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인의 실제 수기
아버지 / 문보근
어릴 적,
아주 어릴 적에.,..
나에게
아버지는 없었습니다,
나를 있게 한 아버지는
있었는데.....
키어준 아버지는 내겐 없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내 나이 망팔이 되어서
이제야 처음으로.
"아버지" 하고 아버지를 불러봅니다
너무 늦었나요?
쉬울 줄 알았는 데,
"아버지" 하고 그렇게 불러보는 게
쉬울 줄 알았는 데....
내 아버지를 "아버지"하고 부르는 것이
나에게 왜 이리도
낯설고 어색한 걸까요?....
아마도 그건
단 한 번도 아버지를 배워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아버지,
오래전,
동지섣달 그 추운 날 밤,
나는 태어났고,
그 추위가 가시기도 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때 내 나이.,..
나이라 할 것까지도 없는
태어난 지 고작 구십일....
어려도 너무 어려서,
아버지를 잃은 엄청난 슬픔도 모르는 채
까르르 웃었던 어린 나였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
그때,
내가 너무도 어렸습니다
아버지...,
그때에
내가 왜 그렇게 어려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상처받을까 봐
내가 상처를 모를 때,., 하고
신은 그랬을까요?....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간신히 숨만 쉴 줄 아는 어린 나에게
그건 참으로 가혹한 일입니다
그때는
나는 몰랐습니다
어려도 너무 어려서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러나
어느 때에 알았습니다
나에게도
아버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알았습니다,
없었기에
그리움도 없었는 데.....
그걸 아는 순간
나에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생겨났습니다
그리움이 생기니,
그리움이 생기니....
갑자기 아버지가 보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든든한 울타리란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울타리를 알고 나니
그 울타리 안에서 뛰고 노는 또래들이
눈에 들어왔고,
아버지가,
아버지가,. .야속해졌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나는
늘 혼자였습니다
또래들이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걸을 때
나는 홀로 걸었습니다
넘어져도
또래는 그의 아버지가 일으켜 주었습니다
나는 내가 일어나야 했습니다
아버지를 모를 때,
나는 이런 것들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를 알고 나서
나는 관심이 생겼습니다
아버지가.
아버지가 나에게 얼마큼 소중한 분인지
이 모든 것을 알고 나니
아버지 부재에 또다시 마음이 저며옵니다
왜 그때였습니까?
너무 어려서
슬픔을 슬픔으로 인지하지 못할 때
아버지는 왜 그때였습니까?
이별이 뭔지
슬픔이 뭔지
배운 후라면 어땠을까요?
이것이 욕심이라면
한 번 만이라도 내 입으로 당신을 향하여
"아버지"하고
불러본 후라면 어땠을까요?
이 또한 욕심이라면
당신 가슴에 단 한 번만이라도
안겨본 후라면 어땠을까요?
애당초 그마저도
내겐 허용이 안 되는 건지...
태어난 지 백일도 안된 나를 두고
당신은 그렇게
먼 길로 떠나가셨습니다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내가 태어났는 데.,,.
나를 한 번도 안아보지 못한 채
당신은 그렇게 떠나가셨습니다
또래들은 자기네 아버지 곁에서
성장하고
공부하고
결혼도 했습니다
나는 그럴 수는 없었던 건가요?
손주를 안겨드리고
효도도 해드리고
그렇게 살면 나는 안 되는 거였나요?
문득 생각납니다
국민학교 육 학년 때 일입니다
아버지의 기억이란
주제로 글쓰기 숙제가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숙제를 못했습니다.
쓸 만한 기억이 나에겐 없었습니다
지금 그 글을 쓰라면
내겐 지금도 쓸 기억이 없습니다
아버지에 기억은 지금도 백지장입니다
그런데 눈물이 납니다
눈물이 나는 것은
나에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 나를
너무 슬프게 합니다
아버지가 보고 싶습니다
시진만이라도 보고 싶습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정말 단 한 번 만이라도...
아버지를 느껴 보고 싶습니다
망팔이 된 지금이라도
남들처럼 아버지 기억을 떠올리며
그리움에 사무쳐서. ..
마음 아파해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슬프도록 기억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 알량한 이 눈물마저도
드릴 수 없어 목이 메어옵니다
이런 것들이
누구의 잘못이 아닙니다
아버지도..
나도...
.....
출처: 좋은글과 좋은음악이 있는곳 원문보기 글쓴이: 허리케인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