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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전
도심의 아침, 말라버린 가로수가 미처 털어내지 못한 잎새를
바람이 부러뜨리고 지나가는 것은 겨울의 문이 열렸다는 것이다.
산골짜기의 짐승들에게 겨울이란 동면의 안락함이 될 수도 있고
혹독한 생존과의 전쟁이 될 수도 있지만 도심의 사람들에게
겨울은 몸에 걸치는 옷을 달리할 뿐 똑같은 일상 이었다.
똑같은 색깔의 고층 건물, 대로를 가득매운 출근길 대란,
회색 표정을 지은 사람들의 투박한 발걸음, 가까이에 살지만
서로 다른 방향으로 악착같이 떠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곳으로 오는 사람들, 태양은 떠올랐지만 고층 건물에 가려져
아직은 밤보다 어두운 도심의 아침이었다. 그러나 빛은
언제든 건물의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쓰러진 빨간 십자가가 걸린 하얀 창틀의 창이 넓은 가계 앞에는
유럽의 드넓은 목장에서 볼 수 있을 법한 하얀색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그 가계에는 테라스가 넓게 형성되어 있었는데 유리창 너머에는
오색 빛깔의 꽃들이 햇빛을 그대로 흡수하고 있었다.
베이지 색의 롱 코트를 입은 소연이 백합처럼 하얀 얼굴에
장미꽃처럼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울타리가 있다고는 하지만 울타리와 가계입구와의 거리는
1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소연은 하얀색 목재 계단을 올라
입구에 걸린 문패를 OPEN으로 뒤집고 열쇠로
문의 자물쇠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문은 다시 열렸고
고개를 내민 소연은 문패를 다시 CLOSE로 뒤집어 놓았다.
곧이어 소연 꽃집에 불이 켜졌다.
같은 시각 영등포전철역 출구로 나온 주영은 숨이 가빴던지
멈춰 서서 연신 심호흡을 했다. 그런데 좀처럼
주영의 심장은 평정을 찾을 줄 몰랐다. 주영은 오늘 아침
소연 꽃집에서 소연과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그는 사랑에 빠진 이들이 그렇듯 눈이 촉촉하게 빛났다.
소연꽃집으로 방향을 잡은 주영은 걸음이 빨랐다 느렸다를 반복했다.
우측대로 너머로 소연 꽃집에 불이 들어온 것이 보였고
소연 꽃집 앞의 횡단보도에 파란 불이 들어왔다.
주영은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뛰었지만 이미 횡단보도는 빨간 불이 들어왔다.
소연 꽃집 앞 횡단보도를 건넌 두 사람이 소연꽃집의 울타리를 넘었다.
그들은 건강한 체구의 두 남자였고 스포츠 열혈 팬처럼 스포츠 점퍼에
구단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소연꽃집 입구의 문패는 여전히 CLOSE이었지만
불이 켜졌고 문이 열렸기 때문에 그들은 문안으로 들어갔다.
도시에 소음은 정말 심하다. 자동차 엔진 소리가
건물에 부딪쳐 확산되어 사라지지 못하고 항상 거리 위를 울리고 있다.
그 소음은 도시의 바탕이다. 그 시끄러운 자동차 소음 속에서도
우리는 더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도시의 어떤 소리도 그 바탕의 소음보다 크지 않다.
때로는 바탕의 소음보다 더 큰 소리가 도시를 울릴 때가 있는데
그날은 행사 따위가 있는 뭔가 특별한 날이었거나
대형 사고가 있었던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진 날이었을 것이다.
“탕탕, 탕탕 탕.”
정확히 다섯 발의 총소리가 울렸다.
미세하게 유리 깨지는 소리와 여성의 비명소리와 함께 들렸다.
소연꽃집에서 주영에게로 말이다.
일순간 거리는 아수라장이 됐다. 소연꽃집 문을 박차고 나온
머리에 복면을 쓴 2인조가 닥치는 대로 총격을 가했다.
2인조는 행인을 향해 총을 쐈고 당황한 행인은 서로 부딪치고 넘어지고
넘어진 사람을 밟고 도망쳤다. 2인조는 빨간 불이 켜진 횡단보도로 들어섰고
자나가는 차를 향해 총을 쐈다. 운전자는 너나 할 것 없이
본능적으로 핸들을 돌렸고 수십여 대의 차들이 부딪쳤다.
경적소리와 브레이크소리가 혼란을 더 크게 야기 시켰다.
차에서 내려 도망치려하는 사람을 뒤차가 와서 받았다.
차에 치인 사람은 힘없이 주저앉았다.
2인조는 총질을 하며 횡단보도를 건넜고
2인조 중 한명이 횡단보도 앞에 서있는 남주영과 눈을 마주쳤다.
남주영과 그 남자는 고개를 돌려가며 계속해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순간이긴 하지만 긴박한 총격전 속에서도 그들은 서로를 또렷이 각인 시키고 있었다.
2인조는 서둘러 횡단보도 옆에 세워둔 오토바이에 올라탔고
혼란의 인파 속으로 손살 같이 사라졌다.
주영이 본 그 남자의 눈은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그냥 보통 사람의 눈이었다. 그들이 총질을 했다지만
주영이 보았던 그들은 닥치는 대로 총격을 가한 것이라 생각 되지 않았다.
오히려 2인조는 정확한 조준을 하고 총을 쐈다.
행인에게 조준을 하는 척하면서 하늘을 향해 총을 쐈고
운전자를 조준해 총을 쏘는 척하면서 타이어나 트렁크를 향해 총을 쐈다.
