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 음 요6:28~31절 2025.10.19. 주일오전
27절에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무리들은 28절에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라고 질문을 합니다. 이들의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29절에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라고 답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일에 대한 개념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자기들이 실천해야 할 어떤 일에 대한 답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가령 기도를 하루에 몇 시간 하라든가? 교회 일을 어떻게 하라든가?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일을 자신들이 실천해야 할 것으로 이해한다면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기다릴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답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 즉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우리가 실천해야 할 일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왜 믿음이 이처럼 가치있는 일로, 하나님의 일로 말씀하실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가장 귀한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생존 문제에 매어서 생명 문제를 등한시한다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역시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보다는 생존을 위해서 돈을 버는 것이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벗어버리지 못할 것입니다. 믿음은 생명의 문제와 연관될 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 하나님의 일을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말씀하신 것에서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일은 우리들의 소관도 우리가 실천해야 할 문제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인간의 노력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질문을 한 사람들은 끝까지 자신들의 실천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30절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라는 질문에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에게 원하는 것은 자신들이 예수님이 믿을 수 있도록 표적을 보여달라는 요구입니다. 고전1:22절에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라고 합니다. 증거로서의 표적을 구하는 전형적인 유대인들의 요구를 볼 수 있습니다.
표적을 구하는 이들의 요구는 요2:18절의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라고 말하고, 요4:48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표적, 즉 믿기 이전에 믿을 수 있도록 보여주기를 구하는 이들의 모습은 오늘 우리들에게서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보여주면 더 확실히 믿을 수 있겠다는 바램은 우리들의 속마음에 자리하고 있는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 분명 그러한 생각이 자리할 것입니다. 보지 못한 상태에서 그냥 믿는다고 하는 막연함보다는 실제로 직접 보고 확인한 상태라면 더욱 확실하게 그리고 분명히 믿을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믿음을 인간의 소관으로 여기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은 전적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보고 보지 않고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선물이고 그리스도의 일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뭔가를 보고 확인함으로서 예수님을 믿음의 대상으로 선택해서 믿음으로 믿게 된 것이 아닙니다. 31절에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라고 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옛날 자기 조상들이 먹었던 만나와 같은 표적을 보여주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보고 믿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을 수 있도록 믿을만한 표적을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신앙인 것입니다. 이처럼 눈으로 보고 확인한 것을 근거로 해서 믿으려고 하기 때문에 눈에 보여지는 행함이나 실천이 없을 때는 자신의 믿음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고 불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보여질 수밖에 없는 것은 믿음을 보여지는 것을 통해서 확인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로서 주어지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44절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예수님께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뭔가 표적을 보여주면 내 발로, 내 스스로 예수님에게 나아가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을 신뢰하고 믿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믿음은 바로 이러한 자기 신뢰를 버리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인간이 보고 체험해서 믿을 수 있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을 수없이 목격하고 체험했던 이스라엘은 왜 믿음에 실패했습니까? 이렇게 볼 때 옛날 조상들이 만나를 먹었음을 언급한 그들은 조상들이 하늘에서 내려진 만나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결국 원망하고 불평하는 길로 나아갔음을 생각하지 않는 무지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일이 되는 것입니까? 이것을 믿음이 나에게 주어지면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내가 일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일하시는 것을 믿는 것을 뜻합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곧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믿음은 내가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붙드는 것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시고 예수님이 나를 붙들어서 하나님에게로 이끄심으로 되어짐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예수님이 일하심으로서 믿음이 있게 되어짐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표적을 본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39절에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는 말씀을 하심으로서 믿음은 인간의 소관이 아님을 분명히 하시는 것입니다. 영생은 예수님이 일하신 결과로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의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에게서 믿음으로 인한 흔적이 보여진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이 일하시는 결과로 보여지는 것일 뿐입니다.
내가 믿음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믿음이 주어지면 그 믿음이 나를 다스림으로서 생각하는 것이나 속마음까지도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믿음의 흔적이 보여지기 때문에 우리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의 결과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일하심을 신뢰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일하심을 신뢰하기 때문에 자신의 일함을 신뢰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행함과 상관없이 영생을 믿게 되는 것이고 설사 자신에게서 보여지는 행함이 없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행함을 신뢰하는 가운데 영생을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가 믿음이고, 이것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예수님을 신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구원은 전적으로 그리스도로 되어짐을 알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인간의 행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알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신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생명의 문제가 참으로 귀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들은 자기 생존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에게 나오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를 믿으십니까? 그러면 그 믿음은 누구의 것이라고 생각됩니까? 여러분의 것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의 것입니까? 여러분이 만들어낸 믿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입니까? 믿음이 그리스도의 것이고,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진 것이라면 믿음을 자랑거리로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믿음으로 다른 사람을 차별해서도 안 됩니다. 행동을 비교하면서 타인의 믿음을 판단해서도 안 됩니다. 이 모든 것은 믿음을 내 것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에서 보여지는 모습들입니다. 만약 자신의 선택과 의지로 예수님을 믿게 되고, 자신의 실천과 행함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면 구원은 분명 자랑거리로 내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일한 결과와 보상으로 얻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넌 왜 나처럼 하지 않느냐?'는 말을 자신있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린 단지 믿음을 담은 그릇으로 살면서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증언하는 도구로 살아갈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믿음이 무엇인가를 바르게 이해하셔야 합니다. 믿음은 우리의 행함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의 행함에서 믿음의 여부를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은 '믿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만으로 되어지는 것이기에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우리는 생존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썩은 양식이 우리가 원하는 것이었고 필요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서도 끊임없이 썩는 양식을 원합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능력이 우리를 다스리고 썩는 양식을 구하고 세상에 이끌리는 마음을 붙들어서 놓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앉아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복입니다. 우린 예수님을 믿고 있다면 그것은 전적인 은혜입니다. 우리가 보고 확인하고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믿게 하신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영생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