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dition
2010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산악회 프리코리아원정대
짧지만 강렬했던
스보보드나야 까레야의
기억
글 \ 사진 오영훈 서울대농대산악회
“억!”
작은 비명소리였다. 몇 발짝 앞서 가던 문민규가 남겨놓고 간 것은. 소리도 없이 눈밭 사이에서 갑자기 사라진 민규 대신 시커먼 구멍이 입을 벌리고 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정적이 주변을 감싼다.
“민규야!”
“…”
“민규야!”
“…예, 형! 저 괜찮아요.”
땅 속에서 대답이 들린다. 후유!
‘프리코리아(Free Korea)’라는 이름의 산이 있는 키르기스스탄 알라르챠 산군의 꼬로나봉(4860m)을 등반하고 전진캠프인 꼬로나 무인대피소에서 베이스캠프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빙하 가장자리를 타고 내려오는 도중 민규가 히든크레바스에 빠진 것이다. 전혀 크레바스라고는 있을 성 싶지 않은 지점이었다. 출발하기 전 내심 안자일렌을 할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가 빠진 크레바스는 약 6미터로 그리 깊지 않았다. 얼른 로프를 내려 끌어올렸다. 보통 크레바스에 빠지면 빠지는 동안 안쪽의 불규칙한 얼음과 튀어나온 돌에 부딪혀 큰 부상을 입거나 사망하기도 한다. 끌어올려진 민규의 얼굴에 피가 흘렀다. 올라오자마자 바지를 열어젖히고 보니 무릎 아래가 7센티미터 가량 찢어져 있었다. 꿰매야 할 상처였다. 천만 다행이었는지 무거운 배낭이 몸을 보호해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어쨌든 부들부들 떨며 올라온 민규는 올라오자마자 씩 웃으며 내뱉는다.
“형, 크레바스 안쪽이 아주 신기하게 생겼어요.”
‘한국을 자본주의세력으로부터 해방’
프리코리아! 이런 특이한 이름이 붙은 산이 있다. 도대체 어떤 산일까? 누가, 어떤 이유로 우리나라의 이름을 산에 붙였을까? 그것도 ‘자유’라는 멋진 수식어를 써서 말이다. 이 산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안 것은 2008년 키르기스스탄의 거벽으로 소문난 ‘악수(Aksu, 5217m)’로 (사)한국대학산악연맹에서 꾸린 등반을 준비할 때였다. 미국에서 발행한 소책자에서 키르기스스탄의 등반대상지를 소개하면서 ‘Free Korea’라는 산을 첫머리에 언급하고 있었다. 등반을 마친 뒤 귀국해 이곳저곳에서 자료를 찾아보았다.
‘스보보드나야 까레야(Svobodnaya Koreya)’라는 러시아어 이름을 가진 산으로 고도는 4740m. 북벽에는 십여 개의 루트가 개척되어 있으며 대부분 러시아 그레이드로 6급에 달하는 어려운 산이었다. 1950년대에 초등되었고 소련시절 한 때는 소련에서 가장 많은 등반가가 찾았던 산군인 악사이 계곡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어디에도 왜 그 산에 ‘자유로운 한국’이라는 뜻의 이름이 붙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었다. 키르기스 알파인 클럽의 이메일 주소를 찾아내 이메일로 물어봤으나 모른다는 대답 뿐. 대신 최근에 이 단체가 악사이 계곡에서 등반가이드 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직접 가서 알아보고, 오르는 수밖에. 재학생인 후배 민규와 둘이서 원정을 계획했다.
스보보드나야 까레야 북벽을 바라보며 전진하는 문민규 대원. 북벽에는 현재까지 16개의 고난도 루트가 개척되어 있다.
2월 9일 한밤중 비쉬켁에 도착했는데, 밤 기온은 영하 22도다. 생각보다 추웠다. 슬슬 산에서 동상이 걸리지나 않을까 걱정이 됐다. 키르기스 알파인 클럽으로 찾아갔다. 블라디미르 꼬미싸로프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회장은 50대 후반으로, 프리코리아 산을 비롯해 악사이 산군 및 키르기스스탄과 소련 시절 등산의 역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프리코리아는 1952년 화가이자 등반가인 아파나시 슈빈(Afanash Schubin) 외 3명이 남면으로 초등했다. 소련은 1930년대 스탈린 시대 이래로 1992년 연방이 붕괴되기 전까지 국가적으로 등산을 국민 스포츠로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왔으며, 1950년대는 키르기스스탄의 4~5천m급 산들에서 활발히 초등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초등 당시는 한국전쟁 중이라 연일 매스컴에서는 ‘한국을 자본주의세력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전쟁에 대한 소식이 한창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것.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강제이주나 스탈린의 압제 같은 무언가 억압받았을만한 역사를 상상했던 우리는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허나 동시에 그 산이 대체 어떤 산인지 궁금증은 더해갔다.
