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란동백 / 조영남 설날을 앞두고
올해 설날은 지난 연말 결혼한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나와 아내 딸과 조촐하게 보내기로 했다. 넓지 않은 우리 집 형편으로 해마다 형제들과 조카들과의 설날 풍경은 내년으로 미루기로 했고, 형제들 각자 가정에서 보내기로 했다. 섣달 그믐 날. 오전이 지날 무렵 중계동 아들네 집으로 향했다. 들통과 소쿠리 그리고 미리 준비한 고기류를 비롯해 만두를 만들기 위해 아내와 나는 각종 식재료를 차에 실었다. 조금은 설 기분이 나기 시작했다. 전날까지 바뻤던 회사일로 인해 같은 회사에 다니는 아들 내외는 막상 보니 좀 피곤한 표정이다. 특히 해외 운송회사라 막바지에 이른 설날 긴 연휴로 인하여 물류배달은 엄청 많았다고 했다. 그런데 며느리는 결혼하고 처음 맞은 명절인데도 불구하고 어려운 기색이나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는 등 전혀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나름대로 갖가지 식재료를 준비했으며, 평소 배우며 익힌 것 같지는 아닌 것 같은데도 말이다.
아내와 아들 그리고 며느리가 서로 대화하며 갖가지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이 처음 맞는 시아버지의 마음인 내겐 무척 보기 좋았다. 아내가 함께 음식 준비하는 과정을 함께 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것이라며 며느리와 대화하면서 아내가 그간 삶의 경험을 통해 익힌 음식 만드는 법을 설명하며 가르쳐 주면서 하는 말에 며느리는 그렇군요. 예. 예 하며 웃으면서 잘도 따라 한다. 한편으론 지난 해 설날까지만 해도 사형제와 조카들이 모두 모였던 모습이 문득 생각났다. 모두가 장성한 조카들이기에 북적댔던 모습도 그려 보았다. 역시 설날은 형제들과 조카 등 친척들이 북적거려야 명절 기분과 맛이 나는 것 같다. 어딘지 모를 빈 곳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우리세대의 설날 모습과 전혀 다른 조촐한 모습에 설날에 풍경은 내가 장손이며 연로하신 누님이 아니면 어른이라는 나의 세대의 모습은 예전갖지 않은 모습이 문득 들기도 했다. 내 머릿속에 담긴 생각은 표출하지 못한채 아들집에서의 만두 빚음은 시작됐다. 며느리가 말랑말랑한 반죽덩어리를 잘라 손으로 길게 만들어 칼로 자르고 반죽을 방망이로 밀어 만두피를 만들면 나와 아내 그리고 아들이 만두를 만들었다. 만두피는 질지도 않게 매우 잘 빚어졌다. 며느리에 첫 솜씨다.
이에 나도 한 마디 거들었다. “반죽이 매우 잘 됐는데 질지도 않고” "결혼하기 전 집에서 많이 해 봤나봐“ 하고 내가 물으니 ”많이 해보지는 않았는데요” 하며 "그래도 하니까 그런대로 잘 되네요" 아버님! 하며 대답했다. 며느리가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요즘 세대 며느리가 직장생활하며 많이 해 본 경험이 없을텐데도 불구하고 부엌과 거실을 왔다갔다 하며 하는 모습이 대견했다. 어느 집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며느리 칭찬하지 않는 사람은 없겠다만, 생각보다 잘 하는 모습이다. 설이 오기 며칠 전 나는 회사에서 준 설널 선물인 재료로 아내가 집에서 쑨 도토리묵을 간식으로 먹는 가운데 아내와 아들 며느리의 정겨운 대화는 만두를 만들며 이어져 갔다. 간장에 찍어먹는 도토리 묵보다도 김치를 아주 작게 썰어서 버무려 먹는 도토리묵 맛이 일품이다. 며느리 한테 예아! 지금처럼 만두피 만들지 말고 칼국수 만들 듯이 넓고 크게 방망이로 문질러서 주전자 뚜껑으로 찍어 내면 정말 동그랗게 예쁘게 될텐데...... 하니 “그렇게 해 볼까요. 아버님!” 하면서 잘도 밀며 해낸다. 만들어 놓은 만두가 동그랗고 참 예뻤다. 크지 않고 끓여 놓으면 한입에 쏙 들어갈 것 같다.
