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자리
도창회
지구란 땅덩이가 둥글다는데 둥그런 땅덩이 위에 무슨 구석자리가 있다던가. 구석자리는 늘 썰렁한, 그런 장소이던가.
옥상의 구석자리는 폐화분이 놓여있고, 부엌 구석자리에는 신 김치 독이 있고, 마루 밑 구석자리에는 털 빠진 똥개가 자리잡고, 마당 한구석에는 거름자리가, 변소간 구석자리는 똥장군이 놓여 있다.
그런가 하면 할아버지가 기거하는 사랑방 구석자리에는 요강단지가 차지하고, 책상 밑 구석에는 휴지통이 있고, 카센타 사무실의 구석자리는 늘 시다바리가 앉는 자리다. 그러니깐 별 볼일 없다 싶은 것들은 모두 구석자리로 밀려나 있다.
그리고 밭뙈기 구석자리에는 호박 심을 똥구덩이가 있고, 담장 밑 구석은 하수구가 자리하고, 난시장 구석자리에는 공중변소가 놓여 있다.
지하철 구석자리는 노숙자가 지키고, 그 노숙자의 눈구석에는 눈곱이 끼어 있고, 그람 몸의 맨 구석자리에는 배설기관이 놓여 있고, 그 배설구의 구석자리에는 치칠병이 돋아나 있다. 맨 지저분한 것들은 죄다 구석자리로 몰아 놓은 것이다.
전철칸 구석에 놓여 있는 경로석이 힘없고 썰렁한 곳이기는 마찬가지지만 구석자리라고 해서 다 꼭 그런 곳은 아니다. 때론 옹골질 때도 있다.
구강(口腔)의 맨 안쪽 구석에는 사랑니가 솟아 있고, 다락 안구석에는 꿀단지가 놓여 있고, 옷장 안 구석자리에는 보석함이 감춰져 있고, 책갈피 구석자리에는 달콤한 연애편지가 끼어 있고, 속주머니 안쪽 구석에는 삥땅을 꼽쳐 놓는다. 이렇게 깔죽하게 옹골찬 것들도 있지만 그러나 도둑놈의 마음구석에는 도둑놈의 심보가 들어 있어 소름 끼친다.
항용 우리가 살다가 보면 자리물림을 하게 된다. 앞자리에서 뒷자리로 물러나고, 뒷자리에서 다시 구석자리로 밀려나면 정말 살맛이 안 난가.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두시자리가 앞자리의 덕을 보고, 다시 뒷자리는 구석자리에다 덕을 뵈어 주는 것이다. 돌풍을 얻어맞을 때는 앞자리가 먼저일 테고, 그 뒷자리는 아무래도 그 다음이 될테다. 돌풍이 거세게 불 때는 구석자리만큼 안전한 장소도 없을 것이다. 지형상 구석자리란 언제나 뒷켠 반은 가리워져 있어 뒷걱정은 안해도 되는 곳이다. 그래서 바람 탈 기회가 적고 자리보존을 위해서는 무난한 장소가 되기도 한다.
잠간 시선을 안으로 돌려, 사무실의 구석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한번 관찰하여 보라.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구석자리에 앉은 사람은 어딘가 맹허니 순한 위인으로, 근 부면 받고, 안 주어도 아무 소리 않는 그런 무골호인형의 사람인 것 같다. 늘 헤벌쭉 입가에 웃음을 흘리며 혈색 한번 훤하게 밝은 사람이다. 호박덩이가 밭뙈기 구석자리에 처박혀 있다 싶어도 그 자리가 무탈했던지 구석자리의 호박이 때깔이 반지르르 곱다. 사실 구석자리가 궁색해 보여도 그 곳만큼 몸이 편하고, 마음이 여유로운 곳도 없다.
허기사 구석진 세월에 사는 인생이 무에 그리 편할까만 허나 마음먹기에 달려 있어, 적게 먹고 가늘은 똥을 누고자 하는 사람들은 일부러 외진 구석자리를 선호하는 것이다. 애시당초부터 미리 구석자리를 깔고 뭉개는 반편이도 있다. 연락선(連絡船)엘 승선하자마자 실내 구석자리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 바로 그런 종류의 사람일 것 같다. 사실 안온한 자리로 말하자면 구석자리가 바로 그 지존들의 보호석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면 망발일까?
나이를 먹어 구석자리로 밀리는 것이 어찌 늙은 노인뿐이랴. 서슬이 퍼렇던 애비장닭도 자식닭의 힘에 밀려 울타리 밑 구석자리로 몰리고, 철이 가 떨어진 낙엽이 바람에 밀려 구석자리로 몰린다. 권력도 쇠퇴하면 구석자리로 몰리고, 이면이나 사상도 묵고 낡으면 구석자리로 밀려나고, 세상만사 세월 속에 밀리지 않는 것이 어니 있던가. 구석자리가 외로워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구석자리의 차지가 가슴 시려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언젠가는 우리도 산골짝 어느 후미진 구석자리에 묻힐 몸이 아니던가.
허나 본시부터 구석자리에 전세를 든 것이 아니라면, 마루 밑 구석의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고, 빈털터리의 구석주머니에도 동전에 들 날이 있다는데, 혹 오래 비워 둔 서랍 속에 백만 냥짜리 채권증서 한 장이 나올지 뉘 알리. 구석자리를 눈여겨 살펴볼 일이다.
누군가가 구석자리가 편하게 느껴지면 갈 날이 멀지 않다고 말했던가. 그렇다면 구석자리가 부끄럽게 생각된다면 아직도 유한(有限) 의 날이 마감되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나는 때때로 전철칸에 올라 구석에 있는 경로석에 앉기를 한참 망설인다. 나의 이 망설임의 의미 속에는 ‘구석자리에 앉을 바에야 차라리 서서가겠다’ 는 고집 아닌 고집의 묘한 의지의 표현도 상당히 포함되어 있다고 하겠다. 다시 말한다면 내심 경로속의 구석자리가 부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하게 났던 것이다. 허나 구석자리의 차지는 내가 가고자 하거나 가기 싫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알 때야 철이 들까 부다.
‘구석자리’ 란 이 글제로 수필을 쓰면서 내 자신에게까지 온 과정을 새삼스레 반추해 보니 웃음이 난다. 허기사 우리 집 변소간 구석자리에는 여전히 똥장군이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