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산나물 / 노천명

[박오은(소교)]

   산나물

                                                                                                                        노천명

 먼지가 많은 큰길을 피해 골목으로 든다는 것이, 걷다 보니 부평동 장거리로 들어섰다. 유달리 끈기있게 달려드는 여기 장사꾼 아주마시들이 으레 또 “콩나물 좀 사이소 예! 아주머니요! 깨소금 좀 팔아주이소.” 하고 당장 잡아당길 것이 뻔한지라, 나는 장사꾼들을 피해 빨리빨리 달아나듯이 걷고 있었다.

 그러나 내눈은 역시 하나하나 장에 난 물건들을 놓치지 않고 눈을 주고 지나는 것이었다. 한 군데에 이르자 여기서도 또한 얼른 눈을 떼려던 나는, 내 눈이 어떤 아주머니 보자기 위에 붙어서 안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얼른 나는 엄방지고 먹음직스러운 접중화를 알아봤다. 그 밖에 여러 가지 산나물을 또 볼 수 있었다. 그 보자기에는 산나물이 쌓여 있었다. 순진한 시골처녀 모양, 장돌뱅이 같은 콩나물이며, 두부, 시금치 틈에서 수줍은 듯이, 그러나 싱싱하게 앃여있는 것이었다.

고향 사람들을 만난 때처럼 반가웠다. 원추리, 접중화는 무덤들이 있는 언저리에 많이 나는 법이겠다. 봄이 되면 할미꽃이 제일 먼저 피는데 이것도 또 웬일인지 무덤들 옆에서만 잘 발견되는 것이다.

 바구니를 가지고 산으로 나물을 하러 가던 그시절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일이다. 예쁜이, 섭섭이, 확실이, 넷째들은 모두 다 내 나물 동무들이다. 활나물, 고사리 같은 것은 깊은 산으로 들어가야만 꺾을 수가 있었다. 뱀이 무덥다고 하는 나한테 섭섭이느 부지런히 취순을 꺾어ㅓ------

 산나물 하러 가서는 산나물만 찾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산 저 산으로 뛰어다니며 뻐꾸기를 잡고, 싱아를 캐고, 심지어는 칡뿌리를 캐서 그 자리에서 먹는 맛이란 또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꿩이 푸드득 날면 깜짝 놀라곤 하는 것이다. 내가 산나물을 뜯던 그 그리운 고향엔 언제나 가게 될려는 것이냐?

 고향을 떠난지 30년, 나는 늘 내 어린 기억에 남은 고향이 그립고, 오늘같이 이런 산나물을 대하는 날은 고향 냄새가 물큰 내 마음을 찔러 어쩔 수 없게 만들어 놓는다.

 산나물이 이렇게 날 양이면, 봄은 벌쩌 제법 무르익었다.냉이나 소루쟁이니, 달래는 그러고 보면 한물 꺾인 때다.

산나물을 보는 순간 나는 이것을 사가지고 오려고 나물을 가진 아주머니 앞으로 오락 나가서다가 그만 또 슬며서 뒤로 물러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생각을 해보니 산나물은 맛이 있는 고추장에다 참기름을 치고 무쳐야만 여기서 밥도 비벼서 맛도 있고한 것인데 내 집에는 고추장이 없다. 그야 나는 친구집에서 한 보시기 쯤 얻어 올 수는 있기는 하겠지만, 고추장을 얻어다 나물을 묻쳐서야 그게 무슨 맛이 나랴? 나는 역시 싱겁게 물러서는 수밖에 없었다.

 진달래도 아직 꺽어보지 못한 채 봄은 환연히 았는데 내 마음속 골짜기에는 아직도 얼음이 안 녹았다. 그래서 내 심경은 여지껏 춥고 방 안에서 밖엘 나가고 싶지 않은 상태에서 모두가 을씨년스럽다.

 시골 두메촌에서 어머니를 따라 달구지를 타고 이삿짐을 싣고 서울로 올라오던 그때부터 나는 이미 에덴동산에서 내쫓긴 것이었다.

 그리고 칡순을 머리에다 안 꽂고 다닌 탓인가. 뱀은 내게 달려들어 숱한 나쁜 지혜를 넣어 주었다.

 10년 전이면 고사포를 들이댔을 미운 사람 사람을 보고도 이제는 곧잘 웃고 혼연스럽게 대해 줄 때가 있어. 내 그 순간을 지내놓고는 아찔해지거니와, 풍우난설의 세월과 함께 내게도 꽤 때가 있었다.

 심산 속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지인의 품에서 그대로 퍼질대로 퍼지고 자랄대로 자란 싱싱하고 향기로운 이 산나물 같은 맛이 사람에게도 있을 법이건만, 좀체 순수한 산나물 같은 사람을 만나기란 요새 세상엔 힘드는 노릇같다.

 산나물 같은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모두가 억세고, 꾸부러지고, 벌레가 먹고, 어떤 자는 가시까지 돋쳐있다.

 어디 산나물 같은 사람 없을까?

[박오은(소교)]

노천명은 문학적 재능을 지녔지만
친일 행적으로 많은 논란을 일으켜
후대에 가혹한 평가를 받는다.
독신으로 지냈으며, 성격이 까탈스럽고
많은 사람과 교분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만의 세계에서 사슴같이 살았나 보다.
시인으로 알려 졌지만 수필을 더 많이 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