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예찬》그 후 10년,
‘걷기’에 관한 가장 섹시하고 가장 철학적인 글쓰기로 돌아왔다!
2002년에 출간된 다비드 르 브르통의《걷기예찬》은 ‘걷기’의 바이블이라고 할 만큼 지금까지도 걷기를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걷기예찬》에서 저자는‘앉은 자리에서 꼼짝도 않는’현대인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있다가 차를 타고 집으로 가서는 또 텔레비전 앞에 앉는데, 이렇듯 ‘두 다리를 잃어버린’사람들에게 저자는 가장 근본으로 돌아가는 행위인 ‘걷기’에 대해 열정적으로 예찬한다.
그리고 그 후 10년, 사람들은 이제 일부러 걷는다.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갈수록 번잡해지는 세상과 잠시간의 단절을 통해 사람들은 자기만의 길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느리게 걷는 즐거움》은 걷기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지금,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걷는 즐거움에 대해 일깨워주는 책이다. 여전히 걷기를 멈추지 않은 저자는 그때와 같은 길을 걷지만 달라진 자신의 몸과 생각을 이끌고 달라진 길 위에서 새롭게 경험한 걷기의 즐거움에 대해 전한다.
사색과 성찰이 필요한 시대,
두 발로 하는 가장 단순하고 명쾌한 철학적 경험, 걷기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북한산 둘레길 등 국내뿐만이 아니라 산티아고 순례길, 규슈 올레, 네팔 트레킹 등 사람들은 걸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서 떠나고 있다. 빠르고 편한 이동 수단을 두고 오직 자신의 몸에만 의존해야 하는 원시적이고 불편한 여행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시대에 걷기는 ‘삶을 방해하는 생각들의 가지치기’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어지럽고 자극적인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차단시켜 오직 자신만의 속도에 맞춰 일부러 고독해지기 위해, 또 기분 좋은 피로감을 느끼기 위해 걷는다. 걷기는 사회가 요구하는‘가면’을 벗어던지고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되찾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게 하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작가 빅토르 위고가 했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내가 느끼기엔 이런 식으로, 걸어서 여행하는 방법보다 매력적인 방법은 없는 것 같다. 걷는 여행은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롭고 활기찬 일이다. 걷노라면 길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일들에, 점심식사를 하는 농가에, 잠시 몸을 기대는 나무에, 묵상에 잠기는 교회에 전적으로 오롯이 전념하기 때문이다. 마음 내키는 대로 떠나고 멈추고 다시 떠나도 무엇 하나 방해하지 않고 발길을 붙잡지 않는다. 우리는 곧장 앞으로 나아가며 꿈을 꾼다. 걷다 보면 가만히 몸이 흔들리며 서서히 몽상에 빠져들고, 몽상은 피로를 덮어 가려준다.”
이는 이 책을 쓰게 된 저자의 동기와도 맞닿아 있다. 다비드 르 브르통은 다시 한 번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작품들을 다시 읽으며 10년 전 그 길을 걸으며 그때와는 사뭇 달라진 풍경과 새롭게 느낀 걷는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느리게 걷는 즐거움》에는 길 위에서 탄생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혼자 떠난 걷기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 예상치 못했던 날씨 때문에 겪었던 사건, 별이 수놓은 듯한 밤하늘, 낯선 마을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변수 등 당시에는 매우 당혹스럽고 고되게 만들었던 일들이 다시금 즐거움이 되어 우리를 계속해서 걷게 만드는 이유라고 말한다.
걸으며 행복해져라, 걸으며 건강해져라
걷기에 꼭 어떤 목적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걷는 방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조급할 이유도 없고 뭐라고 할 사람들도 없다. 막혀 있던 생각들을 가볍게 흩뜨리며 세상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사색하는 힘을 키우고 싶다면 더 없이 좋은 게 바로 걷기 아닌가.
