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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0 내가 하나님께 바라는 것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들어주시면, 내가 주님을 피하지 않겠습니다.
13:21 나를 치시는 그 손을 거두어 주시고, 제발 내가 이렇게 두려워 떨지 않게 해주십시오.
13:22 하나님, 하나님께서 먼저 말씀하시면, 내가 대답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시면 내가 먼저 말씀드리게 해주시고, 주님께서 내게 대답해 주십시오.
13:23 내가 지은 죄가 무엇입니까?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내가 어떤 범죄에 연루되어 있습니까?
13:24 어찌하여 주님께서 나를 피하십니까? 어찌하여 주님께서 나를 원수로 여기십니까?
13:25 주님께서는 줄곧 나를 위협하시렵니까? 나는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 같을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마른 지푸라기 같은 나를 공격하고 계십니다.
13:26 주님께서는 지금, 내가 어릴 때에 한 일까지도 다 들추어 내시면서, 나를 고발하십니다.
13:27 내 발에 차꼬를 채우시고, 내가 가는 모든 길을 낱낱이 지켜 보시며, 발바닥 닿는 자국까지 다 조사하고 계십니다.
13:28 그래서 저는 썩은 물건과도 같고, 좀먹은 의복과도 같습니다.
14:1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그 사는 날이 짧은데다가, 그 생애마저 괴로움으로만 가득 차 있습니다.
14:2 피었다가 곧 시드는 꽃과 같이, 그림자 같이, 사라져서 멈추어 서지를 못합니다.
14:3 주님께서는 이렇게 미미한 것을 눈여겨 살피시겠다는 겁니까? 더욱이 저와 같은 것을 심판대로 데리고 가셔서, 심판하시겠다는 겁니까?
14:4 그 누가 불결한 것에서, 정결한 것이 나오게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14:5 인생이 살아갈 날 수는 미리 정해져 있고, 그 달 수도 주님께서는 다 헤아리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이 더 이상 넘어갈 수 없는 한계를 정하셨습니다.
14:6 그러므로 사람에게서 눈을 돌리셔서 그가 숨을 좀 돌리게 하시고, 자기가 살 남은 시간을 품꾼만큼이라도 한 번 마음껏 살게 해주십시오.
14:7 한 그루 나무에도 희망이 있습니다. 찍혀도 다시 움이 돋아나고, 그 가지가 끊임없이 자라나고,
14:8 비록 그 뿌리가 땅 속에서 늙어서 그 그루터기가 흙에 묻혀 죽어도,
14:9 물기운만 들어가면 다시 싹이 나며, 새로 심은 듯이 가지를 뻗습니다.
14:10 그러나 아무리 힘센 사람이라도 한 번 죽으면 사라지게 되어 있고, 숨을 거두면 그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게 됩니다.
14:11 물이 말라 버린 강처럼, 바닥이 드러난 호수처럼,
14:12 사람도 죽습니다. 죽었다 하면 다시 일어나지 못합니다. 하늘이 없어지면 없어질까, 죽은 사람이 눈을 뜨지는 못합니다.
14:13 차라리 나를 스올에 감추어 두실 수는 없으십니까? 주님의 진노가 가실 때까지만이라도 나를 숨겨 주시고, 기한을 정해 두셨다가 뒷날에 다시 기억해 주실 수는 없습니까?
14:14 아무리 대장부라 하더라도 죽으면 그만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더 좋은 때를 기다리겠습니다. 이 고난의 때가 지나가기까지 기다리겠습니다.
14:15 그 때에 주님께서 나를 불러 주시면, 내가 대답하겠습니다. 주님께서도 손수 지으신 나를 보시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14:16 그러므로 지금은 주님께서 내 모든 걸음걸음을 세고 계시지만, 그 때에는 내 죄를 살피지 않으실 것입니다.
14:17 주님께서는 내 허물을 자루에 넣어 봉하시고, 내 잘못을 덮어 주실 것입니다.
