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인야후 사태를 보면서...
지금 전세계는 기술 세계주의가 퇴조하고 다시 기술 민족주의가 대두하는 듯한 시점에 인공지능이 이를 더욱 부추기고 있는 형국이다.
기술이 세계정치와 분리될 수도 없고, 분리되기도 어렵다는 이 단순한 진실 앞에 기술개발자들은 좀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는 교훈적인 사태가 라인야후 사태다.
편협한 국가 / 조명래
압도적 기술 우위에는
기술 세계주의 표방을
그렇지 못한 기술에는
교묘한 기술 민족주의
글로벌 기업과 조직도
강대국 정부의 치부로
모순적 태도에 희생양
결과의 하나 라인야후
기술의 정치와 분리는
애시당초 허울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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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그는 한때 기술 민족주의의 피해자였다. 중국의 IT 공룡 알리바바의 최대 주주기도 했던 그가 대부분 지분을 매각한 건 중국 정부의 강력한 빅테크 규제 때문이었다.
인터넷의 모든 데이터를 자국 안에 가두고자 한 중국의 규제로 엄청난 투자 수익을 날닐 수 밖에 없었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을 만나 5분 만에 수백억원대 투자를 결정했던 그는 초라하게 알리바바와 결별하고 말았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 민족주의에 무기력하게 당했던 그가 이번엔 일본 정부를 등에업고 가해자로 돌변했다. 세계 최고의 AI 기업을 만들겠다는 포부로 2019년 네이버와 손을 잡았던 그가 말이다.
라인야후를 지배하는 지주회사 ‘A홀딩스’의 지분을 내놓으라고 일본 정부와 함께 네이버를 압박한 명분은 몇 번의 일본 사용자 데이터 유출 사고가 빌미라지만 2018년 개인정보 유출로 페이스북에 내려진 일본 정부의 행정지도보다 수위는 훨씬 높아서 기술 기업 간 비즈니스 관점만으론 해석하기가 어려운 대목이다.
○ 부상하는 기술 민족주의
1. 미국은 하원이 지난 3월 틱톡 금지법을 압도적으로 통과시킨 후 기술의 민족주의는 노골화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 반도체 산업 보조금 정책 등 최근 발표되는 일련의 기술 정책들은 안보를 명분으로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유지하기 위한 미국 특유의 국가주의적 접근의 산물이다.
2. 일본 정부도 이 흐름에 비슷한 분위기다. 그 표적지에 한국 기술 기업 네이버가 올려졌을 뿐이다. 미 중 관계와 달리 한 미 일은 세계정치 지형 내 동일 이념 블록으로 묶여 상호 안보 협력의 파트너로 인식됐지만 기술 민족주의는 동일 이념 블록 안에서도 얼마든지 생겨나고 작동한다는 사실을 이번 라인야후 사태가 보여주고 있다.
○ 이것은...
기술이 세계정치 지형밖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상기시키는 것이다. 글로벌 테크기업에 의한 자국민 개인정보 데이터의 월경 문제, 방대한 규모의 허위조작정보 확산과 선거 개입, 랜섬웨어 등을 통한 사이버 공격의 고도화는 기술에서 비화한 고도의 지정학적 외교 문제다.
라인야후 사태는 1980년대부터 반복돼온 기술 민족주의, 기술 세계주의의 글로벌 차원의 주기적 변동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하는 이유다.
아울러 모든 인류에게 기술의 혜택을 보편적으로 제공하겠다는 ‘기술 세계주의’가 왜 허상일 수밖에 없는가를 이번 사태는 증명해 보이고 있는것이다.
미국은 그들이 압도적 기술 우위를 지니고 있을 땐 ‘기술 세계주의’를, 그렇지 않은 때엔 ‘기술 민족주의’를 교묘하게 활용해왔다. 일본 기업과 정부는 그런 미국의 모순적 태도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지만 일본 또한 그러고 있으니 아이러니한것이다.
1986년 일본 후지쓰의 페어차일드 인수 포기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젠 일본 정부가 동일 이념 블록 안에서 그러한 접근법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 '네이버'는...
일본 정부 압박에 대한 대응 전략을 일단 ‘라인야후 지분 유지’로 설정했다. 국내서 반일 기조가 확산하자, 정치권은 물론 정부도 ‘네이버 지키기’에 팔을 걷어붙인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라인야후 지분 매각에 따른 경영권 상실이 네이버의 사업적 필요로 이뤄지는 의사결정이 아닌 일본 정부 압박을 전제하고 있어서 네이버는 이른바 ‘라인야후 사태’에 대한 대응 기조를 ‘경영권 유지’로 정했다는 점을 최근 대통령실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본격적인 정부의 외교적 지원이 이뤄질 전망이다.
다만 일본 정부가 ‘네이버 경영권’을 빌미로 향후 라인야후에 대한 행정적 제재를 강화할 수 있단 우려는 남아있다. 이 지점이 온전히 해소되지 않는다면 네이버가 ‘지분 매각’보다 더욱 큰 사업적 피해를 볼 수 있단 분석도 나오고 있다.
○ '라인야후'는...
라인야후는 네이버 일본 법인이던 NHN재팬이 2011년 출시한 메신저다. 라인 애플리케이션(앱)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현재 일본 9600만명, 태국 5500만명, 대만 2200만명, 인도네시아 600만명 등을 기록하고 있다. 월 108개국에서 약 2억명이 접속하는 앱으로, 한국 기업이 만든 가장 성공한 글로벌 플랫폼이다.
네이버는 2019년 일본 최대 포털 야후재팬을 운영하던 소프트뱅크와 협의해 라인과 야후재팬의 합병을 결정했고 2021년 A홀딩스를 세웠다. 메신저 서비스인 ‘라인’과 검색 서비스인 ‘야후재팬’을 운영하는 거대 기업 라인야후가 탄생한 배경이다.
라인야후가 지닌 일본 내 영향력을 국내로 비유하자면 ‘최대 포털’ 네이버와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합친 수준이다. 실제로 라인야후는 일본 내 최대 정보기술(IT) 기업으로 통한다. 이 회사의 최대 주주는 지분 64.4%를 보유한 A홀딩스다. A홀딩스의 지분은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50%씩 보유하고 있다. 네이버가 보유한 A홀딩스 지분 중 단 한 주라도 소프트뱅크 측에 넘어간다면 경영권을 상실하는 구조다.
라인야후는 포털 메신저 사업 외에도 수많은 자회사를 통해 간편결제(페이페이), 이커머스(조조 아스쿨), 배달(데마에칸) 등에 진출해 있다. 자회사들 역시 해당 업계에서 각각 1위 입지를 구축한 상태다. 지배구조를 보면 ‘A홀딩스(네이버 소프트뱅크) →라인야후 →페이페이, 조조, 아스쿨, 데마에칸’ 등으로 이어진다.
얽히고설킨 ‘라인야후 사태’의 복잡한 셈법에 대한민국 정부도 네이버도 시야를 넓혀 다각적인 대응 전략이 있어야 할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