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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사고 고의 의심” AI 보험조사관이 경고등 켰다
[토요이슈]1조 보험사기 잡는 ‘AI 머신러닝’
보험사기 갈수록 지능적-조직적… 업계, 잇달아 AI 도입해 대응
신고 들어오면 사고 이력 검색… 사회연결망 뒤져 공모 밝혀내
백내장 수술 많은 병원 분석… 브로커 역할 모집인 파악하기도
《갈수록 교묘해지는 보험사기를 인공지능(AI)이 잡는다. 방대한 보험 청구 데이터를 분석해 인간이 찾지 못하는 보험사기 정황을 밝혀낸다. 보험사들이 앞다퉈 도입하고 있는 ‘AI 보험사기 탐지 시스템’에 대해 알아봤다.》
보험사기 잡아내는 ‘AI 조사관’
2020년 7월 7일 오후 4시 30분. 대구 동구 주택가 골목길에서 후진하던 차량이 지나가던 오토바이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차량 운전자 A 씨(29)는 보험사인 현대해상에 연락해 “후진 중에 오토바이를 미처 보지 못하고 사고를 냈다”고 말했다. 오토바이 운전자 B 씨(33)가 부상을 당한 데다 오토바이도 크게 파손돼 대인 및 대물 보상 처리가 필요한 사안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사고 담당 조사관들에게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고의 사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공지능(AI)이 보낸 경고 알림이었다. AI 기반의 보험사기 탐지 시스템 ‘Hi-FDS’가 A 씨와 B 씨를 ‘고의 사고 고위험군’으로 분류해 알려온 것이다.
AI는 두 사람의 사고 이력을 분석해 2015년 6월 대구 달성군에서 발생한 자동차 사고 때 이들이 같은 차에 타고 있던 지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AI는 두 사람이 연루된 자동차 사고를 전부 찾아내 사회연결망분석(SNA)에 나섰다. B 씨와 접촉 사고가 났던 C 씨(33)가 몇 달 뒤 A 씨와 함께 차량에 타고 있다가 사고가 난 것을 파악했다. 이런 식으로 연결된 사람은 9명이었다.
현대해상은 대구강북경찰서에 이들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9명이 고의로 일으킨 자동차 사고만 8건, 이들이 현대해상에서 타낸 보험금은 1700만 원이었다. 결국 이 일당은 대구지방법원에 기소돼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으로 지난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갈수록 지능화, 조직화되고 있는 보험사기에 대응하기 위해 보험사들이 AI를 앞세운 디지털 탐지 시스템을 잇달아 도입하고 있다. 연간 보험사기로 적발되는 사람이 10만 명에 육박한 가운데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보험사기를 적발하고 미리 예측하는 ‘AI 조사관’이 사기를 획기적으로 줄여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 “AI는 보험사기 걸러내는 고성능 깔때기”
최근 보험사들이 앞다퉈 도입한 보험사기 탐지 시스템은 ‘AI 머신러닝’을 기반으로 한다. 기존에 발생한 보험사기 적발 데이터를 학습시키면 AI가 보험사기의 특징을 유형별로 분석하고 새로운 사기 사건이 일어났을 때 자동으로 탐지해 사기 위험도를 판단하는 식이다.
현대해상은 머신러닝 기법을 활용한 ‘Hi-FDS’를 2020년 7월 도입했다. 전날 발생한 모든 자동차 사고 데이터를 매일 새벽 시스템에 입력하면 AI가 각 사건의 보험사기 가능성을 분석한 뒤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사건을 현장 조사관들에게 알려준다. 현장 조사관들은 AI가 작성한 분석 리포트를 바탕으로 실제 조사에 착수한다.
현대해상의 AI 탐지 시스템은 지난해에만 540건의 보험사기를 적발했다. 적발 금액은 33억2000만 원에 이른다. AI 시스템으로 절감된 비용까지 감안하면 AI가 사실상 33억 원 이상의 이익을 가져다준 셈이다. 이상훈 현대해상 보험조사부장은 “AI는 보험사기를 걸러내는 ‘고성능 깔때기’”라며 “기존 보험사기 조사는 현장 조사관들의 ‘촉’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AI가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기 위험도를 예측하면서 상호 보완적인 조사 시스템이 완성됐다”고 말했다.