14:18 산이 무너져 내리고, 큰 바위조차 제자리에서 밀려나듯이,
14:19 물이 바위를 굴려 내고 폭우가 온 세상 먼지를 급류로 씻어 내듯이,
14:20 주님께서는 연약한 사람의 삶의 희망도 그렇게 끊으십니다. 주님께서 사람을 끝까지 억누르시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주님 앞에서 쫓겨날 것입니다.
14:21 자손이 영광을 누려도 그는 알지 못하며, 자손이 비천하게 되어도 그 소식 듣지 못합니다.
14:22 그는 다만 제 몸 아픈 것만을 느끼고, 제 슬픔만을 알 뿐입니다.
◈ 주해
1. 욥은 엘리바스, 빌닷, 소발의 거듭되는 충고, “죄 값으로 고난을 받고 있으니 회개하여 회복하라”는 충고에 “나도 다 알고 있다”면서 너무나 상식적인 지혜와 옳은 말로 괴롭게 하지 않기를 하소연한다.
1) 친구들은 돌팔이처럼 오진하고 처방한다. 이유를 모른다면 침묵이 지혜다.
2) 욥은 무지한 친구들의 충고가 아니라, 친구들이 자신의 고통과 의문을 들어주길 원한다.
욥 13:6 너희는 내 항변도 좀 들어 보아라. 내가 내 사정을 호소하는 동안 귀를 좀 기울여 주어라.
2. 욥은 친구들이 말하는 지상적 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무슨 까닭으로” 시련을 주시는지를 알기 원하고 잠시라도 고통을 멈추어 평안하게 해 주기를 구한다.
13:3 그러나 나는 전능하신 분께 말씀드리고 싶고, 하나님께 내 마음을 다 털어놓고 싶다.
1) 욥은 자기 생명을 잃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과 변론하는 모험을 하기로 한다(13:15-16).
2) 살던지 죽던지, 패하던지 승리하던지, 대답을 들을 수 있던지 없던지, 모든 것을 잃고 생명까지 잃던지 회복되던지,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하나님께 말하고 변론하려고 한다.
3. 욥은 이제 하나님께 말하면서(13:20-14:22) 하나님과 대면하기 위한 조건을 구한다(20절).
욥 13:20 내가 하나님께 바라는 것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들어주시면, 내가 주님을 피하지 않겠습니다.
1) 욥은 몸의 병에 이어서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서 건져주시면 주님을 피하지 않고, 주님이 물으시면 대답하겠고, 그렇지 않으면 묻겠다고 한다.
4. 욥이 먼저 하나님께 묻는다. 자신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들을 알려달라고 한다.
“내가 지은 죄가 무엇입니까?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내가 어떤 범죄에 연루되어 있습니까?”(23절, 새번역).
1) 욥은 죄악(아보놋), 허물(핏쉐이), 죄(하타옷트)라는 다른 용어를 사용하면서(개역 개정) 어떤 형태의 죄악이라도 있다면 알려달라고 한다.
5. 하나님이 침묵하시자, 하나님이 왜 피하시며 자신을 원수로 여기는지를 묻는다.
“어찌하여 주님께서 나를 피하십니까? 어찌하여 주님께서 나를 원수로 여기십니까? 주님께서는 줄곧 나를 위협하시렵니까?”(24-25a절, 새번역).
“나는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 같을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마른 지푸라기 같은 나를 공격하고 계십니다”(25b절, 새번역).
1) 자신은 나뭇잎, 지푸라기에 불과하므로 하나님이 자신을 피하거나 원수로 여길 가치도 없는데, 너무 가혹하게 다루신다는 것이다.
6. 욥은 하나님이 그가 젊었을 때 지은 죄를 다 뒤지고 찾아내서 벌하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하신다면 공정하지 않다고 항변한다(26-27).