물론 그 여파로 많은 사람들이 다친 것은 사실이지만
누구도 총에 맞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의 눈이 그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했다.
최소연에게 어떤 불상사도 없을 거라 믿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주영은 횡단보도 앞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대로는 견인차와 구급차, 경찰차가 바삐 움직였고
소연꽃집 앞에는 경찰들과 기자들이 바리케이드를 경계로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다.
잠시 후 카메라 플래시가 요란하게 터졌고
소연꽃집 입구에서 하얀 천에 가려진 들것이 실려 나왔다.
“죽었데. 꽃집 주인.”
신호등을 건넌 한 여자가 일행에게 한 말이었다.
“총에 맞은 사람은 꽃집 주인 한 사람이었데.”
주영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아침까지만 해도 정말 행복했는데
지금은 왜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해야 하는 지 원망스럽기만 했다.
주영의 주머니에는 전화기가 진동으로 울리고 있었다.
30분 전부터 줄기차게 울리고 있었던 것이다. 주영은 전화를 받았다.
“주영씨? 주영씨인가요? 무사한가요?”
“네. 그런데 제석씨, 소연씨가 죽었어요.”
그제야 주영은 큰 목소리로 울고 있었다.
“유감이에요. 그런데 주영씨, 제 말 잘 들으세요.”
“소연씨가 죽었다니까요.”
“지금 당장 서울을 떠나세요.”
“소연씨가 죽었다니까요.”
“지금 당장 서울을 떠라나라고, 멍청아. 네가 위험해.”
“나 지금 죽고 싶은 심정이에요.”
“잘 들어. 두 시간 사이 서울 전역의 열두 군데에서 총격 사건이 있었어.
피해자들은 모두 wishinggod.com의 신도들이야.
하지만 언론에서는 피해자들과 wishinggod.com과의 관계를
전혀 배제하고 보도하고 있어.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모르겠어?
이건 전쟁이야. 전쟁. 그들이 너를 알고 있어.
너는 이 전쟁의 일급 제거 대상이라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진정하고, 주영씨. 거기가 어디인지나 말하세요.”
“꽃집 앞이요.”
“제가 차를 보넬 테니 어디 안 보이는 곳에 숨어 있어요. 금방 가서 연락 할 테니까요.”
전화가 끊어지자 주영의 손에서 휴대폰이 미끄러졌다.
보도에 떨어진 휴대폰은 본체와 배터리가 분리되어 튀어 올랐다.
재석은 주영에게 위급함을 알리고 싶었지만 주영은 그것을 인지할 정도의 상태도 되지 못했다.
주영에게 소연은 특별한 여자였다.
주영은 오래전 한 여자를 사랑했고 그녀와 사귀게 되었다.
그녀는 정말이지 예뻤다.
그들은 1년을 사귀다 이별을 했다.
그러나 주영은 오랜 시간 그녀를 잊지 못해 변변한 연애도 해보지 못했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 주영은 그녀를 다시 볼 기회를 맞이했다.
그는 그녀를 만나게 된다는 사실에 얼마나 가슴 떨렸는지 모른다.
그리고 주영은 그녀를 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녀를 본 후 주영의 가슴은 평소와 같이 혈액을 몸에 공급하는 기계가 되어 있었다.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조금정도는 떨려도 될 것 같은데.
그녀는 너무 변해있었다. 가는 그녀의 몸은 살이 올라 있었고
순수한 그녀의 외모는 밉상이 되어있었다.
늙었던 것이다. 그녀를 만난 이후로 주영은 가슴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그 후 주영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발기부전 자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최소연을 만나고부터 그의 가슴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최소연은 젊었던 시절의 그녀와 너무 닮아 있었던 것이다.
주영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회귀 하고 있었다.
그러데 오늘 최소연이 죽었다.
주영의 앞에 파란색 재규어가 멈췄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탄탄한 몸의 중년의 남자였다.
그들은 눈을 마주쳤고 의기소침해 있는 주영을 본 중년의 남자는
대물을 꺼내 보이는 것처럼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남자는 주영을 무시하고 뒤편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재규어는 재석이 보낸 차가 아니었다. 도피용 차량으로 쓰기에는 재규어는 너무 화려했다.
재규어는 시동이 켜져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뚜껑을 열기 시작했다.
창문이 내려가고 창틀이 접어지고 뚜껑이 솟았고 반으로 접어지며,
앞머리가 위로 올라간 트렁크 밑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 움직임은 일사불란하지는 않았지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밀했다.
뚜껑을 연 재규어에 미등이 들어왔고 방향등이 깜빡였다.
조수석의 문이 열렸다 닫혔다를 두 번 반복했다.
그런데 문의 움직임에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다. 뚜껑이 열릴 때처럼
정밀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사람이 열고 닫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사람은 없었다.
곧이어 재규어의 운전석 문이 열렸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타.”
주영은 웃었다.
“차가 말을 하네.”
보통사람이라면 깜짝 놀랐을만한 상황이었지만
지독한 우울함에 잠긴 주영에게는 그저 우습게 느껴졌던 것이다.
“어서 타라니까?”
“누구, 나 말하는 거야?”
“멍청이, 너밖에 없잖아.”
주영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차에게 말했다.
“너는 내 차가 아니잖아.”
“무슨 상관이야. 내가 타라는데.”
주영은 너무 오래 한자리에 서있었던 터라 다리가 아팠다.
주영은 다시한번 주위를 둘러보더니 기우뚱한 걸음으로 차의 운전석 앞으로 갔다.
그러자 문짝이 주영을 밀어 차에 실었다.
조금은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안락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자 다시 소연이 죽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 죽고 싶어.”
