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보는 명품시조 105「분이네 살구나무」외
신웅순(시인․평론가․중부대명예교수)
동네서
젤 작은 집
분이네 오막살이
동네서 젤 큰 나무
분이네 살구나무
밤사이
활짝 펴올라
대궐보다 덩그렇다
-정완영의「분이네 살구나무」
분이는 동네에서 제일 작은 오막살이집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엊저녁 세우에 살구나무가 활짝 피어 대궐이 되었다.
가난하지만 대궐에 살고 있으니 이보다 더 큰 부자가 없다. 살구나무 꽃 때문이다. 마음이 얼마나 풍성한가. 분이에겐 무슨 꿈에 부풀어있을까. 지은이는 무엇을 말하고 싶어 대궐 같다했을까. 시조가 아니면 이런 표현을 할 수 없다.
오막살이집에서 대궐로, 가난을 부자로 순간 바꾸어 놓았다. 달리는 말이 땅을 차듯, 놀란 새가 뱀을 쪼듯 주마축지(走馬蹴地), 경조탁사(驚鳥啄蛇)가 이 아닌가. 이것이 시조이다.
까치가
깍 깍 울어야
아침 햇살이 몰려들고
꽃가지를
흔들어야
하늘빛이 살아나듯이
엄마가
빨래를 헹궈야
개울물이 환히 열린다
-정완영의「꽃가지를 흔들 듯이」
까치가 깍깍 울어야 아침 햇살이 몰려오고 꽃가지를 흔들어야 하늘빛이 살아나듯 엄마가 빨래를 헹구어야 개울물이 환히 열린다는 것이다.
까치와 꽃가지를 초ㆍ중장에 앉히고 종장엔 엄마를 앉혔다. 차례로 햇살과 하늘빛과 개울물을 앉혔다. 절묘한 자리 배치이다. 그리고 종장에서 ‘엄마’, ‘빨래’, ‘개울물’이라는 화살로 정조준 표적을 적중시켰다. 일발필중(一發必中) 명사수이다. 이것이 시조가 아닐까 싶다.
-2023.11.1.주간한국문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