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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이 빛이고 생명이며 지혜이다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느 옛 선각자(先覺者)가 소금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셨다고 하였다.
태양유주(太陽流珠)가 입어해(入於海)하여 숙어삼천세(宿於三千歲)하고 연후(然後)에 부어해면(浮於海面)하야 이염위의(而鹽爲依)하고 혹위풍(或爲風)하고 혹위운무우로(或爲雲霧雨露)하여 위초목지명운야(爲草木之命運也)요 자인야(子仁也)로다.
이를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태양에서 흐르는 구슬이 -햇살을 광자(光子)로 본 것이다- 태양에서 빛나는 구슬이 빗방울처럼 쏟아져 내려와서 바다로 들어가서 삼천 년 동안 묵은 연후에 해면으로 떠 올라와서 소금으로 옷을 지어 입고 나들이를 하여 혹은 바람이 되고 혹은 구름이나 안개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서 비와 이슬이 되어 다시 내려와서 산천초목들의 목숨을 자라나게 하고 그 씨앗이 되는 것이다.
햇빛이 땅에 비쳐 씨앗이 싹이 터서 자라고 광합성 작용으로 염기(鹽基)를 만들고 식물이 수명을 다하여 죽으면 그 염기성 물질이 물에 섞여 바다로 가서 모여 소금이 되는데 이 염기성 물질의 으뜸이 되는 정기(精氣)가 다시 햇빛으로 증발하여 하늘로 올라가서 비와 바람, 구름, 안개에가 되어 다시 식물들을 자라게 하는 생명력이 되고 씨앗이 되는 것이다.
소금이 산천초목(山川草木)의 생명으로 가서 모든 풀 나무의 목숨이 되고 씨가 되는 것이다. 하늘에 삼광(三光) 곧 세 가지 빛이 있다. 곧 햇빛괴 달빛, 별빛의 세 가지 빛이 있는데 이 세 가지 빛을 대표하는 것이 햇빛이다. 빛을 태양유주(太陽流珠)라고 한 것은 태양빛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월성수(日月星宿)에서 나오는 모든 빛을 가리키는 것이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가르쳤다. 빛이 곧 생명이고 생명의 근원은 소금이다. 소금은 생명의 씨앗이며 빛을 담는 그릇이다.
소금 알갱이는 껍질이고 소금 분자 하나하나마다 빛이 들어 있다. 그 빛을 담는 그릇이 소금 알갱이다. 곧 빛을 캡슐에 넣은 것과 같은 것이다.
빛이 생명의 근본이고 근원이다. 만물 중에서는 식물이 모든 생명활동의 시작이며 기본이다. 빛이 소금으로 옷을 지어서 입은 것이 생명이다. 그렇다면 빛과 생명을 담는 그릇, 곧 캡슐도 맛이 있을 것이 아닌가? 그 맛이 바로 짠맛이다.
해와 달과 별의 입자 곧 광자(光子)를 가두는 방법이 소금 결정을 만드는 것이다. 스마트폰 배터리에 전기가 충전되어 있듯이 정육면체의 소금 입자 속에 빛이 충전되어 있다. 소금 입자는 빛과 정신, 지혜, 생명을 담고 있는 그릇이다. 곧 올바른 방법으로 만든 소금은 참다운 지식인 진지(眞知)를 담고 있는 그릇이다.
지상에 있는 온갖 것들의 청명(淸明)한 기운이 위로 올라가서 승화하여 다시 빗물이 되어 내려온다. 봄철에 작은 씨앗이 새싹이 되어 돋아나듯 누에 애벌레가 자라서 누에고치가 되듯 매미 애벌레인 굼벵이가 자라서 매미가 되듯 물이 승화하여 구름, 안개, 비, 바람이 되는 것이다.
풀과 나무 중에서 오래 사는 것은 모두 염기(鹽氣)가 많은 것들이다. 알칼리를 염기라고 부른다. 알칼리가 곧 염기다. 염기와 비염기로 나누면 미네랄은 대부분 염기라고 볼 수 있다. 봉래약쑥, 만세천강근(萬歲天罡根), 고산천수장생근(高山天壽長生根), 야생 참마 칡, 뇌명실(腦明實), 냉이 같은 것들이 알칼리성이 많은 것들이다.
