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물 맑기 운동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한 것이 부정부패 추방 운동이다. 역대 정권들이 그 집권 초기마다 사정과 감찰 활동으로 수많은 부패 정치인과 공무원들을 정리한다고 하였지만 세월이 갈수록 부패가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부패 추방의 바람이 불면 늘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논리로 고위층들부터 사정한다. 그러나 사정을 당하는 자들은 늘 권력의 중심에서 비켜선 자들이 대부분이라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사정을 당하는 자들로부터도 반발을 불러와 결국 부패 추방의 바람은 한때의 겁주기로 끝나고 만다.
우리가 진정으로 이 땅에서 부정부패가 없어지기를 원한다면 「윗물 맑기 운동」에서 「뒷물 맑기 운동」으로 구호를 바꿔야 한다. 「윗물과 아랫물」간의 책임 공방을 따져 봐도 상하가 한 통속에 있는데 정화가 되겠는가?
이제라도 부패 추방 운동에 「앞 물과 뒷물」의 세대 교체적 순리의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앞 시대의 부패 정리는 세월에 맡기고 부패에 물들지 않은 새로운 뒷시대가 사회 모든 분야에 유입되도록 해야 한다.
청렴한 자나 부패한 자나 인간은 세월을 이길 수가 없다. 이 땅을 하직하고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로 떠나는 사람들이 년 간 50만 명이나 된다. 10년만 지나면 모든 분야에서 500만 명이 저절로 교체된다. 우리가 진정 공해 없는 맑은 환경에서 살고자 한다면 이미 흘러간 앞 물을 정화하기 위해 호들갑을 떨며 새로운 오염을 만들지 말고 청년들부터 정의로운 삶을 살도록 하자.
부패를 청산한다고 어깨띠 머리띠를 두르고 오늘도 모든 기관 단체들이 다짐과 결의대회라는 푸닥거리를 벌이고 있다. 10년 20년 후의 세상은 청년들의 것이다. 청년들이여! 미래의 주인답게 오늘의 이 한심한 상황을 떨치고 일어나 내일을 향한 정의의 목소리를 외치라! (1998년 10월 27일)
바람 풍과 바담 풍
옛날 어느 산골 서당에서 혀가 짧은 훈장님께서 아이들을 모아 천자문을 가르치고 있었다. 하늘 천(天), 땅지(地) 하고 훈장님이 선창하면 학동들이 뒤를 이어 따라 읽기를 하는데 이 훈장님은 혀가 짧아 바람 풍(風)자를 읽을 때면 늘 「바담 풍」이라 하였다.
훈장님께서 허리를 곧추세우고 어깨를 좌우로 흔들며 점잖게 「바담 풍!」하면 아이들도 낭랑한 목소리로 「바담 풍!」한다. 학동들의 발음이 틀리자 훈장님은 다시 톤을 높여 「바담 풍!!」이라 하자 아이들도 같이 소리를 높여 「바담 풍!!」이라 한다. 훈장님이 노하여 “아니 이 녀석들아 바담 풍이 아니고 바담(람) 풍이야” 하고 발음을 바로 잡으려 하지만 학동들 귀에는 계속 「바람 풍」이 「바담 풍」으로 들리고 있다.
그 마을에는 글을 아는 사람이 없어 발음을 바로 잡으려는 훈장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계속 바담 풍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나가는 선비가 이를 보고 바로 잡아 주었는데 그 후로 훈장님은 「바담 풍!」, 학동들은 「바람 풍!」이라 하였다 한다.
이 이야기는 가르치는 자의 자질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우쳐주는 우스개 소리지만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는 이야기라 할 것이다. 선생님이 ‘바담 풍’이라 한다고 배우는 후학들까지 ‘바담 풍’ 해서야 되겠는가?
비록 혀가 짧아 ‘바담 풍’이라 하지만 학생들까지 ‘바담 풍’이라 해서는 안 된다고 애태우는 마음이 가르치는 자에게 있고, 틀린 발음이지만 바르게 듣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배우는 자에게 있다면 우리나라의 장래는 결코 어둡지 않을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는 자만이 남을 지도하고 사회를 개혁할 자격이 있다면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세월을 오로지 “신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은총만을 기다리고 있어야 할 것이다. (영남일보 1998년 8월 30일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