“그래? 그럼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핸들은 절대 돌리면 안 돼.
이 차는 최고 속력에 도달하는데 10초면 충분해.
만약 핸들을 돌리거나 액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뗀다면
너는 살고 싶은 거야. 그럼 열심히 살아.”
견인 작업이 다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주영 앞은 대로는 한산했다.
재규어가 최고 속력까지 도달하는데 장애물은 없었다.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주영은 핸들에 손을 얹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재규어는 부드럽게 출발을 했고 별다른 소음도 없이 고속으로 속도를 올렸다.
주영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저 핸들을 잡고 있었을 뿐이었다.
한산했던 도로는 영등포로터리 앞에서 다시 정체를 이루고 있었다.
주영이 핸들을 돌리거나 액셀을 놓지 않는 이상 주영을 실은 재규어는
그저 부딪치는 일만 남은 것이다. 240Km의 속력으로 정면충돌하는 것이다.
주영은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그런데 재규어는 스스로 차선을 바꾸고 있었다.
스스로 차선을 바꾸어 차의 행렬과 차의 행렬 사이를 뚫고 지나가고 있었다.
수많은 사이드밀러가 공중으로 튀어 올랐고 재규어는 로터리로 진입했다.
재규어는 240Km의 속력으로 매끄럽게 로터리를 코너 워크하고 있었다.
대신 재규어의 바깥 차로의 차들이 팽이를 돌며 튕겨나갔다.
주영도 관성의 법칙에 의해 튕겨 나가야 했지만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다만 그의 표정에서 놀라움을 표시했다.
재규어는 로터리를 돌아 영등포시장 방향으로 빠져나왔다.
그 앞의 도로는 차가 끼어들 틈도 없이 막히고 있었다.
재규어의 속력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그리고 떠올랐다.
재규어는 차들의 지붕 위를 달리고 있었다. 아니, 뛰고 있다고 해야 할까.
시민들은 놀라움 반, 흥미로움 반으로 재규어를 향해 고가를 돌렸다.
약삭빠른 시민은 휴대폰으로 촬영을 시도해보지만
240Km의 속력은 생각보다 빠르다. 그래도 아쉬워 할 것은 없을 것이다.
도로에는 수많은 카메라들이 설치 되어있고
집에 들어가서 텔레비전을 켜면 속보로 이 영상이 끈임 없이 나오게 될 테니 말이다.
재규어는 곧 교차로를 만났고 교차로에는
컨테이너를 적재한 트레일러가 두 대가 나란히 가로지르고 있었다.
이번에도 재규어는 뛰었다.
아니, 날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재규어는 두 대의 트레일러를 넘어 50미터는 더 점프 했으니 말이다.
차가 도로에 내려앉자 주영은 액셀에서 발을 땠고 핸들을 놓았다.
그리고 다시 울었다.
“당신, 이렇게 전능하면서 왜 소연씨를 죽게 놔뒀나요.
당신을 믿고 당신을 사랑하는 신도인데....... 왜 소연씨를 죽였나요?”
주영이 소리쳤다. 주영은 차가 말을 하고 차가 운전한 것이 아니라
신이라는 존재가 차를 조종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누가 들으면 신이 그 여자를 죽였는지 알겠네.
그리고 나는 너희들의 신이 아니야.”
거짓말 하는 거겠지. 주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신이 아니고서야 누가 이런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재규어는 여전히 달리고 있었고 주영은 뒤를 돌아보았다.
재규어가 지난 자리는 지진이 지나간 자리처럼 엉망진창이었다.
“보세요. 당신이 신이잖아요.”
“아니라고, 멍청아.”
그제야 주영은 정체불명의 목소리의 음색이 여자의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신이 뭔데?”
“.......”
“신이 뭔데 나보고 신이라고 말하는 거야? 말해봐.”
주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시내 한 복판을 자동차로 240Km로 몰수 있는 초 현상에 가까운 짓을
신이 아니고서야 누가 할 수 있다는 것인가.
주영이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인간의 창조자, 전능하고 우리를 사랑하는 자.”
“내가 인간보다 신체적으로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전능하지는 않아.
그리고 인간을 증오해. 또 창조자의 개념이 신이라면
나의 신은 너희 인간들이야.”
“대체 당신의 정체가 뭐죠?”
“지금 이 상황에서 그게 궁금해? 지금 네가 궁금해야 할 것은
나의 정체가 뭔가가 아니라 내가 너를 왜 데려가느냐 이지.”
“왜 나를 데려가는데요? 어디로?”
“너의 여자 친구가 살해당했는데 복수하고 싶지 않아?”
솔직히 주영에게는 복수에는 관심이 없었다.
최소연의 죽음보다는 이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더 큰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재규어는 영등포 시장 상가의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재규어의 속도는 한참 줄어있는 상태였다.
주차장을 한 바퀴 돌고나서 여자의 음성이 말했다.
한쪽에는 2인조가 버리고 간 오토바이가 쓰러져있었다.
“여기서 둘이 헤어졌어. 그런데 총을 쏜 자는 승합차를 타고 나갔군.”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죠?”
“내 눈에는 보이거든. 온도의 잔상이.”
“온도?”
“너희들은 색깔을 보지만 나는 온도를 봐.”
“두 시간 전의 온도를 볼 수 있다고요?”
“특화 되어 있는 거지. 나는 아주 추운 곳에서 살았거든. 온기를 찾아가며.”
그 음성의 말투는 친근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약간은 우호적이었다.
주영은 많은 것이 궁금했지만 얘기해준다고 해도 이해 할 것 같지가 않아 그만 두었다.
