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황 순 원
주위에서들 그저 교회아줌마라 불렀다. 그런 이름이 붙을 만했다.
신새벽, 아줌마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는 교회당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자그마한 몸집이 의자 사이를 조심조심 더듬거리며 앞으로 나간다. 이토록 더듬거리는 것은 신새벽의 어스름 때문도 아니고, 발이 익숙지 못한 곳이어서도 아니다. 눈이 어둡고 오금이 말을 잘 듣지 않아 그럴 따름이다. 여기 목사 사택으로 오기 전, 단 하나의 외아들을 잃고서 팔 년여의 날품팔이와 식모살이로 원래도 실하지 못한 몸이 아주 말 아니게 돼버렸던 것이다.
어릿거리며 교회당 맨 앞쪽 강단 밑에 이른 아줌마는 거기 꿇어앉는다. 그러고는 팔굽을 마룻바닥에 붙이고 이마를 두 손으로 싸안으며 엎드린다. 꽤 긴 시간을 꼼짝 않고 있는다. 기도를 하는 건데 전혀 말소리는 내지 않는다.
새벽기도를 하고 나와 조반이라도 한술 끓여먹고는 비와 물 양동이를 들고 곧장 다시 교회당 안으로 들어간다. 청소를 하기 위해서다. 이전엔 종지기에 의해 일주일에 한두 번 하던 교회당 안 청소를 아줌마가 말은 후로는 일요일만 빼고 매일같이 진종일 쓸어내고 닦고 한다. 마룻바닥이나 의자 어디에 먼지가 더 낀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아는 터라, 그런 곳은 더 빡빡 쓸어내고 닦아내고 한다. 그리하여 운신이 시원찮은 아줌마의 손질로나마 삼백 명 안팎의 교인을 수용하는 교회당 안은 항상 깨끗이 치워져 있다.
이런 생활은 아줌마가 여기 교회당 옆 목사 사택 지하실 방에 들어 살게 되면서부터 반년 가깝게 이어져왔다. 이 거처를 주선해준 것은 김권사였다. 전에 한동네에 같이 산 일이 있는 데다 아줌마를 교회로 인도한 인연도 있고 하여 아줌마가 몸이 부실해져 날품팔이나 식모살이 같은 걸 못 하고 거리로 나앉게 되자 거둬들여 보살펴주게 된 것이다.
종일토록 교회아줌마는 누구와 말 한마디 없이 지내는 수가 많았다. 한집에 사는 목사네와도 별로 오가지를 않아 하루 이틀씩 대면 않는 수조차 있었다.
이런 속에서, 아직 오십을 몇 해 앞둔 나이건만 벌써 반백이 넘는 머리에, 온통 주름살로 엉킨 아줌마의 얼굴은 움직임을 잃은 한갓 탈처럼 굳어져갔다.
이 얼굴에 변화를 가져오는 때가 있었다. 일요일에 교인들이 데리고 오는 어린애들을 대할 때였다.
등에 업힌 갓난애에서부터 걸음발 타는 애, 개구쟁이 큰 애 할 것 없이 어린애들을 대하면 아줌마는 딴 얼굴이 되곤 했다. 탈같이 굳어진 얼굴에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다. 어르는 갓난애가 벙긋거리기라도 하면 아줌마 얼굴은 만면 웃음으로 바뀐다. 그러나 이럴 때 아줌마의 얼굴은 얽힌 주름살들이 두껍게 집히고 벌어진 입의 위아래 앞니 빠진 자리가 꺼먼 구멍처럼 드러나 웃는 얼굴이 도리어 흉한 형상을 이뤄놓는다. 그래서 조금 낯가림을 하는 애거나 걸음발을 타는 애일 경우엔 그만 웃음을 그치고 비쭉비쭉 울상이 되기도 하고 뒷걸음질쳐 자기 엄마의 등 뒤로 숨어버리기도 한다. 아줌마 편에서 자기의 웃는 얼굴 모양이 흉하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어서, 반백이 넘는 머리와 얼굴의 주름살은 어쩌는 도리가 없다 하더라도 이 빠진 자리만이라도 드러나지 않게끔 애쓰는 것이나 그럴수록 얼굴은 일그러져 더욱 괴이한 형상이 돼버리는 것이다. 좀더 큰 꼬마들은 아예 멀찍이 피해 아줌마에게 곁을 주려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아줌마는 어린애들에게서 무엇인가를 찾아내려는 사람처럼 되풀이 다가가는 것이었다.
