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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물리학은 언제까지고, 현대물리학은 언제 시작되었는지 그 시점을 분명하게 잘라 얘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학자들 간에 어느 정도 의견 일치는 있다. 대개 1900년을 기점으로 한다. 일부러 1세기로 끊어 연대를 정한 것은 아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그 시기에 고전역학의 체계가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뜨겁게 달궈진 물체에서 나오는 복사선의 스펙트럼은 고전역학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빛을 전달하는 매질이라고 알려졌던 에테르는 존재하지 않았고, 광전효과는 기존 빛의 파동론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빛과 주기율표에 들어 있는 원소들뿐이라고 믿어왔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엑스선과 각종 방사선이 발견되었다. 19세기 말은 이렇게 고전역학이 큰 내상을 입고 헤매던 시절이었고, 그와 함께 현대물리학의 탄생을 눈앞에 둔 폭풍전야와도 같은 시기였다. 폭풍은 여러 곳에서 몰려 들었다. 그 중 하나는 원자가 기본입자라는 원자설을 통째로 뒤엎는 톰슨의 원자설이었다.
돌턴의 원자설은 19세기 내내 100여 년간 그냥 “설”이었다.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에 나오는 모든 원소들이 다 제각각 그 원소들의 최소 단위인 원자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즉 원자들은 모두 서로 다르고, 각각이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기본입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원자의 종류도 원소의 수만큼 많았다. 그리스 시대에는 “물, 불, 흙, 공기”, 이렇게 4가지 원소로 모든 물질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소위 4원소설이다. 원자설은 4원소설에 비하면 이론적인 아름다움이 없다. 4원소설은 4개를 조합해 삼라만상을 만드는데 비해, 원자설은 매우 많은 원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알파벳과 한자의 차이라고 보면 되겠다. 물리학자는 태생부터 “환원주의자”다. 환원주의는 뜻이 잘 와 닿지 않는데, 영어로는 reductionism이라 한다. 복잡한 것들을 단순한 것, 기본적인 것으로 되돌려 설명하고자 하는 생각을 말한다. 환원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4원소설이 원자설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이론이다.
톰슨의 원자설은 2원소설이라 할 수 있으니 가히 혁명적이었다. 원자가 마치 건포도가 박혀있는 백설기처럼, 양의 전기를 가진 흰 떡과 같은 부분과 음의 전기를 갖는 건포도 같은 전자가 뭉쳐서 만들어졌다는 설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주기율표에 나오는 모든 원자들을 흰 떡과 건포도의 갯수로 다 설명할 수 있다. 즉 흰 떡을 적당히 떼내고 건포도를 한 개 박으면 수소, 건포도 2개면 헬륨, 3개면 리튬이라는 식이다. 이렇게 모든 원소를 2개의 기본 성분으로 나눌 수 있다는 2원소설이니 매우 환원주의적인 가설이었다.
톰슨의 원자설은 사실 그가 발견한 “전자”가 있었기 때문에 만들어 질 수 있었다. 전자의 발견이야 말로 인류가 원자의 존재를 실체적으로 접근하게 된 최초의 사건이고, 물질의 구성성분을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한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세상을 바꾼 위대한 실험의 첫 이야기로 톰슨의 음극선 실험을 꺼내 볼까 한다.
톰슨의 음극선 실험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특히 전자기력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톰슨의 실험은 음극선이 전기장과 자기장 속에 놓일 때, 그 진행 방향이 꺾이는 것을 관찰하고 그로부터 전자의 존재를 밝혀 낸 실험이다. 즉 전자기력이 톰슨의 실험에 밑받침이 되는 원리이기 때문에 이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리를 배울 때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역학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중력장 내에서의 운동 문제다. 그 중에서 제일 쉬운 문제는 자유낙하다. “높이가 h인 건물 옥상에서 질량 m인 공을 가만히 떨어뜨리면 땅바닥에 몇 초 뒤에 도달하겠는가”라는 식의 문제다. 문제를 보고 앞이 막막한 분도 있을 것이고, 너무 쉽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문제가 좀 이상하다고 느꼈다면, 직관이 매우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여기서 “질량 m”은 함정이기 때문이다. 갈릴레오의 낙하실험을 기억한다면, 답에 “m”이 포함되면 안 된다.
