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 대성전과 성 바오로 대성전 봉헌
사도 베드로의 무덤위에 4세기경에 콘스탄티노황제에 의해 건립되고 교황 실베스트로가 축성한 베드로 대성당은 너무 낡았으므로 16세기 경에 부수어지고 그 장소에 보다 더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교황 우르반 8세는 1626년 11월18일 역사적인 성전 축성을 거행하였습니다.
성 바오로 대성당도 비슷한 경우를 거치면서 4세기경에 교황 시리치오에 의해 오스티엔세 거리에 세워지고 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1823년 대화재로 성전의 대부분이 불타 없어지자 재건립이 4명의 역대 교황들에 의하여 추진 되었습니다.
드디어 비오 9세는 1854년 12월 10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의 무염시태설을 확정하고 선언하기 위하여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추기경, 주교, 신부, 평시도들에 둘러싸여 축성하였습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 (Basilica San Pietro)
3백년에 걸친 그리스도교 박해의 시대가 끝나고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가톨릭이 공인되자,
황제는 이곳 네크로 폴리스(공동 묘지)를 깔아뭉개고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성당을 지었다. 이것이 성 베드로 성전의 시초이다.
그런 후 16세기초 교황 율리우스 2세 때, 남은 성당을 헐어내고 대성당을 새로 짓기 시작했다.
건축 미술가 브라만테가 시작한 이 성당은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 등 당대 일류 예술가들을 거치면서 착공 120년만인 1626년에 완성됐다.
6만 명이 들어설 수 있는 넓은 공간과 화려한 장식의 대성당 내부는 흠잡을 데 없이 균형이 잡혀 있다.
현관으로부터 내부 끝까지의 길이는 230m, 가운데 통로 끝에 있는 창에 그려진,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의 날개 길이는 1.5m 다.
1506년에 교황 율리오 2세의 명을 받은 브라만테가 건축을 시작할 때는 그리스 십자가형의 평면으로 설계했고, 그 뒤 몇 사람을 거쳐 마데르노가 공사를 이어받았을 때 교황 바오로 5세의 뜻에 따라, 앞부분을 길게 한 라틴 십자가형의 평면으로 바꾸었다.
이 성당 위에는 베르니니의 청동 천개(天蓋)가 덮여 있고, 그 위로는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웅장한 돔이 있다.
이 돔의 외부 꼭대기 십자가는 베르니니의 천개 중심을 지나 성 베드로의 무덤과 수직선을 이루도록 하였다.
교황 제대 바로 앞의 오른쪽에는 성 베드로의 동상이 있고, 대성당 맨 끝의 창 밑에는 베드로의 의자가 있다.
산피에트로 대성당 San Pietro Basilica
바티칸에 있는 대성당. 성 베드로 대성당이라고도 한다.
가톨릭의 총본산으로서 유럽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교황청의 산피에트로 대성당 관리 성성(聖省)의 관리 하에 있다.
그 역사는 깊어서 기원으로 말하면 성(聖)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4세기의 바실리카식 성당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16세기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당시의 대표적 건축가들에 의해 전성기(全盛期)를 맞은 르네상스의 건축이념에 바탕을 두고 재건되었다.
15세기에 한 번 시도되었다가 중단되었던 구당(舊堂)의 개수계획을 재개하기 위해 1506년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저명한 건축가 D.브라만테에게 명하여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하게 하였다.
브라만테는 그리스 십자식 플랜의 중심에 대원개(大圓蓋)를 얹고, 네 구석에 한 개씩의 작은 원개를 얹는 구상을 세운 듯, 대원개를 떠받칠 4개의 큰 지주와 그것들을 잇는 4쌍의 아치를 완성하였다.
그가 죽은 뒤 라파엘로가 여기에 긴 회당부(會堂部)를 추가한 라틴 십자식 플랜을 계획하였으나 그도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뜨고 공사는 바르다살레 베르레의 손을 거쳐 A.P.da 상갈로에게로 넘어갔다.
그도 또한 궁륭(穹)의 일부를 착수하였다가 1546년에 세상을 떴으나, 그동안 역대의 건축담당자들이 이 조영(造營)사업에 기울인 정열은 건물의 계획을 놀랍도록 변경시켰다.
1546년 교황 바오로 3세는 마침내 71세의 미켈란젤로에게 공사의 전권을 맡겼다.
그는 그리스 십자식 플랜을 채용함으로써 브라만테의 안(案)으로 돌아가는 듯하였으나, 브라만테의 그것과는 달리 네 구석의 작은 원개를 없애고 건물 전체의 긴밀한 조형성과 다이내믹한 공간을 대원개를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통일한다는 탁월한 구상을 생각해내었다.
일체의 보수를 사양하고 오직 신에 대한 사랑과 사도 베드로에 대한 존경에서 이 조영사업에 몸 바친 그는
1564년 그의 생애를 마칠 때까지 대원개의 기부(基部)에 해당하는 탕부르의 공사에 심혈을 기울였다.
직경 42.4m, 바닥에서 탑 십자가까지의 높이가 약 133m에 달하는 이 원개 공사는 그가 남긴 목제(木製)의 모형과 함께 1588년 자코모 델라 볼타에게 인계되었고, 다시 도메니코 폰타나의 손으로 넘어가 1590년 마침내 완성되었다.
건물 전체의 역동감을 그 아름답고 힘찬 곡선에 모았다가 허공에 해방시키는 듯한 이 훌륭한 원개는 그러나, 17세기 초기 신랑(身廊)의 전면(前面) 연장과 정면 가득히 펼친 칸막이와 같은 파치아타(서쪽 정면)의 증축으로 인해 그 효과가 크게 손상되었다.
헌당식(獻堂式)은 1622년에 거행되었고, 마침내 명장 G.L.베르니니가 나타나, 1655년에서 1667년에 걸쳐 원주 회랑으로 에워싸인 훌륭한 정면 광장을 완성시켰다.
투시효과를 교묘히 이용한 이 훌륭한 광장은 가톨릭의 총본산에 어울리는 규모와 성격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C.마데르나에 의해 정면구성으로 손상된 대성당의 모습을 살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두산세계대백과사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