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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대진입니다.
셀프히스토리는 원래 틀린 영어지요^^ 바이오그래피가 맞는데 콩글리쉬=인터내셔날 스탠다드 랭기지 라는 신념으로 오늘도
바이어들을 상대하고 있기에 그냥 갑니다. 영신(영어의 신)들이 계시면 그냥 이해바랍니다. 꾸벅.....__
가입기념으로 제소개겸 성공하지못한 뮤지션의 넋두리겸...겸사겸사해서 끄적거립니다.
참고로 2달째 해외 출장중이라서 외로운것도 한몫하는것 같습니다.
그럼 ...서론은 짧게 ...갑니다..
저는 72년생입니다. 올해 37인가요..직간접으로 음악과 함께한 세월이 벌써 30년이 넘었습니다.
성악을 전공하신 아버님께서 피아노사를 운영하셨기에 어려서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습니다.
처음 피아노학원을 가던날, 눈이 몹시 왔었습니다. 어려서 몹시 작았기에 제가 걸어간 길에 피아노가방이 눈에 끌려서
길게 자국이 남았었다고 어머님이 그러시더군요, 배우게된 동기는 옆집의 피아노 소리였습니다.
집에도 피아노가 있었고 아버님이 가끔 연주를 하셨기때문에 익숙은 했습니다만, 어느날 갑자기 피아노를 배우고 싶더군요.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이소룡을 꿈꾸던 시절에 남자아이가 배우는 피아노는 늘 학교에서 놀림감이였습니다.
남자가 피아노를 배운다는 거였지요..그때 저희 학원에 다니던 100여명의 원생중 남자아이는 딱 3명이였는데, 그중 한친구는
아직도 동숭동에서 연극을 하고 있습니다. 뼈에 새겨진채 태어난다는 "끼"는 버리지 못하는 건가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희 피아노 선생님은 생각이 꽤 깊으신 분이셨던것 같습니다.
당시에 모든 원생들에게 토요일마다 화성학과 음악감상을 가르치셨는데, 천편일률적으로 누가누가 잘하나를 가르치던
다른학원에 비해서 음악에대해 보다 깊은 이해를 주셨던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때배운 기초로 고3때까지 음악 이론 시험은 한번도 공부를 해보지 않고 시험을 봤습니다. 물론 언제나 "수" 였습니다.
그렇게 피아노와 바이올린으로 기초를 닦던중 당연히 진로를 음대로 정하게 됩니다만,
아버님의 심한 반대에 부딪히게 됩니다. 중1때쯤 음대를 가겠다고 말씀드렸더니 판검의사 아니면 안된다고 피아노 열쇠를
우물에 버려버리시더군요. 물론 바이올린은 박살이 났습니다.
제자랑이 아니라 공부를 꽤 잘했기때문에 ( 중학교때 전교 6등까지 해봤습니다. ) 그런 기대도 하실만 했을겁니다.
- 지금 생각하면 그대로 공부해서 판검의사중에 하나를 하는게 백번 나았을것 같습니다. ^^ -
그다음은 뭐 비슷비슷한 과정이겠습니다만, 음악을 하기위한 피튀기는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부모님 몰래 스쿨밴드하기, 워크맨과 백판과 테잎을 사기위해 공부안하고 알바하기, 차비 아껴서 기타사기위해 학교 걸어다니기.
대학도 학과나 전망이 아닌 어느학교 밴드가 잘나가나를 보고 결정했으니 뭐 별 설명은 필요없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던중 고2때, 그러니까 올림픽의 열기가 한창이던 88년, 머리에 총맞는 사건을 경험합니다.
그전까지 만져본 신디사이저가 ARP 달랑 하나였는데, 어느날 DX7 이 눈앞에 나타나게 됩니다.
저와 비슷하거나 조금 윗 연배신 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당시 DX7 과 D50........ 정말 대단했었습니다.
거의 전국 노래자랑 밴드의 테크닉스+카시오 키보드의 조합만큼 엄청난 위력......방송발........ 사운드....
그렇게 선배의 DX7을 운좋게 빌려 1주일쯤 가지고 놀던중 DX7 리어판넬의 수많은 단자중 딱 하나 알수없는 단자를 발견합니다.
그때 저는 엠아이디아이 라고 읽었었습니다. 집안의 오디오 어디를 봐도 똑같은 단자가 없는 걸로 봐서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를 외치며 낙원상가를 헤매던중, 당시 왕* 악기의 황금빤쮸 사장님께서...아 그거 미디라고 읽는건데...라며 일본 잡지 한권을
내미시더군요..물론 공짜는 아니였습니다. 그때부터 한동안 남대문 외제책방 골목을 헤매고 다니게됩니다.