이때 “왜요?”라고 질문하는 학생이 있으면 그는 분명 둘 중 하나다. 하나는 물리 실력이 모자라다기 보다는 그냥 생각하기 싫어하는 학생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물리 실력이 너무 뛰어나 이미 이 문제를 지구와 공의 이체(二體) 충돌 문제로 생각해서다. 언젠가 한 번은 이 문제를 풀어주기 위해, “공은 t초 동안 가속도 g를 받으므로, t초가 지나면 속도가 gt가 됩니다”,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데, “어려워요”하는 학생이 있었다. 그래서 잠시 뒤에 말을 바꿔, “시간당 5000원씩 받는 알바를 하면, t시간 후에는 5000t의 돈을 벌게 됩니다” 하니까, “당연하지요”라고 하였다. 같은 수학이라도 사용하는 예에 따라 관심의 정도는 달라진다.
사실 음극에서 출발한 전자가 양극으로 달려가는 과정은 자유낙하와 똑같다. 물체가 중력을 받아 가속된다면 전하는 전기력에 의해 가속된다. 중력은 질량과 중력장의 크기에 비례하여 F=mg라고 표현한다. 지표면에서 g는 9.8m/s2의 값을 갖는데, 우리가 잘 아는 뉴턴의 운동법칙 F=ma와 비교하면 g는 가속도에 해당하고, 중력가속도라고 한다. 이는 곧 지구 중력장 안에서는 모든 물체가 매초 9.8m/s만큼 속도가 빨라진다는 이야기다. 전기력은 전하(q)와 전기장의 크기(E)에 비례하여 F=qE을 받는 것만, 중력과 다르다. 중력장에서는 F=mg의 힘을 받는 것과 비교하면, 전기장에서는 가속도가 인 자유낙하로 보면 될 것이다. 주의할 것은 전기장의 방향은 양극에서 음극을 향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고, 전자의 전하는 음의 부호를 가지고 있어, 전자가 받는 힘의 방향은 전기장의 반대 방향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전자는 자유낙하와 같이 양극에 도달하면서 점점 더 속도가 빨라진다. 음극관은 그래서 미니 가속기이기도 하다.
양극으로 달려가는 전자의 방향에 수직으로 다른 전기장을 하나 더 걸어주면 어떻게 될까? 이 문제는 쉽다. 이 때는 운동 방향에 수직으로 걸린 전기장에 의해 전자가 또 힘을 받게 되므로, 전자가 원래 궤도를 벗어나 옆으로 휘게 된다. 따라서 수직으로 걸린 전기장의 방향과 전자가 꺾어지는 방향만 비교해 보면 간단히 전자의 전하가 양인지 음인지 결정할 수 있다. 전기장 방향으로 꺾이면 양의 전하를 가진 것이고, 반대로 꺾이면 음의 전하를 가진 것이다.
그럼, 전기장 대신에 자기장을 걸어주면 어떻게 될까? 이 문제는 앞에서 전기장을 더한 것 보다 조금 더 생각을 해야 한다. 도선에 전류를 흘려주면 도선 주위로 자기장이 생겨난다. 이를 암페어의 법칙이라 한다. 생겨난 자기장의 방향은 엄지 손가락을 전류 방향을 향하게 하고 오른손으로 도선을 감싸쥘 때, 나머지 4개의 손가락이 뻗는 방향으로 기억하면 쉽다.
자기장에 전류가 흐르는 도선이 있을 때, 도선이 받는 힘의 방향은 암페어의 오른손 법칙으로 알 수 있다. 엄지 손가락을 전류(I) 방향으로 향하고 오른손으로 도선을 감아 쥐면, 네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이 자기장(B)의 방향이 된다. <출처: (오른쪽) (cc) Jfmelero at wikimedia.org> |
전류가 흐르는 도선이 자기장에 놓이게 되면 어떻게 될지 한번 생각해 보자. 아래 그림과 같이 외부 자기장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한다고 생각하자. 또 도선에 흐르는 전류 방향은 지면에서 독자의 눈을 향한다고 하자. 이럴 경우 도선 주위의 자기장은 그림과 같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원형으로 생긴다. 외부 자기장과 도선의 의해 생겨난 자기장을 합쳐보면, 그림의 오른쪽과 같이 도선의 윗부분은 외부 자기장과 도선에 의한 자기장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어, 자기장이 강해진다. 반대로 아래 부분은 외부 자기장과 도선에 의한 자기장의 방향이 반대여서, 자기장이 약해진다.
