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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과 眞人
642년 고구려에서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그 무렵, 신라에서 ‘비담의 난’이 일어났으며, 일본서기에 의하면 백제에서도 의자왕이 이복형제 교기왕자와 그 가족, 重臣 40여명을 섬으로 추방하는 정변이 일어났다고 한다. 또 일본에서도 친위쿠데타가 발생하여(645년, 乙巳의 変) 100여 년 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소가씨가 몰락했다. 이 쿠데타는 조선3국의 영향을 받아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할 필요성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하는 일본학자도 있다.
이 쿠데타를 주도한 中大兄皇子는 후에 즉위하여 天智천황이 되지만 그가 죽은 뒤 그의 아들이 皇位에 오르자 中大兄의 동생 大海人황자가 반란을 일으켰다(672년, 임신의 난). 이 內戰에는 호족들도 서로 양편으로 나뉘어 격전을 벌였으며, 이 싸움에서 승리한 大海人은 즉위하여 天武천황이 된다. 中大兄에서 ‘大兄’은 태자라는 의미로, 고구려의 관위 大兄에서 차용한 것이라고 추측하는 학자도 있다.
일본에서는 이 쿠데타와 내란을 거치면서 많은 호족들이 몰락하고 또 신흥호족들이 생겨났다. 그리하여 이들 사이의 랭킹을 재정립할 필요성이 대두되어 天武천황은 주요 호족들에게 새로운 姓을 하사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8色의 姓’으로, 眞人(왕족), 朝臣(옛 ‘臣’姓), 宿禰(옛 ‘連’姓) 등 8 종류였다. ‘眞人’의 姓은 이렇게 하여 만들어졌다.
일본에는『신찬성씨록』이라는 古書가 있다. 815년에 저술된 것으로, 당시 수도였던 京都 및 畿內에 거주하던 1182씨족을 그 出自에 의해 皇別(335). 神別(404). 諸蕃(326)으로 분류하여 그 조상을 밝힌 책이다. 그러나 본문은 산실되고 지금은 목록만 남아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皇別은 왕족이고 神別은 귀족, 그리고 諸蕃은 도래씨족을 말한다. 일본학자들은 諸蕃의 326씨족 가운데 160씨는 한국계(주로 백제), 나머지는 중국계라고 말하고 있지만 내가 볼 땐 326씨족 거의 전부가 한국계이다. 한반도로부터는 전란을 피하여 많은 씨족이 일본열도로 이주를 하였지만 중국인이 이주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중국인은 전란을 피하여 또는 낙랑대방군의 소멸로 고구려나 백제로 이주를 하였지만 일본열도로 건너가지는 않았다. 오히려 諸蕃뿐만 아니라 皇別과 神別의 왕족, 귀족도 대다수가 한반도계였다고 생각된다.
『신찬성씨록』』에 실려 있는 眞人은 모두 33氏인데 이들의 조상을 살펴보면 우선 應神천황의 황자 稚渟毛의 후손이 있다. 左京의 息長眞人. 山道眞人. 坂田眞人. 八多眞人, 右京의 山道眞人. 息長眞人이 그들이다. 다음에 継体천황의 황자의 후손인 三國眞人이 있으며, 敏達천황의 황자의 후손인 路眞人. 守山眞人 甘南備眞人 飛多眞人 英多眞人 大宅眞人이 있다. 그밖에 大原眞人. 島根眞人. 豊國眞人. 山於眞人. 吉野眞人. 桑田眞人. 池上眞人. 海上眞人. 淸原眞人은 敏達천황의 황자 백제왕의 후손이다.
敏達천황은 継体천황의 아들이다. 継体천황은 일본서기에는 應神의 5대손이라고 되어있지만 사실은 應神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호족출신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는 ‘大原眞人은 敏達천황의 황자인 백제왕의 후손’이라는 구절을 보고 敏達천황은 백제인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백제왕에서의 ‘백제’는 그냥 皇子(=왕자)의 이름인 것이지 반드시 백제인임을 뜻하는 것은 아니므로 이름이 백제왕이라고 해서 그것이 곧 백제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8세기 초 중국으로부터 율령제도 도입 이후 일본에서는 왕자를 親王, 왕녀(공주)를 內親王이라고 칭했다. 백제왕의 ‘왕’은 친왕(=왕자)이라는 의미이다. 그럼 왜 황자의 이름을 백제왕이라고 했을까? 일본에 ‘백제’라는 지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야마토정권의 발상지이자 한국 이주민이 처음 정착한 河內(오사카)와 大和(나라현 高市郡)에는 ‘백제’(구다라)라는 지명이 있었다.