“그래서 저는 썩은 물건과도 같고, 좀먹은 의복과도 같습니다”(28절, 새번역).
1) 욥의 질문은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를 알려 달라”는 것과 혹시 죄가 있더라도 “나뭇잎, 지푸라기, 썩은 물건, 좀먹은 의복과 같이 하찮은 자”에게 너무 엄격하고 가혹하다는 것이다.
7. 모든 소유를 잃어버리는 것까지는 찬송했지만 지금 욥은 3가지 어려움에 처해 있다.
1) 첫 번째는 지독한 질병의 고통이다. 두 번째는 정신적인 고통 즉 불안과 두려움이다.
2) 세 번째는 영적인 고통으로 가장 어렵다. 하나님이 자신을 원수처럼 여기며 침묵하신다는 영적인 어둠이다. 성 요한은 이것을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고 하였고, 잔느 귀용은 “겨울나무”라고 하였다.
3) 친구들의 말대로 욥이 알지 못하는 죄가 있다면 알려주시면 된다. 고난을 당해야 한다면 그 이유를 알려주시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해서 침묵하신다.
8. 이러한 영적인 고통은 다윗의 고통이었으며 예수님의 고통이기도 했다.
1) 시편 22편에서 다윗은 밤낮으로 부르짖으나 하나님은 침묵하셨다.
시 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시 22:2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 27:46).
2) 예수님에게 육체의 고난과 정신적인 비난과 영적인 고통 중에 무엇이 가장 큰 고통이었냐고 묻는다면 예수님은 단연 “아버지로부터 버림받는 영적인 고통”이라고 하셨을 것이다.
- 영원부터 영원까지 온전한 사랑으로 하나된 아버지와의 분리가 가장 큰 고통이셨다.
3) 갓난아이는 부모와 잠시라도 분리되면 죽을 힘을 다해 외치며 운다. 이는 아기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하나님과의 분리의 고통이 클수록 하나님과의 연합을 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9. 14장에서는 욥과 같은 인생이 얼마나 미미하고 연약한지를 계속해서 호소한다.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그 사는 날이 짧은데다가, 그 생애마저 괴로움으로만 가득 차 있습니다. 피었다가 곧 시드는 꽃과 같이, 그림자같이, 사라져서 멈추어 서지를 못합니다”(1-2).
1) 욥은 이렇게 미미한 자신은 심판하시느냐고 묻는다(3절).
2) 4절에서 더러운 것은 여자를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인간은 날 때부터 죄인이다.
3) 하나님이 인생이 사는 날 수를 정하셨고, 사람이 넘어갈 수 없는 한계를 정하셨다(5절).
4) 이렇게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삶이므로 하나님이 자기를 놓아주셔서 잠시라도 안식하기를 원한다.
욥 14:6 그러므로 사람에게서 눈을 돌리셔서 그가 숨을 좀 돌리게 하시고, 자기가 살 남은 시간을 품꾼만큼이라도 한 번 마음껏 살게 해주십시오.
10. 인간의 생명은 찍힌 나무보다 약하다. 잘린 나무는 물 기운만 들어가면 다시 움이 돋아나고 가지가 자라나지만, 인간은 죽으면 소멸된다.
1) 너무나 고통스러운 욥은 주님의 진노가 가실 때까지 자신을 스올(무덤, 죽음)에 숨겨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죽으면 다시 살 수 없기 때문에 스올(무덤)에 잠시 피할 수도 없다.
2) 죽으면 그만이기 때문에, 고난의 날 동안 변화가 있기를, 고난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욥 14:14 장정이라도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 나의 모든 고난의 날 동안을 참으면서 풀려나기를 기다리겠나이다
[표준새]그러므로 나는 더 좋은 때를 기다리겠습니다. 이 고난의 때가 지나가기까지 기다리겠습니다.
[바른성경] 나의 모든 고난의 날 동안 나는 내게 변화가 있기를 기다릴 것입니다.
