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어제 서목사님 내외분과 귀한 교제의 시간을 가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신실하심은 끝이 없습니다.
일본에 뿌려진 복음과 생명의 은혜가 어떻게 흘러갈지 기대가 됩니다.
그 씨앗이 된 가정에 복을 내려주시고,
이 가정을 통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오늘, 대구로 돌아갑니다.
보통 때보다 하루를 더 머물렀어도 예진이의 아쉬움은 여전합니다.
덤덤하지 않고 오밀조밀한 사랑의 관계가 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사돈과 함께 하는 점심이 어려운 자리가 아니라, 유쾌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말씀을 받아먹음으로 오늘도 제 영혼에 생명이 넘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
2. 지식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잘못 가느니라
3.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4. 재물은 많은 친구를 더하게 하나 가난한즉 친구가 끊어지느니라
5. 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하는 자도 피하지 못하리라
6.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
7. 가난한 자는 그의 형제들에게도 미움을 받거든 하물며 친구야 그를 멀리 하지 아니하겠느냐 따라가며 말하려 할지라도 그들이 없어졌으리라
8.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얻느니라
9. 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뱉는 자는 망할 것이니라
10. 미련한 자가 사치하는 것이 적당하지 못하거든 하물며 종이 방백을 다스림이랴
11.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12. 왕의 노함은 사자의 부르짖음 같고 그의 은택은 풀 위의 이슬 같으니라
13. 미련한 아들은 그의 아비의 재앙이요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
14.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15.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태만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
16. 계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지키거니와 자기의 행실을 삼가지 아니하는 자는 죽으리라
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본문 주해)
1절 : “거짓말을 하며 미련하게 사는 사람보다는, 가난해도 흠 없이 사는 사람이 낫다.”(새번역)
성실한 가난한 자보다는 거짓되어도 부자가 되기를 더 원하는 세상이다.
이 세상은 진리의 세상이 아니니, 하나님의 말씀과 대치된다.
2~3절 : “지식이 없는 열심은 좋은 것이라 할 수 없고, 너무 서둘러도 발을 헛디딘다.
사람은 미련해서 스스로 길을 잘못 들고도, 마음 속으로 주님을 원망한다.”(새번역)
인간은 ‘소원’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가지 욕구를 가지고, 세상은 자아실현을 부추긴다.
그러나 참된 지식이 빠진 자아실현은 죄가 된다.
참된 지식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다.
지식이 없는 소원을 가지고 급하게 이루고자 하였기에 자기 길이 굽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어려움이 닥치니 그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는 것이다.
이는 아담의 타락으로 시작된 증세이다. 아담은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고는 회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준 이 여자가 먹게 하였다고 핑계를 댐으로 결국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다.
4, 6~7절 : “재물은 친구를 많이 모으나, 궁핍하면 친구도 떠난다.”(새번역)
“너그럽게 주는 사람에게는 은혜 입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고, 선물을 잘 주는 사람에게는 모두가 친구이다.
가난하면 친척도 그를 싫어하는데, 하물며 친구가 그를 멀리하지 않겠느냐? 뒤따라가며 말을 붙이려 하여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새번역)
재물에 대한 내용이다.
세상 속에서 부자 주변에는 사람이 모이고, 가난하여지면 사람이 떠난다.
예수님은 십자가 사건은 주님께서 가장 가난하여진 사건이다.
오병이어 때 주님 곁에 모여든 사람들이 영생의 양식을 말할 때 다 흩어진다.
오늘날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5, 9절 : “거짓 증인은 벌을 피할 수 없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벌을 피할 길이 없다.”(새번역)
“거짓 증인은 벌을 피할 수 없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망하고 만다.”(새번역)
세상의 법정에서도 거짓 증언을 하면 벌을 받는다.
하나님 앞에서 거짓 증언은 더한 저주를 받는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거짓 증언이란, 온갖 미사여구를 사용하여 십자가를 가리는 인간의 말로서 사람을 기쁘게 하는 다른 복음을 가리킨다.
8절 : “지혜를 얻는 사람은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명철을 지키는 사람은 복을 얻는다.”(새번역)
참된 지혜와 명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고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이며,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알고 믿는 사람이 참된 지식의 사람이요, 자기 영혼을 사랑하는 자이다.
10절 : “미련한 사람이 사치스럽게 사는 것도 마땅하지 않은데, 하물며 종이 고관들을 다스리는 것이랴?”(새번역)
성실한 종이 주인의 총애를 받아 높아진 이야기가 아니라, 반역하여 주인의 자리를 빼앗은 종에 대한 말씀이다.
이러한 일은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세상에 일어나는 이런 일들이 견딜 수 없는 일이라면, 창조주를 반역한 인간은 어떠할까?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으로서 매일 분노하시고 심판을 준비해 두셨다. 그런데도 인간은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을 모르기에 하는 짓이라는 것이 악한 생각에서 나오는 악한 행위이다.
남을 속이기 위하여 웅덩이를 팠지만 그것에 자신이 빠지는 것이 여호와의 심판이다.