하수오(何首烏)는 염기성 물질도 많은 동시에 산성(酸性) 물질도 많이 들어 있다. 산성 물질이 90퍼센트에 염기가 10퍼센트쯤 들어 있으므로 중화해서 먹어야 한다. 알칼리성이 많은 쥐눈이콩과 하수오(何首烏)를 반씩 섞어서 9번을 짜고 말려야 산성 성질이 중화되어 없어진다. 이렇게 법제한 하수오(何首烏)를 먹어야 흰머리털이 검어지고 불로장생약이 될 수 있다.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 보면 금석지재(金石之材)를 뺀 모든 약초 중에서 석창포(石菖蒲)가 제일 먼저 나온다. 모든 약초를 상약(上藥), 중약(中藥) 하약(下藥)으로 나누어서 상약(上藥)을 제일 먼저 기록하였는데 모든 약초 중에서 석창포를 상약 중에서도 으뜸가는 상약으로 적혀 있다. 그러나 석창포는 산성(酸性)이 몹시 강해서 중화해서 약으로 쓰기가 너무 어렵다.
석창포를 달인 즙으로 염색을 해 보면 염색이 아주 잘 된다. 내가 산에 다닐 때 늘 갖고 다니는 로프를 눈에 잘 뜨이게 하기 위해서 빨강색으로 염색을 해 보았다.
로프를 멀리 던져서 타고 내려가거나 올라갈 때 로프가 멀리서도 뚜렷하게 잘 보여야 하기 때문에 선명한 빨강색으로 염색을 한 것이다. 염색을 할 때 보통 백반을 매염제로 쓴다. 또 식초도 훌륭한 매염제가 된다.
석창포, 홍경천(紅景天), 청미래덩굴 뿌리 같은 것들은 모두 염색이 잘 되게 하는 훌륭한 매염제이다. 색소가 실에 깊이 침투하여 달라붙게 하는 것이 매염제다. 매염제는 모두 산성(酸性) 물질이다. 석창포의 즙은 산성이 매우 강하다. 안으로 뭉쳐서 색소가 침착되게 하는 힘이 아주 강한 것이다.
그렇다면 석창포의 독을 중화하는 방법이 있는가? 석창포를 법제하는 법은 없다. 옛날 책에 좋다고 써 놓았다고 해서 아무 것이나 먹어보고 그대로 믿고 쓰면 안 된다.
석창포(石菖蒲)나 하수오(何首烏)는 약으로 많이 써 보지 않았다. 손이 떨려서 감히 쓸 수가 없다. 이런 것들을 먹으면 몸이 산성화되기 때문이다. 당장은 좋은 효과를 볼 수 있겠지만 오래 먹을 수 없다.
알칼리성이 되어야 약이나 음식으로 쓸 수 있다. 사람은 체액이 약알칼리 상태에서는 몸이 성장한다. 알칼리가 51퍼센트이고 산이 49퍼센트일 때에는 성장이 거의 멈춘다.
그럴 때 알칼리성 물질만 몸속에 들어가면 너무 늘어져서 퍼져서 움직이지 못한다. 산은 안으로 오므라들게 하는 성질이 있고 알칼리는 바깥으로 확산하고 팽창하게 하는 성질이 있다.
긴장하여 안으로 응축하게 하는 것은 산이다. 나이가 많아졌을 때 기운을 나게 하려면 몸속에 산성 물질이 있어야 한다. 산성 물질을 몸에서 대사 작용으로 산화(酸化)되게 하여 그 때 나오는 에너지로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산에는 세균이 침투하지 못한다. 산이 병원균의 침입을 막는 아주 훌륭한 방어 무기가 되는 것이다.
