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 날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의 단순한 일정 위에도 은혜를 부어 주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과 정직한 영을 허락하옵소서.
오늘도 진리를 보고 기뻐하게 하시고
아버지 품속의 평안을 누리며
순종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3. 누구든지 악으로 선을 갚으면 악이 그 집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14. 다투는 시작은 둑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
15.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사람은 다 여호와께 미움을 받느니라
16. 미련한 자는 무지하거늘 손에 값을 가지고 지혜를 사려 함은 어찜인고
17.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
18. 지혜 없는 자는 남의 손을 잡고 그의 이웃 앞에서 보증이 되느니라
19.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죄과를 좋아하는 자요 자기 문을 높이는 자는 파괴를 구하는 자니라
20. 마음이 굽은 자는 복을 얻지 못하고 혀가 패역한 자는 재앙에 빠지느니라
21. 미련한 자를 낳는 자는 근심을 당하나니 미련한 자의 아비는 낙이 없느니라
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23. 악인은 사람의 품에서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느니라
24. 지혜는 명철한 자 앞에 있거늘 미련한 자는 눈을 땅 끝에 두느니라
25.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근심이 되고 그 어미의 고통이 되느니라
26. 의인을 벌하는 것과 귀인을 정직하다고 때리는 것은 선하지 못하니라
27.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냉철한 자는 명철하니라
28.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 그의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겨지느니라
(본문 주해)
13절 : “악으로 선을 갚으면, 그의 집에서 재앙이 떠나지 않는다.”(새번역)
잠언의 주제인 지혜를 배척하는 것이 바로 악으로 선을 갚는 것과 같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을 베풀기 위하여 오셨는데 그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것이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배척한 자들은 자기 의로 가득한 자들이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자신들의 악함을 선이라고 착각하였기 때문이다.
14절 : “다툼의 시작은 둑에서 물이 새어 나오는 것과 같으니, 싸움은 일어나기 전에 그만두어라.”(새번역)
사소한 일들로 시작한 다툼이 큰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그런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친다. 시비(是非)란 옳음과 그름을 따지는 것이다.
타락한 인간은 시비를 따져도 언제나 자기중심적이다.
그러나 자신이 어떠한 죄인인지 아는 자는 먼저 시비를 그친다.
15절 : “악인을 의롭다고 하거나, 의인을 악하다고 하는 것은, 둘 다 주님께서 싫어하신다.”(새번역)
이 말씀의 해석은 이사야 5:20~24절이다.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잘 빚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뇌물로 말미암아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공의를 빼앗는도다
이로 말미암아 불꽃이 그루터기를 삼킴 같이, 마른 풀이 불 속에 떨어짐 같이 그들의 뿌리가 썩겠고 꽃이 티끌처럼 날리리니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멸시하였음이라”
16절 : “미련한 사람의 손에 돈이 있은들, 배울 마음이 없으니 어찌 지혜를 얻겠느냐?”(새번역)
미련한 자는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자이다. 이런 자들은 지혜를 얻으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썩어질 것들로 인하여 자신이 지혜롭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2장의 어리석은 부자와 같다.
자신의 소유로 만족하면서 내 영혼아 평안히 먹고 즐기자고 할 때에 주님은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면 이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하셨다.
미련한 자들은 참된 지혜를 어리석은 것으로 본다.
17절 : “사랑이 언제나 끊어지지 않는 것이 친구이고, 고난을 함께 나누도록 태어난 것이 혈육이다.”(새번역)
진정한 친구는 사랑으로 결속되고 형제는 고난을 나누도록 태어났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목숨을 버리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참된 친구이시며(요15:13), 또한 그는 우리를 형제로 부르기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아니하셨다(히2:11).
18절 : “지각 없는 사람 서약 함부로 하고, 남의 빚 보증 잘 선다.”(새번역)
타락한 인간은 보증을 설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보증이 되시고 그 보증의 증거로 성령님을 보내주셨다.
19절 : “벌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싸우기를 좋아한다. 패가망신을 원하는 사람은 집을 치장하기를 좋아한다.”(새번역)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죄를 사랑하는 자이며, 높은 문을 만드는 자는 파괴를 구하는 자이다.”(쉬운 성경)
‘다툼을 좋아하는 자’, ‘문을 높이는 자’는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높이는 자, 즉 교만한 자를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이다. 특별히 ‘자기 문을 높인다’는 것은 자신의 부유함을 과시하기 위해 자기 집의 대문을 크게 세운다는 말로 마음의 교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본문은 이러한 자들이 쉽게 파괴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진실로 ‘교만은 패망의 선봉’(16:18)인 것이다.
20절 :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은 복을 얻지 못하고, 거짓말만 하는 혀를 가진 사람은 재앙에 빠진다.”(새번역)
마음이 굽었기에 바른 목표를 향하여 갈 수가 없고, 그러기에 복을 얻지 못한다. 마음이 굽은 자에게서 나오는 말도 결코 바른 말일 수가 없기에 혀가 패역한 자는 재앙에 빠지는 것이다.
21절 : “미련한 자식을 둔 부모는 걱정이 그칠 새가 없고, 어리석은 자식을 둔 부모는 기쁨이 없다.”(새번역)
이스라엘 사회에서 후손의 번영은 특별히 큰 축복인 동시에 영광스러운 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미련한 후손을 둔 자는 큰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다.
미련한 자는 자기 자신뿐 아니라 그를 낳고 길러준 부모에게도 고통을 안겨준다. 그는 아비의 훈계를 듣지 않아 고통과 파멸의 길을 간다.