두 시간여 동안 만든 만두에 이어 전 부침이 이어졌다. 아들이 계란을 께서 저었다. 나는 얇게 써른 호박을 깬 달걀에 담궜다가 밀가루에 무쳐 호박전을 부쳤다. 오랫만에 하는 내 모습이다. 지난 해 까지만 해도 형제들과 조카들이 맏이인 내집으로 모이면 하지 않아도 되었다. 손이 많다보니 금세금세 했기에 말이다. 아들내외와 나와 아내가 함께하니 조촐하기는 하다. 전혀 다른 설날을 준비하는 모습이지만 오순도순 잔재미와 운치도 있다. 동태전과 버섯전을 해 놓고 보니 세가지나 됐다. 하기여 어느 가정이든 이 정도는 할테니까. 크지 않은 소쿠리에 종류별로 부치면서 둥그렇게 놓인 세가지 전들에 모습이 먹음직 스럽다. 어릴 적 시골에서 명절이면 솥뚜껑에다 부친 전이 생각났다. 하얀 모두부를 예쁘게 잘라 두부를 오리고 굵은 소금을 뿌리면서 부친 두부전이 생각났다. 그때 그맛은 참 구수했는데......
순간순간마다 생각나며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아우들과 조카들 생각이 났다. 형제들 가정에 지금 모습을 그려보았다. 송우리에 사는 바로 아래 동생가족들과 군대에 간 남자 조카. 지난 11월에 잘 다니던 직장을 퇴직한 막내 동생들과 셋 이나 되는 여자 조카들. 의정부에서 포천 다니는 시내버스를 운전하다가 열흘 전부터 인천공항 리무진으로 직장을 옮긴 둘째 동생과 조카들 생각도 났다. 제수씨가 먼 곳에 있기에 함께 할 수 없고 제대로 설을 쉐지도 못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항상 우리 집에서 형제들 조카들과 함께 설날 명절을 보내고 함께 성묘하며 많이 만든 음식도 싸주며 했던 지난 명절들에 모습이 그려졌다. 그래야 일년에 설날과 추석 그리고 대사가 아니면 별로 만나지 못하는 형제들의 생각이 내 머리에서 오늘도 떠나질 않는다. 간간히 주고 받는 전화통화는 있지만 그져 그 때문이다. 비록 아들 집에서 명절을 보내지만 어딘가 모를 빈 공간으로 인해 약간에 허전함도 없지는 않다. 네 시간 여 동안에 설날준비로 인한 설날 음식 만들기는 끝났다.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그려졌던 모습 하나하나를 아내와 아들 며느리에게 말하거나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점점 멀어져 가는 옛 모습과 풍경. 형제나 친척들에 서로의 사랑이 거친 세파속에 묻혀 자주 만나지 못함으로 인해 이웃간에 사랑만도 못해져 가는 모습. 편한것들에만 젖어 있는 나와 우리들에 모습 하나하나가 어쩌면 스스로를 외로움에 갇히게 하는 쓸쓸함도 없지는 않다. 올 설날은 이렇게 보냈지만 내년 설날. 아니다! 올 추석땐 아우내 집에서라도 모두 모여 함께 명절을 보내자는 작은 다짐을 해 본다. |
|
첫댓글 새해 첫을 보내니
설날이 열흘 남짓 다가오고 있습니다.
휴일 저녁시간인데 아직도 차디찬 기운이 남아 있네요.
내일 아침도 단단히 무장하고 출근하여야겠습니다. 맹호
구정연휴도 얼마남지않았네요 어릴적에는 명절이그리웠지만 지금은 명절이돌아와도 마음만무겁네요
인사치레 안할수도없고요 그렇다고 나혼자사는것이아니라서 명절에는부담이가는것같네요
조용남씨에 노래잘듣고갑니다
그렇죠. 결국 도ㄴ 의 문제이니까요.거웠는데,
그때 그 시절이
개인주의, 물질만능만이 제일이나 보니,
함께하는 감정과 사라져만 가는 좋은 풍습. 누가 멈출 수 없나요
"모란동백"을 지은 이제훈 시인도
어렵게 살아가며,
그 가난을 하소연 했던 감정이 시 속에 있습니다.
제가 매우 좋아하는 가요 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