백하수오(白何首烏)는 나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오래 자란다. 수백 년을 살 수 있는데 수명이 거의 산삼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백하수오는 뇌두(腦頭)가 길고 뿌리가 둥글게 달리고 뿌리가 갈라져서 그 옆에서 뿌리가 새로 달리기도 한다. 그 밑에 또 줄기가 길게 내려가서 둥근 뿌리가 주렁주렁 달린다. 청미래덩굴 뿌리 또한 뇌두(腦頭)에서 뿌리가 여러 개 난다. 이런 것들은 모두 산성 성질이 강하여 약으로 오래 쓸 수가 없다.
오래 전에 백하수오를 아주 큰 것을 누가 갖다 주기에 집에 두었더니 몇 년 동안 여기저기 굴러다녔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다. 하수오(何首烏)는 산성 성질이 몹시 강해서 아무리 오래 두어도 벌레도 먹지 않고 썩지도 않는다.
만세천강근, 고산천수장생근, 설산가시오갈피, 야생 참마, 칡, 봉래약쑥, 씀바귀, 민들레, 냉이, 달래 같은 것들이 알칼리성 성질이 많은 것들이다. 특히 야생 참마는 산성이 거의 없고 순수한 알칼리성 성질을 갖고 있으므로 식품이나 약으로 가장 훌륭한 것이다.
야생 참마는 가장 훌륭한 염기성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야생 참마는 나이를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오래 산다. 그러나 밭에 재배한 마는 산성 성질이 강하므로 1년 정도밖에 살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재배한 마를 강판에 갈아 코처럼 흐물흐물하게 된 것을 마시는데 이런 것을 먹으면 간에 문제가 생기거나 아토피 피부병 같은 것이 오기 쉽다. 사람이 밭에 심어 재배한 마는 산성 성질이 강하여 솥에 넣고 한참 동안 쪄도 잘 익지 않는다.
세신(細辛)이라고 하는 약초가 있는데 염기성 성질도 강하지만 산성 성질도 강하다. 그래서 세신 한 가지만을 단독으로 쓰지 말고 반드시 법제를 해서 써야 한다. 대부분의 식물들이 산성 성질과 알칼리성 성질이 섞여 있는데 산보다 알칼리가 더 많은 것이라야 음식이나 약으로 쓸 수가 있다. 염기성 식물들은 해와 달과 별들 곧 우주의 정기를 올바르게 받고 자란 하늘과 땅이 만들어낸 올바른 자식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염기성(鹽基性)이 많은 식물일수록 건강하고 오래 산다. 염기성(鹽基性)의 염(鹽)은 소금 염(鹽)이다. 염기는 소금 기운이다. 염기는 소금에서 오는 것이다. 염기의 근원은 소금이다. 이른 봄철에 만든 토판염에 가장 훌륭한 염기성 물질들이 들어 있다.
토판 소금이라고 해도 이른 봄철에 낸 것이 아니라 7월이나 8월 여름철에 낸 것은 몸속에 들어가서 산성 성질로 작용한다. 꽃소금이나 정제염, 구운 소금 같은 가열한 소금이나 가공소금도 다 마찬가지다.
지상에 있는 모든 훌륭한 염기성 물질이 집약되어 모여 있는 보물창고가 바로 이른 봄철에 만든 토판소금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훌륭한 염기성 물질이 토판소금에 가득 들어 있다.
나는 소금이 정말 모든 초목(草木)의 생명의 근원이며 생명의 씨앗이 되는지를 한 번 시험을 해서 알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옛날에 사용하다가 금이 가서 쓰지 않고 버려 둔 큰 항아리를 실험 도구로 쓰기로 했다.
그 항아리는 높이가 1미터 70 - 80센티미터쯤 되었다. 키가 큰 사람이라도 발판을 놓고 올라가야 속을 들여다 볼 수 있을 만큼 큰 것이다. 3드럼, 곧 서른 말이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두세 사람이 들어가서 설 수 있을 정도로 속이 넓다. 그런데 바닥에 금이 가서 물이 새기 때문에 이사를 가면 버리고 가려고 그대로 버려 둔 것이므로 아마 6백 년쯤 되었을 것이다.
