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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超人, superman]
본문
(독)übermensch.
인류의 존재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뛰어난 인간. |
'초인'이란 말은 괴테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사용했지만, 프리드리히 니체가 특별히 그의 저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hustra〉(1883~85)에서 의미심장하게 사용한 용어이다. 이 뛰어난 인간은 오랜 진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초인은 우수한 잠재력을 지닌 어떤 사람이 완전히 자기 자신을 지배하고 인습적인 그리스도교의 '대중도덕'을 말소하고 자기의 고유한 가치를 창조할 때 나타난다. 이 가치는 내세가 아닌 현세의 삶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니체는 결코 '독일 나치스'라는 잔인한 초인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니체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영혼을 가진 카이사르'였기 때문이다. 조지 버나드 쇼는 '초인'이라는 용어를 자신의 희곡 〈인간과 초인 Man and Superman〉(1903)을 통해 대중 속에 널리 퍼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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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100.naver.com/100.nhn?docid=147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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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일반적으로 인간의 불완전성이나 제한을 극복한 이상적 인간(理想的人間)을 일컫는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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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이것을 강조하여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는 중심적인 어휘로 쓴 사람은 F.W.니체이다. 그는 인간은 중간자(中間者)로서의 존재이고, 인간은 극복되어야 하며, 그 초극적(超克的)인 존재, 절대자로서의 존재가 초인이고, 그 정반대의 존재가 말인(末人:der letzte Mensch)이라고 하여 대립시켰다.
초인이라는 것은 인간이 자기를 초극해 나아가야 할 목표이고, 영겁(永劫)으로 회귀(回歸)하는 운명을 참고, 신을 대신하는 모든 가치의 창조자로서 풍부하고 강력한 생(生)을 실현한 자이다.
이에 대하여 말인은 자기 초극의 의지(意志)도 힘도 창조적인 생명력도 잃어버려 평균화하고, 더구나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쾌락에만 빠지는 하찮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초인의 사상은 그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중에서 말한 것으로, 초인의 구체상(具體像)은 차라투스트라이고 그리스도교에서의 신(神)에 대신하는 인류의 지배자이며, 민중은 그의 복종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니체의 초인사상은 그 후 나치스에 의하여 곡해(曲解)된 적도 있었지만, 현대에는 실존철학(實存哲學)의 입장 등에서 새로운 조명(照明)을 받고 있다. | | |
이를 '고대 철학사'에서 시작하면 이해가 선명한데, 서구철학을 가능하게 하는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중세교단'===>니체의 적인 독일 관념론자(자유민주주의자)가 아닌, 조로아스터교(자라투스트라) 사상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대공황이 불어닥치고 서구의 고유가치에 대한 자신감이 극단적으로 없어져서, [서구의 몰락]같은 책이 나올 당시에, 나치즘이 니체 사상을 이용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는 마르크스주의자이긴 거부하는 마르크스와 마르크스 레닌주의관계 정도의 더도 덜도 아니라고 봅니다.
니체 전집 제목을 보면 이러한 목록이 나옵니다.
<안티크리스트>
<선악을 넘어서>
<우상의 황혼>
<도덕의 계보>.....
즉, 선과 악을 판정하는 것은 기독교적 도덕관습일 뿐이며, 미래에는 '선'과 '악'을 초월하여 영하 20도
에서도 창문열고 중년에도 혹한기 훈련하는 학자 니체같은 사람만이 권력을 장악한다는 이야기입니다.
'大人'이란 말이 사실은 '통치할만한 자격있는 자'로서 사극에서 겸양어로서 '소인은.....'의 반대말이나, 일상어에는 '어른'의 단순 동의어로 쓰입니다. 조갑제기자님께서 '초인'에 대한 생각은 이러한 차원과 연장선으로 사료됩니다. 정치 집권자의 일상인들의 판단 잣대로는 형용할 수 없는 '지도자'만 가능한 남다른 그릇이 보인다고 할 때, '니체'의 초인 범주를 적용하는 것은 과연 온당한 것인가요?
