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보는 명품시조 98,「할머니 유모차」
신웅순(시인․평론가․중부대명예교수)
중심이 빠져나가 ㄱ자로 굽은 몸
해 묵은 기침으로 밤새 시달리다가
하르르, 꽃 지는 길목에서
봄날을 끌고 간다.
-공화순의「할머니 유모차」
시골 할머니들은 몸이 ㄱ자로 굽었다. 평생 쭈그리고 일해 생긴 허리병이다. 병원에도 가지 않는다. 굽은 채로 굳어버렸다.
중심이 빠져나갔다. 굽은 몸 해 묵은 기침으로 밤새도록 시달렸다. 아침이면 유모차에 몸을 얹어 일하러 나가신다. 늦은 봄이다. 하르르 꽃 지는 길목에서 할머니는 오늘도 봄날을 끌고 간다.
유모차는 아기를 태우는 차이다. 그런데 빈 유모차를 할머니가 끌고 간다. 농촌 풍경이다. 도시에서는 유모차에 강아지를 태우고 간다. 도시 풍경이다. 시골에선 노인들만 남았으니 빈 유모차를 끌고 가고, 도시에선 아기를 낳지 않으니 강아지를 태우고 간다. 할머니와 강아지, 사람과 동물, 누가 먼저인가. 이것이 현실이다. 노인 인구는 자꾸만 늘어가고 젊은 인구는 자꾸만 줄어든다. 왜 이리도 시대가 분주하게 돌아가는 것인가.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오건만 하르르 꽃 지는 봄날을 끌고 가는 할머니. 아이가 없어 아이를 태우고 갈 수 없는 이 슬픈 현실. 봄날을 끌고 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왜 이리도 마음 아프고 짠 한 것인가.
시대를 증언한 이 사진 한 장, 콘테스트에의 대상감이다. 전혀 군말이 없다. 시조는 절제이다. 사랑도 그리움도, 언어도 절제이다. 살면서 절제를 못해 그르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시조도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우리는 시조 삼장에서 삶을 배워야하고 삶에서 시조 또한 배워야한다.
현대 시조가 자꾸만 길어지고 있다. 아무리 할 말이 많다 한들 시조는 시조이어야하지 않겠나. ‘하르르 꽃 지는 길목에서/봄날을 끌고 간다’ 이 종장 한 구절이 계절을 품었고 시대를 품었다. 세상을 품는 시조, 시조는 이런 것이 아닐까.
-주간한국문학신문 2023.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