22절 : “즐거운 마음은 병을 낫게 하지만, 근심하는 마음은 뼈를 마르게 한다.”(새번역)
‘양약’은 ‘치료’ 또는 ‘구제’란 뜻에서 파생된 것으로, 육체적인 질병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장애까지도 건전한 상태로 치료해주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평안하고 즐거운 마음을 유지하는 생활이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의 가장 중요한 근거이며, 재물이나 쾌락과 같은 요소가 인간의 건강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마음의 평안함을 얻는 것이 영육 간에 강건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임을 강조한 것이다.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14:30)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15:13)
23절 : “악인은 가슴에 안겨 준 뇌물을 먹고서, 재판을 그르친다.”(새번역)
뇌물을 받고 재판하는 자는 판결을 왜곡한다. 그런 자는 공정한 재판을 흔들어놓는 사악한 자이다. 바로 마음이 굽은 자이다(20절).
24절 : “슬기로운 사람의 눈은 지혜를 가까이에서 찾지만, 미련한 사람은 눈을 땅 끝에 둔다.”(새번역)
지혜(진리)를 찾는다고 땅 끝에 눈을 두고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지 말라고 하신다. 지혜는 바로 곁에 있기 때문이다.
바로 말씀이 있고, 성령께서 이 말씀으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신다.
25절 : “미련한 자식은 아버지의 근심이고, 어머니의 고통이다.”(새번역)
21절과 유사한 구절이다. 21절에서는 아비의 근심만을 말하였는데, 25절에서는 어미의 고통을 더하여 언급한다.
26절 : “의로운 사람을 벌주는 것은 옳은일이 아니다. 존귀한 사람을 정직하다고 하여 때리는 것도 바른일이 아니다.”(새번역)
법정에서의 정의를 다룬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의인이 고난을 당하고 형벌을 당한다. 이러한 옳지 않은 일이 당연히 일어나는 이유는 인간의 마음이 굽었기 때문이다.
27~28절 :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은 말을 삼가고, 슬기로운 사람은 정신이 냉철하다.
어리석은 사람도 조용하면 지혜로워 보이고, 입술을 다물고 있으면 슬기로워 보인다.”(새번역)
경험이 쌓일수록 말수가 적어지고 슬기를 깨칠수록 감정을 억제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어리석은 사람도 잠잠하면 지혜로워 보이고 입을 다물고 있으면 슬기로워 보인다.
말을 아끼고 잠잠하면 지혜가 있는 자로 보인다.
말을 하지 않고 진중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나중에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결국 그 사람의 마음이 말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언어생활에서 잠잠한 것이 때로는 유익하다.
(나의 묵상)
“지혜는 명철한 자 앞에 있거늘 미련한 자는 눈을 땅 끝에 두느니라”(24절)
“슬기로운 사람의 눈은 지혜를 가까이에서 찾지만, 미련한 사람은 눈을 땅 끝에 둔다.”(새번역)
과거에 나는 세상 책을 많이 읽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마음을 끄는 책이면 꼭 구해서 읽었고, 책을 사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다가 교회 생활에 열심을 내면서부터는 신앙서적을 중심으로 다독을 했다.
그러니 집에 책이 많았다.
한때 이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여 거실에 있던 TV는 방으로 들여놓고, 거실을 서재처럼 꾸몄다. (집이 좁아서 따로 서재로 쓸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집을 방문한 사람들이 책이 이렇게 많냐고 감탄했다.
마치 책의 숫자만큼 내 머리에 지혜와 지식이 많은 것처럼 은근히 자랑했던 것이다. 사실 읽지 않고 멋으로 그냥 꽂아둔 책도 거의 없었다.
복음을 알고 난 뒤 나는 이 책들을 싹 다 정리하였다. 수백 권의 책을 정리하고 버렸다.
세상적인 책들은 물론, 진리인 줄 알고 탐독했던 거짓 신앙서적들도 다 버렸다.
그것들은 참 지식과 지혜의 책들이 아니라, 인간의 말들-세상적 성공과 인간 내면의 허영심을 부추기는 내용-이 가득한 책들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의 헛헛함을 채우기 위해 그토록 찾아 헤매었던 참 지혜가 아주 가까이 있었다.
바로 성경이었다.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신30:11~14)
지혜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매일의 말씀, 그 주신 말씀으로도 이미 충분한 것이다.
이제 세상 인간들이 하는 여러 말로 성경 말씀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풀어주시는 말씀으로 인간들의 말을 분별한다.
성령께서 풀어주시는 말씀은 참 지식이요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말씀이다.
이 세상은 인간을 위한 세상이 아니라, 오로지 주님의, 주님에 의한, 주님을 위한 세상이니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 예수님을 증거 하는 것이 바로 성경책이다.
지혜(진리)를 찾겠다고 여기저기,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렸던 나의 시선을 오직 말씀에 두니, 성령께서 진리이신 주님을 알게 하신다.
세상 인간의 지식과 감정과 논리와 철학으로는 절대 채워지지 않던 헛헛한 내 마음이 생명의 말씀으로, 지혜로 채워지는 중이니 어찌 기뻐하지 않을까?
(묵상 기도)
주님,
참 지혜가 아주 가까이 있었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땅 끝에 시선을 두며 두리번거렸습니다.
미련했던 그 세월이 아까워 부지런히 말씀 앞으로 나아갑니다.
참 지혜로 이끄시는 신실하신 성령님만 의지합니다.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