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카테고리 이동 kimkwangsooblo 검색 MY메뉴 열기 사진 자기성찰(自己省察)(586회) 프로필 별명없음 2018. 8. 2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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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성찰(自己省察)(586회)
오늘도 비가 온다고 예보하고 있다. 전에는 비 오면 친구 만나 소주 한 잔에 세상을 주름잡기도 하였지, 친구의 흉도 하면서 평소의 먹은 마음 취중에 표현도 하는 날이다. 일선에서 은퇴를 하게 되면 조용히 사색도 하면서 지난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그때는 정말로 천방지축이었다. 좌충우돌하면서 세상이 돈짝만 하게 보일 때도 있었다. 무엇이 무서운지 두려운지도 모르고 하늘 높은 줄도 모르고 옳고 그름은 안중에도 없었다. 들판에 날뛰는 망아지였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감나무에 감꽃이 피었다가 떨어지고 세파란 풋감이 맺히는 시기였을 것이다.
콧물 흘리면서 6.25전쟁이 무엇인지도 알바 없었고 이곳저곳 부모님 등에 업혀 피난 다니던 암울하였던 시절에 철수와 바둑이도 배웠다. 새로운 낯선 곳에서 새로운 친구도 사귀면서 동심을 키우기도 하였다. 천성이 놀기를 좋아하였고 지기 싫어하는 성정으로 학생의 신분을 일탈할 때도 있어 부모님의 걱정을 끼치기고 하였다. 매일매일 악동(惡童)이 되다 보니 나를 싫어하는 친구들도 늘어나고 무서워하는 친구들도 나타났다. 문제의 학생이 되어갔다. 어른들의 흡연이 멋이 있어 보였고 흡연에 매료되어 친구의 권유로 담배를 배워 피우기도 하였다. 상급생이 되면서 공부한다는 명목으로 친구와 산중 절간도 찾기도 하였다. 시가지(市街地)는 전쟁의 상처로 여기저기에 흔적을 바라보면서 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성장하였다. 나중에 절박함을 알고 공부를 하였지만 기초가 없는 상태에 아둔한 머리로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 번의 도전에 실패를 하고 보니 그때야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하였지만 세월은 나를 위하여 존재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라고 하였다. 절망감을 실제로 느끼는 때였는데 그 기간이 좀 더 길었다면 참담한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었다는 회상이 되기도 한다. 마침 고통스러울 때에 누구나 모두 가는 고된 훈련을 받고 새로운 생활에 익숙하여갔다. 이곳도 만만한 곳은 아니었다. 자유분방(自由奔放) 한 생활을 접고 엄격한 규율(規律)이 나를 또 괴롭히기 시작하였다.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과 하라는 것만 존재하는 곳이다.
이곳저곳에서 포 소리에 잠 못 이룬 밤도 있었고 야간 경비 설 때 도망을 꿈꾸기도 하였다. 꿈을 함께 키우든 친구들도 내가 이곳에 있는 줄 알고 찾아와 만나게 되었다. 생활에 점점 익숙해지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놀랐다. 세월이 약이 되어가는 시간들이었다. 월남 파병이 있던 때라 나도 지원할까 여러 번 망설이기도 하였다. 반복되는 날밤들은 또 다른 나를 한 단계 성장하게 하였다. 집으로 무사히 돌아와 기쁨도 잠시 아버님이 마련하신 새로운 터전으로 집에 온 지 사흘 만에 찾았다. 옛 고사에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가 생각나게 하였다. 아버님께서 고향에 두면 잘못될 것을 염려하여 수부일천지교(洙父一遷之敎)를 하셨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이렇게 항상 덜된 자식으로 불효로 경천하(敬天下)에서 살고 있다니 감사하여야 할 것이다. 제2의 인생의 문이 활짝 열렸다. 배운 것 일천하고 가진 것 없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고 인정이 넘쳐나는 곳에 온 지도 내년이면 50년이 되는 해가 된다. 25살 때 왔으니 많은 세월이 흘렀다.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았다. 크고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나 자신을 수시로 성찰하면서 부족한 부분이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 보충하기를 생활화하였다. 아름다운 고장에서 일터도 찾게 되었고 천직으로 알고 열심히 36년간이나 나를 키워준 곳이다. 나와 같이 동고동락(同苦同樂) 하였던 하늘같은 선배님들 그리고 또래의 동료님들, 받쳐주는 후배님들이 나의 인적 자산이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어찌 오늘 내가 여기에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할 때면 너무나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5.16혁명 정부를 바라보았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산림 10개년 계획들 새마을운동에 직접 종사하였으며, 문세광에 의하여 육영수 여사님의 시해 사건을 보면서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마음 졸이기도 하였다. 김재규의 하극상(下剋上)으로 박 대통령 저격사건도 보았다. 양김들은 마치 자기 세상이 온 듯 80년의 봄을 노래하면서 자유를 넘어 방종에 나라는 무질서의 극치를 보다 못한 군인들이 전면에 등장하였다. 그들은 사회질서를 바로잡고 범법자들을 색출하여 사회 안정에 최우선 하였다. 제5공화국 군부독재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소요사태를 증폭시킨 가운데 계엄령이 선포되고 이를 빌미로 5.18이라는 폭동인지 항거인지 민주화인지 아직까지 정리되지 않는 채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이 남아있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통합은 없다고들 평가한다.
제5공화국은 민생을 안정시키고 경제를 발전시켜 민초들의 삶이 어느 때보다도 안정되었다고 기억된다. 민주화라는 가면을 뒤집어쓴 종북 주의자들이 직선을 외치면서 6.29선을 이끌어 내기도 하였다. 양김 축의 하나였든 김영삼은 노태우와 합당에 성공을 하고 문민정부 노태우 대통령이 탄생하였다. 단군 이래 처음으로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세계만방에 한강의 기적을 알리게 되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나머지는 다음 기회에 또 이야기하기로 하였다. 나는 무엇인가. 그 어려웠던 국가 발전 단계에서 나는 무슨 일을 하였는지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돌아보았다. 몇 날 몇 밤을 이야기하여도 다 못할 일들이지만 내가 보고 듣고 겪으면서 느낀 대로 가감 없이 두서없이 좁은 지면을 활용하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