어차피 못 쓰는 것이므로 밑구멍 부분을 떼어내고 실험용으로 써 보기로 했다. 항아리의 금이 간 부분을 꿰매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송곳을 금이 간 곳 옆에 대고 망치로 살살 때리면 그 부분만 떨어져 나가서 구멍이 생긴다.
그 구멍에 솔뿌리를 실로 삼아서 바느질하듯이 꿰맨다. 옛날에 대나무로 만든 들통 같은 것도 한 부분이 망가지면 솔뿌리로 메웠다. 소나무 햇뿌리로 메워야 솔뿌리가 마르면서 차츰 줄어들어서 꽉 조여 주고 질겨져서 금방 끊어지지도 않고 닳지도 않는다.
솔갈비나 나뭇잎을 긁어모으는 데 쓰는 갈퀴 같은 것도 여러 개를 하나로 묶었던 것이 느슨해져서 풀리면 다시 고쳐서 맬 때에 솔뿌리로 묶어야 마르면서 꽉 조여져서 단단하게 고정이 된다. 마치 고무줄로 묶은 것처럼 탄력이 유지되는 것이다.
형한테 항아리 밑을 좀 빼 달라고 부탁했더니 이틀이 걸려서 항아리 아래쪽을 깨끗하게 도려냈다. 밑을 도려 낸 항아리 아래쪽을 30-40센티미터쯤을 잘라 내서 키가 1미터 40센티미터쯤이 되게 만들었다.
그 밑을 뺀 항아리를 이른 봄날 집 뒤쪽 겨우내 땔감을 재어 두었던 곳에 두어 실험을 하기로 했다. 겨우내 나무를 다 때고 빈 터로 남아 있는 곳인데 바닥을 비로 깨끗하게 쓸어내고 또 흙을 넓게 파서 거기에서 나온 흙으로 둑을 쌓았다.
밑에 생흙이 나올 때까지 깊이 파서 나온 흙으로 모두 둑을 쌓은 것이다. 생토(生土)에는 지층(地層)이 있다. 지맥(地脈)이 있는 것이다. 나뭇잎에 엽맥(葉脈)이 있는 것처럼 일정한 방향으로 규칙적인 무늬 같은 것이 있다.
중국 땅에는 생토(生土)가 없다. 열 길을 파도 물이 나오지 않는다. 물이 나온다고 해도 건수(乾水) 밖에 없다.
생토(生土)를 모두 걷어내고 석 자 깊이로 흙을 더 파내서 흙 속에 풀씨가 하나도 없는 곳까지 파냈다. 1미터 깊이 이하에서 파낸 흙을 별도로 새로 만든 가마니에 차곡차곡 담아서 다른 흙과 섞이지 않게 하였다. 1미터 이하에 있는 생흙에는 풀이나 나무의 씨앗 같은 것이 단 하나라도 섞여 있을 리가 없다.
그렇게 한 다음에 항아리를 땅속에 묻었다. 항아리 윗부분이 흙 위로 한 자쯤 올라오게 묻은 뒤에 항아리 속에는 항아리 깊이의 3분지 2 정도 높이만큼 가마니에 담아 두었던 생토를 넣었다.
그렇게 한 다음 풀씨가 하나라도 바람에 날려서 항아리 속으로 들어갈 수 없게 하기 위해서 미군 부대에서 공군들이 낙하산을 타고 낙하하는 훈련을 하다가 버리고 간 낙하산을 주워 와서 항아리 입구를 덮었다. 낙하산은 스타킹처럼 나일론 실로 된 매우 촘촘한 망으로 얽혀 있어서 아무리 작은 풀씨도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낙하산 천을 항아리 위에 씌우고 꼭꼭 묶어서 풀어지지 않게 하고 그대로 몇 년 동안 두어서 항아리 속에서 풀이 나서 자라는지를 두고 관찰하여 보기로 한 것이다. 곧 항아리 속으로 햇빛과 빗물과 바람만 들어갈 수 있게 하고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가장 작은 풀씨 하나라도 들어갈 수 없게 한 것이다. 촘촘한 낙하산 천 안쪽으로 모든 풀씨 중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절대로 들어갈 수가 없다.
