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의 시간
『아합의 번영이 부러워 갈등된다면』
열왕기하 11:2-3. 570장
2 요람 왕의 딸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빼내어 그와 그의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여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게 한지라
3 요아스가 그와 함께 여호와의 성전에 육 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
열왕기하 10장과 11장은 별개의 사건이 아닙니다.
10장이 아합 가문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심판을 다룬다면, 11장은 그 심판의 연장선이자 아합과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즉, 11장은 10장에 종속된 심판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북이스라엘 역사에서 아합의 아버지 오므리가 세운 '오므리 왕조'는 매우 독특합니다.
'오므리'라는 이름은 히브리 식이 아닌 가나안이나 아모리 식 이름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그가 이방 용병 출신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그는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아들 아합을 정략결혼 시킴으로써 외교적 안정과 해상 무역을 통한 경제적 풍요를 일구어냈습니다. 또한 세멜에게서 산 산에 '사마리아'라는 수도를 건설하며 정치적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오므리 왕조는 번영과 성공의 상징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내면은 참혹했습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통치가 아닌 바알과 아세라의 나라로 변질시켰기 때문입니다. 경제적 풍요라는 허울 아래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정체성인 '여호와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나봇과 같은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했고, 정의가 사라진 암흑천지가 되었습니다. 진리를 잃은 풍요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비극은 이 가짜 풍요를 부러워한 이들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바로 남 유다입니다.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북이스라엘의 외적인 번영을 닮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아들 여호람을 아합의 딸 아달랴와 결혼시키는 치명적인 선택을 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당신은 아합의 형통을 부러워하며 그 길을 닮고 싶어 한 적은 없습니까? 성공할 수만 있다면 아합의 방식이라도 따르겠다는 유혹 앞에 서 있지는 않습니까?"
아합을 닮고자 했던 남유다의 왕실은 결국 아달랴에 의해 산산조각이 납니다.
아달랴는 자신의 아들 아하시야가 죽자 왕위 계승자들을 모조리 숙청하고 스스로 왕이 되어 6년간 유다를 공포로 다스립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불의로 일군 아합의 번영을 부러워했던 남유다는, 결국 아합 가문이 맞이한 비참한 최후까지 그대로 닮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남문의 성도 여러분!
세상의 성공과 번영이 부러우십니까?
그 끝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통해 영원한 언약을 주셨습니다. 여호사밧이 눈앞의 풍요가 아닌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했다면, 그의 가문이 이런 참극을 겪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은 국가가 지정한 ‘어린이 날’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세상의 잘못된 성공과 번영 앞에 흔들리지 않도록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아합과 이세벨과 같은 부모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또 여호사밧과 같이 하나님의 언약과 아합의 번영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언약을 붙드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 우리 자녀들에게도 여호와의 언약을 유산으로 물려주는 복된 부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삶의 적용 :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하나님의 '언약' 중, 지금 나에게 더 소중한 가치는 무엇입니까?
마무리 기도
아합의 거짓된 성공을 부러워하지 않게 하소서. 눈에 보이는 성공과 번영보다, 변치 않는 하나님의 언약을 더욱 신뢰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