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오실 때를 의식하는 삶
로마서 13:11~14
찬송가 180장(하나님의 나팔 소리), 191장(내가 매일 기쁘게)
오늘 본문 말씀은 종말의 때를 의식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취지로 사도가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이 세 번에 걸쳐서 사도는 때의 긴박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1절에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라고 하였고, 11절 후반절에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고 하였으며, 12절에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연거푸 세 번에 걸쳐서 사도는 때와 시기가 다 찼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때라는 것은 주님이 오시는 재림의 날을 가리킵니다. 그 날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심판의 날이요 믿는 주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날입니다. 그래서 그 날은 믿는 성도들에게는 자유와 상급의 복된 날이요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는 심판과 저주의 슬픈 날이 될 것입니다.
갑자기 이렇게 사도가 주님의 재림의 그 날을 소환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은 로마서 12장과 13장의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의 삶에 대한 명령과 지침들이 바로 주님의 종말론적 심판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심판의 그 날이 반드시 도래하겠기에, 신자들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아감이 헛되지 않으며, 그 보상이 반드시 그 끝날에 주어질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런 보상도 없이 이 세상에서의 고생과 슬픔과 희생만 지불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도는 알려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과 13장에서 가르치는 바 성도가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우리 자신을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그 뜻을 따르고, 받은 바 은사들을 가지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겸손함과 충성됨으로 섬기고, 세상 사람들의 핍박자들을 만날 때 그들을 축복하고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갚으며, 세상의 공권력에 기꺼이 순종하며, 사랑으로 율법을 온전히 성취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반드시 주님의 날에 합당한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그 날에 주의 백성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실 것이요 핍박을 견딘 자들에게 영광의 면류관으로 씌워주실 것이며 선으로 악을 이긴 자들에게 복된 상을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확고한 종말론적 기대를 갖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윤리와 삶에 커다란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하여 계속하여 가르치시다가 갑자기 멈춰서 종말의 시기에 대하여 언급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지금까지 달려온 달음질을 멈추지 않고 더욱 힘을 내어 달려가도록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는 특히 주님의 재림이 매우 가깝기에 성도가 세상 가운데 살아가지만 세상의 삶의 방식인 육신의 일을 그만 두라고 말씀합니다. 주님 오시는 시기는 어둠을 뚫고 빛을 가져오는 새벽, 깰 때라고 비유하면서, 사람이 아침이 되면 잠옷을 벗고 단정하게 외출복을 갈아 입듯이 이제 어둠의 모든 일들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인다운 합당한 행실로 덧입자고 권면합니다. 낮 시간에 잠옷 입고 외출하는 사람이 없듯이, 주님 오실 때가 가까운 이 때에 옛 사람의 행실을 그대로 행하면서 주님 맞이하는 자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제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실이 그리스도의 모습을 온전히 본받아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초대 교부 시대가 마무리할 즈음에 혜성처럼 교회사에 등장한 어거스틴의 회심의 말씀으로 유명합니다. 어거스틴이 청년 시절 한편으로는 진리를 찾아 헤매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육신의 정욕에 이끌리면서, 이곳 저곳 이교의 가르침을 기웃거리면서 괴로워하는 중에 친구의 집 정원에서 마음의 고통을 느끼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때 어디선가 어린아이들이 함께 “집어 들고 읽으라”는 노랫소리가 계속 들려오더랍니다. 그래서 친구의 방에 들어가서 마침 사도 바울의 이 로마서 편지의 사본이 놓여져 있길래 그 글을 폈더니 바로 본문 말씀인 이 구절이 그의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말씀을 읽는 순간 어거스틴의 내면 세계에 있던 갈등과 의심은 사라져버렸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분명하고도 확실한 마음의 평강이 자리잡았습니다. 그 시간부터 그의 내면에 출렁이던 모든 정욕들이 다 시들어버렸고 영원에 대한 그의 갈망 속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때부터 온갖 이교에 대한 관심도 끊어지고 정욕을 추구하던 삶도 내려놓고 오직 그리스도를 향한 구도의 삶을 살기 시작했고 세례를 받고 성경에 깊이 사로잡혀 주의 종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의 깊은 신학적 탐색과 저작들로 인하여 교회는 그 후에 수많은 타락과 변질의 길을 걸어갔으나 종교 개혁 시기에 타락한 중세 교회가 돌아올 수 있는 기초를 쌓았습니다. 어거스틴의 은혜의 신학은 중세의 암울한 신학적 어둠을 밝히면서 교회가 다시 일어난 종교개혁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전체가 자다가 깰 때가 되었습니다. 밤이 ‘깊숙이 진행하여’ 이제 자다가 깨어날 아침이 가까워졌습니다. 곧 온 세상이 새롭게 될 날이 가까워진 것입니다. 오늘날 온 세상의 모든 자연 질서들이 크게 요동하면서 그 일을 날마다 증거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한 우리 각 사람들도 주님 만나뵐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 않습니까? 어제보다 오늘이 하루 더 우리가 주님을 만나게 될 날이 가까워진 것이 사실입니다. 벌써 은행잎이 노랗게 수북히 쌓여가고 있습니다. 또 한 해의 가을이 깊어가며 겨울이 코앞에 이르렀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게 주님 앞에 서서 계산하게 될 날이 하루 하루 한 계절 한 계절 한 해 두 해 가까이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주님 앞에 서게 될 그 날이 가까움을 기억하면서 육신에 속한 정욕의 일들을 다 내려놓고 오직 그리스도를 옷입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마음을 품고 주님의 성품을 온전히 닮아가며 주님의 뜻을 우리 삶 속에서 이루어가며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묵묵히 더 충성스럽게 감당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준비하는 중에 주님을 만나게 될 때에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사도의 권면대로, 우리도 주님 오실 때가 가까움을 기억하며, 머잖아 우리 각 사람이 주님 앞에 서게 될 그 날을 기억하면서 하루 하루 낮에와 같이 단정하게 살아가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