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푹잠 자게 하시고 이른 새벽에 흔들어 깨워주시니 감사합니다.
어제 서울에 잘 도착하여 기쁨으로 예진이를 만났습니다.
독감을 앓은 예진이 조금 살이 빠진 듯하지만 여전히 해말갛게 재잘댑니다.
예수님 이야기 많이 하는 날들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과 정직한 영을 허락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0.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21.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명철하다 일컬음을 받고 입이 선한 자는 남의 학식을 더하게 하느니라
22. 명철한 자에게는 그 명철이 생명의 샘이 되거니와 미련한 자에게는 그 미련한 것이 징계가 되느니라
23.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의 입을 슬기롭게 하고 또 그의 입술에 지식을 더하느니라
24.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25.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26. 고되게 일하는 자는 식욕으로 말미암아 애쓰나니 이는 그의 입이 자기를 독촉함이니라
27. 불량한 자는 악을 꾀하나니 그 입술에는 맹렬한 불 같은 것이 있느니라
28. 패역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쟁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
29. 강포한 사람은 그 이웃을 꾀어 좋지 아니한 길로 인도하느니라
30. 눈짓을 하는 자는 패역한 일을 도모하며 입술을 닫는 자는 악한 일을 이루느니라
31.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33.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본문 주해)
20절 : “말씀에 따라 조심하며 사는 사람은 일이 잘 되고, 주님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새번역)
말씀에 주의하면 어떤 좋은 것을 얻는가?
잠언에서는 지혜이다. 지혜는 생명이며, 생명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말씀에 주의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의 총체이신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이고, 그것이 곧 믿음으로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이다. 이런 사람이 복이 있다.
21절 :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을 명철하다 한다. 말이 부드러우면, 더욱 많은 지혜를 가르친다.”(새번역)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지식이나 자신의 가진 것을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주께로부터 받은 것을 말한다. 자기 것이 아니기에 자랑할 수도 없고, 화를 낼 이유도 없다. 그러므로 그 말이 부드럽다. 이런 자는 남에게 더 많은 지혜를 가르치게 된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사도의 권위로 주장할 수 있으나 유순한 말로 유모가 자녀를 기름같이 하였다고 한다(살전2:7). 자신도 주께로 받았기 때문이다.
22절 : “명철한 사람에게는 그 명철함이 생명의 샘이 되지만,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그 어리석음이 벌이 된다.”(새번역)
명철한 자란 금보다 나은 지혜를 얻는 자이며, 악을 떠나는 자이며, 겸손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며, 삼가 말씀에 주의를 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런 자들의 결국은 생명이다.
그러나 금과 은을 지혜보다 귀하게 미련한 자는 이 땅에서 벌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23절 :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신중하게 하고, 하는 말에 설득력이 있다.”(새번역)
예수님께서 자신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증거 하였듯이 오늘날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자 또한 자기 증명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자이다. 이러한 복음을 들으면 전해준 사람의 지식이나 들은 자의 지식이 더하여진다.
24절 :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을 즐겁게 하여 주고, 쑤시는 뼈를 낫게 하여 준다.”(새번역)
말씀으로 인하여 마음에 즐거움이 있다면 몸도 건강하게 되는 일이 있지만, 여기서 뼈라는 단어는 전인을 가리킨다. 이것을 영혼이라고도 한다.
금이나 은을 얻는 것보다 지혜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얻었다면 전인이 풍성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25절 : “사람의 눈에는 바른길 같이 보이나, 마침내는 죽음에 이르는 길이 있다.”(새번역)
예수님은 자신을 길과 진리와 생명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인간의 결정은 다 틀렸고 예수님만이 바른 길로 가신 분이심을 믿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인류가 다 옳은 길이라고 일치된 생각을 보여도 그것은 바른 길이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바른 길이요, 진리의 길인 것이다.
26절 : “허기진 배가 일하게 만들고 그 입이 사람을 몰아세운다.”(새번역)
사람이 배가 고프면 입으로 무엇을 먹어야 한다. 이러한 욕구가 사람으로 하여금 일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식욕’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네페쉬’이다. 이 단어는 식욕으로 번역이 되었지만 다른 용례를 살펴보면 ‘목구멍, 목, 욕구, 영혼, 생명, 사람’ 등으로 사용된다. 한마디로 말하면 갈망하는 인간을 말한다.
인간은 무엇에 갈망해야 하는가? 정말로 갈망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데 인간은 본성상 영원하지 않을 것에 대한 것들만 욕망하고 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그 욕망의 길로 가게 버려두시지 않고 인생의 고난을 주셔서 생명의 말씀이 들리게 하시는 것이다.