산은 찾아가기 쉬웠다. 비쉬켁에서 30km, 차로 한 시간이면 닿는 알라르챠 국립공원에 있었다. 배낭을 잔뜩 짊어지고 가이드가 안내하는 초입을 따라 눈 쌓인 악사이 베이스캠프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베이스로 여기는 악사이 산장이 있는 라첵은 해발 3200m로, 차에서 내려 약 5시간 정도는 올라야 한다. 눈 쌓인 경치가 장관이었다. 햇볕 아래 있으면 그리 춥지는 않았다. 라첵에 올라서니 멋진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지도를 통해 상상한 그대로다. 프리코리아와 더불어 이 지역에서 가장 많이 등반된 꼬로나봉, 꽃을 닮아 이름 붙여진 바쉬쉬케이(4515m), 거대한 눈처마가 인상적인 복스(4240m) 등등이 잘 조망된다. 우리는 서둘러 텐트를 설치했고, 산장지기도 만나보고 주변에 오가는 몇 안 되는 러시아 등반가들과도 대화를 나눴다.
이곳 악사이 산군에는 등반할만한 산이 약 15개 정도 있다. 초보자용 루트부터 최고 난이도까지 다양한데, 접근이 편리해 예전 소련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장 인기 있는 등반대상지 중 하나였다. 다만 소련이 붕괴된 이후 정부로부터의 지원이 끊기면서 한동안 산악활동이 침체되었는데, 수 년 전부터 블라디미르 회장과 같은 이들의 노력으로 스위스나 영국 등 해외로부터 지원을 받아 다시 부흥되는 중이라고 한다. 번듯한 라첵 산장이 보란 듯이 서 있다. 베이스캠프 주변에는 돌멩이들로 표시를 해 둔 캠프사이트가 넓게 펼쳐져 있다.
600m의 빙벽 올라야 하는 바쉬쉬케이
첫 등반으로 베이스에서 바로 올려다 보이는 바쉬쉬케이의 중앙 쿨르와르에 붙어보기로 했다. 5A급 일루셴코루트로 600m의 빙벽이 압권인 코스다. 새벽 5시가 넘어 텐트를 나섰다. 기온은 영하 30도 정도. 이 정도는 이곳에서 대수로운 추위가 아니라고 한다. 랜턴을 켜고 전날 정찰해 둔 길을 따라 한 시간 가량 오른 뒤 장비를 착용했다. 설벽을 한참 오르며 앞의 거무스름한 빙벽을 노려본다. 아래에서는 경사가 심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역시나, 붙으면 다르다. 얼음이 점점 단단해지더니 두 피치부터 분명해진다. 거무스름한 강빙이다! 크램폰의 발톱, 아이스바일의 피크가 거의 먹히지 않았다. 아이스스크루 설치도 온 힘을 다해야 겨우 들어간다. 두터운 장갑을 두 겹이나 꼈는데도 벌써 손가락에 감각이 없다. 인적 없는 저 높은 산들에 둘러싸여 산 속의 냉기를 머금은 빙벽을 오른다. 좁은 쿨르와르 속에서 익숙한 아이스바일 끝을 바라보며, 익숙한 발 시림을 느끼며, 익숙한 타격을 거듭하며 이 순간이 지나간다. 하단부는 60도 정도의 경사였는데 너무도 단단한 빙질 때문에 쉽게 오르기 어려웠다. 60m 씩 다섯 피치를 끊고 경사 85도 가량 되는 지점까지 올랐다. 한 숨 돌린다. 어느새 시계는 정오가 지났다는 것을 알린다. 오늘 정상을 갔다 오기는 무리라는 것을 우린 둘 다 잘 알고 있었다. 늦게 출발한 게 화근이다. 우린 별로 느리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남은 구간을 더 빨리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이 대단한 강빙이 앞으로 300m나 더 이어질 것을 생각하니, 과연 손가락 발가락의 고통을 어떻게 참아야 할지 아득했다. 그런데 점차 뿌옇게 변하던 하늘이 급기야 싸락눈을 뿌리기 시작한다. 금세 가스가 자욱이 차오른다. 미련 없이 하강을 결정했다. 하강은 아발라코프 V스레드에 등반로프인 8mm 외줄을 직접 끼우고 5mm 두께 65m 코드를 회수용으로 연결해 내려왔다. 눈이 거세지는 와중에 빠른 걸음으로 베이스로 내려온다.