그 음성이 말했다.
“내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해?”
주영은 깜짝 놀랐다. 절대적으로 강하지만 그 음성의 질문에 인간적인 것을 느꼈고
그 소통의 대상이 자신이 되고 있음에 놀랐다.
그리고 그 여성의 음성은 소녀의 장난 끼도 묻어 있었다.
“네? 네.”
“나는 화성에서 왔어.”
“화성?”
“나는 화성인이야.”
재규어가 상가에서 나왔을 때 많은 경찰차와 무장 경찰들이 주위에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재규어를 제지하기보다는 차량 통제에 힘을 쓰는 듯 했다.
재규어를 포위한다 치더라도 날아다니는 자동차에게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군대라도 파견한다면 모르겠지만 도심한복판에 미사일을 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다만 헬기 두 대가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고 경찰이 경고 방송을 했다.
뚜껑 없는 재규어에 타고 있는 남주영에게.
주영은 실시간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재규어 사는 기쁨의 비명을 지를 것이다.
신경 쓸 것 없이 재규어는 고속으로 달렸다.
“화성인이 존재 했군요.”
“공식적으로는 내가 최초의 화성인이야.”
“최초의 화성인? 부모님은?”
“20년 전 소련은 사형수 여섯 명을 우주선에 태워 화성에 보냈어.
소련의 목적은 화성을 자국의 영토로 종속시키기 위해서였어.
국제법상 그곳에 자국의 사람이 살고 있고 자연적으로 나무가 자라고 있다면
그곳을 자국의 영토로 종속 시킬 수 있어.
소련 국적의 사형수 여섯 명이 화성에 살고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조건을 충족시킨 것이고
사형수들의 임무는 두 번째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게 만드는 거야.
화성을 나무가 자랄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드는 것. 물론 조건은 사면이었지.
지구의 북극의 빙하 아래 커다란 담수호수가 있듯
러시아의 과학자들은 화성의 북극에도 담수호가 존재한다고 확신했어.
화성의 적도는 영상 20도,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도 충분히 존재하고 토양과 햇빛도 있어.
필요한 건 물, 물만 있으면 식물이 자라나는 환경이 조성되는 거야.
그러나 북극의 온도는 영하 150도,
사형수들의 임무는 북극이라는 대륙에서 담수호를 찾는 것,
그리고 적도까지 수로를 건설하는 것.
사형수 여섯 명과 중장비 세 대와 비행기 한 대 그리고 작은 집 한 채,
5년 치의 식량, 이것으로 말이야. 원조는 5년 후에 오게 되어 있었지만
소련의 붕괴로 이 프로젝트는 중단 돼버렸어.
그들은 인간을 욕하며 화성인이 되길 바랐지.
그리고 내가 화성에서 태어난 첫 번째 생명체가 된 거지.
네 명의 러시아계 아버지와 한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창조 된
인간과 비슷하지만 인간과 다른 육체를 가지고 있는 화성인,
아버지가 누구인지 확실치 않아 나를 낳다 죽은 어머니의 성을 따
샤라 킴이라 이름 지어진 화성인.”
“샤라? 이름이 샤라 인가요?”
“지구에서 내 이름을 불러 준 두 번째 사람이군.”
“아니, 20년 전에 화성에서 태어났다면 몇 살이 되는 거죠? 제 나이는 34살인데.”
“9살, 화성의 공전 주기가 지구의 두 배니까 지구나이로 따지면 18살이 되겠네.”
주영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뭐, 문제 될 거 있어?”
주영은 부잣집 새침한 공주님을 상상하고 있었다.
주영은 반말을 할까 말까 상당한 고민을 했다.
“첫 번째 사람은 누구죠?”
“무슨 첫 번째?”
“샤라양이라고 처음 불러 준 지구인 말이죠.”
“누구겠어. 나를 너에게 보낸 사람이겠지.”
“샤라양을 나에게 보낸 사람?”
“신.”
“신?”
주영은 순간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샤라의 형체는 없었다.
건물과 잿빛 하늘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을 뿐이었다.
화성인을 부릴 수 있는 신, 신이라면 샤라보다 더 대단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은 누구죠?”
“나에 대한 관심은 벌써 식은 거야?”
“그건 아니지만.”
주영은 부잣집 공주님의 심술 굿은 표정이 상상이 됐다.
“샤라양, 물은 찾았나요?”
“무슨 물?”
“담수호요. 화성의 북극에 있는?”
“두 번째 여름에 빙하를 발견했고 다섯 번째 겨울에 담수호를 발견했어.
그리고 아홉 번째 겨울에 수로를 완공했지.”
“그렇다면 지금의 화성은 어떻죠?
식물이 살아갈 조건은 된다지만 정작 씨앗이 없다면 허사 아닌가요.
그것 때문에 지구에 온 거겠죠. 식물의 씨앗을 가지러.”
“두 번째 겨울, 지구 나이로 내가 3살 때부터
빙하의 조각을 비행기에 실어 적도의 한 지역에 날랐어.
그때 이미 화성에는 무수히 많은 씨앗이 존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
지구의 중력의 3분에 1정도밖에 되지 않는 화성에서는
그만큼 식물들의 성장 속도가 빨랐어. 지금 그 지역은
지구의 어떤 정글보다 무성한 숲이 되었어. 비록 오아시스만큼의 작은 크기 정도지만.......
우리는 담수호의 물고는 트지 않았어.”
“그건 왜죠?”
“첫째는 화성의 적도지방 전체에 그 만한 숲이 형성된다면
이산화탄소가 부족할거라는 의견 때문이었어. 그리고 다른 이유는.”
