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창원에서 목사님으로 봉직하시는 박근범 전 경상대
총학생회장이 1979년 12.12날에 맞은 내 생일을 축하하러 장위동에 있는 집에 다녀갔었다.
당시 10.26사태이후 계엄으로 통금시간이 10시였던 때라, 나는 알바가 늦게 끝나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대학생이 통행금지 시간에 걸리면 경찰서로 끌려가 치도곤을 당하곤 하던 시절이었다.
택시가 성산대교를 건너는 중에 다리 가운데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수많은 자동차에 막혀서 서고 말았다. 간간히 들리는 총탄 소리에 놀라며, 그 차안에서 밤을 새우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한남동 계엄사령관 정승화 참모총장을 쳐들어간 쿠데타 세력이 진압군의 서울 진입을 막고자 한강다리를 민간인 차량으로 막아놓았던 것이었다. 영화 '서울의 봄'에 그 장면이 상세히 소개되기도 했다.
그렇게 쿠데타에 성공한 신군부는 '서울의 봄'을 짓밟고 집권했다.
...그리고 내란죄 심판을 받고 감옥에 들어갔다. 지금은 부끄러운 역사기록이 되어 구천에서 떠도는 영혼이 되었다.
바로 어제 내란죄에 대한 1심 선고가 있었다.
성공한 내란이든 실패한 내란이든 그 죄질과 처벌은 엄중한 것이다.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오니 서재 책상 위에 '피카소'가 그린 바로 이 생일축하 그림이 얹혀있었다.
오늘은 박근범 목사님께 전화를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