초인은 기존의 잣대 모든 것을 깨부시며, 새롭게 뚝딱 만드는 것을 전제합니다. 니체 스스로 하나님의 천지창조 같은 종교적 모티프에 도전하려 했지요. 니체의 '잠언'적 문학패턴은 그러한 패턴에서 존재하빈다. 결국 '초인'이 정치지도자에게 주어지는 순간, 기존의 모든 선 악 구분 도덕을 무찌르며 자기 마음대로 해버리는 사실상의 '독재옹호'가 되어 버립니다.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마르크스 사상 자체가 다르다 해도 연결 이음매가 넉넉히 보이듯이, 니체 사상을 골방학자가 아닌 정치 지도자에 헌정하면 '자동'으로 '反민주'옹호가 됩니다.
박정희 대통령 때는 '국민도 어렸고'(공인된 '개발도상국'developing country), 정말로 많은 가치 창출을 진심으로 했습니다.
'어린 민주주의'란 말은 온당치 않습니다. 세계에 아직도 한국이 '개발도상국 국민정서'라 하면 '큰애기'라 할 것입니다.
정말로, 분권화되며 시민의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사수의 노력이 되려고 한다면, 소통적 권력으로서의 인식 틀이 짜여져야 합니다. 국민들에 단어가 아닌 '논리 흐름'을 주입하여 그것이 '법치주의'바탕으로서의 순환 바탕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전권'을 움켜쥐고 배움이 짧았던 국민들에 '안정'을 보여주려 애썼던 모습은 높이 평가해도, 더 이상 그 때로 되돌아간다는 배경은 옳지 못하다고 봅니다.
북한 인권 운동이 필요하다면, 세계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론자 기독교도들의 '도덕가치'의 확장 속에서만 가능합니다. 정말로, 정치 지도자가 제 마음대로 추진하여 '선' '악'가치를 제 마음대로 '시대착오적'으로 부여하는 좌파정권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가능했으나 오늘날에 가능하지 않은 것에 대한 명쾌한 부분은 알아야 합니다.
대한민국 국가발전에 '독재적 요소'를 보인 박대통령 과,
대한민국 국가해체의 통일론에 '독재적 요소'를 보인 좌파 정부의 요소의 비교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정말로 '초인적 요소'로서 선악을 뚝딱 만들어내는 지도자 차원에만 열광하게 되면, 예맨식 위험과 독일식 불만을 야기할 6.15 옹호자의 명분을 주게 됩니다. 대한민국 국가발전 방향이며 개발도상국 시절에 가능했던 바에, 역사성(현재성 아닌)차원의 긍정이 국민정서임을 인정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인'과 '소인'의 유교적 의미 아닌 '어른'과 '어린이'란 의미를 좋아하는 분들에, [논어] [맹자]에서의 각 개념 사용례를 말하는 것보다는, 아주 기본적이며 분명히 의미있다고 여겨집니다.
'초인'개념이 일반인 개념에 쓰여지면 뉴레프트 옹호자가 됩니다.
선악 개념을 소시민이 뚝딱 만들어내면 히로뽕과 섹스 남발이 얼마든지 가능해 집니다. 뉴레프트는 기본이 '니체-맑스주의'입니다.
지식인의 용기 따지기 앞서서서, 조갑제기자가 생산하는 논리가 얼마나 수미일관하게 논리가 나아가지 못하는 바에서, 어떠한 지식인도 순수하게 박수칠 수 없다는 사실도 이해해줬으면 합니다. 초점이 다른 맥락으로서 서로 충돌되는 논지의 글을 쓰고서도, 그것에 무조건 100% 박수치면 무조건 차원의 박수 부대입니다. 좌익 기반의 안티를 위한 안티가 아니라, 박수를 쳐주고 싶어도 곳곳에서 이리 저리 충돌되고 모순적이 되는 바가 많다는 바의 아쉬움입니다.
성직자의 성경연구의 권리와 종교적 포교의 자유
기자의 사실취재의 사실전달의 의무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학문적(철학적) 개념의 정확성 의무라고 봅니다.
이만달러를 향하는 자유무역 중진국 대한민국을 장악한 좌파정부는, 보수여론층이 구세대이며 시간감각 없음을 노려서, 어린민주주의(개발도상국) 지도자의 장점과 한계가 분명한 박정희 모델을 사용한다는 데, 참 사회주의적 분배 정치를 한다면서 예쁘게 포장하려는 발상인 것입니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 그립다고 호랑이에 담배 물리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