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능을 받고”
선한목자교회 안에 젊은 교인들의 비중이 높습니다.
그래서 30대 연령 층 교인들로 교구를 편성했습니다. (요셉교구)
교구로 자리잡아가는 과정에 어려움도 컸지만 두 교구가 세 교구로 성장하였습니다.
이제 젊은 담임목사님께서도 부임하였으니 더 부흥되리라 믿습니다.
속회 개학을 맞아 요셉교구에서 교구 자체 부흥회를 열었습니다.
부흥회 첫째날, ‘권능을 받고’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전한 이유는 착한 것을 믿음 좋은 것이라 착각하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교인 중에 착한 것을 믿음 좋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은 착한데 믿음은 없는 교인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믿음 좋은 사람의 성경적 이미지는 골리앗 앞에 선 다윗, 애급에 종으로 끌려갔던 요셉, 바벨론에 포로 갔던 다니엘 같은 사람입니다.
믿음이 좋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설프게 알면 안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 복음을 대충 알기에 힘들게 사는 것입니다.
그 중의 하나가 예수님을 믿고도 권능은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것은 베드로 생애의 최대 실패와 좌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를 다시 택하여 쓰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두가지를 가르치셨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결심을 의지해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할 능력이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목격한 제자들의 마음이 얼마나 흥분되어 있었겠습니까?
어디든지 가서 누구에게든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에게 “지금 예루살렘을 떠나서는 안된다!” 말씀하셨습니다.
호언장담하던 베드로의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들었습니다.
다들 떠날지라도 그는 성령이 오시기 까지 열흘을 기다렸습니다.
자기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베드로는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이 임하심으로 ‘권능을 받고’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하신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이 성령은 받았지만 권능은 받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권능을 잘못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권능은 ‘예수님이 함께 하심’입니다.
그 보다 더 큰 권능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하셨다면 이미 권능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권능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권능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께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순종하기 시작할 때 우리의 삶에 권능이 드러납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은 가장 큰 권능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체험 때문에 교만하지도 않고 체험이 없다고 낙심하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체험이 아니라 삶의 변화입니다.
삶의 변화는 엄청난 성령체험이 아니라 매일 주님과 동행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 보다 귀한 것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은사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이지만 성령의 열매는 주님께 온전히 순종할 때 맺어지는 것입니다. 은사 보다 더 귀한 것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그 사람이 주님과 온전히 하나된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치유 은사가 있는 사람과 사랑의 열매가 있는 사람, 어느 편이 놀랍습니까?
은사가 더 놀랍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 사람과 함께 살고 싶습니까?
예수님과 친밀히 동행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성령충만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