자기장이 강하다는 말은 자기력선이 조밀하다는 것이고, 자기장이 약하다는 것은 자기력선이 듬성듬성 있다는 말이다. 당연히 도선 입장에서는 아래로 움직이고 싶을 것이다. 그래야 윗부분의 조밀한 자기력선을 좀 풀어 줄 수 있으니까. 다른 말로 도선이 받는 힘(F=BIL, 힘 = 자기장의 세기 x 전류 x 도선의 길이)은 자기장에 비례하기 때문에, 도선을 아래로 미는 힘이 도선을 위로 밀어 올리는 힘보다 크게 되어, 둘을 합치면 결국 아래 방향으로 힘을 받게 되는 것이다.
도선을 없애고 전자가 흐른다고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대신 전자는 전하가 마이너스 값을 가지므로, 전자는 독자의 눈으로부터 지면 속으로 들어가는 방향으로 생각하면 같은 조건이 된다. 그럼 그 힘은 다. 왜냐하면, F=BIL에서 전류(단위시간당 흐르는 전하량)에 도선의 길이(L)를 곱한 양은 곧 q의 전하량을 가진 입자가 속도 v로 움직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전기장과 자기장이 둘 다 존재하는 경우에는 어떨까? 전기장은 자신의 방향으로 힘을 주고, 자기장은 입자의 운동 방향과 자신과의 수직 방향으로 힘을 준다. 각기 별개이니 그냥 더하면 된다. 그래서 라 쓰면 되겠다. 다만 전기장의 방향, 자기장의 방향, 하전입자의 운동방향 등을 고려해야 하므로 이 식은 3차원 방향을 다 고려한 벡터식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식을 제대로 쓰면
이 되고, 힘의 방향은 벡터가 알아서 결정해 준다. 바로 이 힘을 로렌츠 힘이라 부른다. 로렌츠의 힘은 톰슨의 음극관 실험뿐 아니라, 브라운관 TV의 원리요, 사이클로트론 가속기의 근본 원리다. 결론적으로 로렌츠의 힘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전하를 가진 입자들의 운동을 이해할 수 없다.
마그누스 효과란 것이 있다. 공에 스핀을 주면 운동 방향에 수직이 되는 방향으로 힘이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축구에서 바나나킥이 휘는 원리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한다. 공이 회전하게 되면, 공 주변의 공기도 따라 돈다. 공이 직선운동과 회전운동을 함께 하게 되면 공 주변 공기 흐름의 속도에 비대칭이 생긴다. 베르누이 정리에 의하면, 유체의 속도가 빠른 쪽의 압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아래 그림과 같이 공이 회전하게 되면, 공의 윗부분은 압력이 높아지고, 공의 아래 부분은 압력이 낮아진다. 당연히 압력이 높은 쪽이 압력이 낮은 쪽으로 공을 밀어 낼 것이고, 공은 아래로 힘을 받게 된다.
공의 회전 방향에 따라 공 주변 공기 흐름의 속도가 달라진다. 그림에서 바람이 속도 v로 불고 있을 때, 공을 그림과 같은 방향으로 돌리면, 공의 아래쪽 공기 흐름이 위쪽에 비해 빨라, 공의 위아래에 압력차가 생긴다. 공의 아래쪽으로 힘 F가 작용하여, 공이 아래로 휘어진다.
물리학자들은 비유를 좋아한다. 서로 다른 두 개의 물리 문제가 비슷한 형태의 모습을 갖게 되면 서로를 비교해가며 혹시 뭔가 공통되는 물리학이 있는지 알아내고 싶어 한다. 마그누스 효과에서 공이 정지하고 대신 바람이 불어오는 것으로 생각해 보면, 공기의 흐름이 외부 자기장의 방향이고, 공의 회전에 의해 생긴 공기 흐름을, 도선에 의해 생긴 자기장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러면 마그누스 효과와 로렌츠 힘의 그림은 매우 비슷해진다. 다만 힘의 방향은 반대다. 로렌츠 힘은 자기장의 크기에 비례하는 반면, 압력은 공기의 속도에 반비례라서 그렇다. 실망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마그누스의 힘과 로렌츠 힘은 애초에 아무 관계가 없는 힘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