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러스(Callus, 식물의 굳은살)’
마음에도 캘러스가 있다.
즉, 상처를 품어 마디가 되는 삶 말이다.
나무가 상처를 입었을 때 보이는 반응은 참으로 눈부시다.
겉 자리를 잘려 나간 나무는
그 자리를 억지로 메우거나 단숨에 잘라내기 전으로
돌리려 애쓰지 않는다.
대신 상처 입은 경계면 주변에서
‘캘러스(Callus, 식물의 굳은살)’라 불리는
유상 조직을 묵묵히 밀어 올린다.
말랑말랑하던 세포들은 상처의 외곽에서부터 시작해
중앙을 향해 아주 천천히, 마치 둥그스름한
입술 모양으로 상처를 감싸 안는다.
나무 줄기가 잘린 뒤에 나타난 Callus.
부피 생장을 일으키는 줄기는
원래 가운데 부분이 죽은 세포의 세포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주변으로 부풀어오른 부분이 바로
줄기의 살아있는 세포가 분열하여 만들어진 Callus이다.
이 모습은 인간의 삶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가지가 꺾이고 잘려 나가는 아픔을 겪는다.
사업의 실패, 가까운 이와의 이별,
혹은 쏟아부은 정성에 미치지 못하는
수많은 자책의 순간들이 그렇다.
흔히 상처가 나면 조급한 마음에
그 흔적을 당장 지우려 하거나,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소모적인 원망을 되풀이하곤 한다.
하지만 수목학의
‘CODIT 이론(수목 상처 구획화 이론)’이 보여주듯,
나무는 상처를 과거로 돌려 ‘완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벽을 세워 ‘격리’한다.
고통의 흔적을 무작정 삭제하는 대신,
그 테두리를 따라 자신만의 단단한 방어벽을
새로 길러내는 것이다.
잘려 나간 자리가 둥글떱떱하게 부풀어 오르는 까닭은
고통의 자리를 외면하지 않고 온몸으로 감싸며
견뎌낸 훈장인 셈이다.
인생의 가지치기 역시 마찬가지다.
불필요한 욕심과 지나간 미련을 잘라낸 자리에는
반드시 통증이 따른다.
그러나, 그 통증을 견디며 스스로를 다독일 때
내면에는 비로소 마음의 캘러스가 형성된다.
잘려 나간 자리가 아물어 둥글게 변한 나무의 옹이는
더 이상 약점이 아니다.
오히려 거센 태풍 앞에서도 나무를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마디가 된다.
지금 삶의 한 귀퉁이가 잘려 나가 아파하고 있다면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당신의 마음 가장자리에서도
지금 둥글고 단단한 치유의 조직이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을.
인간은 상처가 없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둥글게 감싸 안으며 자라났기에
비로소 깊어지는 존재다.
(정용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