○ “내부 제보 대신 AI가 조직적 사기 잡아내”
DB손해보험은 데이터 분석 기업인 SAS코리아 등과 손잡고 AI 보험사기 탐지 시스템 ‘DB-T’를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자동차보험뿐만 아니라 장기 보장성보험과 관련된 보험사기를 찾아내고 있다. 최근 유행하는 백내장 과잉 진료 같은 보험사기는 보험모집인 등 브로커가 조직적으로 개입된 사례가 많아 이들의 연결성을 찾아내는 게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부산에 있는 D안과병원에 최근 3년간 17억 원이 넘는 보험금이 지급됐다. 이 병원은 부산이 아닌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고객들의 진료 비율이 76%를 넘었다. DB-T는 이 병원에 서울, 경기 지역에 거주하는 50, 60대 여성 환자가 가장 많다는 게 비정상적이라고 판단했다. 치료비가 다른 안과들에 비해 2배 가까이 높다는 점도 감지했다.
이 같은 상황을 알게 된 DB손해보험 보상기획파트는 AI를 활용해 이 병원이 특정 보험모집인과 연관돼 있는지 파악했다. 다른 지역의 보험모집인이 브로커로 활동하며 해당 지역 고객들을 불법으로 알선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AI가 D병원 환자들의 정보를 SNA를 통해 연결하자 2명의 특정인이 도출됐다.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활동하는 보험모집인 2명이었다. 두 사람이 수도권 고객들을 모아 D병원으로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신배식 DB손해보험 보상기획파트장은 “브로커가 병원에서 보상을 받고 환자를 불법 유치한 전형적인 보험사기”라며 “과거에는 내부자 제보가 아니면 조직적인 보험사기를 알아낼 수 없었지만 이제 AI를 이용하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가피 공모’(가해자와 피해자가 공모해 고의로 자동차 사고를 내는 것) 같은 조직적 사기를 찾아내는 데 AI 사회연결망분석은 탁월한 효과를 내고 있다. DB손보는 최근 경기, 충청 지역의 견인업체와 정비회사, 부품회사 등이 공모한 대규모 보험사기를 적발했다.
발단은 경기 지역에 있는 E견인업체가 사기를 많이 친다는 제보였다. 제보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E견인업체와 연결된 회사들을 AI 사회연결망분석으로 분석하다 보니 충청 지역의 F정비회사가 튀어나왔다.
E견인업체가 멀리 떨어진 이 정비회사를 유난히 많이 찾았고, 업체들끼리 짜고 수리비 등을 부풀린 정황도 포착됐다. DB손보는 “사고 처리 과정에 개입한 업체들이 많아 개별 지급 건만 봐서는 보험사기로 의심하기 어렵다”며 “AI 분석을 통해 극적으로 적발된 사례”라고 설명했다.
○ 보험사기 가담자 연 10만 명 육박, “AI 활용 필수적”
AI를 활용한 보험사기 대응은 보험업계의 표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교보생명은 2020년부터 ‘K-FDS’라는 AI 보험사기 탐지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신한라이프는 의료기관 5만5000곳의 진료시간 데이터를 활용해 AI가 휴진일 허위 수술 등 보험사기 의심 사례를 자동으로 적발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KB손해보험, 삼성화재 등도 올해부터 자체 보험사기 탐지 시스템에 AI 기술을 탑재할 계획이다.