그렇게 해서 항아리를 5년 동안을 두었더니 온 동네에 있는 모든 풀 종류가 항아리 안에서 나서 자라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씨가 전혀 없는 곳에서 씨가 생겨나서 자란 것이다.
바랭이 같은 것의 씨앗은 깨알보다 더 크다. 그런데 항아리 속에서 바랭이가 나서 자랐다. 나일론이 삭아서 구멍이 나서 그 안으로 바람에 씨앗이 날려서 들어갔을 리도 없다. 아무리 작은 씨앗이라도 그 속으로 날아 들어갈 리가 없다. 풀의 씨앗이 한 톨도 들어 있지 않는 흙에서 햇빛과 빗물과 바람을 받는 것만으로 온갖 종류의 풀들이 나서 다 자란 것이다.
햇빛과 빗물과 바람만 있으면 풀씨가 전혀 없는 곳에서도 온갖 풀들이 다 저절로 생겨나서 자란다. 요즘 지구에는 해마다 100종이 넘는 생물들이 멸종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기후가 본래 상태로 회복되면 멸종되어 없어졌던 종자들이 저절로 다시 복원되어 자라게 된다.
흙은 여성의 음부(陰部)이며 자궁과 같고 빗물, 햇빛, 바람은 정액과 같다. 그래서 소금을 생명의 자인(子仁)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 때 그 항아리에서 자라난 것은 모두 그 식물 종의 시조(始祖)이다. 바깥에서 씨앗이 날아가서 항아리 속으로 들어갈 수가 절대로 없으므로 항아리 속에서 씨앗이 생겨나서 자란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이 생명의 씨앗이 된 것이다. 빗물 속에 들어 있는 염기성 물질이 생명의 근원이 되고 생명이 씨앗이 된 것이다. 그 때부터 나는 빗물예찬론자가 되었다. 그 뒤에 나이가 좀 들었을 때 비닐이 처음 제품으로 생산되어 나왔다. 비닐이 처음 나왔을 때에는 외국에서 수입한 것이라서 값이 제법 비쌌다. 그때부터 너도나도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온상(溫床)을 만들어 모종을 길렀다.
고추나 상추 같은 여러 가지 채소를 초봄에 일찍 온상에서 길러서 밭에 옮겨 심으면 수확을 훨씬 일찍 거둘 수 있을 뿐 아니라 수확량도 훨씬 많았다.
그 때는 비닐 값이 광목 값만큼이나 비쌌다. 비싼 비닐로 온상 덮개를 만들어서 밤에는 영하로 기온이 내려가므로 덮개를 덮었다가 낮에는 기온이 따뜻하므로 덮개를 벗기기를 반복하면서 가지, 고추, 상추 같은 것의 모종을 심었다.
그런데 비가 오는 날 빗물이 비닐이 찢어져서 생긴 구멍으로 새어 들어오면 모종 농사가 다 망한다. 온상 안에서 일주일 동안에 10센티미터쯤 자라는 모종이 빗물을 맞은 부분만 하루 저녁에 30센티미터가 자라기 때문이다.
식물이 너무 빨리 자라서 다 쓰러지거나 허리가 다 부러져 버리므로 모종으로 쓸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일주일 이상 키워야 되는 콩나물을 이틀 만에 키우려면 빗물을 받아 두었다가 그 물로 키우면 된다. 빗물을 주면 모든 식물들이 매우 빨리 자란다. 빗물에 생명을 잘 자라게 하는 에너지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키가 잘 자라지 않는 아이한테 빗물을 받아 두었다가 먹이면 키가 아주 잘 자란다. 빗물을 물 대신 마시고 빗물로 밥도 지어 먹고 국도 끓여 먹으면 된다.
빗물이 가장 좋은 물이다. 빗물에 생명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내리는 빗물은 절대 사람이 먹는 물로 쓸 수가 없다.
