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56년 전 1968년 1월 21일(일요일)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청와대 습격을 시도해 바로 뒤편 북악산에서 교전이 벌어진 날이다.
북한 124 부대원 31명이 휴전선을 넘은 지 사흘 만에 청와대 코앞까지
침투했고, 군경과의 교전 끝에 29명이 사살됐는데 당시 북한 부대원
가운데 유일하게 생포됐던, 이제 팔순이 된 김신조 씨에게
(왜 하필 1월에 왔는가? 라고 물으니)
겨울에는 남조선 국방군들 훈련도 잘 안 하고, 군인들 근무도 잘 안 서~
그날이 일요일 날이거든. 일요일 날은 다 놀거든.
그게 자본주의의 약점이에요. 라고 무덤덤하게 답변한다.
<당시 1월 21일은 일요일로써 6.25 전쟁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주기 위해 날짜를 계산하고 투입한 것이다.>
요즘은 토요일에도 노는데~~ ㅋㅋ
인왕산과 비봉산, 의정부시 등지로 도주한 공비들은 그 뒤 크고 작은
전투를 통해 대부분 죽었다.
최종적으로 29명 사살, 1명 투항(김신조 소위), 미확인 1명이다.
대한민국 측의 피해도 상당했는데
최규식 서장을 비롯하여 제1보병사단 15연대장 이익수 대령이 교전 중
피격당해 전사했고 특히 도주 과정에서 공비들의 무차별 사격으로
민간인 피해가 여러 건 발생하기도 했다.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나 경복고등학교 수위 등 일반인,
심지어 참관 및 작전 지도차 온 주한미군까지 사망할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의도가 있었든 아니었든 무고한 민간인들도 희생당했다.
총 32명 사망(군 장병 25명, 민간인 7명)에 52명이 부상을 했다.
당시 수도경비사령부 제30 경비대대 대대장 전두환 중령의 지시로
81mm 박격포로 무수한 조명탄을 쏘아 올려서 공비들의 모습과
위치를 환히 비춰 준 것도 진압에 도움이 되었다.
< 1·21사태 영향.>
1. 군 복무기간 연장
2. 예비군 창설
3. 실미도 684부대 & 보복부대창설
4. 고교 교련훈련 실행
5. 주민등록증 발급
6. 육군3사관학교 창설
7. 유격훈련 시행
8. 천리행군 실행
10. 철책선 설치
11. 5분 대기조 실시
12. 전투경찰 창설
13. 인왕산,북한산 통행금지
( 출처 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