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과 관련된 상식들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는 기쁨으로 특별하게 지내
파스카 성야 때 세례 받은
영세자들의 축제 기간 전통
3~4세기쯤 부활 8일 축제로
4복음서에 기록된 부활 증거
세부적인 부분에서 다를 뿐
예수 부활 사실은 모두 일치
수원교구 분당성요한성당 타일벽화 ‘구원의 역사’. 세 여인이 예수의 빈 무덤에서 주님 부활을 알리는 이와 만나고 있다.가톨릭신문 자료사진
부활 시기는 예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 50일 동안이다. 주님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부활 8일 축제, 부활삼종기도 등 부활 시기만의 특징들이 있다.
가톨릭교회가 부활 시기를 특별하게 지내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 기쁨에 동참하기 위해서다. 부활 시기의 특징들과 예수 부활의 증거는 무엇인지 알아본다.
부활 8일 축제, 부활삼종기도
그리스도 부활의 기쁨은 주님 부활 대축일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부활 시기의 첫 8일 동안을 축제로 지내는 이유도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을 누리게 된 신앙인들의 기쁨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부활 8일 축제의 기원은 파스카 성야 때 전통적으로 이뤄지는 세례식에서 새 영세자들은 흰 옷을 입었고 교우들도 영세자들과 함께 새 옷을 입고 세례 서약 갱신을 하면서 세례의 은총에 감사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주님 부활 대축일에 세례를 받은 신자들이 한 주간을 자신들의 축제 기간으로 여기던 전통에서 3세기 말이나 4세기 초에 부활 8일 축제가 생겨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활 8일 축제 전례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소망, 사랑의 삼덕으로 우리도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다는 사실을 표현한다.
부활 시기 특징 가운데 ‘부활삼종기도’를 빼놓을 수 없다. 부활삼종기도는 부활 시기인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성경 강림 대축일까지 바친다.
부활삼종기도에는 평상시와는 달리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대로 부활하셨고 그리스도의 부활이 온 세상을 기쁘게 했다는 문구가 포함돼 있다.
엠마오는 어디인가
주님 부활과 관련해 신약성경에 나오는 ‘엠마오’라는 지명은 신자들에게 익숙하지만, 정확한 위치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유다 지방의 한 시골 마을 이름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엠마오는 신약성경 루카복음 24장 13절 “바로 그날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라는 구절에서 등장한다. 예순 스타디온은 약 11㎞에 해당한다.
엠마오에 관한 이야기는 루카복음 24장 13~35절에도 나온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 클레오파스와 다른 한 사람과 동행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들의 초대를 받아 저녁 식사를 같이 한 뒤 사라졌다는 내용이다.
예수님이 사라진 후 두 사람은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32)라고 말한다.
엠마오에 대해 오늘날까지 알 수 있는 것은 루카복음에 전하는 내용뿐이다. 교회사 전승에 의해 엠마오로 추정되는 장소는 네 군데가 있다.
예루살렘 서쪽으로 약 33㎞ 떨어진 암바스, 역시 예루살렘 서쪽으로 대략 15㎞ 떨어진 시골 마을 아부 고쉬, 예루살렘 서쪽 약 6㎞ 떨어진 칼로니에, 예루살렘 북서쪽으로 약 11㎞ 떨어진 엘쿠베베이다.
1901년 프란치스코회가 엘쿠베베에 기념성당을 세우면서 엘쿠베베가 공인된 엠마오로 정착된 측면이 있지만 반론도 제기된다.
루카복음에 나오는 클레오파스가 이곳에서 살았다는 역사적 사실이나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엠마오는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 함께 그곳으로 동행했던 상징적 장소로 이해할 수 있다.
귀스타브 도레 ‘엠마오로 가는 길’(1891).
예수 부활의 증거는
그리스도인에게 예수 부활은 신앙의 본질이지 과학적, 역사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자연법칙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을 믿지 않는 경향이 강하고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졸도했거나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난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예수 부활의 가장 명확한 증거는 신약성경이다. 신약성경 4복음서에는 세부적인 표현이나 묘사가 다른 부분이 있지만 예수 부활을 풍부하고 확실하게 증언하고 있다.
4복음서 기록에 의하면 안식일 다음날 아침, 예수가 묻혔던 무덤이 비어 있는 채로 발견됐고,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시신을 감쌌던 아마포와 얼굴 수건은 무덤 한 곳에 개켜져 있었다.
4복음서의 기록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예수 부활의 더 뚜렷한 증거로도 해석될 수 있다.
서로 다른 복음서 저자들이 합의 없이 예수 부활을 기록했기에 세부적인 부분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예수 부활이라는 사실에서는 모두 일치하기 때문이다.
예수 부활의 또 다른 확실한 증거는 제자들의 활동과 교회의 역사성이다. 예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제자들은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교회의 역사도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빈 무덤이라는 표징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사도들이 만났다는 사실로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확인되지만, 역사를 초월하고 넘어선다는 면에서 부활은 여전히 신앙의 신비의 핵심에 머물러 있다”(647항)고 밝힌다.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건이면서 신앙의 신비로 받아들여야 한다.
박지순 기자(가톨릭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