“이유는?”
“화성이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것을 지구에서 알게 된다면
화성은 열강들의 전쟁터가 될 테니까 말이야.”
“인간은 이기적이다!”
“그거야.”
“그렇다면 지구에 온 목적은 무엇이지?”
“화성에는 화성의 생명체가 있다.
인간에 의해 더럽혀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
“그런데 왜 그걸 알리지 않은 거지?”
“말이 짧다.”
“나는 샤라보다 두 배는 더 살았잖아.”
샤라는 웃었다. 때 묻지 않은 초원의 웃음소리였다.
“그건 부모님들의 생각이었어.
그들은 지구로 오는 도중 죽었어.
그들은 나만큼 완벽한 화성인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진화를 해 왔어.
그들은 화성인에 걸맞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나만큼은 아니지만 인간이 감당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지.
우리는 화성에 착륙한 미국의 우주선을 습격했고 쉽게 제압할 수 있었어.
우주를 항해하는 도중 조종사는 우리들이 위험하다는 판단을 하고
기체의 문을 열어 우주의 미아로 만들어 버렸어.
그들은 나처럼 투명해지는 능력이 없었어.
조종사는 우주선에 탑승한 화성인이 애초에 4명으로 알고 있었고
4명의 화성인이 사라지자 그들은 안심하고 지구로 향할 수 있었지.
또 다른 화성인이 있는 줄 모르고 말이야.
지구의 괘도로 진입했을 때 나는 조종사들을 죽여 버렸어.
그리고 나는 우주선에서 뛰어내렸지. 나는 대한민국의 남쪽 해상에 추락했고
정신을 잃고 표류하던 나를 그가 구해줬지.......
인간은 나를 창조한 신이자 내 부모를 죽인 원수야.”
“그라면?”
“맞아. 신이야. 그리고 신과 계약을 맺었지.”
“어떤 계약을 맺었다는 거지?”
“그거라면 네 잘난 신에게 물어봐.”
말하던 도중 재규어는 폐건물 안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음침한 주차장에는 두 대의 차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재규어가 멈추자 샤라가 말했다.
“나를 따라와.”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고는 말했다
“뭘 따라오라는 거야. 뭐가 보여야 따라가던 하지.”
“그거 귀찮군.”
그 말이 끝나자마자 주영은 공중에 떠이는 붉은 손을 볼 수 있었다.
인간의 손보다 두 배 가량 커다란 손을,
붉은 색 비늘로 덥혀진 갑각류처럼 강인한 손을 말이다.
주영은 놀라 숨을 멈추었고 손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주영은 정신을 차리고 붉은 손이 나아가는 방향으로 따라갔다.
통로의 두 개의 코너를 돌아서자 막다른 곳에 마주쳤고
좌측에서 빛이 새나오고 있었다. 그곳으로 돌아섰을 때
기관총을 든 두 명의 남자가 벽에 기대어 서 있었고 뒤에는
스포츠 점퍼를 입고 권총을 가진 한 사람이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권총을 닦으며 담배를 물고 있었다.
그 옆에는 휴대폰 발신이 안 되는지 휴대폰을 든 팔을 젓는 스포츠 점퍼의 남자가 있었다.
팔을 젓던 남자가 주영과 눈을 마주쳤다. 주영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저 새끼 뭐야?”
말이 떨어지자마자 남자들은 주영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동시에 붉은 손도 사라졌다. 또한 동시에 기관총을 가진 두 남자의 두 팔이 잘렸다.
팔은 기관총을 든 채로 바닥에 떨어졌다.
잘려진 팔에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고 두 명의 남자는 땅바닥을 구르며 고통스러운 절규를 했다.
아픈 부위를 만자고 싶지만 이미 손은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총기를 점검하던 남자가 2m가량 공중으로 떠올라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 뱉었다.
“두목이 누구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붉은 핏빛의 손이 사라지자 남자의 발목이 떨어져 나갔다.
“두목이 누구야?”
“이런 미친.”
이번에는 오른쪽 발목이 잘려져 나갔다. 피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 어처구니없는 광경을 지켜보던 휴대폰을 든 남자는 휴대폰을 집어던지고 총을 꺼내들었다.
질색을 한 사내는 총을 꺼내들고 상대를 겨누려 했지만
그 사건에서 10여 미터 떨어져있는 주영을 겨누어야 할지
공주에 떠 난도질당하고 있는 동료를 겨누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급기야 그는 무차별 사격을 하기에 이르렀다.
주영은 본능적으로 몸을 숙이며 눈을 감았다.
총성은 빈 탄창을 때릴 때까지 계속 되었다.
주영은 공포에 질려있긴 했지만 추가 되는 고통까지는 느끼지 못했다.
주영은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바로 앞에 회전하고 있는 3개의 총알을 볼 수 있었다.
주영은 생각했다. 죽음이 코앞에 왔을 때는 모든 것이 천천히 보인다더니.
그리고 총알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뒤로 보이는 남자의 떨리는 손, 바짓단에 적시며 흘러내리는 오줌,
완벽한 절망에 이르렀을 때의 초연한 표정, 그는 주저앉았다.
“거짓말. 거짓말.”
샤라는 남자의 다리를 스테이크 두께로 잘라 나갔다.
“말할게. 제발 그만해. 제발.”
남자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게 무슨 배짱으로 신의 사람을 건드린 거야.”
“말할게. 제발 살려줘.”
“말해도 너는 죽어. 다만 고통 없이 죽느냐
아니면 200번은 더 몸이 잘리고 죽느냐의 차이야.”
