 삼기 위하여 얼마나 우리 주님을 도구로 이용했던 자인지요?
이런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주님의 긍휼이 필요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 주옵소서.
세상이 어수선합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주님의 뜻대로 이 세상을 경륜해 나가시는 줄 믿사오니 그 뜻을 이루어 주소서.
일본에 복음을 증거하러 가신 복음생명선교회 팀들 위에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넘치게 하시고 주께서 일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잠 16:20-33
제목 : 송이꿀보다 더 단 말씀 곧 복음만이 양약이 됩니다.
20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21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명철하다 일컬음을 받고 입이 선한 자는 남의 학식을 더하게 하느니라.
22 명철한 자에게는 그 명철이 생명의 샘이 되거니와 미련한 자에게는 그 미련한 것이 징계가 되느니라.
23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의 입을 슬기롭게 하고 또 그의 입술에 지식을 더하느니라.
24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25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26 고되게 일하는 자는 식욕으로 말미암아 애쓰나니 이는 그의 입이 자기를 독촉함이니라.
27 불량한 자는 악을 꾀하나니 그 입술에는 맹렬한 불 같은 것이 있느니라.
28 패역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쟁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
29 강포한 사람은 그 이웃을 꾀어 좋지 아니한 길로 인도하느니라.
30 눈짓을 하는 자는 패역한 일을 도모하며 입술을 닫는 자는 악한 일을 이루느니라.
31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32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33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 나의 묵상
(24)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히브리어로 ‘노암’이라고 하는 ‘선한 말’은 즐거움, 유쾌함, 아름다움, 사랑스러움, 친절, 호의, 은혜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어두운 마음을 즐겁고 유쾌하게 하며, 친절과 호의를 베푸는 은혜로운 말들을 가리킨다.
상대방을 세워주고 인정해 주며, 그들이 들을 때 힘이 나는 말들이다.
이러한 말을 듣는 자들은 정말 그 말의 맛이 꿀송이처럼 달다.
그래서 몸과 마음을 힐링시켜 주는 좋은 약이 될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을 노엽게 하는 말이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고 세워주는 말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러한 말은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이런 선한 말을 하고, 선한 말을 듣는 사람이 많아진다고 해서 세상이 변화되는 것일까? 아니다.
진짜 선한 말, 정말 꿀송이처럼 달아서 몸과 마음과 영혼을 힐링시키는 말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요 곧 복음이다.
세상의 선한 말은 아무리 좋아도 그 마음을 잠시 기분 좋게 해주는데 그칠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이 잠시 힘들고 아플지라도 진짜 그 말씀의 능력이 주의 영, 곧 성령과 함께 역사할 때 우리의 영혼과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사람의 말은 가능하면 상대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하여 그를 세워주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영이 기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다.
비록 그 말씀이 우리의 심령을 찌르고 고통스럽지만 그 맛은 우리의 영혼이 진짜 맛보는 꿀송이와 같은 것이다.
그 말씀만이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며, 그로 인하여 우리 몸과 마음도 기쁨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성령은 말씀과 함께 역사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나의 유익을 구하는 자에게는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여기서 말하는 육은 예수님의 살(사릌스)을 뜻하며 나아가 그것은 주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육, 즉 말씀을 의미하는 살 자체로는 무익하고 그것이 유의미하기 위해서는 영, 즉 성령이 역사해야 함을 말씀하고 계신다.
주님은 이미 (요 6:51절)에서 영생을 얻는 떡이 있는데 그 떡이 바로 주님의 살(사릌스)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영생을 얻는 떡, 즉 주님의 살은 그 자체로는 무익하고 오직 성령이 함께하실 때 그 능력의 역사가 나타난다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무리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해도 그 영이 새로워지지 않고, 그 몸에 양약이 되지 않는 이유는 성령으로 하지 않고 오직 나의 유익을 구하며, 말씀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나는 성령과 말씀을 분리해서 생각해 왔으며, 마치 성령은 영성이 좋은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이용할 수 있는 어떤 물체처럼 생각하였다.
무엇보다 나는 말씀을 이용한 자였다.
말씀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하나님의 아들 자신이며, 그 말씀이 바로 존재이시다.
그런데 나는 그 말씀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내 생각대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내가 말씀을 통하여 높임을 받으려 한 자였던 것이다.
이처럼 나는 말씀을 통하여 주님을 높이고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가 아니라, 말씀을 도구처럼 이용하여 나 자신이 높임을 받으려 하였다.
예전에 김해에서 목회를 할 때는 내 안에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놈이 있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나의 의(義)였다.
누군가로부터 설교를 잘 한다거나 목사님 설교가 정말 은혜롭다는 말을 들으면 나의 어깨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곤 하였다.
설교를 잘 한다 못 한다 평가를 하는 것도 좀 그렇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우쭐하는 나는 정말 못 말리는 자이다.
설교가 좋다는 말을 들을 때 내 마음이 우쭐해진다는 것은 성령님을 의지하여 설교하지 않고 내가 했다는 방증이다.
정말 말씀을 전하며 설교를 할 때 성령님을 철저히 의지하여 한다면 어떻게 어깨가 으쓱해지고, 어떻게 마음이 우쭐해질 수 있겠는가?
이처럼 나는 순간순간 말씀을 이용하여 나의 유익을 구하고자 하는 말씀도둑놈이다.
은혜를 받는다는 것은 정말 주님의 은혜가 아니라 그들의 감정을 고양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고 내가 내 이름을 내기 위하여 말씀을 이용할 때, 이런 설교를 아무리 들어도 성도들은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볼 때는 설교가 죽을 쑨다 할지라도 온전히 성령님을 의지하여 말씀을 선포할 때 그 말씀은 정말 꿀송이와 같아서 영혼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또 죽어야 한다.
그래야 진짜 살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나의 옛 사람은 끊임없이 내 안에서 살아 꿈틀거린다.
자기가 최고인 양 나를 주장하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의 옛 사람과 자기주장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
내가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말씀과 함께 주의 성령을 의지하는 길 밖에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가 사람을 세우고, 사람을 새롭게 변화시킵니다.
주의 말씀이라도 그 말씀을 이용하여 나의 유익을 구하게 되면, 사람들이 은혜는 받을지 모르나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지는 않습니다.
날마다 은혜는 받지만, 항상 그 자리에 머무는 자가 되고 맙니다.
이 종을 긍휼히 여기사 말씀을 이용하는 자가 아니라 말씀을 향유(享有)하며 그 말씀을 선포할 때 온전히 성령님을 의지하여 선포하게 하소서.
말씀을 사모하며, 사랑하여 그 말씀 안에 잠잠히 머무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나를 돌아보며 정말 비참한 나를 봅니다.
하지만, 그런 나를 주님은 용납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복음 전도자로 세워주셨사오니, 이 말씀이 나를 높이는 수단이 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성령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며 주님께 영광이 나타나게 하소서.
오늘 그 영광을 보게 하소서.
주님의 얼굴에 비친 아버지의 영광은 곧 내게 임하는 주님의 영광임을 아오니, 나에게 비쳐지는 영광의 빛이 이제는 세상을 향하여 반사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