11. 욥은 그렇게 자신의 고통이 끝나는 날을 고대하며 말한다.
욥 14:16 그러므로 지금은 주님께서 내 모든 걸음걸음을 세고 계시지만, 그 때에는 내 죄를 살피지 않으실 것입니다.
욥 14:17 주님께서는 내 허물을 자루에 넣어 봉하시고, 내 잘못을 덮어 주실 것입니다.
1) 지금은 하나님이 자신의 감시자가 되셔서 그의 죄를 살피지만 고통이 끝나는 때에는 욥의 죄를 덮어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
12. 다시는 행복을 보지 못하고, 곧 죽을 것이라면서 절망했던 욥은 잠시, 고통이 끝나는 날, 하나님이 허물을 덮어주는 날을 기대하며 인내하고자 한다.
1)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인간의 희망마저 다 끊어버리신다고 말한다.
“산이 무너져 내리고, 큰 바위조차 제자리에서 밀려나듯이, 물이 바위를 굴려 내고 폭우가 온 세상 먼지를 급류로 씻어 내듯이, 주님께서는 연약한 사람의 삶의 희망도 그렇게 끊으십니다”(18-20a절, 새번역).
2) 하나님은 연약한 인생의 희망을 끊으실 뿐 아니라, 인간의 존재까지도 영원히 사라지게 하신다. 결국 남는 것은 아픈 몸과 슬픔뿐이다.
욥 14:22 그는 다만 제 몸 아픈 것만을 느끼고, 제 슬픔만을 알 뿐입니다.
13. 이렇게 욥과 세 친구 사이의 첫 번째 대화 순환이 끝난다.
1) 욥은 세 친구의 충고를 거절하고, 하나님께 직접 탄원한다.
2) 그러나 고통을 제하여 주시고 자신의 죄를 알려 달라는 질문에 침묵하는 하나님 앞에서 욥은 절망한다.
3) 잠시 있다 사라질 인생, “나뭇잎, 지푸라기, 썩은 물건, 좀먹은 의복과 같이 하찮은 자, 잠시 피었다 시드는 꽃, 그림자”와 같은 연약한 인생은 이런 고통을 견딜 수 없다.
4) 잠시 품었던 희망마저 끊으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아픔과 슬픔만을 알 뿐이다.
14. 가장 큰 자, 욥은 고통 너머의 세계를 보는데 결국 실패한다. 연약한 인생의 한계다.
1) 욥이 당한 모든 고통을 예수님은 담당하셨다. 육체의 고통, 정신적 고통, 영적인 고통을 다 당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고통의 극치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면서 아버지께 자신의 영혼을 의탁하셨다.
2) 히브리서는 그리스도가 자기 앞에 놓인 기쁨을 확실히 믿었고 그로 인해 십자가의 고통을 참으심으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증언한다(히 12:1-2).
15. 히브리서는 고난당하는 성도들을 향해 쓰여 졌다.
1) 히브리서는 성도들에게 아들을 힘입어 하늘 성소로 나아가는 파레시아를 포기하지 말라고 한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고난 너머에 있는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고 누리기 때문이다.
2) 바울은 환난을 자랑한다고 말하면서 환난은 도키모스(연단)를 이룬다고 하였다.
- 그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그의 영광을 즐거워하는 “교제”다(롬 5:1-4).
16. 오늘 묵상의 긴 본문은 절망에서 시작하여 절망으로 끝난다. 욥기의 특징이다.
1) 살던지 죽던지 하나님께 말하겠다고 한 욥의 다짐은 하나님의 침묵으로 실패한다.
2) 하나님의 침묵으로 절망했지만 욥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말하겠다는 다짐만은 이어간다.