이 같은 보험사들의 움직임은 갈수록 진화하는 보험사기에 발 빠르게 대처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사기로 적발된 인원은 9만7629명으로 집계됐다. 적발 금액은 9434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찍었다. 이 같은 추세라면 올해 적발 인원은 10만 명, 적발 금액은 1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병원, 정비업체 등 보험 유관기관 종사자들과 20대 청년층의 보험사기 가담이 늘고 있어 사회적 문제로 지적된다. 일부 병원이나 정비업체들이 브로커를 고용해 조직적으로 고객을 모으고 서류 위조로 현장 조사관들의 탐지망을 피해가는 등 지능화되고 조직화된 보험범죄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20대의 보험사기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이용해 고의 사고 가담자들을 모집하고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응하는 사례가 많다.
김헌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하루 수백만 건의 보험금 청구가 들어오는 상황에서 AI를 활용한 보험사기 탐지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AI가 보험금 심사, 지급 과정의 속도를 높이고 보험금 누수를 줄인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신호위반-급가속 많이 했군요, 보험료 더 내세요”
보험업계 AI 활용 전방위 확산
카메라로 운전습관 따져 점수화
‘BBI 차보험’ 하반기 본격 판매
운동자세 교정해주는 앱도 나와
보험사들은 보험사기 탐지 외에도 상품 판매, 보험금 지급심사, 위험 관리 등 업무 전반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AI 기술로 운전습관을 분석해 보험료를 산정하는 ‘BBI(Behavior-Based Insurance)’ 자동차보험을 비롯해 AI가 질병 예방에 도움을 주는 헬스케어 플랫폼 등 혁신 서비스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국내 한 대형 보험사는 인슈어테크(보험+기술) 스타트업과 손잡고 AI 기반의 BBI 보험을 출시할 예정이다. 디지털 손해보험사인 캐롯손해보험도 올 하반기(7∼12월) 출시를 목표로 BBI 보험을 개발하고 있다.
BBI 보험은 차량 내 카메라와 센서 등을 통해 수집한 운전습관을 AI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보험료를 산정하는 새로운 개념의 차보험이다. AI가 신호 위반, 차로 이탈, 급가속, 급제동 횟수 등의 정보를 수집해 ‘안전점수’를 산출한 뒤 점수가 높으면 보험료를 깎아주고 낮으면 보험료를 할증하는 방식이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으로 주행거리, 주행시간 등의 정보를 수집해 보험료를 정하는 ‘UBI(Usage-Based Insurance)’ 보험에서 한발 더 진화한 것이다.
해외에선 전기차 회사 테슬라를 비롯해 제너럴모터스(GM) 등 자동차 기업들이 BBI 보험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테슬라는 지난해 10월 자사 차량에 달린 영상 인식 센서를 이용한 BBI 보험을 미국 텍사스주에서 처음 선보여 보험료를 최대 60%까지 할인해주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는 AI를 활용해 보험료와 보험금을 합리적으로 정할 수 있고, 고객들은 안전운전 습관을 기르면서 보험료 혜택도 받을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했다.
AI는 보험업계의 미래 신산업으로 꼽히는 헬스케어 서비스에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AI가 고객의 건강 정보와 운동 자세 등을 분석해 질병을 예측하고 건강관리를 돕는 방식이다.
삼성생명은 지난달 AI가 스마트 모션 인식을 통해 사용자의 운동 자세를 교정해주는 헬스케어 애플리케이션 ‘더 헬스’를 선보였다. 신한라이프는 앞서 지난해 AI 홈트레이닝 서비스 ‘하우핏’을 내놓고 고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상품 판매나 고객 응대 시스템을 자동화하는 데도 AI가 기여하는 바가 크다. 판매 일선에서 보험설계사가 도맡았던 보장 분석이나 설계 업무를 AI가 분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개발원은 방대한 고객 데이터를 가진 AI가 보장 공백, 중복 보장 등을 분석할 경우 맞춤형 상품 설계에 소요되는 시간을 지금보다 80% 이상 단축시킬 것으로 전망했다.
김규동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AI는 챗봇을 이용한 상담, 보험금 청구 등 단순한 단계부터 가격 산출, 보험금 지급 심사 등 보험사의 의사결정이 필요한 단계까지 보험 가치사슬 전반에서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지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