샤라의 목소리는 냉정했다.
“강남 신사동 연신빌딩 4층 미래종합계발 장도영.
그가 두목이야. 이제 제발, 그만 죽여줘.”
남자는 공중에서 떨어졌다. 손이 주영에게로 향했고 샤라가 말했다.
“이자가 너의 여자를 죽인 자야. 네가 마무리해.”
주영은 그자를 보았다. 보통사람의 눈, 삶의 고통에 절망하는 모습,
주영은 그가 측은해 보였다.
“꼭 이렇게 까지 해야 했을까. 샤라.”
“네 여자의 원수라고. 멍청아. 벌써 잊은 거야?”
샤라가 소리쳤다. 주영은 최소연이 머릿속에서 희미해져갔다.
그래도 그의 손은 벽에 기대어진 쇠파이프를 잡고 있었다.
“그가 죽는 것은 정해져 있어. 네가 그를 죽이던지 내가 그를 죽이던 지의 차이야.
네가 살인을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이라 생각하고 있다면 언제든 살인 하고 있는 나도 마찬가지야.”
“누가 이 사람의 죽음을 정해 놓은 것이데?”
주영은 억울한 듯 소리쳤다.
“신. 그가 그것을 정해 놓았고 누가 그 짐을 누가 짊어지느냐의 문제만 남겨진 거야.
둘이 모두 그 역할을 거부한다면 등 뒤에서 이놈은 총을 쏠 거야.
너와 나 중 한명은 반드시 그 짐을 짊어져야 한다는 얘기지.”
“내가 죽느냐, 네가 죽느냐?”
“그렇지.”
주영은 그에게 다가가 그의 옆에 있는 총을 발로 밀어버렸다. 총은 구석의 벽까지 미끄러졌다.
“이러면 누구도 죽을 필요가 없잖아.”
샤라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 건데.”
“그 다음이라니?”
“여기에서 나간 다음.”
“여기에서 나간 다음?”
“집구석에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주무시려고?”
“그건 무슨 말이지?”
“이 녀석들에게 너의 여자 친구를 죽이라고 명령한 놈은 어떻게 할 거냐고.
그리고 그에게 사주한 사람 어떻게 할 거냐고.
그들을 가만히 놔뒀다가는 누군가에게 또 총을 쥐어주고 우리를 죽이라고 하겠지.
그들이 실패한다면 또 누군가를 보낼 테고.
그때도 지금처럼 친절 할 수 있을까?”
“모르겠어. 나는 빠지고 싶어.”
“너는 너의 여자 친구를 사랑한 게 아냐.”
“열여덟 살 젓 비린내 나는 애송이가 뭘 안다고 훈계야.”
주영은 쇠파이프를 하늘로 치켜 올렸다.
그럴 수박에 없는 결론이라면 주영은 그를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 한다고 믿었다.
최소연은 이 녀석의 총에 맞아 죽었으니까.
그녀는 나에게 너무 소중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녀는 죽었지만 이놈은 지금 헐떡이는 숨을 쉬고 있으니까.
주영은 그 남자의 머리를 정통으로 쇠파이프로 내려쳤다.
두개골이 박살나면서 튀어 오른 피가 주영의 얼굴에 반점을 만들었다.
그러나 주영은 그런 생각을 했을 뿐이다. 주영은 어떤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너 방금 나에게 욕했어.”
샤라의 말에 주영은 뜨끔했다. 속으로 생각은 했지만 결코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온도를 본다고 얘기 했지.
욕을 할 때 사람의 온도가 어떻게 변하는 정도는 알고 있어.
한 번 더 그랬다가는 너도 토막 내벌릴 거야.”
샤라의 붉은 손이 그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목이 잘렸다.
동시에 바닥에 뒹굴던 두 남자의 목이 댕강 잘렸고
체념하고 앉아 있는 남자의 목이 잘렸다. 주영은 이 끔찍한 광경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
“네 개의 머리를 챙겨서 따라와. 그건 필요하니까.”
“이걸 어떻게 가져가란 말이야.”
“무거운가?”
붉은 손이 다시 움직이더니 네 개의 잘려진 머리가 다시 세로로 반 토막으로 잘렸다.
이어서 여덟 개의 머리 토막 중 네 개가 공중으로 뜨더니
서로 포개져 두 개의 머리가 되어 주영의 품에 안겼다.
“이러면 된 거지.”
재규어는 다시 서울의 대로를 달렸다. 주영은 더 이상 샤라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샤라가 인간의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영은 샤라에게 인격이 존재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육점에서 고기를 토막 내듯 인간을 주저 없이 토막 내는 샤라의 모습에서
그녀는 화성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래종합개발의 장도영이라는 자는 조직의 보스답게 강단이 있었다.
샤라가 장도영에게 원하는 것은 다른 행동원의 집합하는 것과
사주를 한 사람을 토설하는 것, 그리고 장도영의 목이었다.
장도영은 사지가 잘려나가도 토설 하지 않았다.
이유는 사주한 자들이 자신의 가족을 죽일 것이라는 이유에서 였다.
그 때 샤라의 붉은 손이 주영의 방향으로 갈퀴 모양을 하고 내려 그었다.
그 때 장도영의 표정은 공포 자체였다. 아마도 샤라의 얼굴을 본 게 틀림없을 것이다.
샤라가 말했다.
“누가 더 잔인하게 너의 가족을 죽일 수 있을까.”
장도영은 사주가 누군지 토설했고 행동원들을 사무실로 불러들였다.
사무실은 허가 된 도살장으로 변해버렸다.