◈ 나의 묵상
욥보다 큰 자는 없고, 욥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없는데, 욥이 절망에 절망을 거듭한다.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께 대답하겠다는 계획이 좌절된다. 하나님의 기나긴 침묵 앞에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한다. 친구들과는 더 이상 대화가 되지 않아서, 하나님과 변론하려는데 하나님은 계속 침묵하신다. 잠시 품었던 희망도 다시 사그라든다.
욥의 4가지 고통이 주목된다. 지독한 피부병에도 정신과 마음을 지켰을 때는 신실함을 지켰다. 아내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하여도 신실함을 지켰다. 지독한 몸의 고통에 이어서 아내가 떠나는 관계적인 무덤이 왔다. 까닭 없는 고난과 하나님의 침묵은 정신적 고통, 즉 불안과 두려움을 주었다. 몸과 마음이 무너져도 욥은 하나님께 나아갔다. 하나님께 말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침묵, 영혼의 어두운 밤으로 인하여 영적인 고통, 거절을 느낀다. 말 그대로 영혼육이 무너지면서 절망한다. 자신은 나뭇잎, 지푸라기, 그림자, 시드는 꽃처럼 약해서 이 고통을 견딜 수 없다며 절망한다.
욥처럼 영혼육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어느 날 찾아온 영혼육의 무너짐으로 절망했던 때가 생각난다. 성경에 욥이 그랬다는 것이 참 놀랍다. 욥의 탄식이 나의 탄식이었고, 욥의 절망이 나의 절망이었다. 사방이 막히면 하늘을 보라는 격언이 있다. 그런데, 사방이 막혀서 하늘을 보았는데, 그 때 하늘이 막혀 있을 때의 절망에 대해서는 말해 주는 이가 없다.
욥기의 묵상 본문은 오늘처럼 절망에서 절망으로 끝나기도 한다. 선한 말, 위로의 말, 믿음의 말이 하나도 없다. 하나님께 나아가서 절망으로 시작해서 절망으로 끝나도 된다고 하신다. 복음을 통하여 아버지 품에 거해야 하지만, 오늘은 욥의 고백처럼, 연약함과 전적으로 무력한 자임을 하나님 앞에 토로하고 마치려고 한다. 다만, 가장 큰 자 욥의 결론이 절망이라면 나의 결론은 당연히 절망이다. 저 너머로 가게 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 사랑밖에 없음이 더 명확해 진다.
◈ 묵상 기도
욥기가 참 독특합니다. 까닭 없고 정답이 없습니다. 가장 큰 자요 하나님도 인정한 경외자임에도 영혼육과 관계가 다 깨어지자 욥이 절망합니다. 절망에서 절망이 전부인 묵상 본문도 새롭습니다. 주님, 그래도 침묵하시는 하나님, 거절하시는 하나님, 희망을 끊으시는 하나님께 욥이 계속 나아갑니다. 저도 욥처럼 계속해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옵소서. 다윗도 그러했고 욥도 그렇습니다. 무식할 정도로, 무지할 정도로 하나님을 찾고 또 찾습니다. 묻고 또 묻습니다. 그의 생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 하나님께 말할 것입니다. 욥도 막막했다면, 저도 막막할 수 있고, 욥이 절망했다면 저도 절망할 수 있고, 욥이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렸다면 저도 시달릴 수 있습니다. 인생의 연약함을 인정하게 하소서. 주님이 허락하신 상황을 수용하게 하소서. 다만,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통하여 저 너머의 세계로 나아가게 하시고 살게 하옵소서. 김장이 있습니다. 섬김의 기쁨이 넘치게 하옵소서. 내일은 다음세대예배입니다. 주님을 영으로 아는 다음세대가 되도록, 구원의 확신을 넘어 주의 영광을 보게 하옵소서. 말씀을 전하는 김철훈 목사님에게 주의 영으로 기름부으사 생명을 주는 새 언약의 일꾼이 되게 하옵소서. 한주로 다가온 임직감사예배를 주님께 의탁합니다. 주님이 기름부어 주시옵소서. 논술을 보는 어진이와 함께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