리터뮤직에서 나오던 악보며 기타등등 "신지식의 보고" 를 잡기위해 책 도착하는 새벽시간에 꽤 많이 나가 있고는 했습니다.
건반 두대를 연결해서 동시에 쓸수있고 롤랜드에서 나오던 MC50 등의 시퀀서를 연결하는 사진하며.....원맨밴드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던중 고3의 압력을 피해갈수 없던터라 잠시 음악을 접고 공부에 매진,,,,우여곡절끝에 대학을 들어가고
입학식도 하기전에 학교밴드에 가입을 합니다. 제 윗기수 건반파트 선배가 군대를 가는 바람에 신입생 환영회 공연에
건반으로 서게되고, 그후 학교에 갔더니 같은과 동기들이 제가 동기가 아니라 선배인줄 알더군요..
신입생이 신입생 환영 공연에 건반으로 섰으니 그럴만도 할겁니다.
그때부터 졸업때까지 약 12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밴드에 가입을 하고 처음 한 일은 알바를 했던 돈과 아버님께서 보태주신 돈을 모아 다이나톤 키보드를 산 일이였습니다.
당시 송골매의 키보디스트 셨던 분이 선전을 하셨던 건반인데 SAM칩을 썻던 건반으로 미디가 없어서 그렇지
꽤 많은 공연을 달랑 이거한대로 버터냈었습니다.
천리안의 샘틀소리에 가입하고 나름 미디를 공부하던중, 선배의 야마하V50 으로 시퀀서의 기초를 닦고 낙원상가 쇼윈도에서
침흘리기를 수차례........드디어 M1 을 발견합니다. 우주선의 외모........퀸시존스가 사용했다는 그 M1 ...............................
충격이였습니다. 그러나 돈없고 빽없고 히트곡 없는 뮤지션들이 늘 그렇듯, 돈이 모일때쯤이면 이미 구형이 되는 드림보드...
겨우 M1 을 살 돈을 모아 낙원동으로 향하니 M의 윗기종인 T 가 나와있더군요.......다시 1년을 더 알바를 뛰면 Z 가 나올라나...?
때는 바야흐로 91년쯤? 대*악기에서 100만원을 외상하고 T2 를 가져오는 만행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후 T2 로 본격적으로 많은 일을 하게됩니다. 학교내의 공연은 물론, 샹송 경연대회, 돈안되는 연극 음악, 소주한잔에 단편 영화음악,무용수들 만나는 재미로 무용음악, 돈못받는 세션, 남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음반.................ㅋㅋㅋ
그러던중 우연히 선배의 소개로 모 방송국의 토크쇼 밴드일을 한 1년반정도 하게되는데, 첫 방송이 나오던날 저희 어머니는
아들이 드뎌 음악으로 성공하는줄 알고 눈시울을 적시셨습니다. 어머니 아직까지 죄송합니다. 꾸벅...................................
나중에 알게된 사실입니다만, 제가 잘해서 그 밴드에서 써준게 아니고 제가 싸서 써줬더군요..제전임 250만원, 저는 60만원...
물론 방송국에서 제게 지급했던 페이는 250만원 이였습니다만, ......나머지는 짐작들 하시겠지요..
그러던중 코르그의 이펙터발에 슬슬 실증을 느끼던 와중에 ( 아시죠? 멀티에서 이펙터 빠지면 나오던 코르그 소리........)
엔소닉을 발견하게 됩니다. 엔소닉의 명기 VFX ......바로 중고로 업어오게 됩니다. 당시는 한달에 60만원씩 벌던 시절이였지요...^^
그러나 곧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T 와 VFX 를 함께 소리낼 방법이 없더군요......저런...... 집에 믹서가 없었던 겁니다.
미친척 어머님께 믹서를 사달라고 말씀드렸더니 .집에 있다고 꺼내주시더군요........갈아먹는거 영양가가 파괴된다고 하시면서
어쨋든 몇몇과정을 거쳐 당시 가장 싸게 살수있는 삼익믹서를 사게되는데....그래도 32채널 이였습니다...아마 30만원쯤?
32채널을 샀던 이유는 T2 의 6개 출력과 VFX 의 4개(?) 출력으로 DRY 와 MIX 를 각각빼서 소리를 만들어볼려는 욕심이였는데
그렇게 출력이 세분화 되지도 않았었고 ( 하이햇,킥, 스네어 이런식으로 나누어 보고 싶었습니다. 이펙터 때문에 )
발상은 참신했으나 믹서의 성능이 또 그걸 못받쳐주는 바람에 28채널은 놀게되는 불상사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T2 와 VFX ...........이놈들이 각각은 참 훌륭한 악기임에 분명하나 잘 섞이지는 않더군요....섞인다는 개념조차 없었던 때라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으로 계속 헤매던중에 .....2개의 조합에 채 적응도 하기전에 " 샘플러" 라는 놈을 알게됩니다.
