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전문기자들이 직접 다녀온 둘레길 33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과 동행해서 가볼 만한 길을 알려달라는 질문을 받으면 단연코 인왕산을 가보시라고 일러준다. 북촌한옥마을도 좋고, N서울타워도 가볼 만하지만 인왕산만큼 지금의 서울을 단시간 잘 보여줄 수 있는 길은 단연코 없다. 예쁜 벽화가 기다리는 홍제동 개미마을과 백사 이항복 선생의 별장이 있었다는 백사실계곡은 여기에 주어지는 덤이다.
길은 지하철3호선 홍제역 2번 출입구를 나오는 것으로 첫발을 뗀다. 30m 앞에 있는 ‘주재근베이커리’ 빵집 앞에서 왼쪽으로 접어든다. 인도를 2분 남짓 걷다가 갈림길에서 다시 왼쪽, 7~8분쯤 걷다 오른쪽에 ‘세븐일레븐’ 편의점이 있는 곳에서 오른쪽 언덕길로 향한다. 문화촌교회를 끼고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문화촌현대아파트단지 길을 걷게 된다. 101동 아파트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걷는다. 5분 정도 단지 외곽 찻길을 걸어 올라가다 104동 아파트 왼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등산로 출입문’이 보인다. 이 문을 나서면 곧바로 앞에 있는 공원을 통해 인왕산을 오를 수 있지만 그리로 가지 않는다. 개미마을로 향하기 위해 왼쪽 골목을 따라간다. 100m 조금 넘게 가면 골목이 나뉘므로 오른쪽으로 향한다. 그리고 곧바로 왼쪽 골목으로 돌아가면 개미마을 입구와 연결되는 편도1차선 찻길이다.
오른쪽으로 가면 홍제동 개미마을을 알리는 ‘빛 그린 어울림 마을1호’라는 안내판이 녹색 울타리에 붙은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 푯말에 따르면 금호건설의 후원으로 건국대, 상명대, 성균관대, 추계예술대, 한성대학교의 미술 학도들이 개미마을을 거대한 캔버스 삼아 아름다운 작품들을 남겼다고 한다.
개미처럼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인왕산 기슭에 기대어 사는 이 마을은 서울에 몇 안 남은 소위 달동네다. 회백색 일색이던 이곳 담벼락에는 미술학도들의 붓이 지나가면서 장미와 해바라기가 피어나고 나리꽃도 하늘거리며 쉼 없이 방싯거린다. 화려한 그림으로 피어난 담벼락 꽃밭을 지나 언덕을 계속 오르면 이제는 담벼락이 동물농장으로 변신한다. 젖소가 긴 혀를 내밀며 친밀감을 표시하고, 눈웃음을 살살 치는 누렁이가 천진난만한 눈인사를 건네 온다.
캔버스로 다시 태어난 개미마을
인왕산 숲길 입구에는 ‘기차바위 능선’ 푯말이 있다, 300m쯤 오르막을 올라 기차바위를 지나 5분만 더 가면 인왕산 서울성곽이다. 10여 분 만에 도착한 인왕산 정상에는 삿갓을 엎어 놓은 듯하다 하여 삿갓바위라 불리는 정상석이 기다린다. 바위 위로 올라가기 편하도록 누군가 애써 정을 쳐서 홈을 파놓았다. 그 홈을 밟고 올라서면 지금껏 지나며 보아왔던 서울의 풍광이 다시 한 번 360도 3D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북쪽은 북한산이 주인이고, 너른 벌판은 사람들의 터전이다.
이항복 대감이 거닐던 별천지 계곡길
인왕산 정상에서 인왕스카이웨이 산책로까지 인왕산 서울성곽을 따라 올라왔던 길을 되짚으며 내려가면 이항복 대감이 거닐었다는 별천지 계곡길을 만난다. 인왕스카이웨이 산책로는 찻길을 왼쪽에 끼고 있지만 폭신한 흙길로 돼 있다. 5분 정도 가면 정자를 사이에 두고 길이 Y자로 갈라진다. 왼쪽 길을 택하면 곧 윤동주 시인이 산책하며 올랐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하여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라는 이름을 얻은 쉼터가 나온다.
그곳을 지나면 곧 길은 찻길로 내려선다. 찻길에서 오른편으로 유턴하듯 돌아 인도를 100m쯤 걷는다. 길 건너편으로 1968년 1·21 사건 때 목숨을 잃은 최규식 경무관 동상이 보이고 그리로 건너는 건널목이 있다. 길을 건너 왼편으로 향한 계단을 오르면 고색창연한 창의문이 기다린다. 창의문은 인조반정(1623) 때 능양군(인조)을 비롯한 쿠데타군이 한양으로 난입하기 위해 부수고 들어왔던 문으로 지금도 문루에는 반정공신들의 이름이 새겨진 현판이 걸려 있다. 창의문 오른쪽 북악산 서울성곽 입구에는 화장실이 있으므로 필요하면 다녀오도록 한다. 백사실계곡 가는 길은 창의문을 통과한다. 마을길을 만나면 오른쪽으로 길을 잡고, 곧 길이 Y자로 갈라지면 ‘산모퉁이’, ‘오솔길’ 푯말이 있는 왼쪽 길을 택한다. 동양방앗간이 있는 길에서는 약간 오르막길인 직진 방향이다. 걷기에 하등의 불편함이 없는 낮은 경사의 오르막을 이룬 부암동 골목을 10여 분 정도 걷는다. TV 드라마 <커피프린스1호점>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산모퉁이 카페에서 오른쪽으로 계속 걷는다. 길은 여전히 약간의 경사를 이룬 오르막이다. 카페를 지나 100m쯤 갔을 때 길이 좌우로 갈라진다. 오른쪽 찻길로 간다. 70m 앞에서 다시 갈림길이므로 직진하듯 내리막길을 택한다. 옛 추억이 떠오를 듯한 아련한 골목길을 5분 정도 걷다 담뱃가게를 지나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백사실계곡. 백사실 계곡 숲길은 ‘비밀의 정원’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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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경비 목적으로 40여 년간 닫혀 있던 이곳은 이제 1급수 지표종인 도롱뇽 서식지로 보호받을 만큼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다. 또 드물게 멧돼지가 출몰할 정도의 성긴 숲이 길을 호위한다. 물길을 따라 난 큰 길을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백사 이항복의 별장 터였다는 연못이 나온다. 울울창창한 숲이 호위하는 백사실계곡의 길은 빨리 걸으면 10분 만에 끝나버릴 정도로 짧다. 하지만 천천히 거닐면서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다. 백사실계곡이 끝나는 곳에는 현통사라는 사찰이 있다. 계곡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 사찰 안은 의외로 적막하다. 물기 가득한 사찰 안을 잠시 둘러보고 다시 사바세계로 발을 내딛는다. 이 몽환적인 길에서 우리를 끄집어내어 집으로 데려다줄 시내버스가 정차하는 세검정초등학교 버스정류장까지는 현통사에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총 거리 7.2km, 소요시간 3시간30분 내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