그 미친 살인 행위는 계속 되었다. 계속 되면 될수록 피해자의 사회계급이 상승 되고 있었다.
그러는 주영은 살인극을 지켜 볼 뿐 아무것도 하는 게 없이 끌려 다녔다.
그래도 주영이 하는 일이 있었다면 조각난 머리들을 들고 가서 차 트렁크에 싣는 정도였다.
주영은 자신이 왜 화성인과 동행하며 살인극을 목격해야하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
불과 일주일 전 wishinggod.com의 신도가 된 자신이
또 한명의 신도이자 자신의 여자 친구가 피살 됐다는 이유만으로
wishinggod.com과 세상의 권력 단체 간의 싸움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하는 지를 말이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피살된 신도는 최소연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샤라, 왜 내가 너와 동행 해야만 하는 거지?”
“신이 너와 동행하라고 했어.”
소연과 재석도 자신과 신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는 것을 주영은 상기했다.
그리고 그것이 발단이 되어 현제에 까지 이르기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건 왜지?”
“모르는 거야? 신과 네가 약속을 했다면서.”
“약속?”
주영은 알 수 없었다. 주영은 고심하다 샤라에게 물었다.
“이선태가 신이니?”
“맞아.”
이선태는 대학교 1학년 때 같은 동아리 회원이었다.
주영의 기억에 이선태는 키가 크고 마른 체형에 평범한 학생이었다는 것이다.
문학 동아리였지만 문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문학보다는 그림을 무척 잘 그렸다.
평소에 말수가 없었고 자기 주관이 뚜렷했는지 술자리에는 참석을 하지 않았다.
1 학기를 마치자 이선태는 미국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이선태를 본적이 없다.
그가 미국 유학 생활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신이라는 것 자체는 놀라운 일이지만, 자신과 별다른 연관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약속이라니.
주영이 이선태에 대해 특별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동아리 방명록에 그려진 그의 그림이었다.
십자가를 메고 가다 쓰러진 예수를 시몬이 부축하는 그림이었다.
그는 미대생처럼 그림을 잘 그렸다. 그러나 그의 전공은 미술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 그림 아래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야한다. 그 길은 고단한 길이니 같이 서가라.
만약 혼자 남겨진다면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라.
네가 지쳐 쓰러졌을 때 내가 일으켜 주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몬이 아닐까?-
라는 글귀가 적혀져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주영은 그 글에서 특별함과 약간의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다.
주영은 이선태와 무슨 약속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느새 날은 어둑해졌고 재규어는 여전히 서울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서인지 서늘함이 느껴졌다.
뭔가 시무룩해진 느낌. 지금 그들이 하는 일이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주영은 샤라가 뭔가 안 좋은 기분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샤라, 화성인의 육체는 정말 대단하구나.
강력한 힘은 물론 투명해질 수도 있고 10미터 밖으로 날아가는 총알도 멈춰 세울 수 있는 정도로,
그건 팔이 늘어난 건가? 혹시 샤라는 하늘을 날 수 있을 지도 모르지.”
“내가 IQ 두 자리 수도 아니고 모든 걸 다 몸으로 해결할 리가 없잖아.
도구를 써야지, 도구.”
샤라의 목소리가 조금은 밝아졌다.
“도구를 쓴단 말이야?”
“화성인의 육체가 인간에 비해 압도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몸을 투명하게 할 수는 없어. 보호색 정도의 위장술은 가능하긴 하지만 말이야.
너를 향하던 총알을 막아낸 것도 팔 따위가 늘어나서 그런 게 아냐.”
“정말 대단한데, 그건 화성에서 가지고 온 것이겠지.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는 마법의 돌이라 던지.”
“비슷하긴 한데 돌은 아니야.”
“그럼?”
“우리는 그것을 이렇게 불러.
절대원소.”
“절대원소?”
“화성에서도 그렇게 불렀고 지구에서도 그렇게 부르더군.”
“지구에도 절대원소라는 게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그런데 지구에는 그런 신비한 힘을 발휘하는 어떤 것도 없어.”
“인간에게는 없겠지. 그러나 신에게는 있었어. 신은 화성에 다녀 온 적이 없어.”
“도대체 절대원소라는 게 뭐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모든 자연현상에서 자유로운 원소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세상의 모든 원소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원소 정도?
내가 처음 절대원소를 발견하게 된 건 화성에서 담수호를 찾는 과정에서였어.
우리는 빙하에 터널을 뚫어 담수호의 바닥을 공략했지.
나는 혼자서 굴착기를 운적했고 담수호와의 거리는 100여 미터 남은 상황이었어.
나의 작업량은 담수호 쪽으로 30미터를 더 파고 들어가는 것.
그런데 뭔가 착오가 있었던 거 같아.
20미터도 채 파고 들어가기 전에 담수호의 외벽을 건드리고 말았어.
물이 폭발해 쏟아져 내려올 것이고 나는 죽었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물은 쏟아지지 않았어. 나는 생각했지.
우리가 찾았던 건 담수호가 아니라 빙하에 무쳐 있는 거대한 공기방울 정도 가 아니었을까 하고.
나는 굴착기에 내려가서 담수호 안으로 들어갔어. 그런데 이상하더군.
내 표피에 전해진 것은 물의 느낌이었어. 그런데 그 안에서 숨을 쉴 수 있었어.
그러면서 진공의 상태처럼 내 몸을 띄우더군.
따뜻하기도 했고.
그렇게 한참을 올라가다가 마침내 절대원소 위에 띄어진 담수호를 만날 수 있었어.
내가 집에 돌아갔을 때 가족들이 나를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지.