선배가 쓰던 EPS 16PLUS 라는 놈인데...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이놈 샘플중에 쥑이는 디스토션 기타소리가 하나 있습니다.
암튼 T2 와 VFX 의 조합을 맞추지 못해 헤매던 중에 발견한 EPS 16PLUS 는 단비였고.......T2 와 VFX 두대를 EPS16PLUS
한대와 샘플이 가득들어있는 하드 와 바꿔오게 됩니다. 물론 대* 악기 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1달후 ASR-10 이 나오더군요..
저는 눈탱이를 맞은거였습니다.......에라....이 .....
샘플을 불러쓰는 불편함과 메모리의 한계를 떠나서 샘플러의 소리는 참 매력적이였습니다만,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당시의 샘플러들은 메모리의 한계때문에 이미 케이크워크(DOS) 를 쓰기 시작한 저로서는 기껏해야 3~4개만 불러쓸수 있는
메모리의 한계가 큰 문제 였습니다. 결국은 범용으로 쓸수있는 악기가 다시 필요하게 됐던 것입니다.
아아.........그러나 이미 토크쇼 밴드에서 짤린 상황이기 때문에 더이상 지름신의 부름을 따를수 없는바.....................
사운드캔버스의 대박을 좌시할수 없었던 악기의 명가 야마하에서 발매된TG-100 을 사게됩니다.
SC-55보다 20만원 쌋기때문에 선택이 없었습니다.
아아..........그러나 TG-100 의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은 그소리.......에디팅으로 커버할수 없는 참을수없는 샘플의 빈약함은
EPS 와 도저히 어울릴수 없는 것이였던 것이였던 것이였던 것입니다.
거의 모든 기능을 매크로로 만들어놓고 뮤지션이 아닌 찍션(요즘은 뭐 미디스트..라고도 하던데 당시는 찍새 또는 찍션이였죠)
으로 스튜디오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던중................대한민국 남자의 피할수 없는 숙명...군대에 가게 됩니다.
물론 입대전에 이미 군악 특기병이였기때문에 남쪽의 부대에서 ( 부대명은 밝힐수 없습니다. 통신보안입니다.) 군악병으로
근무를 하게 됩니다만, 휴가때 EPS 와 노트북을 부대로 가져가 편곡한 악보를 미리 연주해주고, 악보를 프린트해주면서
나이어린 고참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게됩니다. ( 참고로 25에 군대를 갔습니다. )
거꾸로 매달아도 가는 국방부 시계를 거뜬히 이겨내고 제대를 하니 때는 97년...세월은 흘러 제가 사랑했던 그때의 그 명기들은
이미 흘러간 꽃노래가 되어 버리고...제 EPS 는 30만원에 팔려나가는 운명을 맞게됩니다.
(97년에 누가 모노 샘플링에 램 16메가 짜리 샘플러를 썼겠습니까....)
어쨋든 모 대기업의 음악을 하는 부서에 취직을 하고 고정적인 수입이 생기게된 이때부터 본격적인 악기 바꿈질이 시작되게 됩니다.
헉헉.....2부는 다음에....
첫댓글 너무 길어서 끝까지 읽느라고 땀 흘렸어요...다음부턴 좀 짧게...어머님이 음식 갈아먹는 믹서 주셨을때...그 부분이 참 인상적 입니다.....우리 어머니 생각이 스쳐가서요.. 결국 그렇게 하다 여기까지 왔군요 전 님보다 3살 많은데 저도 어떻게하다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여튼 반갑습니다......언제 피아노 연주좀 들려주세요 ......
ㅎㅎ 비슷한 연배시군요..그래야 이해가 될 내용들이 좀 있지요..반갑습니다.
눈이 쫴매 아프다요....ㅠㅠ.......뭐!....인생 별거 있남유~........음악이 있으면 됐지....^^......2부에서는 악기 엄청 바꾼다..이겁니까?....ㅋ
으..이런 장문이...선리플 고 천천히 볼께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2부 기대할께요.
오오...길군요 전 뭐.. 이런 이야기거리가 없다보니 쓸수가 없군요 ㅋ
흠~제가 이글을 지금 봤습니다. 세월 흔적이 들어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그때 동질성으로 함께한 시간이라서 더 반갑고 짠 하군요
저는 2부 보고 지금 이글을 봤습니다. ㅋㅋㅋㅋ 어렵다..ㅋㅋㅋ
우리 또래 스토리는 등장인물만 다를 뿐 거의 비슷하군요.
ㅋㅋㅋㅋ 뭐 대안이 있나요..다 비슷비슷한거지요...세상 좋아졌다고 하면 나이먹은 건가요?
^^ 전 38세 '배우'로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