그러나 요즘에 내리는 비는 가능하면 맞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요즘에 내리는 비는 황사(黃砂)만큼이나 위험한 것이다. 요즘 비를 맞으면 머리카락이 빠져서 대머리가 될 수도 있다. 산성비이기 때문이다. 옛날의 빗물은 뭇 생명을 잘 자라게 하는 염기성 빗물이었지만 요즘 내리는 빗물은 뭇 생명을 병들어 죽게 하는 죽음의 빗물이다.
산성비를 맞으면 피부가 건성 피부로 바뀐다. 지금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빗물을 받아서 사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빗물을 마음대로 받아서 사용할 수 있었다.
식물이든지 동물이든지 성장을 촉진하는 데에는 빗물이 제일 좋다. 땅에서 솟아나는 샘물로 농사를 지으면 작물이 잘 자라지 않는다. 빗물을 가두어 저수지에 저장해 두었다가 그 물로 농사를 지으면 농작물이 아주 잘 자란다. 빗물을 모아 두었다가 집 안에 키우는 화초(花草)에 주면 아주 잘 자란다. 이런 것을 보고 빗물에 태양의 힘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눈을 녹인 물로 콩나물을 키웠더니 콩나물이 놀랄 만큼 잘 자랐다. 성장을 촉진하는 데에는 빗물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그러나 빗물이나 눈 녹은 물을 정수기 같은 것으로 거르면 거르는 과정에서 기능이 모두 사라져 버린다.
우리 조상들은 눈을 녹인 물을 납설수(臘雪水)라고 하여 귀한 약을 만드는 데 아주 중요하게 썼다. 나는 예전에 생기액(生肌液)을 반드시 눈 녹인 물로 만들었다. 그러나 요즘에 내리는 눈을 녹여 보면 시커멓고 냄새가 나는 물이 되어 곧 썩어 버린다.
우리나라에서는 오염이 거의 되지 않은 눈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울릉도 밖에 없다. 나는 울릉도와 강원도 평창의 깊은 산속에 내린 눈을 모아 녹여서 만든 납설수를 생기액을 만드는 데 썼다. 나는 납설수(臘雪水)와 몇 가지 약재로 만든 생기액으로 나는 아무리 심한 상처나 화상(火傷)이라고 해도 단 며칠 만에 어떤 흉터도 남지 않게 고칠 수 있었으며 목숨이 경각(頃刻)에 달려 있는 갖가지 불치병이나 난치병자 수천 명을 살려낼 수 있었다. 이 생기액을 다시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통탄(痛嘆)할 일이다.
사람의 몸과 뱃속에는 사람 몸 전체 세포 수보다 백 배 이상이 더 많은 10경이나 되는 미생물이 살고 있고 사람은 그 미생물들과 공생(共生)하면서 공존공영(共存共榮)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 뱃속의 미생물들과 같이 사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나쁜 음식을 먹지 않고 좋은 음식을 먹으면 내 뱃속에 있는 미생물들은 요순(堯舜)시절과 같이 태평가(太平歌)를 부르게 되는 것이고 내가 나쁜 것을 먹으면 뱃속에 있는 미생물들이 서로 육박전(肉薄戰)을 벌이는 살벌한 전쟁터가 되는 것이다.
성경(聖經)의 창세기(創世記)에 나오는 있는 천지창조에 대한 기록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이 그런 방법으로 생명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하늘에서 빗물이 모든 생명을 만든 창조주이다. 하나님은 빗물로 생명의 씨앗이 되게 하신 것이다. 나는 항아리 실험을 통해 빗물에 모든 생명의 씨앗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항아리 속에 씨앗이 전혀 없는 흙을 채운 다음에 빗물과 햇빛, 바람만 들어가게 하면 항아리 안에서 온갖 풀들이 나서 자라게 되는 것을 알았다.
항아리 속에서 풀들이 먼저 나서 자라고 더 시간이 지나면 나무가 나서 자랄 것이며 그 다음에는 그 식물을 파먹고 사는 벌레가 생길 것이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 벌레를 잡아먹고 사는 새가 생길 것이며 나중에는 고래처럼 큰 동물까지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생명체들의 종이 분화하고 진화하는 것이다. 식물이 먼저 생기고 시간이 많이 지나면 동물이 생겨날 것이다.