나는 투명했었던 거야. 내 몸에 절대원소가 묻어 있었던 거지.”
“그렇다면 너의 가족들은 왜 절대원소를 사용하지 않은 거지?
그랬다면 우주의 미아가 되어 죽는 일도 없었을 텐데.”
“어떤 이유에서 인지 모르지만 그들은 절대원소를 이동시키지 못했어.
모두들 나만이 완전한 화성인이어서 절대원소와 놀 수 있다고 생각했지.
그때는 나도 절대원소는 화성만의 보물이라고 생각했어.
절대원소의 능력도 그만큼 이상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어.
그런데 지구에 와서 절대원소와 노는 신을 보았어.
지구의 절대원소를 지구인이, 나보다 훨씬 잘 다루는 모습을.
신은 절대원소를 쇠처럼 강하게 만들 수도 있었고 폭탄처럼 터지게 할 수도 있었어.
절대원소로 이용해 하늘을 날 수도 있었고 물 위를 걸을 수도 있었어.
압도적인 힘을 가진 나도 신을 이기지는 못해.
경험이나 두뇌의 명성함도 신은 나보다 한참 위야. 그렇지만 신은 여전히 나를 필요로 해.”
“그가 이선태란 말이지.”
“그렇지.”
“그런데 그런 비밀스러운 얘기를 나에게 해도 되는 거야? 신에게 혼나지 않을까.”
“신이 너에게는 모두 말해야만 한다고 했어.”
“말해도 돼는 것이 아닌 말해야만 한다? 왜?”
“너 작가라며.”
주영은 얼굴이 붉어졌다.
“정확히 무명작가지.”
“무명이지만 위대한 작가라고 했어.”
그 말을 들은 순간 주영의 머리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주영은 따뜻한 봄날 동아리 방에서 방명록에 그림을 그리는 선태를 보고 있었다.
그 때 주영이 물었다.
“너는 뭐가 될 거야? 화가가 될 거니?”
“글쎄, 너는 뭐가 될 건데?”
“나는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작가가 될 거야.
물론 지치고 힘든 일이겠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그 길을 갈 거야.”
“멋진데, 그럼 네가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있게 내가 도와줄게.”
“어떻게?”
그때 선태가 십자가를 메고 가다 쓰러진 예수를 시몬이 부축하는 그림을 완성했다.
그리고 그림 아래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야한다. 그 길은 고단한 길이니 같이 서가라.
만약 혼자 남겨진다면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라.
네가 지쳐 쓰러졌을 때 내가 일으켜 줄 테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몬이 아닐까?-
“내가 너의 시몬이 되어 주겠어.”
“좋아, 그렇다면 답례로 내가 너를 써주겠어.”
주영은 선태에게 방명록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선태의 글 아래 화살표를 하고 글씨를 썼다.
-네가 나의 시몬이 되어 준다면 나는 너를 쓰겠다고 약속하겠어.-
주영은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주영은 지처 쓰러져 있었고 선태는 wishinggod.com의 신이 되어 주영을 일으켜 주었다.
선태는 14년 전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그리고 선태는 나를 써달라고 주영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동아리 동기인 이선태였지만 지금은 신이라고 불리는 자였다.
그렇다면 주영은 신의 바로 옆에서 신을 쓰게 되는 것이었다.
주영은 얼굴이 창백해져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뱉었다.
“성서를 쓰는 자.”
밤이 깊을 때까지 살육전은 계속 되었다.
끝날 거 같지 않던 살육전은 HK은행의 은행장에서 멈췄다.
배후에 누가 있는 지 알아내긴 했지만 샤라는 거기에서 멈추었다.
다음날 아침 똑같은 출근길, 세종로의 HK은행 마당에는
수천 명의 시민들이 갈필을 잡지 못한 채 서있었다.
대부분 걱정스러운 눈으로 국기봉을 바라보고 있었고
비유가 약한 자는 구토를 하기도 했고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지기도 했다.
“청소년들은 여기 오지 못하게 하세요.”
웅성거리는 와중에 한 남자가 소리쳤다.
지독히 바른 생활을 할 것 같은 중년의 남자였다.
중년의 남자는 눈가를 찡그리며 다시 국기봉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국기봉에는 난자된 사람의 머리가 낚싯줄에 꿰매져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현수막이 하나 걸려 있었는데 그 글귀는 이랬다.
-누구든 이 살인자들의 머리를 내리면 신과 인간의 진짜 전쟁이 시작된다.-
난자된 머리들은 매달려 있는 채 바람에 흔들렸다.
정오가 되도록 시는 경찰들을 배치해 인원을 통제 했을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그리고 오후 두시가 되어 가설재로 국기봉을 둘러싼 구조물을 새웠고
천막으로 덮어 그걸 가렸다.
전쟁이 시작 된지 하루만에 정전에 이르렀다.
같은 시간 증권가에서는
얼마 전 횡령 사건으로 가뜩이나 주가가 내려간 HK은행의 주가가 다시 곤두박질쳤다.
그날부터 연일 하한가를 맞은 HK은행 주가는 11일 째 장에서 하한가에서 탈출 할 수 있었고
그날 국기봉에서 난자된 사람의 머리들은 사라져 버렸다.
다음날 금감원에서는 HK은행의 지분율 80프로로 상승한
종교법인 wishinggod.com이 최대 주주가 되었다는 공시를 했다.
공시가 뜨고 5초도 되지 않아 HK은행 주가는 상한가를 기록했다.
wishinggod.com은 HK은행의 80프로에 해당하는
wishinggod.com이 소유한 주식을 모두 신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첫댓글 여기까지, 충분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