마가을¹ 차가운 비가 이틀째 내린 날 아줌마는 교회당 안을 청소하러 들어가다 물 양동이를 든 채 나둥그러졌다. 그날 밤부터 오한에 떨며 열을 냈다. 그런 몸으로도 그냥 청소일을 계속하더니 그만 사흘 만에는 몸져 자리에 눕고 말았다.
목사 댁에서 약을 사다 먹이고 죽을 쒀 내오고 했으나 이튿날은 미음도 넘 기지 못할 청도로 악화되어갔다.
기별을 받고 김권사가 여자 신도 몇을 데리고 심방을 왔다.
누구의 눈에도 교회아줌마가 운명할 것으로 보였다. 모두들 아줌마가 죽어 안 될 것 없다고 생각했다. 살아 무슨 낙을 더 볼 거냐는 것이었다. 믿음이 깊어 천당에 갈 것이니 하루속히 하나님 품안으로 가느니밖에 없다고 했다. 하나님이 죽을 복을 줘 오래 신고하지 않고 이 세상을 뜨게 되니 얼마나 다행하냐고도 했다. 게다가 아주 추워지기 전에 때도 잘 탔다고들 했다.
운명하려는 교회아줌마의 마음에 헛된 틈새를 주지 않기 위해 연이어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다시 찬송가를 불렀다. 곧 임종할 것 같은 아줌마의 얼굴을 지켜들 보면서.
그런데 죽은 듯 굳었던 아줌마의 얼굴에 뜻 않은 변화가 일었다. 뒤엉킨 주름살이 살아나고 입가에 웃음이 지어진 것이다.
김권사가 아줌마의 귀 가까이 입을 가져다 대고 큰 소리로 말했다.
“기쁘지, 교회아줌마? 이 세상 근심걱정이 없는 천국에 가게 됐으니 기쁘지? 지금 하나님 오른편에서 주님 이 교회아줌마를 영접하러 기다리구 계세요. 알겠지, 교회아줌마?”
말을 마친 김권사가 아줌마를 살폈다.
아줌마의 입이 벌어졌다. 이 빠진 자리에 꺼먼 구멍이 드러났다. 무슨 소린가 조그맣게 새어나왔다.
김권사가 얼른 아줌마의 입으로 귀를 가져갔다.
“저어…… 우리…… 아들……”
김권사가 좀더 바싹 아줌마의 입에 귀를 가져다 댔다.
“우리…… 아들애하구·…‥”
아줌마의 감은 눈귀로 물기가 비어져나왔다.
기이한 일이라고 할밖에 없었다. 예상과는 달리 며칠 만에 교회아줌마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던 것이다.
그런 후로는 본디도 작던 식사 양은 더 줄어들고 주름투성이인 얼굴은 더 쪼그라진 탈바가지처럼 되었다.
그렇건만 매일 잠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교회당으로 들어가 새벽기도를 하는 것과 하루 종일 청소하는 일만은 전과 다름없었다. 오히려 이번 병으로 눈이 더 어두워져 먼지 낀 데를 놓치지 않으려고 이전보다도 같은 곳을 더 여러 번 쓸고 닦아내고 했다.
예배 때 모이는 사람들은 교회아줌마의 몰골을 보고, 저 꼴을 하고서 오래 산다는 건 욕이지 뭐냐, 저번에 죽지 않은 걸 보면 남모를 죄를 많이 졌는가 보다고들 수군거렸다. 김권사는 입 밖에 내어 말하지는 않았으나 속으로, 이 세상 부질없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미물이라고 아줌마를 탓하며 혀를 찼다.
어린애들은 또 어린 애들대로 아줌마가 웃는 얼굴이 되기는커녕 미처 어르기도 전에 울음을 터뜨리고, 좀 큰 꼬마들은 멀찍이서 아줌마를 향해, 마귀할멈 마귀할멈, 하고 불러댔다. 그래도 아줌마는 탄하지 않고 무엇인가 기다리는 듯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강추위가 계속되는, 동지를 며칠 앞둔 어느 날 밤도 교회아줌마는 언제나처럼 자리 속에 엎드려 한참 동안 기도를 하고 나서 드러누웠다. 연탄을 아끼느라고 막은 아궁이가 너무 꼭 막혔는지 자리 속이 냉랭했다. 그러나 그걸 살피러 나간다는 게 몹시 힘겹게 여겨져 그만두고 만다.
