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대에게 대를 이을 구원자가 끊어지지 않게 해 주신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기려지기를 바랍니다." (14ㄴ,ㄷ) 베틀레헴 아낙네들은 룻에게 아들을 낳게 하신 분이 바로 주 하느님이심을 알고 찬미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에 해당하는 '빠루크 예흐와'(baruk yehwa; praise be to the LORD)에서 '빠루크'(baruk)는 '축복하다'는 뜻을 지닌 동사 '빠라크'(barak)의 수동태 분사로서 '축복을 받는', '찬양을 받는'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것은 '주님께서 찬미를 받으신다'는 뜻이다. 즉 베틀레헴 아낙네들은 나오미에게만 주님을 찬미하라고 명령하지 않고, 나오미와 더불어 주님을 찬송한 것이다. 룻이 아들을 낳은 사실이 그들에게도 커다란 기쁨이 되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않게'로 번역된 '히쉬비트'(hishybith; has left without)의 원형 '샤바트'(shabath) 동사가 전치사 '민'(min)을 수반하지 않고 사역 능동형 완료로 사용되어 '끝나게 하다', '그치게 하다'는 뜻이 된다. 이 동사 자체가 부정적 의미를 나타내기 때문에 앞의 부정어 '로'(lo)는 이 문장이 이중으로 부정된 상태임을 드러내어 강한 긍정의 표현이 된다. 즉 아낙네들은 후손이 없어 영원히 그 가문의 이름이 없어질 위기에 처했으나 주님으로 말미암아 대를 이을 자가 생겨 기뻐하고 있는 나오미에게 부정을 통한 강한 긍정으로 축하했던 것이다. 한편 대를 이을 자가 구체적으로 보아즈인지 아니면 룻이 낳은 아들인지에 관해 의견이 많지만, 룻기 4장 14절 후반절과 15절의 내용이 룻이 낳은 아들에 관한 것임을 볼 때 후자로 이해된다. 그리고 아낙네들이 나오미에게 한 축복의 말들은 룻기 1장 21절("나 아쉬움 없이 떠나갔는데 주님께서 나를 빈손으로 돌아오게 하셨답니다. 그런데 어찌 그대들은 나를 나오미라 부르나요? 주님께서 나를 거칠게 다루시고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불행을 안겨 주셨답니다.")과 상당히 대조된다. 룻기 1장 21절에서 나오미는 자신의 처지를 거의 절망적으로 표현했지만, 여기서 베틀레헴 아낙네들은 나오미의 그때의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음을 말하고 있다. 한편 '이 아이의 이름'으로 번역된 '셰모'(shemo; his name)는 '그의 이름' 이라는 뜻이며, '기려지기를 바랍니다'로 번역된 '웨익카레'(weiqqare; that may be famous)는 접속사 '와우'(wau)와 '부르다'는 뜻을 가진 '카라'(qara)의 단순 수동형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형이 결합된 형태로 '그리고 그가 불리워질 것이다' 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미완료는 화자의 염원, 기원을 나타내는 권유형이므로 '그리고 그가 불리워지기를 바라노라'가 된다. 그리고 여기에 나타난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계약의 백성 모두를 지칭한다. 룻기 4장 11절의 보아즈에 대한 축복에서는 같은 지역인 '에프라타와 베틀레헴'이 언급되었으나 여기서는 이스라엘을 언급함으로써, 축복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베틀레헴 출신의 이스라엘 임금 다윗과 더 멀게는 온 인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과 '모든 계약의 백성'에게 끼칠 축복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