이 일본왕족의 족보는 應神천황 이전으로는 소급되지 않는다. 이것은 應神이 사실상 초대 천황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왕족의 姓을 왜 眞人이라고 했을까? 나는 應神이 백제의 호족 진씨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원래는 眞氏이지만 당시 일본에서는 姓의 2자 표기가 관습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眞人이라고 한 것이다. 이 眞人은 훈독하여 ‘마히토’라고 읽지만 백제의 眞氏도 원래는 ‘참’이었는데 眞으로 표기했다.
應神천황의 황자는 이름이 稚渟毛이다. 여기서 渟은 ‘누’라고 읽으며, 소유격조사 の를 표시했던 문자이다. 일본서기에서는 이 稚渟毛를 훈독하여 ‘와카누케’라고 읽지만 나는 원래는 '치누모' 즉 진모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고 본다. 치누는 ‘진’의 일본식 발음이다. 즉 황자의 이름은 진모였던 것이다. 그런데 백제의 진씨는 眞牟씨라고도 했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継体紀 원년 조에는 황자 息長眞手王이 나오는데 이 이름에서도 그 황자가 진씨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息長은 그가 ‘息長眞人’系임을 나타낸다. 그의 이름은 眞手인 것이다.
고대에 河內(오사카)에는 茅渟이라는 읍이 있었으며 이곳이 야마토(大和)왕조 초기의 근거지였다. 지금도 오사카에는 茅渟山이라든지 茅渟海라는 명칭이 남아있는데 이 茅渟은 ‘치누’라고 읽는다. 뿐만 아니라 皇極천황(여)의 부친의 이름은 茅渟王이다. 즉 그녀의 부친은 백제의 호족 진씨인 것이다. 앞서 ‘을사의 変’에서 소개했던 中大兄. 大海人황자는 皇極천황의 아들이다. 그녀는 重祚(재등극)하여 齊明천황이라고 했는데, 백제가 멸망하자 아들 中大兄과 함께 구원군 3만을 백제에 파견했다.
그런데 이와는 별도로 中大兄은 백제왕자 교기라는 설도 있다. 일본서기에는 中大兄이 大海人의 형으로 되어있지만 사실은 大海人이 나이가 더 많으며, 이들은 남남 사이라는 것이 일본학계의 중론이다. 또 中大兄은 동생 大海人에게 딸 4명을 부인으로 주었다고 일본서기는 기술하고 있는데 만일 그들이 친형제 사이였다면 이것은 믿기 어려운 대목이다. 하지만 大海人 즉 天武천황의 사후 그의 부인이 즉위하는데(持統천황), 이 여자는 中大兄의 딸인 것이다. 하여튼 中大兄(天智천황)은 베일에 싸인 인물로, 이 부분에서 일본서기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숨기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645년 '을사의 변'을 주도하고 제일먼저 소가씨를 칼로 찌른 것은 中大兄였는데 그 자리에 있었던 古人大兄은 황급히 자리를 피하여 歸宅한 후 입을 연 첫 마디가 '韓人이 소가대신을 죽였다'였다.
고대일본의 야마토왕조는 일본서기에 제15대 천황으로 기록되어있는 應神천황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應神천황은 407년 고구려의 공격을 받고 북규슈로 이주한 진씨였다고 본다. 지금의 일본천황가는 姓이 없다. 그러나 천황가가 처음부터 姓이 없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천황가의 姓은 진씨였다. 하지만 백제가 멸망함으로써 진씨의 야마토왕조는 섬나라 일본으로 독립하게 된 것이고 그 이후 천황가는 진씨 姓을 포기한 것이라고 본다. 자신의 出自가 지금은 신라의 영토가 되어버린 백제 故地라고 밝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眞人 姓은 얼마 안 가서 슬그머니 사라져버리고 황실에서 독립하는 황족에게는 平氏, 源氏, 橘氏 등의 姓을 하사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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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흥미로운 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