11절 :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은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은 그의 영광이다.”(새번역)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된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맛본 사람만이 노하기를 더디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슬기로움은 그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맛본 결과이기에 하나님의 슬기로움이다.
사람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도 허물을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만이 상대방의 허물도 덮어줄 수가 있는 것이다.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허물을 덮어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이다.
12절 : “왕의 분노는 사자가 소리지르는 것과 같고, 그의 은혜는 풀 위에 내리는 이슬과 같다.”(새번역)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을 대리하는 자이다.
왕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다스린다면 정당한 분노를 발해야 하지만 은혜도 베풀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왕이 타락하게 되면 분노와 은혜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니 그 괴로움을 백성들이 고스란히 당하는 것이다.
13절 : “미련한 아들은 아버지에게 파멸을 가져다 주고, 다투기를 잘하는 아내는 새는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과 같다.”(새번역)
미련한 아들을 둔 아버지, 다투기를 잘하는 아내를 둔 남편은 괴로울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미련한 아들과 다투기를 잘하는 아내를 둔 분이시다.
하나님은 늘 반역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이시며, 늘 바람피우는 이스라엘의 남편이시기 때문이다.
14절 :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이지만, 슬기로운 아내는 주님께서 주신다.”(새번역)
자신이 어떤 죄인인지 알고 그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가 슬기로운 사람이다, 그가 역시, 자신이 어떤 죄인인지 알고 그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여자를 만났다면 그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은 것이다.
15절 : “게으른 사람은 깊은 잠에 빠지고, 나태한 사람은 굶주릴 것이다.”(새번역)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살후3:10)
“또 그들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 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 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딤전5:13~14)
16절 :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제 목숨을 지키지만, 자기 행실을 주의하지 않는 사람은 죽는다.”(새번역)
계명을 지킨다는 말씀은 문자대로 보면 율법을 지킨다는 의미로 보인다.
그러나 모든 계명을 완성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자기 목숨을 지키는 것이다.
17절 : “가난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주님께 꾸어드리는 것이니, 주님께서 그 선행을 넉넉하게 갚아 주신다.”(새번역)
부요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 그것은 하늘의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섬겨주신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가 믿음에 부요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주님의 은혜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단지 물질만이 아니라, 복음에 목말라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은혜를 나누는 가장 귀한 일이다.
(나의 묵상)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11절)
노하기를 더디 한다는 것은 ‘오래 참는다’는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나는 오래 참지 못한다.
즉시 평가하고 즉시 화를 낸다.
그리고 나의 그 판단이 정확하다고 스스로 믿으니, 내가 분을 내는 것도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말씀을 알아가면서 주님의 오래 참으심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을 대하시는 것도 그러하시고, 나의 구원을 이루심도 그러하시고, 구원받은 자였어도 내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오래 참아주시는 주님의 은혜는 끝이 없었다.
본인은 그 사랑을 받았으면서, 남들에게는 너무도 팍팍하게 구니, 나야말로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자로 백 데나리온 빚진 자의 멱살을 잡는(마18:23~35) 자였다.
사랑은 오래 참고(고전13:4).....
오래 참음은 내게는 전혀 없는 주님의 속성이요, 사랑의 속성이다.
허물을 용서한다는 것도 그렇다.
허물을 덮어주는 것보다 허물을 들추는 것이 얼마나 더 고소한가 말이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잠18:8)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여 주셨다는 것은 내 죄의 허물을 덮어주신 것이다.
그 어떤 것으로도 정결하게 하지 못하는 나의 죄와 부정성을 십자가 보혈로 덮어 주신 것이다.
그 허물의 덮음의 은혜를 입고도 남의 허물을 들추는 것이 그렇게도 맛있고 고소했다. 더 기가 찬 것은 주님의 은혜를 알게 되니 대놓고 하지는 못하고 더 교묘하게 헐뜯는 자가 되는 것이다.
참 가증스럽다.
전에는 이러한 은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나 자신을 깨달아도 그저 한숨을 쉬다가 ‘다 그렇게 사는 거지’하고 나름 합리화하며 잊으려 했다.
이제는 그렇게 연약하고 또 가증스러운 나 자신을 말씀을 통해 매일 보면서 주님께 나를 의탁한다.
그것은 주님의 십자가에 연합되는 것이다.
십자가야말로 오래 참으심과 허물 덮어주심의 정수이니, 그에 연합되기를 원한다.
급하게 솟는 분노를 십자가에 못 박고, 마음으로 칼을 가는 것도 십자가에 못 박는다. 맛있는 음식처럼 즐거운, 허물 들추기도 십자가에 못 박으며, 성령께서 나를 주관하여 주시길 기도하는 것이다.
오늘도 주님의 풍성한 잔치상에 앉아 먹고 마시니 감사가 넘친다.
(묵상 기도)
주님,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고 화를 내고 헐뜯기만 했던 저를 용서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죄와 부정성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저를 괴롭히지만
더 이상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애통하게 여기며 십자가 앞으로 달려갑니다.
주님의 보혈로 날마다, 순간마다 덮어주옵소서.
온전히 주님만 의지하며 나아가오니 사랑이 풍성한 자를 꿈꿔봅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