이 책은 걷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과 감동들을 고스란히 옮겨놓고 있다. 각각의 이야기마다 세밀하게 느껴지는 ‘걷기 예찬’은‘자신만의 길을 되찾아가는’긴 여행이 되어주기 충분하다. 또한 전작에 이어 베르나르 올리비에, 랭보, 빅토르 위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 헤르만 헤세, 니체 등 걷기를 사랑했던 수많은 작가들의 글과 작품을 실었다. 발끝에서 탄생한 위대한 작가들의 글과 저자 다비드 르 브르통의 유려한 문장들은 잠시나마 인생의 무게를 내려놓고 삶의 여유를 느끼고픈 사람들에게 다시금 사색의 즐거움을 주고 있다.
오늘 아침도 제게는 특별한 종교가 없습니다. 제 신은 보행자들의 신이지요. 누구나 오래 걷다보면 아무 다른 신은 필요 없을 겁니다.
브루스 채트윈
모든 보행자는 자기 내면의 신과 함께 길을 걷는다. 걷기는 일신론이 아니다. 길을 걷는 사람들이 느끼는 인상들이 너무나 다양하고 모순적이고 늘 변하기 때문이다. 걷기는 다신교에 속해서 다수의 신성으로 부터 보호를 받는다. 길을 걷는 사람이 그 신들을 알든 모르든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어쨋든 신들은 그와 함께할 테니까. 때로는 숲이나 사막의 맥박 소리, 길을 걷는 사람을 반기고 그의 전진을 후원하는 신의 호흡 소리가 들린다.
걷기가 숭고함의 목적을 추구한다면 여행의 끝에 다가갈 걱정보다는 내면의 변신을 꾀할 걱정이 앞서는 순례자에게는 대개는 자발적인 장애물들로 가득하다. 수고, 인내, 끈기, 피로, 결핍은 그들이 추구하는 내적 지향성에 빠져서는 안 될 요소들이다.(214-215)
루소는 1762년에 멀제르브에서 평생 살면서 느꼈던 최고의 순간은 젊은 시절보다는 오히려 은퇴 후 자신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고독한 산책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정원 안쪽으로 가서 태양을 감상한다. 잡다한 일들로 아침나절이 지나고 나면 서둘러 점심을 하고 오후에 또 누가 찾아올 새라 방문객들을 피해 달아난다. ... "`드디어 오늘 남은 시간은 내가 나 자신의 주인이구나!` 그러고는 차분한 발걸음으로 숲속 야생의 어딘가를 찾아 나섰다." 혼자 자연 풍경을 가로지르노라면 한 치의 모자람 없이 완전히 차분하게 풍경에 젖어든다. (41)
내 경우에는 어딘가로 가기 위에서가 아니라 걷기 위에서 여행을 한다.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순전히 여행하는 기쁨을 위해서다. 중요한 것은 움직이는 것, 삶의 필연성과 당혹감을 더 자세히 경험하는 것, 문명의 포근한 침대를 벗어나는 것, 지구의 화강암과 예리한 단면들로 어수선한 규석들을 내 두발로 느끼는 것이다.
당나귀와 함께한 세벤 여행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난 홀로 걸을 때만큼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고 충만하게 존재하고 경험하며 제대로 나다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주인이라도 된 듯 자연을 맘껏 향유한다. 내 마음은 이리저리 정처 없이 대상을 옮겨 다니며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대상들과 하나가 되어 동화되고 매혹적인 모습들에 둘러싸여 달콤한 감정에 취한다.
고백록
장자크 루소
가능한 한 가만히 앉아 있지 마라. 야외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나오지 않는 생각, 즉 근육이 축제를 벌이지 않은 상태에서 나오지 않은 생각은 절대 믿지 마라. 모든 편견은 마음 속에서 비롯된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한번 앉았다 하면 일어날 줄 모르는 끈기야말로 신성한 정신에 위배되는 진정한 죄악이다.
에케 호모
니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