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이후 정부주도형의
경제개발 정책은 자본축적을 도모한다는
이유로 소수 재벌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시장경제의 원리를 무시하다 보니 독점적 지배권이 인정됐고, 조세-
금융특혜도 필연적으로 이뤄졌다. 그 결과 선진국의 차입기술과 저렴한 노동력을 결합해 단시일 내에 공업화를 이룩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 성과는 비민주적 정치체제를 호도하는 데는 유효했다.
하지만 경제력이 일부 재벌에 집중하다 보니
한국경제는 소유집중, 경영집중, 시장독점, 계열확장, 금융편중과 같은 구조적 난제를 안고 있다. 소수의 창업자 혈족이 시장을 균점하여 균형 있는 경제발전을 저해한다. 경제력의 집중에서 파생되는 폐해는 제한된 정책수단으로는 단시일 내에
교정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한국의 재벌은 단순한
기업집단이 아니다. 총수 1인을 정점으로 하는 중앙집권체제로서 다계열-다업종의 거대한 기업집단이다. 수직적-수평적 기업결합을 통해 잡제품에서 첨단제품까지 생산-판매에서 배타적 지배력을
행사한다. 업종의 전문화도 없이 거의 전 업종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것이다.
방대한 규모만큼이나 정치-경제-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막강하다. 한마디로 거대한 자본권력이다. 때로는 전경련을 중심으로 연대해 경제-사회정책의
방향을 변경한다. 세계적으로도 한국의 재벌 같은 기업집단이 없다. 그 까닭에 구미언론은 재벌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가 없어 그냥 음역해서 'chaebol'이라고 부른다.
재벌은 조직특성이 전제적이다. 씨족을 근간으로 하는 혈연중심의 경영체제이면서도 학연-지연에 근거하여 조직을
운영하는 족벌체제이다. 총수가 주재하는 업무회의는 그야말로 어전회의나 다름없어 제식훈련장 같다. 이런 분위기이니 합리적인 토론은
생각하지도 못한다. 다만 절대복명이 있을 뿐이다. 이처럼 의사결정을 기업주가 독단적으로 하니
고용관계도 주종관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시장경제의 원칙을 지키지 않았던 군사정권 아래서 순치된 재벌은 태생적으로 경기변동보다는
권력이동에 더 민감하다. 방대한 규모의 기획조정실이니 회장비서실이니 하는 따위의 회장 직속의
기구를 두고 그룹경영 이외에 사회전반에 관한 정보를 수집-분석한다. 필요하면 방계
신문사와 경제
연구소를
동원하여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고 이론을 개발한다.
재벌이 창업 이래 정치권력에 상납한 뇌물은 생존비용이란 측면이 강하다. 또한 산업정책을 정상적(政商的) 흥정의 대상으로 삼아 정권
유지 비용을 부담한 것도 사실이다. 시장을 독점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대가를 정관계에 지불한 사실도
부인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한국재벌은 부패구조에
서식하여 부당이득을 확대
재생산하고 최종적인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여
성장해 온 셈이다.
그래서 정치적 변혁기에는 재벌비판론, 나아가서 재벌해체론이 제기된다.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도 그 모습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과거 집권 당시는 친재벌 정책을 썼다는 점에서 과연 정치권력이 실천의지를 얼마나 가졌는지 의문이다. 부패의 온상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경제력 집중에서 파생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해 재벌을 규제해야 한다는 당위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문제의 핵심은 재벌의 반발을 무마하면서 경제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
그 방안으로 경영과 소유 분리,
내부거래의
차단, 상호
지급보증 제한, 순환
출자 금지, 출자총액 제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외부이사제 개선, 은행
대출 출자전환 등이 거론되어 왔다. 역대정권이 이런 방안을 정책에 반영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정치권력의 실천의자가 박약한데다 재벌이 너무 커지고 너무 세져서 손을 쓸 수 없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그 까닭에 균형 있는 경제발달을 위해서는 경제적 약자를 약탈하는 행위에 대한 규제
강화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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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벌이 골목상권까지 공략하면서 자영업자들은 점점 어려운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중소기업-자영업자 공략하는 재벌 3세들
'경제대통령'을 자임하고 나선 이명박 정권은 출범과 동시에 'business friendly'를 외치며 친재벌 정권임을 천명했다. 반대여론을 묵살하고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했다. 재벌기업의 무분별한 사업확장과 재무구조 부실화를 막는 장치를 없애버린 것이다. 또 균형 있는 경제발달과 경제적-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규제까지 완화 내지 철폐했다. 문제의 심각성은 균형 있는 경제발전을 위해 존속할 가치가 있는 규제까지 없앴다는 점이다.
