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퓌스 드라마는 여론의 전쟁터나 다름 없었다. 당시의 군국주의 및 반유태주의 신문들은 여론의 전달자가 아니라 제조자였다. 이 신문들은 조직적으로 허위 사실을 날조하고 전파하였었다.
군국주의와 반유태주의를 선동하는 신문들은 아쏭프씨옹(Assomption)교파와 왕당파로부터 거액의 자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더 구체적으로는 쿠데타음모와 관련을 맞고 있었다는 것도 이제는 공지의 사실이다.
드레퓌스 사건에서 가장 앞장서 진실을 왜곡했던 신문은 「라 리브르 빠롤르」였다. 에스떼라지의 친구이며 또 그를 통해서 앙리 소령과도 친구가 된 드뤼몽이 「라 리브르 빠롤르」지를 창간한 것은 드레퓌스가 아직 전술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을 시절이었다. 이 신문은 그때까지 프랑스에서 발간되는 어떤 출판물보다도 더욱 격렬한 반(反)유태주의적 논조를 펴고 있었다.
이 충격적인 신문은 저명한 가톨릭교도인 드 모레스 후작 같은 사람들의 공공연한 지원을 받고 있었다. 군(軍)내 뽀스뜨패들에게 절대적 영향을 행사하고 있는 제수이트교단이 이 신문의 발행자에게 자금을 공급하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이 신문은 또한 일반시민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었다. 놀랍게도 많은 시민들이 「라 리브르 빠롤르」지를 구독했다.
이 사실은 많은 프랑스인들의 의식 속에, 보이지 않는 가운데 또 모르는 가운데 큰 변화가 일어났음을 시사해주는 첫 번째 경고였다.
처음 기소되었을 때 드레퓌스는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날 듯 싶었다. 그런데 10월 28일 「라 리브르 빠롤르」지의 드뤼몽에게 다음과 같은 쪽지가 전달되었다. 드레퓌스는 현재 쉐르슈미디에 있다. 그는 여행중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들은 이 사건을 유야무야하려고 한다. 이스라엘이 무장하고 일어섰다.
이 쪽지에서는 '앙리'라는 이름이 서명되어 있었다. 이튿날 다음과 같은 내용의 칼럼이 이 '인기높은' 반유태신문에 게재되었다. 군 당국의 명령으로 매우 중요한 인물이 체포되었다는게 사실인가? 수감자는 대반역죄의 혐의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이 뉴스가 사실이라면 왜 발표하지 않는가? 이에 대한 즉각적인 해명을 요구한다.
사실 에스떼라지가 슈바르츠코펜에게 넘긴 정보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진실이란 항상 미치광이 들에게는 붉은 헝겊조각처럼 자극적인 법이다. 「라 리브르 빠롤르」지는 그 서류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메르시에 장군의 성명을 공격하고 나셨다.
다른 신문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소문과 비난이 도하(都下)의 각 신문을 장식했다. 「라 리브르 빠롤르」지는 드레퓌스를 공개재판에 회부할 것을 요구했다. 사건이 복잡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혐의사실이 경감되고, 따라서 드레퓌스가 사형 대신 징역형 정도로 모면할까 두렵다고 「라 리브르 빠롤르」지는 논평했다. 언론은 이 사건을 제멋대로 과장해서 보도하고 있었다. 「르쁘띠 주르날」이라는 신문은 대체로 정치적 편향을 보이지 않는 신문이었고 아마도 그런 이유로 인해 3백만의 독자를 가지고 있는 신문이었지만 이렇게 선언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났더라면 드레퓌스는 국방성이 신임하는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자기 동료들을 자기의 묵인하에 놓인 덫에 걸리게 해서 죽음으로 몰아 넣었을는지도 모른다."
「에꼬 드 빠리」같은 보수적인 신문까지도 아무런 인용없이 드레퓌스가 병력동원의 규모, 시간, 밀집지역에 대한 정보를 적에게 팔아 넘겼다고 보도했다. "병력동원시간표를 다시 작성하는데만도 3년이 걸릴 것"이라고 이 신문은 큰 소리쳤다.
최근에 일어났던 해결되지 않은 일련의 반역행위의 책임이 드레퓌스에게 돌려졌다. 드레퓌스는 러시아를 방문한 적이 없었는데 어떤 신문은 그가 독일귀족과 함께 페테르부르그에 있는 것이 목격된 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그가 묵은 것으로 '알려진' 호텔의 이름과 객실의 번호까지도 보도했다.
중요 일간지인 「르땅」지와 「르마뗑」지는 어떤 연애사건이 게재해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 신문에 의하면 드레퓌스는 니스에 사는 귀족출신의 이태리 미녀를 애인으로 갖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를 유혹해서 반역행위를 하게 한 것은 바로 이 여자였다고 이 두 신문은 공언했다.
"드레퓌스는 프랑스 국민을 파멸시키고 프랑스 영토를 차지하려고 획책해 온 국제적 유태인 조직의 스파이"라고 카톨릭계 신문인 「르끄롸」지는 썼다. 「라 리브르 빠롤르」, 「라꼬까르드」, 「라빠뜨리」 등의 신문은 모두 입을 모아 드레퓌스를 사형에 처하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