사람이 지구를 망가뜨려서 기후가 변하여 지구 전체가 사막이 된다고 할지라도 지구에 사람만 없어지면 곧 원시시대와 같이 복원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꽃씨, 풀씨 등 모든 종자를 보존하지 않으면 영원히 멸종될 것이라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지금 멸종되어 없어진다고 할지라도 기후가 본래대로 회복되면 없어졌던 종자들이 다시 생겨나서 자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떼에는 그 지역의 풍토에 맞는 것들만 나서 자라게 될 것이다.
빗물이 생명의 씨앗을 만들고 생명을 잘 자라게 하는 힘은 소금에서 오는 것이다. 뭇 식물이 광합성 작용을 통해서 만든 생명의 근원이 되는 기운이 소금 속에 저장되어 있다가 식물이 죽어서 썩으면 빗물에 섞여 바닷물로 흘러가고 바닷물이 증발할 때 하늘로 같이 올라가서 빗물에 섞여 다시 땅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소금에는 곰팡이를 없애고 효소(酵素)를 잘 살게 하고 몸에서 악한 마음을 없애는 힘이 있을 뿐만 아니라, 활인지심(活人之心)을 갖게 하고 자비심을 생기게 하고 대오각성(大悟覺醒)을 이루게 하는 힘이 깃들어 있다.
성인(聖人)이나 도인(道人), 위대한 선각자(先覺者)의 몸에서는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온다. 이 빛을 후광(後光)이라고도 하고 광배(光背)라고도 부른다. 이 빛은 소금에서 나오는 것이다. 소금은 태양의 빛을 저장하는 축전지와 같은 것이다. 곧 손전등의 배터리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지식을 얻되 올바른 지식을 얻어야 한다. 더할 나위 없는 극치의 지식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대학(大學)에 치지(致知)는 격물(格物)에 있다고 하였다. 곧 물건의 성격을 파악하는데 있다고 하였다.
빗물에는 생명이 깃들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하수가 좋은 물이라고 하는데 지하수는 그냥 깨끗한 물일 뿐이다. 지하수에는 생명력이 깃들어 있지 않다. 암반천연수라고 하는 것은 생명이 없는 죽은 물이다.
지하수보다는 산속을 흐르는 시냇물이 훨씬 낫다. 냇물은 지표(地表)에 생명력을 나누어 주면서 흘러간다. 주변에 자라는 모든 식물들한테 생명력을 부여하면서 흘러가는 것이다.
생명력은 위로 떠올라서 날아가 버리고 땅 속으로 스며들어 가라앉은 찌꺼기가 다시 솟아나는 것이 샘물이다. 그래서 샘물로 농사를 지으면 농작물이 잘 자라지 않고 열매가 잘 맺히지 않는다. 샘물에는 생명력이 조금 밖에 깃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빗물은 모든 식물을 잘 자라게 한다. 벼농사를 지을 때 비가 한 번 오고 나면 벼가 너무 웃자라서 줄기가 약해서 벼가 쓰러져 버릴 때가 있다. 빗물에 무슨 성분이 들어 있어서 식물이 잘 자라는지를 기계로 분석해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씨티 사진으로 몸뚱이 속에 있는 장기는 볼 수 있으나 마음은 씨티 사진으로 찍을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사람의 기분이나 감정은 얼굴을 느끼거나 통해 볼 수 있다. 근심, 기쁨, 우울 이런 것들은 얼굴표정으로 볼 수 있으나 마음속은 들여다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무엇이든지 온 곳이 있으니까 결과가 있는 것이다. 물에 소금을 넣어야 짠 맛이 나는 것이지 소금을 넣지 않았는데 짠 맛이 날 리가 없다. 모든 것이 지은 바대로 되는 것이다.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다. 이것이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법칙이다. 모든 것은 뿌린 대로 거두게 되는 것이다. 씨앗을 뿌린 만큼 반드시 거두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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