재벌이 자본-지식-기술-정보에서 열위에 있는
중소기업-
자영업자의 존립기반을 와해시킬 근거를 만든 것이다. 고환율 정책을 고수함으로써 수출
대기업에 특혜적 환차익을 베풀고 대신에 국민에게는 고물가의 고통을 안겨줬다. 돈이 넘쳐나자 재벌 3세들이 중소기업-자영업자의 사업영역을 침탈해 실업자를 양산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모든 규제를 경제적 해악으로 보는 자세를 견지했다. 다시 말해 규제는 경쟁을
제약함으로써 경제발전을 저해한다고 믿는 것 같았다. 그 때문인지 취임 초부터 규제철폐를 강행했다. 맹목적적인 규제완화는 독과점을 심화시킴으로써 빈부격차가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에 거대자본의 입장에서 규제완화는 곧 돈을 의미한다.
모든 규제는 완화 이전에 존속할 가치가 있는지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경제적-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규제는 완화대상이 아니다. 경제질서에 관한 규제 역시 완화대상이 될 수 없다.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규제, 공공복리를 위한 규제,
환경보존을 위한 규제 등등은 완화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2008년 9월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발단한 세계경제위기는 시장주의와 규제완화를
골격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의미한다.
창업 1세는 기업가적인 모험정신이 강한 편이었다. 당시 정부도 산업화 과정에서 정책적으로 기간산업 위주로 투자하도록
유도했다. 또한 당시에는 소비재 위주의 재벌에 대해서는 비판여론이 만만찮았다. IMF 사태 이후 역대 정권이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도입하면서 중소기업-자영업자의 영역을 무차별적으로 침탈하고 있다.
그 선봉에 재벌 3세들이 있다.
미국에서 돈 벌 만한 소비사업을 눈여겨보고 와서 돈벼락을 쳐서 영세
사업자를 몰아낸다.
유통시장, 사치품수입,
외식사업 등이 주류를 이룬다. 빵집, 술집, 밥집, 옷집 등이 고급
스런 서양풍이 나면 뒤에 재벌 3세가 도사리고 있다고 보면 틀림없다. 고급화-고가화
전략을 통해 중소기업-자영업자를 공략하는 것이다.
전두환 치하에서도 재벌 빵집에 대한 비판여론이 뜨거웠다. 1984년
삼성계열의
신라호텔이 제과업에서 손을 뗀 것도 그 까닭이었다. 그런데도 재벌가 손녀들이 빵 싸움에 나서 나라가 시끄러웠다. 삼성,
롯데, 신세계 등 굴지의 재벌들이 앞 다퉈 빵집을 차렸다.
프랜차이즈업체가 전국의 빵집을 싹쓸이했다.
파리바게뜨는 빵매장 3000여 개 이외에 떡집도 170개나 두고 있다. CJ는 빵매장 1400여 개 말고도 비빔밥을 판다. 범LG가에 속한 기업이 분식, 일본 라면, 비빔밥, 덮밥을 팔고 농심이 일본
카레, 애경이 일본 라면, 일본 카레를 들여왔다.
매일유업은 인도 식당,
남양유업은 이탈리아 식당을 운영하고
대명은 떡볶이
장사에 나섰다. 재벌 3세들은 유명의류 등 고가사치품 수입에도 열을 올린다. 코오롱,
효성, GS의
간판업종은
외제차 수입이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1%가 99%를 약탈하는 자본주의의 더러운 탐욕을 질타한다. 그것은 세계인의 공감대를 형성하며 지구적으로 확산되었다. 월가 점령은 이제 반자본주의자의 선동적인 시위구호가 아니다.
2012년 1월 25~29일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는 자본주의의 모순과 대안 찾기에 관한 뜨거운 토론이 있었다.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자 정당마다 재벌개혁을 합창한다.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선거철의 득표용 재벌 때리기라고 보기에는 사태가 심상찮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천민자본주의에 도취한 재벌 3세들은 돈 되는 일이면 무슨 짓이나 할 수 있다고 자만에 빠진 모습이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이나 지나치게 비대해지면 사회적 저항을 부르기 마련이다.
20세기 초엽 미국사회에서 대두됐던 사회개혁주의(progressivism)가
좋은 예다. 산업자본주의가 점차 독점형태로 발전하여 갖가지 사회적 폐해를 야기하자 여기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났던 운동이다. 그 결과 독점적 기업결합을 금지하는 반트러스트법이 강화됐다. 그 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독일, 일본이 이 제도를 도입하여 오늘날 한국재벌과 같은 기업집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