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가격표를 붙인 시장,
자본주의의 심장을 들여다보다”
─ 월터 존슨의 대표작 『팔려가는 영혼들』 번역 출간 ─
노예제는 어떻게 인간을 상품으로 만들었는가
그리고 상품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어떻게 끝내 인간으로 살아남았는가
미국 역사학자 월터 존슨(Walter Johnson)의 대표작 『팔려가는 영혼들』(Soul by Soul: Life Inside the Antebellum Slave Market, Harvard University Press, 1999)이 번역 출간됐다.
동국대학교출판부의 신간 『팔려가는 영혼들』은 남북전쟁 이전 미국 남부의 최대 노예시장 가운데 하나였던 뉴올리언스를 무대로, 인간이 어떻게 사고팔리는 상품으로 전락했는지를 미시적인 현장에서 생생하게 복원해낸 역사서다. 저자는 노예제도를 단순히 농장과 플랜테이션의 노동 체제로 바라보는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노예시장이라는 구체적인 공간에서 벌어진 거래와 흥정, 욕망과 공포, 위선과 저항의 순간들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뉴올리언스의 노예시장에는 해마다 수천 명의 흑인이 ‘화물’로 실려 왔다. 그들은 상품으로 전시되기 위해 몸을 닦고 기름칠을 당했으며, 채찍 자국을 감추고 나이를 속이기 위해 외모까지 조작됐다. 시장에서 인간의 육체는 노동력과 생산성의 척도로 평가됐고, 여성의 몸은 미래에 낳을 자녀까지 포함한 ‘자산’으로 계산됐다. 인간의 이름과 역사, 가족관계와 존엄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가격표가 붙었다.
그러나 존슨이 주목하는 것은 인간을 상품으로 만들었던 폭력만이 아니다. 그는 상품으로 진열된 노예들이 결코 시장의 수동적인 대상에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노예들은 자신을 사려는 구매자의 성향을 살피고, 잔혹한 주인에게 팔리지 않기 위해 일부러 병든 척하거나 몸을 절뚝거리기도 했다. 반대로 탈출하거나 더 나은 삶을 기대할 수 있는 구매자가 나타나면 자신의 장점을 드러내며 미래를 스스로 선택하려 했다. 가격이 매겨지는 순간에도 그들은 시장의 논리를 읽고 그 틈새를 이용하며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존슨은 이를 통해 노예제의 역사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다. 노예들은 폭력의 희생자였지만 동시에 자신의 삶에 개입하는 행위 주체였으며, 인간을 상품으로 환원하려는 시장의 논리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관계와 존엄을 만들어냈다. 책의 원목인 ‘Soul by Soul’은 바로 이 지점을 가리킨다. 가격이 매겨진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시장이 완전히 장악할 수 없는 영혼의 관계가 남아 있었다.
노예시장은 자본주의의 변방이 아니라
심장부였다
『팔려가는 영혼들』의 또 다른 중요한 성취는 노예제와 자본주의의 관계를 새롭게 해석했다는 데 있다. 20세기 후반 미국 노예제 연구는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로버트 포겔과 스탠리 엔커만으로 대표되는 계량 경제학적 접근이고, 다른 하나는 유진 제노비스의 ‘가부장적 온정주의’ 모델이었다. 전자가 노예제를 생산성과 효율성, 가격과 시장의 관점에서 분석했다면, 후자는 플랜테이션 사회에서 노예주와 노예 사이에 형성된 가부장적 관계와 상호의존성에 주목했다.
존슨은 이 두 관점을 모두 비판하면서 연구의 시선을 노예시장의 현장으로 돌린다. 통계와 경제지표만으로는 노예제의 본질을 설명할 수 없으며, ‘온정주의’라는 말 역시 실제 거래 현장에서 드러나는 폭력과 상품화를 가릴 수 없다는 것이다.
노예시장에서 인간의 몸은 노동력이면서 동시에 금융자산이었다. 노예는 플랜터의 재산이자 신용을 뒷받침하는 담보였으며, 노예시장은 농장과 은행, 금융과 면화산업을 연결하는 자본의 핵심 장치로 기능했다. 존슨은 이를 통해 노예제가 자본주의의 외부에 존재했던 전근대적 잔재가 아니라, 오히려 미국 자본주의의 성장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2000년대 이후 미국 역사학계를 크게 변화시킨 ‘새로운 자본주의 역사학(The New History of Capitalism)’의 중요한 사상적 토대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노예제와 자본주의를 별개의 역사로 볼 수 없으며, 인종주의적 폭력과 인간의 상품화가 미국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인종 자본주의(Racial Capitalism)’의 문제의식을 구체적인 역사적 현장에서 보여준 것이다.
『팔려가는 영혼들』은 출간 이후 미국 역사학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프레더릭 잭슨 터너 상과 존 호프 프랭클린 상을 수상했다. 특히 노예시장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발견한 미시적인 인간 드라마를 백인 정체성, 자본주의, 인종주의에 대한 거대한 역사적 질문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학문적 혁신성을 인정받았다.
19세기의 노예시장,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을 묻는가
이 책이 오늘날 더욱 날카롭게 다가오는 이유는 과거의 노예제만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의 번역한 양홍석 교수(동국대 사학과)는 해제에서 오늘날에도 인간이 노동시장에서 스펙과 연봉, 생산성과 성과라는 숫자로 평가되며 자신의 가치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물론 현대사회를 19세기의 노예제와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인간을 숫자와 가격으로 환원하는 시장의 논리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노예시장의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다. 『팔려가는 영혼들』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독자를 이끈다.
“인간에게 가격을 매길 수 있는가.”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묻는다.
“인간을 상품으로 만들려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끝까지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가.”
노예시장의 연단 위에서 자신의 운명을 결정당해야 했던 사람들은 그 순간에도 상대의 눈빛을 읽고, 거짓말을 간파하고, 자신의 행동을 선택했다. 시장이 인간을 사물로 만들려 할 때 그들은 그 틈새에서 관계를 만들고 서로의 손을 잡았다. 『팔려가는 영혼들』은 노예제라는 과거의 비극을 기록한 책인 동시에, 자본주의의 역사와 인간의 존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뉴올리언스의 한 노예시장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미국 남부의 플랜테이션과 미시시피 계곡, 면화산업과 금융시장으로 확장되고, 마침내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자본주의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인간이 상품이 되었던 시장. 그러나 끝내 영혼까지 팔 수는 없었던 사람들.
월터 존슨의 『팔려가는 영혼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역사 속에서 다시 불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