바쉬쉬케이 일루셴코 루트를 등반 중인 문민규 대원
추위 주기를 몰라 가장 혹한기에 등반해
본격적으로 등반을 해 보기로 결정하고 우리는 사흘치의 짐을 싸들고 전진캠프 격인 꼬로나산장으로 향했다. 라첵에서 악사이 빙하를 4시간 가량 올라 해발 4천m 지점에 위치한 컨테이너 크기의 무인대피소다. 본격적인 시즌이 되면 요즘도 러시아 각지에서 몰려온 등반가들로 붐비는 곳이다. 하지만 겨울인 지금은 거의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산장은 네 명이 쓰기에 편하게 되어 있고 쓰다 남은 가스나 남은 식재료 등등이 많아 우리를 즐겁게 했다. 산장 정면에는 그토록 고대했던 프리코리아의 북벽이 거대하게 펼쳐져 있다. 1100m에 달하는 북벽에는 총 17개의 루트가 개척되어 있는데, 난이도는 5A급에서 6A급으로 모두 쉽지 않다. 유일한 5A급인 로우 루트는 새벽부터 등반하면 하루 만에 등반을 끝낼 수 있지만 나머지 루트는 벽상에서 비박을 감행해야 한다. 얼마 전 황금피켈상의 주인공이 된 카자흐스탄의 데니스 우룹코도 이 산을 아홉 차례에 걸쳐 등반했는데, 그의 간추린 프로필에 이 산의 동계등반이 올라와 있는 것으로도 그 위상을 짐작할 수 있겠다. 마침 데니스가 2월 말 다시 이 산을 온다고 하여 그와 만날 약속을 정해놓기도 했다.
이튿날 아침, 너무도 대단한 추위에 도저히 볕이 들기 전에는 침낭에서 고개를 내밀 수조차 없었다. 밤새 부들부들 떠는 것 밖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곱은 손으로 아침을 겨우 먹고 출발. 오늘 등반은 해가 종일 드는 꼬로나 서면 루트다. 오기 전 블라디미르 회장이 꼬로나 등반에 대해 “빠르면 여섯 시간 걸릴 것이다. 하지만 등반자의 컨디션과 눈 상태에 따라 달려있다”고 했다. 경사 약 40도 가량의 설벽은 크러스트가 잘 되어 있으면 쉽겠지만 때로는 허리까지 빠지는 눈에서 헤엄쳐 기어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우리는 정상 직하 베르그슈른트까지만 오르고 시간 상 하산을 결정해야만 했다. 도무지 추위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동계등반을 한 거지?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이 지역은 겨울 날씨가 며칠 혹은 몇 주를 주기로 혹한이 반복된다고 한다. 우리는 그중 가장 추웠을 때 찾은 것이었고, 우리가 가기 전과 내려온 뒤에 각각 다른 등반팀들이 산을 올랐다고 한다. 덜 추울 때는 우리나라 설악산 정도라고 하니, 이런 아쉬울 데가!
어쨌든 러시아 산꾼들이 비록 고도는 그리 높지 않아도 늘상 하는 등반이 이런 등반이니, 소련이 개방된 이후 히말라야로 진출해 보여준 고산에 대한 갈증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이곳에서 마주친 몇몇 러시아인들은 여전히 장비는 열악한 수준이었는데, 대단한 등반을 쓱쓱 해치우곤 한다. 이런 점에 대해 묻자 라첵의 산장지기는 “러시아인들은 겉보다는 속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결국 하루를 더 쉬고 이튿날 악사이 빙하 안쪽의 꼬로나 5, 6봉 및 베일리언바쉬(4601m) 등을 정찰하고는 베이스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 하산 중에 앞서가던 민규가 그만 히든크레바스에 빠졌다. 그를 구출하고 미련 없이 하산을 결정했다.
프리코리아! 멋진 이름 때문에 찾게 된 산. 등반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값진 경험을 안고 돌아간다. 그리고 누군가 다른 한국인이 북벽의 6급 루트를 오를 날을 고대한다. ⓜ
2010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산악회 프리코리아원정대
대 상 지 | 바쉬쉬케이 일루셴코루트(5A), 꼬로나(4860m) 서면루트(3A)
결 과 | 바쉬쉬케이 일루셴코루트 300m 진출, 꼬로나 4600m 진출
대 원 | 오영훈(97학번), 문민규(04학번)
일 정 | 2월 8일~20일
등반방식 | 알파인 등반
꼬로나 서면 루트를 등반 중인 문민규 대원. 크게 어려운 등반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 루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