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흥사
신라 경문왕 때 도선국사가 세운 절로, 둘레 4㎞의 중흥산성에 둘러싸여 있다. 절의 마당과 이어인 저수지가 있고, 주위에 삼나무 밭이 우거져 절경을 이룬다.
중흥산성이 임진왜란 당시 의병과 승병의 훈련장이자 격전지였기 때문에 왜군의 침입으로 중흥산성이 함락되자 승병의 순절과 함께 소실된 뒤, 임진왜란 후 작은 암자가 건립되어 여승의 힘으로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다시 폐찰되었고, 1963년에 중건되어 오늘에 이른다.
신라 말,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쌍사자석등(국보 103), 석조지장보살반가상(전남유형문화재 142)이 있다.
특히 이곳에 있던 중흥산성 삼층석탑(보물 112)은 높이 3.8m에 이중 기단으로 되어 있으며, 상층 기단에 세워진 돌의 4면을 양분해 인왕, 사천왕, 천부상, 신상보살상 등을 조각하였는데, 1936년 일본 경찰이 탐내어 일본으로 옮겨가려 하였으나 주민들이 끝까지 지켜낸 석탑으로, 1992년 도난 우려가 있어 광주박물관으로 옮겼다.
주변에 옥룡사지, 동백림, 김시식지, 섬진나루터, 광양향교, 중흥산성, 불암산성 등의 관광지가 있다.
중흥사 입구
중흥사 사천왕문
중흥사 사천왕문
중흥사 사천왕상
중흥사 대웅전
중흥사 지장전
중흥사 요사
중흥사 신축 범종각
중흥사 대웅전
중흥사 삼층석탑과 석등
중흥사 대웅전내
중흥사 대웅전내
중흥사 지장전내
중흥사 지장전내
광양 중흥산성 삼층석탑
보물 제112호
중흥산성 서쪽 시냇가에 있는 3층 석탑이다. 중흥산성에는 신라 경문왕 때 도선대사가 창건한 중흥사(中興寺)가 자리하고 있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왜병과의 격전끝에 승병들은 모두 죽고 절은 불에 타버렸다고 전한다.
이 탑은 원래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국보 제103호)과 함께 있었으나, 석등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기고 석탑만이 남아 있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위층기단에는 모서리 기둥을 굵직하게 조각하였다. 한 면을 둘씩 나누어서 앞면에는 인왕상(仁王像)을, 양 측면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뒷면에는 보살상(菩薩像)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각 층 몸돌에는 두꺼운 모서리기둥을 조각하였다. 1층 몸돌의 각 면에는 연꽃대좌 위에 앉아 있는 여래상(如來像)을 조각하였고, 2층 이상의 몸돌은 훨씬 작아지는 모습이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이고 처마 밑은 수평을 이루고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만 남아 있고 그 위에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있다.
이 석탑은 특히 각 부분의 풍부한 조각들이 눈에 띄는데, 보존상태가 좋고 조각된 상들도 뚜렷하다. 탑신에 비해 밑의 기단부가 너무 커 보이는 경향이 있으나 매우 안정된 느낌을 주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다.
중흥사지 쌍사자 석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