27~30절 : “불량한 사람은 악을 꾀한다. 그들의 말은 맹렬한 불과 같다.
비뚤어진 말을 하는 사람은 다툼을 일으키고, 중상하는 사람은 친한 벗들을 이간시킨다.
폭력을 쓰는 사람은 그 이웃을 윽박질러서, 좋지 않은 길을 가게 한다.
눈짓을 하는 사람은 그릇된 일을 꾀하고, 음흉하게 웃는 사람은 악한 일을 저지른다.”(새번역)
이 단락은 악인에 관한 내용이다.
생명의 길을 가지 않고 자기 욕망에 끌려 사는 자들이다. 그들을 불량한 자들, 패역한 자들, 강포한 자들이라 한다.
이런 자들은 다툼을 일으키고, 말쟁이가 되어 흉을 보며, 친한 벗을 이간질시킨다. 또 이웃을 꾀어 좋지 않은 길로 인도한다.
이 모든 것이 사망의 길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돌이켜 주신 자들은 이러한 악인의 모습이 남의 모습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비로소 자신의 본성적인 갈망이 멸망의 길임을 알게 되기에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31절 : “백발은 영화로운 면류관이니, 의로운 길을 걸어야 그것을 얻는다.”(새번역)
백발은 단지 머리색깔이 희다는 의미가 아니라 장수를 말한다.
백발이 공의로운 길에서 얻는 영화의 면류관이라는 말씀은 성경의 일반적인 진술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의롭게 살면 장수한다는 말씀이지만, 나이가 들어도 깨닫지 못하면 그것은 아무리 백발이 되어도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백발이라는 나이의 유무보다 지혜의 유무가 중요한 것이다.
백발이라고 해서 다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집이 더 세어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지혜의 유무가 영광의 면류관의 유무가 되는 것이다.
32절 : “노하기를 더디 하는 사람은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성을 점령한 사람보다 낫다.”(새번역)
자기 자신이 주님 앞에서 어떤 죄인인지 알게 되는 자들이 분노가 다스려진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말씀에 의하여 자신의 실상을 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말씀이 자신을 다스리도록 맡겨야 하는 것이다.
33절 : “제비는 사람이 뽑지만, 결정은 주님께서 하신다.”(새번역)
어떤 계획과 뜻을 사람이 세우더라도 그 결정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말씀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16:9)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19:21)
(나의 묵상)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31절)
“백발은 영화로운 면류관이니, 의로운 길을 걸어야 그것을 얻는다.”(새번역)
“백발은 영예로운 면류관이니, 의로운 삶을 통해 얻는다.”(쉬운 성경)
잠언의 ‘백발’은 늙어서 머리가 멋지게 희어졌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주신 선물로서 영화로운 면류관이라고 한다. 즉 주님 안에서의 장수-잘 늙어감-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의로운 길을 통해서 얻는 것이라 말씀한다.
그 ‘의로운 길’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바로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요, 십자가의 길이다.
내가 주님 없이 늙어간다면 어떠했을까?
열심히 끌어모아 혹시 손에 쥔 것이 좀 있다면 교만하며 자기만 아는 고집불통의 노인이 되어가고 있을 것이고, 혹 가진 것이 없는 자라면 영육 간에 텅 빈 자로 너무 초라했을 모습이 상상된다.
주님 안에서 이 땅에서부터 영생을 누리며 늙어가는 것과 하늘 나라의 소망을 가질 수 있음은 고집으로 치켜뜬 눈꼬리를 내려오게 하고, 그 영적 부요함으로 가진 재물의 상태를 뛰어넘는 자가 되게 한다.
그래서 주님 안에서 늙어가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거기다 날마다 말씀 앞으로 나아가 주님과 생명의 교제를 나누니 내 안의 영적 풍성함이 넘친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4:16)
겉 사람의 낡아짐을 근심하여 세상 사람들이 행하는 것처럼 온 마음과 시간을 거기에 쏟아붓지 않는다. 오로지 말씀에 초점을 두고 말씀을 묵상하며, 그에 순종하기를 기도하니, 나의 속사람이 말씀으로 인해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워짐은 주님의 대한 소망을 더욱 간절하게 만든다.
세월이 흐를수록, 주님의 길- 십자가의 길-을 따름으로 얻게 된 백발, 그 영화로운 면류관에 더욱 감사가 넘치는 자 되길 소원한다.
(묵상 기도)
주님,
주님 안에서 늙어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겉 사람은 낡아지지만
속 사람은 날로 아름다워지길 원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백발이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게 하시고
장차 주님 앞에 섰을 때 다시 주님께 올려드리며
주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