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바오로 성당 (San Paolo Fuori le Mura)
사도 바오로의 기념 성당은 당시 교황이었던 성 실베스테르 1세가 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 제의하여 이루어졌으며, 사도 베드로의 무덤 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념 대성당을 세우고 축성하던 날인 324년 11월 18일, 이곳 사도 바오로의 무덤 위에도 콘스탄티누스 기념 대성당보다는 규모가 작았지만, 역시 기념 성당을 세워 같은 날 동시에 교황의 축성을 받았다고 한다.
성 바오로 성당은 1823년 대 화재로 말미암아 대성당 건물은 물론이고, 내부에 그려져 있던 벽화를 비롯하여 모자이크 등 역사적인 보물은 거의 다 손실 되었거나 파괴되었다.
비오 7세의 후임 교황인 레오 12세는 즉위하자 곧 바오로 대성당의 재건을 위해 전 세계 교회에 특별 요청을 하였다.
원래 대성당의 설계도대로 복원하였고, 1854년에 교황 비오 9세가 축성하였다.
원래의 대성당이 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 전과 똑같이 건축된 것으로 길이는 132미터, 폭 30미터로서, 로마에서는 베드로 대성당 다음으로 규모가 크며, 전 세계 10대 대성당 중의 하나이다.
로마의 4대 대성전 중의 하나로 사도 바오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당.
이탈리아 로마. 395년. 콘스탄티누스 1세. 전승에 따르면, 사도 바오로는 로마 남서쪽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앗 아쿠아스 살비아스(Ad Aquas Salvias)’라는 장소에서 참수되어 그곳에서 가까운 오스티엔 가(Via Ostiensis)에 묻혔다고 한다.
성 바오로 사도 무덤위의 제대
그 후 무덤 위에 작은 성당이 세워졌고,
324년에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헐리고 그 자리에 기념 성당이 건축된 것이 바로 바오로 대성당이다.
산 피에트로 대성당(베드로 대성전)을 모델로 한 이 성전은 발렌티니아누스 2세 황제에 의해 386년부터 공사가 시작되어 그의 후계자인 호노리우스 황제가 395년에 완성하였다.
당시 이 성전은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성당 가운데 하나였다.
8세기경 성가 봉사를 위해 베네딕투스회가 대성당 구내에 설립되었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교황 요한 8세(872~882)가 이교도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880년 대성당을 요새화한 후 이 건물은 ‘요한의 도시’란 의미의 ‘요하나폴리스(Johanapolis)’로 불렸다.
1823년 대화재로 완전히 파괴된 후 레오 12세 교황에 의해 즉시 원래의 모습대로 재건축되어1854년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축성되었다.
전형적인 바실리카식 성당인 바오로 대성당의 정면 외벽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맨 위에는 바오로와 베드로의 호위를 받고 있는 예수의 모습이, 가운데는 네 줄기 강물이 12마리의 양들에게 흘러가서 목을 축이는 장면이, 맨 아래에는 4명의 예언자 모습이 모자이크되어 있다.
정원에는 칼을 든 바오로 사도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바오로 사도의 무덤 위에 있는 교황 제대 위의 감실은 1285년에 A.di 캄비오가 제작한 최고의 걸작품이다.
그리고 1823년 대화재에도 손상되지 않은 감실 위의 승리의 아치 뒤에 있는 앱스(apse, 後陣)의 모자이크는
그리스도와 베드로, 바오로 및 다른 제자들이 그려진 5세기의 작품이다.
중앙제대의 천장에는 아주 커다란 모자이크화가 있는데, 전능자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옥좌에 앉으셔서 왼쪽 손에 성서를 펴시고 오른손으로 강복하시는 모습이었다.
전능자 구세주 그리스도 가까이 옆에는 다른 성당에서 4복음사가를 그려 넣는 것과는 달리베드로와 안드레아등 예수님의 초기 제자들을 그려 넣은 것 같았다.
그런데 예수님의 오른쪽 발아래 강보에 싸인 어린 아기가 있는데 이 성당을 수리한
교황 호노리오 3세(1223년 11월 29일. 작은형제회 회칙을 인준하신 분)가 자신을 어린 아기로 그려 넣었다고 한다.
옥좌 밑에는 그리스식 십자가와 예수님의 고난을 상징하는 세 개의 못과 가시관이 그려져 있었다.
황금색의 크고 화려하고 장엄한 모자이크 천장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