전에 없이 온몸이 나른하게 자지러들었다. 이불을 머리까지 쓰고 다리를 오그려 붙인다. 그러고는 잠들기 전에 언제나 해오듯이 어린애들의 이모저모를 떠올린다. 아직 이빨도 나지 않은, 또는 위아래 이빨 몇 개씩 난 어린것들의 티 없는 웃음과 깨득거리는 소리, 손가락을 입에 물고 되똑되똑 걸어다니는 귀여운 모습, 어리광스레 어른들의 몸을 스치며 달리는 재롱 등을 하나하나 되살리며 아줌마는 자기만의 낙으로 빠져들어갔다. 그런 채로 아줌마는 스르르 졸음기를 느낀다. 모든 어린애들의 모습이 뒤범벅이 돼 하나로 뭉쳐진다.
별안간 아줌마는 눈을 크게 뜬다. 한 소년이 방문을 조용히 열고 어둠 속으로 들어선 것이다. 아줌마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전등은 켜지 않기로 한다. 소년에게 자기의 모양을 드러내 보이고 싶지가 않았다.
소년은 문지방 안에 선 채로 있다. 아줌마가 나직한 말로, 추운데 어서 이리 오라고 한다. 소년이 천천히 다가와 아줌마 곁에 앉는다. 소년의 몸에서 풍기는 기름때 냄새를 아줌마는 맡는다. 삯바느질로는 주간 학교에 갈 수 없어 낮에는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하면서 야간 공고에 다닐 때의 냄새다.
아줌마가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소년의 손을 잡는다. 얼음처럼 차다. 아줌마가 자기 양손으로 감싸 녹여주려다 그만 거둬버린다. 소년의 손이, 도리어 부르트고 터져 험하게 돼 있는 이쪽 손을 쓸며 어째서 손이 이렇게 됐느냐고 물으려는 듯함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리고 아줌마는 어둠 속이지만 소년의 눈길이 샅샅이 자기를 살필 수 있을 거라고 느껴 얼굴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돌려버린다.
소년이 꽤 큰 상자를 아줌마 앞에 밀어놓는다. 속을 열어보지 않고도 아줌마는 그것이 손재봉틀임을 안다. 그리고 이 재봉틀은 소년이 직접 제 손으로 만든 것이라는 것도. 어려서부터 뭘 만들기를 잘했으니까. 정비 공장에서 시운전하는 차에 가슴을 다치고 그것을 치료하느라고 삯바느질하던 쟤봉틀마저 팔게 된 걸 몹시 애타하더니 이렇게 제 손으로 재봉틀을 만들어가지고 왔구나. 이것은 다른 재봉틀과 달라 내가 아무리 눈이 어둡고 손이 거칠어졌어도 아무 불편 없이 바느질을 할 수 있을 거라.
아줌마는 자기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깨닫는다. 이 추위에 밖에서 온 애를, 더구나 고달플 텐데 이대로 둬서 되겠느냐고 깨닫는다. 아줌마는 소년더러 옷을 벗고 자리에 들라고 한다. 소년이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한다. 참, 앓는 몸이지. 아줌마가 소년의 옷을 벗겨준다. 그러고 보니 갓난애의 몸뚱이다. 안아다 자리 속에 눕힌다. 갓난애는 이미 잠들어 있다. 이불을 꼭꼭 여며주고는 애의 볼에다 자기 볼을 가져다 댄다. 보드랍고 따뜻했다. 볼을 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오래 그러고 있다가 애가 잠이라도 깨면 어쩌나 싶어 뗀다. 애가 푸욱 잠을 잘 수 있게 이 밤이 새지 말고 길게 이어지기를 아줌마는 바란다.
이틀씩이나 교회아줌마의 기척이 없어서 사흘째 되는 날 아침 목사 부인이 지하실방 문을 열어보았다. 잘 여며진 이불 밖에 내의 바람인 아줌마가 몸을 꼬부리고 한 손으로 이불 속의 사람을 싸안은 자세로 죽어 있었다.
-끝-
2016년 5월 11일 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